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05
507화
“자네.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리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살려줄 성 싶은가?”
그 말에 범석이 화들짝 놀란 척을 했다.
“설마 죽이시려고 했습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여기까지 내가 배웅 나온 것 아니겠나? 마지막 가는 길 노자라도 던져주게 말일세. 후후후.”
“저승 가는 길 노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냥 살려주시죠. 누가 압니까? 나중에 큰 복으로 돌아올지 말입니다.”
루카스가 지그시 그를 노려봤다. 당장 죽을 자가 저리 태연하게 대꾸하니, 좀 이상했던 것이다. 보통은 손이 발이 될 세라 싹싹 빌었어야 옳았다.
이런 낌새를 눈치를 챈 데레사가 황급히 나서서 사정하듯 말했다.
“아, 아버지 제발 살려주세요. 도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러시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이든 했잖아요.”
범석에게서 시선을 뗀 루카스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데레사를 바라봤다. 그녀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후한의 싹은 미연에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너는 저 범석이라는 작자와 붙어먹지 않았느냐?”
“그, 그건 아버지가 시켜서 그런 것이잖아요. 전 아버지의 명령대로 했을 뿐이에요.”
“후후후. 모양새는 일단 그랬지. 그렇지만 너는 내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숨겼다. 바로 저놈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 말이다.”
데레사가 울상인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전 제 아이를 지키고 싶었단 말이에요. 아버지가 이 아이를 살려주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흑.”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젓는 루카스였다.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지만, 그녀의 실수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쯧쯧쯧. 이해는 한다만, 너는 그 이후에도 범석 저놈을 보고도 몇몇 누락시키거나 왜곡시켜 보고 했다. 그런 상황인데, 내가 어찌 너를 믿겠느냐?”
“흑흑. 그것도 어쩔 수 없었어요. 어떻게 제 손으로 제 아이의 아버지를 죽여요? 나중에 이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어떤 낯으로 대하려고 말이에요.”
루카스가 또렷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래서 네가 이 자리에 끌려온 거다.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 없는 법. 만약 네 아이가 훗날 자라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가 나라고 알게 되어 봐라? 과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그, 그건…….”
“거봐라. 대답하기 어렵지 않느냐?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나는 후한을 남기고 싶지 않구나.”
데레사가 황급히 루카스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제, 제발 옛정을 생각해서 살려주세요. 저는 아버지의 친딸이에요.”
루카스가 날카로운 눈빛을 지었다.
“친딸이라……? 정말 가증스럽구나.”
“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실 너의 뒷조사를 하는 와중에 난 아주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얼마 전에 네가 병원에 가서 친자 확인을 위해 두 번의 유전자 검사를 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중 하나는 네 어미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 것이었지. 혹시 이 말을 듣고 뭔가 생각나는 것이 없느냐?”
데레사 자신이 한 일을 그녀 스스로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유전자 검사 뒤로 데레사는 자신이 안젤라와 루카스의 친자식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 루카스가 그 사실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정말 치밀하고 무서운 자라고 할 수 있었다.
“서, 설마……?”
“그래서 네가 죽는 거다. 너는 내 혈육이 아닐뿐더러, 내게 너무 많을 사실을 숨겼다.”
데레사가 더욱 안달이 난 표정으로 매달렸다.
“그, 그렇지만, 전 지금까지 아버지만을 위해 살아왔어요. 그래서 어머니도 배신했고, 경제인 단체의 정보도 빼내 건네주었고요. 그런데 그런 저를 친딸이 아니라고 죽이시려 하시다니 너무하세요. 흑흑.”
이 부분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루카스였다. 비록 친딸이 아님을 밝혀졌지만, 그녀는 자신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일했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 번쯤 기회를 더 주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좋다. 그럼 네 아이를 지우겠다고 약속해라. 그럼 옛정을 생각해서 목숨만큼은 살려주지.”
“그, 그건 절대 안 돼요! 이 아이는 제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말이에요. 제발 저는 죽어도 좋으니,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일으킨 루카스가 작슨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슬슬 이들을 보낼 때가 된 것이다. 그는 알리바이 문제로 오랫동안 이곳에 있을 수 없기에, 빨리 일을 끝마쳐야 했다.
“작슨. 이제 슬슬 시작해라.”
“네. 알겠습니다.”
작슨이 포크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가 다시 다른 납치범들에게 범석과 데레사를 끌고 나가도록 했다. 포크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따라나설 수는 없었다.
철문 밖으로 끌려나오며 범석이 지그시 포크를 바라봤다. 제대로 일 처리를 하라는 암묵적인 경고였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범석은 저세상 행이었다.
총구의 위협으로 끌려나온 범석이 산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루카스 회장!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지!”
순간 한 납치범이 개머리판으로 범석의 등짝을 후려쳤다. 순순히 따르라는 암묵적인 표시였다. 다행히 개조신체로 큰 데미지는 입지 않았지만, 열이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일이 술술 잘 풀려가는 마당에, 여기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루카스가 그를 웃는 낯으로 바라봤다.
“후후. 그건 나도 모르네. 난 그저 구경만 하러 온 것이라서 말이야.”
“더러운 자식! 사내새끼가 자기 손 더럽히기 싫어서, 남에게 의지하다니……. 한심하다!”
납치범이 다시 개머리판을 들어 올렸지만, 루카스 회장이 만류했다. 그의 욕이 그리 나쁘지 않게 들렸던 탓이다. 아니 달게 들린다는 표현이 옳았다. 원수의 최후 발악. 언제 봐도 흥이 돌았다.
“아니. 그만하게. 항상 실실거리던 저놈이 저리 악을 쓰다니, 아주 흥미로워.”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납치범이 공손한 자세로 총을 바로잡았다. 그는 자신들이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줄 의뢰인이었다. 그깟 소원 들어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루카스가 침묵하는 범석을 응시하며 말했다.
“자네. 계속해보게. 내 기꺼이 들어줌세.”
“지랄하지 마! 회장 단단히 각오하는 편이 좋을 거야. 이대로 끝나지만은 않을 테니까!”
“후후후. 그게 그리 쉬울까? 이들은 모두 프로들이라네. 분명 아무런 후한 없이 자네들을 끝장내 줄 것이라고 믿네.”
“훗. 제발 그렇게 되도록 빌어라. 아니면 회장 당신은 내 손에 죽는다.”
“글쎄? 원대로 될까?”
“크크크. 세상 일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회장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지.”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 일말의 가능성이지만, 일단 기대해보지. 후후후.”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갈라진 길 끝으로 이어진 곳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워낙 험해 개조인간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듯 보였다.
낭떠러지로 간 회장이 까마득한 바닥을 보더니, 작슨을 바라봤다.
“나쁘지는 않지만, 확실히 처리할 수 있겠나? 만약의 경우 살아남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염려하지 마십시오. 밑에도 일부 인원이 가있는 상태고, 여기서 끝장을 내고 떨어뜨릴 예정입니다. 확인에 확인을 거치게 되니, 저들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럼 상관없겠지. 그런데 만약의 경우를 위해 사고사로 위장해야 하는데 괜찮겠는가? 포박 구에 묶여 있으니 손목과 발목에 자국이 남을 것이니 말일세.”
“상관없습니다.”
“왜지?”
“후후. 이 산은 곧 큰 산불에 휩싸일 거니까요. 시체가 발견돼도 과자가 되어 있을 테니,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설령 밝혀졌다고 해도 표면적으로 이들은 밀월여행 중 산불을 만나 도망치다가 결국 이곳 낭떠러지로 추락한 것으로 될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경찰들이 회장님을 의심하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증거가 없는데요. 후후후.”
이제야 안심한 루카스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하긴 증거가 남을 리가 없었다. 이번 일에 동원된 자는 모두 죽게 되어 있었다.
“후후. 알겠네. 그럼 자네만 믿겠네.”
“네.”
“자. 이만 시작하지. 시간이 없네.”
고개를 끄덕인 작슨이 납치범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이제 일을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그들이 주변에 있는 큰 돌을 주워들더니, 범석과 데레사를 낭떠러지 끝으로 데려와 무릎을 꿇렸다. 다른 인공적인 도구를 사용해 쳐죽이면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검시에서 타살 사실이 밝혀질지 몰랐다.
하여간 이들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되어야 했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번쩍 든 납치범. 그자에게 뒤통수를 노림 받던 범석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죽음 직전이라, 일이 틀어진 것이 아닌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시팔. 포크 이 자식 뭐하는 거야! 내가 죽은 다음에 시작하자는 거야! 뭐야! 혹시 배신을 때리는 것이 아니겠지?’
그때 산 아래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아올랐다. 위치상으로 볼 때, 방금 떠나온 산채가 분명했다. 그리고 공중으로 무수히 발사되는 레이저 빔의 빛줄기. 계획이 없던 바였기에, 납치범들은 전전긍긍하며 범석과 데레사를 죽이는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산채를 폭발시켰어!”
“나도 몰라! 이런 건 계획에 없었다고!”
계속되는 레이저 빔의 발사와 함께한 납치범의 무전기로 긴급한 연락이 왔다. 바로 포크의 발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 쌍! 우리가 속았다! 의뢰인들이 우리까지 죽이려 하고 있어! 모두 조심해! 피슝. 피슝.
얼굴을 일그러뜨린 한 납치범이 자신이 들고 있는 총으로 루카스와 작슨을 번갈아 겨누었다. 그로서는 생판 모르던 의뢰인들 보다, 동료인 포크가 더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의 폭발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더욱 의뢰인들이 의심스러웠다. 나머지 납치범들도 같은 생각인지 일제히 루카스와 작슨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우리를 죽이려 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먼!”
“시팔! 어쩐지 뭔가 뒤가 구리다고 했어! 하긴 이딴 일을 벌였으니, 우리의 입을 막고 싶었겠지! 이 개새끼들!”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범석과 데레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지금의 사태가 대략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 루카스와 작슨은 납치범들에 의해 죽던지, 아니더라도 장기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후후. 아주 잘 돌아가고 있군. 역시 마가렛이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루카스가 작슨을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기에 이딴 일이 벌어지게 하였느냐는 것이다. 지금 범석을 죽이기는커녕 자신들이 죽게 생겼다.
그가 이를 아득 물고 조용히 말했다.
“작슨! 대체 무슨 일이야! 제거조가 너무 빨리 왔잖아!”
“그, 그게 저도 대체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뭘 몰라! 이 사태를 보고도 몰라!”
바로 옆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범석이 납치범을 향해 고자질했다.
“여러분들. 당신들의 의뢰인들이 제거 조가 너무 빨리 왔다고 하네요.”
이 소리를 들은 납치범이 루카스 회장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자신은 듣지 못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범석의 말에 믿음이 간 것이다.
“이 개자식들! 역시나 그랬어! 다 죽여버리겠어!”
그러자 한 적발의 납치범이 그를 만류했다.
“안돼! 만약을 위해 인질을 남겨놓아야 해! 제거 조의 전력이 얼마만큼인지 아직 몰라!”
그 말에 총구를 내리는 적발의 납치범이었다. 하긴 일단 자신들이 살고 봐야 했다. 하지만 루카스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기를 잊지 않는 그였다. 사태만 진정되면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표현이었다.
그 사이 밑에서 이들을 향해 레이저 빔이 쏘여지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격은 아니었지만, 추격조가 가까이에 왔다는 뜻이었기에 그들은 모두 엄폐물을 찾아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과 싸워 물리쳐야 했다.
“나야! 쏘지 마!”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포크였다. 그는 후방을 향해 마구 총을 발사하며 동료 납치범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적발의 납치범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포크! 무사했구나!”
“썅. 이 꼴이 무사한 거냐!”
“후후. 그래도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것이 어디냐? 천운으로 여겨야지.”
“천운은 무슨 개뿔이 천운. 내가 이런 일 한두 번 해보냐! 당연히 만약을 대비해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놓았지.”
적발의 납치범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긴 네놈은 일 처리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지!”
“젠장 할! 됐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뒤쫓아 오는 놈들을 향해 응사해! 보니 놈들은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 말에 모든 납치범이 일제히 산길 아래를 바라봤다. 인형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누군 지는커녕 몇몇인지도 알 수 없었다. 덕분에 이들은 포크의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일제히 제거조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워낙 거리가 있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위협할 필요가 있었다.
푸슝. 푸슝.
한동안 의미 없는 사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루카스 회장과 작슨이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기 있으면 죽음은 기정사실 반드시 빠져나가야 했다. 그들은 범석과 데레사를 죽이는 것도 포기한 채,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작했다.
‘후후. 내가 그냥 보낼 성 싶으냐? 천만의 말씀이지.’
순간 그의 손목을 묶고 있던 포박구가 풀어져 내렸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언제든 풀리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내 근처에서 조약돌 두 개를 집어들은 그가 벼랑길을 따라 이동하는 작슨과 루카스를 향해 힘껏 두 차례 팔을 휘둘렀다.
============================ 작품 후기 ============================
좀 늦었습니다. 신작 문제로 몇몇 분과 상의를 하고 와서요. 재미있는지 확인하려면 일단 남의 평가를 들어봐야 하거든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