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10
512화
원정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범석이 문 앞까지 나와 반기던 다이아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때? 다이아나! 이겼지?”
“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정말 한 시름 놨어요.”
범석이 뒤따라온 프리시카의 어깨에 한쪽 팔을 걸었다.
“이게 다 프리시카의 적절한 지휘 덕분이다. 만약 우리 본진이 채플린 위스퍼의 본진을 깨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경기야.”
프리시카를 넌지시 바라본 다이아나가 생긋 웃었다. 범석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잘했어. 프리시카. 덕분에 우리가 1라운드를 이길 수 있었어.”
“아니에요.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인데요. 추행진으로 봉시진으로 전환하는 것은 이미 계획된 것이잖아요.”
“후후. 그렇기는 해도, 팀을 이끄는 네가 잘해줘서 성공한 거야. 만약 허술하게 명령을 내렸다면, 턱도 없었지. 아무리 하나가 모자라도 상대는 채플린 위스퍼였으니까. 안 그래? 그러니 너무 겸손해할 필요 없어.”
거듭된 칭찬에 기뻤는지, 프리시카가 양쪽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는 칭찬에 매우 약했다.
“칭찬 고마워요. 언니.”
“하지만 너무 들떠 있어서는 안 돼. 아직 경기 초반이니, 언제든 다시 역전당할 수 있어.”
“네. 그점은 저도 잘 알아요. 경기 내내 명심하고 있을게요.”
“그래. 그럼 됐다. 안에 들어가서 쉬어.”
프리시카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다이아나가 범석과 함께 걸으며 말했다.
“주인님. 2라운드는 플랜3으로 나갈까요?”
“글쎄. 그건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
플랜 3은 전력은 아주 단순 명료했다. 앞으로 남은 모든 라운드를 주전만으로 치른다는 것이다. 체력이 크게 낭비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승리할 가능성은 다소 높아졌다. 이쪽이 2진을 내보내지 않으니, 저쪽도 2진을 내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렌 3로 가면 이제 채플린 위스퍼는 저희의 전략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요.”
“물론 확실히 그렇겠지.”
범석이 그녀의 장담에 호응하는 이유는, 갓즈나이츠 주력이 채플린 위스퍼의 2진을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만약 2라운드에서 채플린 위스퍼가 후보로 내보낸다면 당연지사 2패. 갓즈나이츠가 그 이후 1승이나 2무를 올리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채플린 위스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니 2라운드에 주력을 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도 큰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갓즈나이츠를 전면전으로 상대해 승리하기란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양팀 간의 주력 전력은 엄연히 갓즈나이츠가 앞섰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후 3, 4, 5라운드도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저들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계속 수렁 속에 빠져들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다.
그러나 역으로 이 전략을 사용하면 절대 패하면 안 된다는 것이 갓즈나이츠의 근심이었다. 체력 소진이 아주 크기에, 역전을 노릴 때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5라운드에 당하는 패배는 아주 치명적이었다. 더는 라운드가 없기에, 역전자체가 불가능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도 있었다.
바로 아멜리에의 채찍 공격이었다. 방진을 펴면 무한대로 그녀의 공격에 무한대로 노출되었다.
범석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전략 실패가 워낙 치명적이라 고민이 된다. 특히 방진을 사용하는 일은 너무 위험해.”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2라운드에 2진을 내보내 패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의 승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니까요.”
하긴 그 말도 틀리지 않았다. 2라운드의 패배는 곧 원점. 갓즈나이츠는 경기 시작 전 어려움을 그대로 다시 안아야 했다. 어떻게든 2라운드만큼은 최소 무승부 이상을 기록해야 했다.
“그럼 일단 2라운드에 주전을 출전시키는 것으로 하자. 한 번 맛보기를 하자는 거지. 방진 말고 전면전으로 말이야.”
“네. 그럼 그러도록 하죠.”
결정을 본 다이아나가 즉각 감독 석으로 달려가 2라운드 출전명단을 짰다. 일부 W1급 검투사가 교체되었지만, 그와 상의한 내용대로 주전이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 범석은 휘하 검투사들을 이끌고 경기장 중앙에서 채플린 위스퍼 주력과 마주했다. 그들로서는 2패는 치명적이기에, 후보를 내보낼 수가 없었다.
– 이거 흥미진진하군요. 1라운드 전까지만도 미소를 짓던 채플린 위스퍼인데, 2라운드에서는 전혀 다른 비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 라운드에서 어떤 경기를 펼칠지 자못 기대됩니다.
–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네요.
해설자의 우려에 아나운서가 귀를 기울였다.
– 아니 무슨 이유 때문에 말입니까?
– 이번 승부가 가져올 영향 때문입니다. 주식회사 형태의 검투팀을 대표하는 채플린 위스퍼와 개인회사 형태의 검투팀을 대표하는 갓즈나이츠. 오늘 이 싸움의 승자로 검투 계의 변화 바람이 급격하게 진행될지 아닐지가 결정이 되거든요.
– 아니 왜 그런가요?
– 우승의 의미가 남다르거든요. 채플린 위스퍼가 승리한다면 기존 시스템은 아직…….
해설자가 하던 설명을 멈췄다. 대충 말뜻을 알아들은 아나운서가 급히 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해설자의 다음 말은 갓즈나이츠가 우승을 한다면 그 충격 여파로 개인회사 성격의 팀이 급증하고 다른 주식회사 성격의 검투 팀들이 조직의 성향을 달리한다는 얘기였는데, 지금 중계 멘트가 경기장 내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입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될 말이었기 때문이다. 엘프들은 주인들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존재. 채플린 위스퍼 팀의 엘프 검투사들이 들으면 상당한 동요가 예상되었다.
어차피 그녀들이 우승해봤자 얻는 것은 보너스로 얻는 몇 푼의 용돈. 그 돈을 받고자 자신은 물론, 검투계에서 활동하는 모든 엘프들의 기원을 저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를 반증하듯 빈센트 감독이 경기장까지 뛰어나와 심판석을 향해 양팔을 휘저으며 즉각 경기중지를 요청했다. 휘하 검투사들이 무척 동요하고 있을 테니, 다독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겨, 경기를 잠시 중지합니다. 모든 검투사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대기해 주십시오.
얼떨결에 휴식을 얻은 범석이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해설자의 말 한마디로 월드리그 우승의 향방이 결정되는 경기가 중단되는 초유에 사태에 그도 당황스러웠다.
“참나. 이게 대체 뭐야…….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고개를 젓는 그에게로 다이아나가 황급히 달려와 얼싸 안았다.
“주, 주인님! 저희가 이긴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해설자의 말로 채플린 위스퍼의 검투사들은 분명 크게 동요할 거예요. 일부로 저주는 일이 없더라도, 저들 검투사들은 지금의 정신상태에서는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어요.”
그건 범석도 대충 눈치를 채고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해설자의 말은 중간에 가로막혔기에,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알아 들어먹었을 리가 의문이었다.
“과연 그걸까? 해설자는 방금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고.”
“그래도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들었어요. 저는 물론이거니와 빈센트 감독님도 눈치챘으니, 급히 경기장 밖으로 뛰어나온 것이잖아요. 그리고 심판진들이 감독님의 의사를 존중해 경기를 중지했다는 것은 그들도 인지했다는 뜻이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은 알아챘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 많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범석 자신도 알아들었는데,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만 못 알아 들어먹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됐다.
“후후.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문제는 채플린 위스퍼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렸어요. 설득만 한다면 오늘 경기는 모르는 것이고요. 못한다면 저희가 이기는 것이고요.”
범석이 피식 웃었다. 선택지가 너무 빤했던 탓이다.
“설마 그게 쉬울까? 아무리 빈센트 감독님이라도 그런 일이라면 엘프 검투사들을 설득 못 한다.”
“후후. 하긴 그렇겠죠?”
“물론이지.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장담은 했지만, 범석이 불안한 시선으로 채플린 위스퍼 쪽 응원석을 바라봤다. 빈센트 감독은 절대 가능성이 없지만, 가능한 사람은 있기 있었다. 만약 그가 한 마디만 곁들이면,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은 광전사를 방불케 할 터였다.
‘에이. 설마……. 그딴 미친 짓을 벌이겠어? 당연히 아니겠지.’
마음을 편안히 한, 범석이 벤치에 앉았다. 뜻밖의 휴식시간을 알차게 보낼 필요가 있었다.
“다들 푹 쉬어라!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하지만 휴식 시간은 뜻밖에 아주 오래갔다. 30분이나 끌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도 심판들의 배려로 가능했던 일로, 아직 빈센트 감독은 설득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경기장을 나서는 채플린 위스퍼 팀 검투사들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후후. 역시나 못했군.’
입장 터널을 나와 경기장으로 들어서던 범석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어져 있었다. 암만 봐도 이번 승부는 너무 빤해 보였던 탓이다. 좀 찝찝한 승리이기는 하지만, 우승이 달린 경기이니 기분좋게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 그럼 시식해 볼까?”
범석이 모두에게 명령해 추행진을 구성하라고 명령했다. 방진을 구성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아멜리에의 채찍 공격을 우려해 채택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암만 생각해봐도 현 상황에서 방진은 사치였다.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도 설렁설렁한 걸음걸이로 곧이어 추행진을 구성했다.
“자. 모두 최선을 다하자!”
“네~”
아멜리에의 외침에 그저 성의 없는 대답만 할 뿐,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이에 안심한 범석이 가소롭다는 듯이 보르미아를 바라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몸의 움직임에는 매가리가 없는데, 눈빛에서는 날카로움을 넘어 살기까지 번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한 범석이 이를 빠득 악물고는 채플린 위스퍼의 응원석과 더그아웃을 쏘아봤다.
‘설, 설마. 이 노친네들이 드디어 노망이 들었나! 그게 말이 돼!’
여전히 믿기지 않은 상황이라 딱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보르미아의 진지한 눈빛은 실망한 엘프의 그것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삐이익! 경기 시작!
경기 시작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범석의 모든 휘하 검투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상태라면 패하는 쪽은 갓즈나이츠였다. 지금 정신 줄을 놓고 있는 쪽은 바로 자신들쪽이기 때문이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채플린 위스퍼가 우리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란 말이다!”
곧이어 살기 등등 달려오는 채플린 위스퍼의 검투사들. 영문을 모르던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황급히 진형을 추슬렀다. 하지만 때는 늦은 상태였다. 이미 저들은 한껏 품어내는 기세와 함께 갓즈나이츠 진형과 충돌을 빚고 있었다.
쾅!
이후 벌어지는 타격전. 양 팀 검투사들은 한치라도 밀릴세라 마구 검과 창을 휘두르며 치열한 접전을 벌여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쌍검을 들고 범석을 향해 아멜리에. 그녀는 1라운드에 당한 수모를 갚으려는 듯 맹렬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며 범석을 압박해갔다.
“범석 님! 이번에는 저번 라운드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범석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은 1라운드와 달리 마치 광인이 된 것처럼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화, 환장하겠군.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이딴 일이 말이 돼! 야유! 가서 잡아 팰 수도 없고! 쌍!’
저들이 필사의 의지를 담아 경기에 임하는 이유는 불을 보듯 빤했다. 바로 주인을 얻게 해준다는 약속이었다.
아니라면 이번 사태를 맞이해 동요하고 있어야 할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저리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범석이 미치고 환장하는 이유는, 그딴 짓거리를 벌인 채플린 가문 때문이었다. 아무리 리그 우승이 좋다지만, 전체 검투사의 몸값을 3분지 1로 떨어뜨리는 일을 했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범석도 같은 짓을 벌이고 있지만, 저들과는 좀 상황이 달랐다.
하지만 이리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저들의 기세를 꺾어 이번 라운드를 온전히 지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멜리에의 쌍검을 피해 이동하고는 프리시카의 뒤에 섰다.
“프리시카! 우리가 힘을 내야 해! 승리는 못 하더라도 일단 채플린 위스퍼의 수를 줄여야 해!”
“네. 알았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아멜리에가 그를 놓칠세라 뒤쫓아와 검을 깊숙이 찔렀다. 피해 볼 테면 피해 보라는 식으로 검격으로 범석은 어쩔 수 없이 장창을 가로 눕혀 막았다. 이대로 그가 피하면 저 공격은 프리시카의 등을 베게 되었다. 그럼 이번 라운드는 끝장이었다.
창.
청명한 소리와 함께 난전으로 변한 경기장 안으로 긴 비명 소리가 퍼져 나갔다. 보르미아와 상대하던 렌카가 허리를 내어주고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아까 볼 때 눈빛이 이상했는데, 아예 단단히 작정을 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멜리에를 밀어내는 척, 슬며시 팔을 휘둘러 히야스의 등에 창끝을 꽂았다.
“크윽!”
짧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는 히야스가 원독이 어린 시선으로 범석을 노려봤다. 자신들의 기원을 막는 그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지금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에게 범석은 엘프들을 구원해주는 구세주가 아니라, 꿈을 가로막는 대마왕이었다.
이에 마음이 약해졌지만, 범석이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경기를 내어주어 우승을 꿈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자! 아멜리에 간다!”
흐릿한 잔영을 선보이며 날아드는 창끝을 아멜리에가 적절히 검을 가져다 대며 잘도 막았다. 그간 함께 해온 동료가 꿈을 이루는 순간을 자신 탓에 망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떻게든 범석을 마크해내,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얼마든지 오세요! 이번에는 절대 패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금 이어지는 이들의 격전. 그 사이에도 난전을 벌이는 경기장 곳곳에서는 양 팀 검투사들이 지르는 고함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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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