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11
513화
2라운드의 승부는 중후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상당수의 양 팀 검투사들이 바닥에 쓰러졌고, 몇몇 만이 남아 서로 검을 나눌 뿐이었다. 여전히 아멜리아와 상대하고 있던 범석이 주변을 힐끗 바라봤다.
‘쳇. 이거 좀 불리하군.’
사실 좀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난전을 통해 살아남은 갓즈나이츠 검투사는 그와 프리시카. 그리고 니키타와 아겔리아뿐인 반면, 채플린 위스퍼는 아겔리아를 포함해 여섯이나 남아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적 열세로 패배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범석이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플랜 12로 나간다!”
두 명의 검투사를 상대하며 연신 방패를 휘두르던 아겔리아가 점점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범석을 비롯한 나머지 검투사들이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뜀새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으로서는 무승부를 노리는 편이 좋았기도 하고, 뜀새 전략을 펼칠다면 범석이 각개 격파를 노릴 수도 있었다.
잠시 후, 범석과 니키타, 프리시카의 호위를 받은 아겔리아가 방패를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질주를 시작했다. 뒤이어 방패를 버린 니키타와 프리시카가 그녀를 뒤쫓았다.
이제 홀로 여섯을 상대해야 상황. 그가 뒤로 회전하듯 점프하며 최대한으로 넓이로 장창을 크게 휘둘렀다. 자신도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긴 리치를 이용해 접근을 막으며 스타트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안 돼! 뜀새 전략이다! 잡아!”
메아리치는 고성을 내지른 아멜리아가 추격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이에 메이야와 히야스, 마델이 그녀를 바짝 뒤쫓으며 지원했다.
‘쳇. 당했어!’
범석의 뒤를 쫓는 아멜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등을 견제하며 달리기에 속도는 떨어지고 있지만, 간격만 좁히면 여지없이 창끝이 날아왔기에, 접근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포기하고 대장인 아겔리아를 비롯한 다른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을 뒤쫓을 수가 없었다.
이들을 쫓기만 하면 범석이 뒤쫓아와 자신들의 후위를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등 뒤에 그를 두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다.
‘그럼 아비스와 이그네스도 함께 추격전을 가세해야 한다는 건데……. 하지만 그건 안돼!’
하지만 대장인 아비스와 수호 검투사인 이그네스는 뛸 수 없었다. 뜀새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방패를 버려야 하는데, 그럼 범석에게 쉽게 당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들로서는 패배만큼은 피해야 할 처지였다.
아멜리에가 오른쪽 어깨를 뒤로 젖히고는 그의 등을 향해 변형검을 투척했다. 기이한 곡선을 그리는 검. 그러나 그것은 곧 뒤를 힐끔거리던 범석의 창끝에 튕겨 나갔다. 여지없이 공격은 실패했지만, 범석의 질주 속도를 떨어뜨렸기에, 마델이 그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검을 찌를 수 있었다.
창. 휘익.
여지없이 튕겨 나가는 마델의 검. 이후 범석은 긴 궤적을 창 휘두르기로 접근을 하는 채플린 검투사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는 그대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멜리에가 순간 멈춰 섰다. 떨어진 자신의 변형검을 줍기 위함도 있지만, 이대로 추적을 포기하려는 의도가 더욱 컸다.
가만 따져보니, 뒤를 쫓아봐야 채플린 위스퍼로서는 아무런 도움이 될 것이 없었다. 범석을 활용한 갓즈나이츠의 뜀새 전략은 세계 최강 수준. 도주뿐만 아니라 기회만 생긴다면 치명적인 공세를 퍼붓기에, 추격꾼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현재의 6대 4 상황에서 하나라도 당하면 비슷한 전력이, 그리고 둘이 당하면 전세가 역전되니 그녀로서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멈춰! 이만 추격을 중지해!”
그녀의 명령대로 멈추는 마델. 하지만 나머지들은 발을 주춤주춤 거리며 범석을 쫓자고 보채고 있었다. 이런 유리한 상황을 다시 얻기란 어려운 일. 그녀들로서는 이 기회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언니. 왜요? 빨리 잡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랬다가는 우리가 당할 수 있어! 너희도 지금 추격해봤으니, 잘 알 것 아니야? 범석 님은 우리가 쉽게 잡을 수 있는 검투사가 아니야!”
“그, 그렇지만…….”
“됐어. 이제 잔소리 말고 후미와 합류해. 아주 유리한 상황이거나, 이전에 범석님을 잡지 못했다면 갓즈나이츠의 뜀새 전략은 이대로 놔둔다.”
마델도 같은 생각인지 아멜리에의 편을 들었다. 그녀도 주인을 가진 검투사였기에, 지금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아멜리에 언니의 말이 맞아. 범석 님은 아무래도 지금 각개격파를 노리는 같아. 이대로 뒤쫓다가는 크게 당해. 그럼 패배를 당하게 되고, 우리는 2패를 안게 된다. 그럼 우리가 우승할 가능성은 절망에 가까운 정도로 크게 떨어져.”
그 말에 하는 수없이 다른 검투사들이 동조를 보였다. 그녀들도 범석을 쫓으면서 뭔가 불안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 알았어요. 그럼 가요.”
이윽고 후미와 합류한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한쪽 벽면에 등을 붙이고 있는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일단 본격적인 추격을 멈추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기회를 노리지 않을 수는 법이었다. 운이 좋아 상대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 수적 우세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운은 단지 운일 뿐, 이들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초침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해댈 뿐이었다. 범석이 작정하고 뜀새 전략을 취하는데, 손쉽게 잡힐 리가 만무했다.
“우우우! 갓즈나이츠! 그게 뭐냐!”
“젠장 할! 오늘은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전과 다름없는 경기다! 그딴 경기 운영이 웬 말이냐!”
거의 경기 종료시각이 다 되어가자 홈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자팀이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가 뜀새 전략을 채용해 무승부를 노리고 있으니, 열이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한 범석의 반응은 철저한 무시. 우승이 달렸는데, 야유가 쏟아진다고 무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각소리가 콜로세움을 퍼져나갔다.
– 삐이익! 경기 종료! 양 팀 2라운드 무승부!
안도의 한숨을 범석이 헬멧을 벗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정말 이번 라운드는 위험했다. 다행히 뜀새 전략을 통해 비기기는 했지만, 자칫 패했을 수도 있을만한 경기였다.
그는 무사한 팀원들과 함께 경기장을 횡단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지금 뭐하는 거얏! 초반에 그런 식을 밀려버리면 퍽이나 이기겠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선 범석은 다이아나의 고성에 잠시 놀랐다. 혹여 자신에게 그랬나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초반에 방심을 보이다가 채플린 위스퍼의 노도와 같은 공세에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범석에게 향하는 목소리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녀는 행동불능 상태에 빠졌다가 회복하고 돌아온 휘하 검투사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슬그머니 다이아나의 뒤를 돌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겸연쩍어하는 범석이 송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다이아나. 대충 알아들었을 테니 그만해라. 나도 좀 그렇다.”
“하지만 정신무장을 단단히 시켜야 해요. 안 그러면 이번 경기에 패할 수 있어요. 지금 채플린 위스퍼의 기세는 그만큼 강해요.”
“그건 나도 아는데, 이번 라운드는 어쩔 수 없었어. 흐트러진 상대진형을 공격해 들어가려고 태세로 잡았는데, 먼저 기습이 오니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잖아. 나도 상대가 예상과 판이한 행동을 하면 놀라서 잠시 어쩔 줄 몰라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하, 하지만…….”
“됐어. 이제 채플린 위스퍼가 악에 받쳐 공격해온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2라운드처럼 밀리지는 않을 거다.”
잠시 휘하 검투사들을 노려본 다이아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젖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범석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당연히 공격하러 나갈 줄 알았는데, 역으로 방어적인 처지에 놓였으니 갈피를 못잡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휘하 검투사들을 향해 말했다.
“휴~ 좋아. 그럼 3라운드부터는 2라운드 같은 일이 없겠지?”
“넷!”
우렁찬 답변을 들은 다이아나가 범석에게 다가섰다. 아직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짧은 휴식시간을 넋놓고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와 상의해 2라운드의 상황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주인님.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죠? 역시나……?”
“휴~ 당연히 역시지. 채플린 회장이 움직인 거다.”
“하,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혹시 빈센트 감독님이 거짓을 말해, 속인 것이 아닐까요?”
“아니 그 영감탱이는 그런 꼼수를 부릴 사람이 아니다. 너도 그분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으니 잘 알수 있을 것 아니냐?”
하긴 그녀는 과거 드래곤 나이츠에 있으며 오랫동안 빈센트 감독을 경험했다. 확실히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다이아나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그렇다문 채플린 회장님인데, 아무리 그분이 검투경기를 좋아한다지만……. 그런 무리수를 둘 수 있을까요?”
“엉. 가능해. 내 생각에는 아마 회장이 드디어 그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그런 것이 있어. 지금은 경기에 집중할 때니, 신경 쓰지 마.”
다이아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지금은 경기를 어떻게 치를지가 가장 중요했다.
“네. 그래야겠죠. 그나저나 주인님. 3라운드는 어떻게 갈까요? 역시 주력이 나가야겠죠?”
“당연하지. 지금의 채플린 위스퍼 기세에서 2진을 내보낸다는 것은 필패를 의미한다. 그저 몇몇 아이들만 교체시키고 주력이 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단. 나나 프리시카, 티엘라 교체는 절대 없다. 그리고 W0급 검투사들을 교체하는 일에도 신중을 기해야 해. 알겠지?”
“물론이죠. 주인님이나 상위급 전력을 빼면 전력이 크게 떨어지니까요.”
“그리고 이왕 일이 이렇게 됐으니, 무승부 전략으로 간다. 1승을 따내 승부를 끝장 보자고 했다가는 우리가 당한다.”
“네. 알겠어요.”
“좋아. 그럼 가서 3라운드 출전자 명단을 작성해라. 시간 별로 없다.”
자리에서 일어선 다이아나가 급히 감독석으로 가 3라운드 출전자 명단을 작성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주력에서 별 변동이 없고 2라운드를 진행하며 교체할 아이도 미리 점찍어 놓고 있기에 무사히 시간 내에 올릴 수가 있었다.
이후 3, 4라운드. 갓즈나이츠와 채플린 위스퍼는 치열한 공방 속에서 의미 없는 무승부만을 건졌다. 아무리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주인을 얻겠다는 열망 속에 휩싸여 있지만,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은 주인에게 우승컵을 선사해야 한다는 열의가 있었다.
이 두 의식의 첨예한 대립. 다른 의미지만 결국에는 주인이라는 하나로 통했기에, 쉽사리 우열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마지막이다! 반드시 이겨라! 채플린 위스퍼 반드시 이겨야 한다!”
“갓즈나이츠! 이번만 잘하면 우승이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마지막 라운드를 수행하기 위해 양 팀 검투사들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광적인 응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부의 결과에 대한 간절함도 있었지만, 검투사들의 열성이 팬들에게 전해져 이제까지와는 다른 카타르시스를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장 중앙에 선 범석이 거친 호흡을 내리 쉬며,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을 바라봤다. 짜증스럽게도 그녀들은 지친 와중에도 눈빛만큼은 살아있었다.
평소라면 눈도 못 마주칠 아이들이, 저리 바락바락 달려들 기세를 물씬 풍겨오니, 그로서는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라운드에도 꽤 고생할 듯 보인 범석이 한탄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할! 힘들어 죽겠는데! 좀 쉬자! 쉬어!”
그의 기원과 달리 경기 시작 시각이 다 되어감에 따라,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기세등등 무구를 치켜세웠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개고생을 할 듯 보였던 범석이 신경질적으로 장창을 움켜쥐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매정한 호각음.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추호의 주저도 없이 바로 갓즈나이츠 진형을 향해 내달렸다.
“돌격해! 이번에는 반드시 갓즈나이츠를 이겨야 해!”
아멜리에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채플린 위스퍼의 추행진이 갓즈나이츠의 정면을 들이박았다. 충돌의 여파와 함께 흔들리는 갓즈나이츠 진형. 하지만 이들도 절대 물러섬이 없었다. 이들도 승리는 아주 간절했다.
“절대 밀려서는 안 돼! 공격해!”
또다시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 범석의 상대는 여전히 아멜리에였다. 그녀는 천장 라이트 빛을 반사하는 변형 쌍검을 휘두르며 범석을 압박해갔다.
“이번 만큼은 반드시 이기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주인이 필요해요!”
“그런 이유라면 져도 돼!”
허공에서 충돌하는 장창과 쌍검의 궤적이 연신 귀청이 진동할 듯한 금속음을 터뜨려댔다. 동료에게 주인을 얻게 해주겠다는 아멜리에와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범석의 상념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치열한 접전을 보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길게 이어지는 창끝을 회피한 아멜리에가 버럭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말 되는지 안 되는지, 나중에 두고 보면 알아!”
사납게 창을 휘두르며 뒤를 물러서는 범석이 좌우를 기민하게 살폈다. 사방에서 난전을 벌이는 채플린 위스퍼의 검투사들이 뒤를 노리고 있기에 항시 조심해야 했다. 여기서 그가 어이없게 당한다면 바로 갓즈나이츠는 패하게 되었다.
‘젠장 할! 이 여우 같은 영감탱이! 아무리 우승이 좋다지만, 휘하 검투사들은 저리 속여도 되는 거야!’
범석이 빈센트의 노안을 떠올리며, 속으로 갖은 악담을 퍼부었다. 지금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날뛰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주인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빈센트 감독이 우승만 한다면 주인을 얻게 해준다고 말했을 터인데, 이는 분명 사기였다.
그가 예상하기에는 이미 채플린 회장은 팀의 성격을 변모시키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라고 생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녀들은 오늘 패해도 주인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단지 가능성의 얘기이니, 함부로 말해 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쭉 뻗어오는 변형검을 창대로 쳐낸 범석이 몸을 크게 뒤틀며 장창을 크게 휘저어 아멜리에의 허벅지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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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