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12
514화
휘이익! 창.
여지없이 막히는 창끝에 범석이 화급히 창대를 수습해 자신의 안면으로 날아오는 변형검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계속해서 뒤로 이동했다. 아멜리에와의 거리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난전의 한가운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이 상황에서 채플린 위스퍼의 다른 누군가에게 태클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그라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딜 도망가요!”
추격을 해오며 세차게 검을 뻗어오는 아멜리에. 범석이 바로 걷어내고는 곧바로 창끝을 매섭게 내질렀다. 허공에서 충돌을 빚는 창과 검이 긴 궤적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돌았다가, 다시금 맞부딪히며 튕겨져나갔다. 범석이 몸을 급격히 기울인 후, 크게 창을 휘둘렀다.
“이얏!”
빠르게 창대를 쳐낸 아멜리에가 화급히 물러섰다. 범석이 연달아 창끝을 찌르며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아멜리에가 그를 지그시 노려보며 쌍검을 가슴부위에서 교차시켰다.
“역시. 범석 님이군요. 헉헉.”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아멜리에. 역시나 그녀도 크게 지쳐있었다. 5라운드를 연속해서 뛰는 일은 그 누구라도 힘겨운 일이었다. 게다가 1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무승부를 기록했기에 피로도는 더욱 컸다. 무승부 경기를 기록했다는 것은 20분간 끊임없이 뛰었다는 뜻과 동일했다.
심호흡을 내쉰 범석이 지그시 그녀를 응시했다.
“너도 꽤 지친 모양이군. 하긴 그 오랜 시간 동안 뛰었으니, 당연히 피곤한 만도 하지. 헉헉.”
“하지만 범석 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헉헉.”
“물론이지. 하지만 너와는 상황이 다르다.”
범석이 자신하는 이유는 바로 카젤라의 ‘체력의 지배자’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이 특성은 하루에 세 번 발동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20분간 모든 능력치를 +10을 시켜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엘프들의 특성보다 한참 떨어지는 특기라고 할 수 있지만, 추가 옵션을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었다. 이 특성에는 발동 때마다 전체 스테미너의 10%가 회복되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곧 근처에 있던 카젤라의 특성을 카피하고는 속으로 외쳤다.
‘체력의 지배자. 체력의 지배자. 체력의 지배자.’
이윽고 3390의 스테미너 상승메시지가 범석의 귓전을 때렸다. 거의 체력이 풀로 찬 그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제 현격한 차이에서 아멜리에를 몰아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에 사용하던 ‘난봉꾼의 신’이 사라져 스텟 전체가 5 가까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스테미너 하락으로 말미암은 능력 손실보다는 아주 미미했다.
스테미너 3400의 하락은 전체 능력치의 약 17%가 하락한다는 의미였다. 즉 그는 모든 스텟에 대해 15만큼의 이득을 봤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를 꿈에도 모르던 아멜리에가 담대한 자세로 검을 쥐었다. 그녀는 지금껏 범석보다 덜 뛰었기에, 스테미너에서 앞선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여간 그 근거도 없는 자만심은 여전하시군요.”
“후후. 그건 곧 보면 알겠지.”
“하긴요. 자. 그럼 보여주시죠. 얼마나 대단하지 보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자. 그럼 간다!”
창대가 부서지리라 장창을 힘껏 부여잡은 범석이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워낙 힘이 넘치고 빠른 접근에 놀란 아멜리에가 황급히 날아오는 반월날을 막았지만, 그대로 밀리며 가드가 열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곧이어 맹렬한 기세와 함께 그녀의 가슴을 향해 쭉 뻗어오는 창끝. 아멜리에가 기겁을 하고 쌍검을 교차해 막아냈다.
창~
청명한 금속음과 함께 뒤로 몇 발자국 밀린 아멜리에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근거가 없던 그의 자만심이 진실임을 깨달았던 탓이다. 지금 범석의 완력은 그녀 자신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요!”
“후후. 말도 안 되긴! 자 단단히 각오나 해!”
연달아 날아오는 장창과 충돌한 변형검이 크게 울어대며, 아멜리에를 잔뜩 긴장시켰다. 이대로라면 속절없는 패배가 자명했다.
‘안 돼! 내가 패배하면 범석 님을 막을 자가 없어! 그럼 채플린 위스퍼의 우승은 이대로 물 건너가게 돼!’
다급한 마음에 아멜리에가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은 지원이 절실했다.
“누가 와서 도와줘! 나 혼자서는 범석 님을 상대할 수 없어!”
“지원요청이 너무 빠른 것 아니야? 좀 더 상대하고 판단해야지. 크크크.”
범석의 비릿한 웃음소리가 주변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에게는 참으로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로서도 우승을 원하기에 배려해줄 마음이 없었다. 승부는 냉정한 법이니까 말이다. 곧 그가 원심력을 한껏 담긴 창격을 아멜리에에게 그대로 먹였다.
이런 이들의 결투를 바라본 보르미아가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티엘라를 거의 몰아세워 곧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지만, 이 때문에 아멜리에가 당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녀가 당한다면 범석은 경기장 전체를 활개치며 돌아다니며, 차례차례로 자신들을 쓰러뜨려 나갈 터였다.
“언니! 내가 갈게!”
보르미아가 지원을 나가려고 하자 티엘라가 급히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한 번의 격돌. 하지만 곧 그녀는 뒤로 물러선 후, 세이야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범석이 상관이 없다며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이야는 현재 대장이었기에, 홀로 적과 상대하게 둘 수 없었다.
“자. 2대 1 좋지! 와랏!”
범석이 장창의 큰 회전을 그리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이 기괴한 파공음에, 아멜리에는 눈가를 파르르 떨 정도로 긴장했다. 그를 상대하며 익히 경험해온 파워였지만, 이 순간에 튀어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이 괴물 같은 자!’
이를 아득 문 아멜리에가 범석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지금으로서는 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동료인 보르미아를 믿은 것이다. 그녀가 측면 지원을 해오면 범석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쾅. 창창. 창. 캉. 창.
수없이 많은 타격음이 오고 가는 가운데, 범석은 아멜리에와 보르미아를 맞이해 치열한 접전을 벌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가 아멜리에를 포함한 S급 검투사를 막아주고 있기에, 수적인 면에서 채플린 위스퍼를 앞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 주인님을 위해 힘내자! 하나만 쓰러뜨리면 돼! 그럼 우리가 이번 경기에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어!”
프리시카의 외침이 전해지자, 갓즈나이츠 검투사의 눈에 불이 붙었다. 하나를 쓰러뜨린다고 승리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그 가능성은 높았다.
이런 난전 속에서는 하나가 많고 적음이 승부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세이야와 티엘라가 함께 공세를 펼치는 마델의 처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S급 검투사임에도 불과하고 그 둘의 공세에 여지없이 밀리며 벌써 몇 번의 위기를 겪은 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서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를 하나 더 쓰러뜨린다면 승부의 추가 급격히 갓즈나이츠 쪽으로 기울 것이 분명했다.
“절대 밀려서는 안 돼! 반드시 이겨야 해! 다들 알잖아! 오늘 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야미야의 외침에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도 기세를 올리며 맞서나갔다. 주인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힘들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제르미아와 싸우던 카네로아가 옆을 힐끗거렸다. 근처로 아멜리에와 보르미아와 교전을 벌이던 범석이 스쳐 지나가고 있던 탓이다. 그만 해치운다면 승리는 자명한 일. 그녀로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가 태클을 걸면 분명히 아멜리에 언니가 범석 님을 해치울 수 있을 거야. 그럼 우리가 이겨.’
문제는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제르미아였다. 태클을 걸 때 그녀가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분명 자신도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녀와 범석의 무게추는 엄연히 달랐다. 팀에 끼치는 영향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실수가 두려운 것이지, 맞교환 자체는 크게 환영할 일이었다.
‘어차피. 지금 우리 팀이 밀리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패배할 테니, 지금 모험을 거는 편이 좋아. 나중이라면 늦어!’
결심한 카네로아가 제르미아와 맞댄 검을 사력을 다해 밀어내고는 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그리고 급격히 자세를 바꾸어 범석의 옆구리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야앗!”
카네로아의 태클에 경기장 전체가 술렁거렸다. 성공만 한다면 승리는 채플린 위스퍼의 것. 당연히 팬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멜리에의 표정은 파리하다 못해 새하앴다. 범석이 비릿하게 웃으며 옆을 흘끗 바라보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의 카나타는 살짝 검집에서 삐져나온 상태였다. 분명 그는 카네로아를 이같은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보였다.
“안돼! 카네로아!”
순간 주변을 메아리치는 아멜리에의 음성.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범석이 막 달려드는 그녀를 향해 창을 내던짐과 동시에, 발도술의 묘리로 카타나를 뽑아 카네로아의 목을 그대로 그어버리고 있었다.
우탕탕탕 바닥을 구르며 몸을 경직시키는 카네로아가 절망적인 시선으로 범석을 바라봤다. 이제야 그에게 속았던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범석이 옆을 스쳐간 이유는 바로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다.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원정팬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좋다! 이겼다! 오 범석! 네가 최고닷!”
“이제 가차 없이 다 쓸어 버렷!”
이윽고 보르미아가 울상인 얼굴로 범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제 패배가 자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유로워진 제르미아가 바로 세이야와 티엘라를 도와 마델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곧 채플린 위스퍼는 무너지게 되었다.
“꺄윽!”
짧은 단발마와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는 마델. 아무리 그녀라도 크게 지친 상태에서 셋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아멜리에가 보르미아를 향해 소리쳤다.
“보르미아! 너는 가서 다른 아이를 도와!”
“하지만 언니는요!”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이를 악물고 물러서는 보르미아. 그녀의 말대로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다른 동료 검투사를 돕지 않는다면 필패였다. 그녀는 곧 뒤로 돌아서서는 티엘라를 향해 달려갔다.
퍽!
순간 보르미아 두 눈을 부릅뜨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범석이 투척한 카타나가 그녀의 등을 강타했던 것이다. 그는 방금 장창을 던진 터라, 마지막 남은 무구 하나까지 포기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아멜리에가 극히 떨리는 음성으로 범석에게 일갈을 내뱉었다.
“범석 님! 어디까지 우리를 방해해야겠어요!”
“방해라니? 우승을 위한 진지한 승부에서 그런 말이 왜 나오냐?”
“하,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팀원 전체가 주인님을 얻게 된다는 말이에요!”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우리보고 우승을 포기하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덤비기나 해라. 네가 이러고 있을 시간에 다른 아이 다 당한다. 빨리 맨손인 나를 쓰러뜨리고 지원하러 가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아멜리에가 힘껏 내달렸다. 확실히 그만 잡으면 실낱같은 희망을 꿈꿔볼 수 있었다. 곧 범석의 지척에 이른 그녀가 쌍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그를 몰아세웠다.
‘후후. 자 와라. 멋진 함정이 선사해 주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범석이 한 자리에서 멈춰 서더니, 아멜리에의 검을 상체를 움직임만으로 회피했다. 변형검 앞에서 무척 위험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함정에는 그만한 미끼가 필요한 법이었다.
“자. 이제 곧 날 잡을 수 있겠는데? 아멜리에 힘을 내라. 후후후”
그 말에 화가 난 아멜리에가 연달아 매서울 정도로 위력적인 쌍검을 그를 향해 휘둘렀다. 이에 미리 대비하던 범석이 곧바로 몸을 날리며 그녀의 양 손목을 우악스럽게 부여잡았다. 그리고 곧 비릿한 미소와 함께 아멜리에를 향해 조롱하듯 작게 속삭였다.
“후후. 끝이다. 아멜리에.”
이윽고 범석이 쓰러진 카네로아의 곁에 떨어져 있던 검을 양발로 부여잡더니, 그대로 점프해 아멜리에의 복부를 그어버렸다. 그리고 말문을 잃은 채 서서히 경직되어 가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는 그대로 검을 주워들어 에미레스의 등을 향해 투척했다.
동시에 또 두 명이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을 본 원정팬들은 환호를 질러댔고, 홈팬들은 허망한 듯 주저앉았다. 이들을 천천히 주시해서 바라본 범석이 여유로운 몸동작으로 근처에 떨어져 있던 장창을 주워들었다.
카네로아의 실수에서 비롯된 사태로 순식간에 다섯이나 잃었으니, 굳이 그가 나서지 않더라도 채플린 위스퍼의 승리는 없었다.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잠시 후 모든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가 쓰러지자, 장내는 원정팬들의 소란으로 시끌벅적해졌다. 창단 8년 만에 얻는 갓즈나이츠의 월드리그 우승. 팬들로서는 당연히 감격에 겨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범석과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경기장을 뛰어다닐 때마다,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승 세레모니가 조용한 와중에 이어지면, 그만큼 볼품 떨어지는 것도 없었다.
“갓즈 나이츠! 드디어 우승이닷! 정말 잘해줬다!”
“대단하다! 갓즈나이츠! 월드리그 우승이라니 정말 꿈만 같다!”
이들이 우승에 대한 기쁨을 나누는 사이. 빈센트 감독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경기장 안으로 나와 바닥에 쓰러져있는 휘하 검투사들을 일으켜 세웠다. 모두들 실망감에 더그아웃으로 돌아올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울고 있었던 탓이다.
남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일. 다독여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예의였다.
이후 범석은 휘하 검투사들과 함께 이브라힘 회장이 전해준 우승 트로피와 메달을 받고는, 의기양양하게 훈련캠프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곧 끝이네요. 아마 2편 정도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작은 모래쯤 올리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