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14
516화
6층에 도착한 범석과 에스더가 제이드의 안내 하에, 무대 바로 아래 좌석에 착석했다. 옆 테이블에는 이브라함과 루이스 부회장, 쿠퍼 부회장과 채플린 회장 등이 자리하며 대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범석이 오자 반기며 인사를 나눴다. 올해 우승팀이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일이 정중히 인사를 나눈 범석이 다시 자리에 착석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 앉아 있는 인사들이 모두 쟁쟁한 인물들이라,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가 앉은 테이블에 빈센트 감독도 동석했기에, 나름 견딜만했다.
보통 때라면 감독도 낄 자리가 못됐지만, 채플린 회장의 입김인지 왠지 오늘은 함께하고 있었다.
“범석군. 왜 그리 좌불안석인가?”
“휴~ 이거 아무래도 자리를 잘못 앉은 모양입니다. 다들 대단하신 분이라,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빈센트 감독이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나이만 젊다 뿐이지, 범석도 만만치 않은 인사였다. 모두 젖혀두고라도 근래에 검투계에 부는 폭풍이 그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훗. 겸손이 지나치군. 내가 알기로는 이 검투계에서 자네 만한 사람도 별로 없네.”
“아니. 제가 뭘요?”
“후후. 그럼 그 쟁쟁했던 흑사회를 몰락시킨 작자인데, 평범한 대우를 받기를 바랐는가? 당연히 아니지. 아마 이들 중에서도 상당수 자네의 눈치를 보고 있을 걸세.”
“에이. 설마요.”
“설마는 무슨. 절대다수가 주식회사형태의 팀을 운영하는 이 검투 계에서 왜 작금의 상황에 순응하겠는가? 이브라힘 회장이 보유한 팀을 개인회사 성격으로 바꿀 요량이라서? 절대 아니네. 이 검투계는 회장님 독단으로 움직이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네. 다 자네가 옆에서 측면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리된 걸세.”
“아니 제가 뭘요?”
“뭐긴. 루이스 부회장과 안젤라 여사를 등에 업었지. 그리고 전에는 검투 계 3대 세력 중 하나인 쿠퍼 계파가 자네를 공격하다가 상당한 타격을 받았지.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하긴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이브라힘 회장의 움직임. 루이스 계파의 협조. 쿠퍼 계파의 몰락까지. 그리고 보니 검투계 3대 세력이 지금 일어나는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처지였다.
여기에 안젤라 여사까지 편을 들 테니, 당연히 다른 계파들도 현 사태를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극단적으로 나가 검투 계를 반으로 쪼갤 수도 있지만, 이는 모두 함께 같이 죽자는 얘기였다.
범석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올해는 제법 시끄럽겠는데요.”
“그렇지. 우리 팀이야 채플린 가문 사람에게 넘길 테니 상관없지만, 다른 팀이 고생이지.”
“그렇겠죠. 한꺼번에 모든 검투 팀의 엘프들을 판매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시일은 다소 늦출 수 있으리라고 보네. 루이스 부회장님께서 오늘 방안을 생각해왔는데, 썩 괜찮은 방법이었네.”
“아니 방법인데요?”
“일반인 판매 금지 관례를 해제하는 것일세.”
범석이 물끄러미 감독을 바라봤다. 그 일은 이미 월드리그 하위팀들이 암묵적 협약을 깨고 시행하고 있었다.
“그건 이미 몇몇 팀이 시행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루이스 부회장님께서는 거기에 한 가지 양념을 곁들였네.”
“어떻게요?”
“아주 간단해. 어느 정도 몸값을 낮춰준 다음, 엘프 검투사들에게 그 가격에 일반인이 사려 한다면 팀이 우선 협상권을 얻는 조건으로 판매해준다고 약조해 준다는 거지. 그럼 엘프들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럼 보나마나였다. 일반인이 구매할 마음이 생기도록 엘프 검투사들은 열심히 뛸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팀에게는 손해가 덜해서 좋았고, 엘프들로서는 이른 시일 안에 주인을 얻을 기회가 생기니 좋았다.
“그렇군요. 아주 좋은 방법이네요. 하지만 주주들이 인정할까요?”
“인정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지금 검투계에서 활동하는 전체 주인없는 엘프들이 암묵적인 보이콧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인정을 안 하면 자폭하자는 얘기밖에 안 되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이 계통에는 강등 개념이 있네. 한 단계 떨어질 때마다, 주가는 반토막 아니 반의반 토막도 날 수 있다는 말일세. 특히 루이스 부회장의 리얼 히어로즈 같은 우승 후보팀은 장난이 아니네. 강등되는 즉시, 주가 반영분을 제외하고도 한 해 수입 중 150억 크랑 정도가 허공으로 사라지지. 이것도 이해 못 하는 주주들이라면 주식할 필요가 없네.”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종무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사회자는 유명 개그맨이었는데, 지금 혼자 웃고 즐길 뿐이었다. 참석한 인사 대다수가 종무식보다는 이번 사태의 해결 방안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다.
루이스 부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범석이 있는 자리로 찾아왔다.
“범석 군. 할 말이 있는데, 앉아도 되겠나?”
“네. 물론입니다. 앉으십시오.”
“고맙네.”
그가 옆자리에 착석하자 범석이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채플린 회장께서 하신 방금 발언 때문에 그러네.”
“아니 채플린 회장님이 왜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 38차전 경기 도중 채플린 회장이 전격적으로 소속 엘프들에게 주인을 얻게 해준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네. 그랬죠.”
“그래서 이에 대해 묻는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져서 그러네.”
그 말에 빈센트 감독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고, 범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올 게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 뭔데요?”
“그간 검투계 인사들은 자네가 엘프 검투사들에게 주인을 찾아주는 것을 극구 찬성하고 믿었네만, 채플린 회장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하더군. 아마도 자네는 자신의 시스템을 독식하기 위해 그간 너스레를 떨어왔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범석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여기서 인정했다가는 인간성이 드러났다. 현재 그는 엘프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도덕적인 인물로 세상에 비춰져 있었다.
“에이 설마요? 개인회사 성격의 팀이 저에게 무슨 득이 된다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에 빈센트가 나서서 범석을 압박했다.
“아닐세. 지난번 경기중에 채플린 회장님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 느꼈네만, 뭔가 확실히 께름칙했네. 그때 채플린 위스퍼를 갓즈나이츠처럼 만드는 일을 잠시 생각해봤는데, 전혀 손해가 없었네. 아니 아주 큰 이득이었지. 그래서 채플린 회장님께서 전격적으로 그런 선언을 하셨고 말일세. 자네 혹시 우리 검투계가 변모하는 것을 바라지 않지 않은 것 아닌가?”
“에이 그렇다면 착각입니다. 엘프검투사를 제 휘하에 두면 몸값이 1/3로 확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런 손해를 감수하는데, 어떻게 제가 이득을 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빈센트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갓즈나이츠는 검투사들에게 매니저 채용 등의 부수적인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지 않나? 활약기간은 대충 30년만 따져봐도 대략 7~8,000만 크랑이 드는 일을 획기적으로 줄였으니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장기간으로 그 정도 비용을 아끼는 일이 뭐가 이득이라고 하는 겁니까? 당연히 새 발의 피죠.”
빈센트가 그 말에는 순순히 인정했다. 수억 혹은 수십억 크랑이나 하는 월드리그 검투사의 몸값에 비하면 수천 크랑은 아주 사소한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 하지만 자네 팀의 검투사들은 주인에 대한 열의로 성장 속도가 무척 빠르지 않나? 검투사가 제 몫을 하는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기는 대략 평균적으로 20세에서 25세. 그런데 일반적인 주인 있는 엘프 검투사는 대략 15~18세 사이에서 전성기가 시작됨을 볼 때 자네팀 검투사들도 그만큼 전성기의 시작이 빠르지 않겠나?”
“네. 그렇겠죠.”
“그럼 엘프의 노화가 평균적으로 35세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대략 전성기 기간이 17~ 20년 사이고. 그리고 이를 프리시카급 검투사의 연봉에 접목해보면 평균적으로 25억 정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뜻이지. 안 그런가?”
“응. 네 그렇죠. 하지만 몸값이 1/3로 다운되는 일보다는 이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프리시카의 예전 몸값은 74억. 즉 휘하 검투사로 만들면 48억이 빠진다는 얘기입니다.”
빈센트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쯤이면 실토해야 하는데, 여전히 오리발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범석은 자신들을 산수도 못하는 바보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모자란다. 이건가?”
“그렇죠.”
“좋네. 그렇다면 검투사의 열의로 인한 실력상승분에 대한 몸값 상승을 추가하면 어떤가? 월드리그 검투사는 약간의 실력 차이에도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점을 봤을 때 적어도 20%까지는 상승하리라 보는데?”
20%라면 프리시카로 예전 몸값으로 친다면 15억이었다. 그럼 기존의 25억과 합치면 40억. 손실분 회복에 거의 근접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를 긍정할 수 없었던 범석이 마구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건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단지 추측일 뿐인 내용으로 몸값을 산정하다니, 말도 되지 않습니다.”
빈센트감독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결정적인 근거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후후.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여전히 있네?”
“뭔데요?”
“대답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질문하지. 혹시 몸값 60억 크랑이 되어야 할 검투사가 주인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몸값이 20억으로 하락하겠죠.”
“당연히 맞네. 하지만 연봉을 받지 않나? 천차만별이라, 구체적인 금액을 딱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38차전 시합 당시 급히 계산해 보니 대략 3억 2,000만 크랑이 나오더군.”
범석이 이마에서 삐질 흘러나오는 땀을 닦아내고는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꽤 많이 받네요. 전 한 번도 저희 엘프들에게 연봉을 준 적이 없고, 또 인간 검투사와도 좀 관계가 복잡미묘한 바람에 약간 덜 주고 있어서 적정 연봉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잘 모릅니다. 하하하.”
“그런가? 뭐 그렇다 치고. 만약 여기서 채플린 위스퍼에서 보유한 검투사 중 하나를 적정 몸값인 60억에 다른 채플린 가문 분에게 판매한다고 보세. 그럼 어떻게 되겠나?”
“글쎄요? 채플린 위스퍼가 60억을 벌고, 채플린 가문 사람은 60억의 자금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맞네. 정답일세. 그런데 다시 그 검투사가 19년 동안 채플린 위스퍼에서 뛴다고 보세. 그 채플린 가문 사람은 얼마나 벌겠나?”
시간을 들여가면 계산한 범석이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대략 61억 정도 벌겠네요.”
“그래 61억. 바로 세월이 지나면 그 채플린 가문 사람은 채플린 위스퍼팀에게 바친 돈을 그대로 받아낸다는 뜻이지. 그런데 중간에 사라져야 할 40억 크랑은 어디 갔지?”
범석이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 이자율은 계산하지는 않습니까? 19년의 이자가 자그마치 얼마인데요?”
“그렇지. 하지만 자네도 뭔가 잊지 않았나?”
“뭐 말입니까?”
“매년 연봉이 누적되며 60억 크랑에 대한 이자분이 까인다는 사실 말일세. 즉 1년이 지나면 56억 8천 크랑에 대한 이자차이만 있고, 19년 째에 들어가면 3억 2,000만 크랑에 대한 이자차이만 있다는 것 말이네. 여기에 물가 상승으로 인한 연봉 상승률과 1/3에 대한 몸값 상승과 이자를 포함 시키면 양쪽이 대동소이한 듯 보이는데?”
범석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약간 비슷하기는 하겠네요.”
“그렇지. 여기에 주인을 얻음으로써 향상되는 실력향상분의 연봉과 1/3에 대한 몸값을 포함하면 얘기가 좀 더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하하. 뭐. 대충 그럴 수도 있겠네요.”
“또 유망주 시절과 노년기 이후의 연봉을 뺀 금액이니 또 달라질 테고 말일세.”
“에이 그건 빼셔야죠. 막말로 저 저번에 프리시카를 사는데, 100억이나 쏟아부었습니다. 성장기 때는 물론 나이가 들어 전성기 중 상당 부분을 활용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 문제는 기존의 팀들도 겪는 문제라네. 우승을 원하거나 강등을 피하고자,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에 검투사를 구매하는 일은 흔한 일일세.”
범석이 혀로 마른 입술에 습기를 적셨다. 이쯤 됐으면 그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마지막 추가사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말이 있지만, 여기서 더 변명을 추가했다가는 구차해졌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저희 팀에 그런 이득이 있었군요. 새삼 깨달았습니다. 조언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우리야 자네가 하도 손해가 난다고 투정을 부리기에 그렇다고 믿고 있었네만, 갓즈나이츠의 시스템은 자네가 만들지 않았나?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되네만?”
“아, 아닙니다. 갓즈나이츠 시스템을 만든 건, 우연입니다. 검투팀은 만들어보고 싶고, 엘프들은 불쌍하고 하니, 그냥 만든 것이 그렇게 됐죠. 사실 제가 산수와 수학만 보면 학에 질려서, 그런 복잡한 생각을 절대 하지 못합니다. 하하하. 원래 스포츠 선수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범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자리를 피하는 편이 좋았다.
“아차. 내 정신을 봐. 아무래도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
“제 연인 중 한 명이 산달이라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곧 제 아이가 태어나는데 아비로서 한 번 가봐야죠. 안 그렇겠습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십시오.”
범석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는 연회장을 떠나갔다. 데레사가 입원한 병원으로 문병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아직 출산일이 되려면 좀 남았지만, 자주 들린다고 손해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휴가철. 너무 가지 않으면, 그녀가 삐질 수가 있었다.
호텔문을 나선 범석이 슬그머니 호텔을 바라보더니,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여간. 저 영감탱이 평생 도움이 안 된다니까. 쳇.’
이후 범석은 택시를 잡아타고 푸른 창공 속으로 사라져갔다.
(THE END)
============================ 작품 후기 ============================
끝입니다. 516편이라 많이 길었네요. 하하하. 자세한 내용은 후기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20분 후 부터 신작을 올리기 시작할 테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신작 제목은 ‘창공의 혈흔’입니다.
그럼 편안한 주말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