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따뜻한 오후의 햇살과 싱그러운 바다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귀를 후빌 정도로 청명했고, 엘프들과 노니는 주인 남성들의 외침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야! 패스해!”
이내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난 풍선공이 하이킹도로에 떨어져 통통 튕기고 있었다. 마침 슈트를 껴입고 로드웍을 하던 범석이 공을 주워 모래사장에서 비치발리볼 놀이를 하는 원주인에게 던져주었다.
“고맙습니다!”
“아뇨. 뭘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그가 잠시 부러운 표정을 짓고는, 계속해서 뛰기 시작했다. 휴양지 오사하에서의 훈련. 솔직히 즐겁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었다. 비너스도 있겠다. 실컷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늘의 땀은 내일의 빵빵한 능력치로 보답되는 바, 미래를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훈련에 매진해야했다.
“자. 비너스. 잠시 멈추고 몸을 푼다.”
“네. 주인님.”
비너스가 곧바로 범석의 옆에 서고는 가볍게 몸 풀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허리를 좌우로 돌리고 무릎 굽히고 펴기를 하며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 나갔다. 그러다가 뒤쪽 건물에 시선을 멈춰 세우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비너스 뭐해!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어디에 있어!”
“아, 아. 죄송해요. 잠시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
“인사? 누구?”
“저, 저기요.”
그녀가 검지로 가리킨 곳은 유리 칸막이 안으로 엘프가 가득 들어차 있는 건물이었다. 아마도 저 중 누군가가 비너스에게 손짓을 한 모양이었다. 범석은 관심어린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건물 쪽을 향해 걸어갔다. 바로 저곳이 엘프시장이었던 탓이다.
‘으음. 엘프시장이라……..’
3년 과정의 엘프학교를 수료한 엘프는 일반인들에게 판매를 되는데, 대게가 바로 저 엘프시장에서 판매되었다. 물론 그가 필요로 하는 능력 좋은 엘프들은 수료를 마치기도 전에 유수의 프로팀에서 중간에서 채가고는 있지만, 개중 비너스처럼 조용하고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엘프들은 그 촘촘한 그물망을 빠져나와 일반인들에게 팔리는 경우가 있었다. 경험 삼아 한 번쯤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됐다.
스으윽.
알루미늄샷시문을 부드럽게 열며 범석이 엘프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인테리어장식은 화려했다. 대낮이라 아직 켜지지는 않았지만 화려한 형태의 샹들리에가 천장에 쭉 나열되고 있었고, 건물 안 곳곳에는 열대식물로 보이는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카운터는 고급원목으로 되어 있었는데 겉면에 화려한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중 단연 그의 눈길을 끈 장식물은 다수의 남성손님들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던 어여쁜 엘프들이었다.
‘휴. 꽤 많네.’
넓은 실내 공간답게 내부에는 엘프들이 참 많았다. 500평이 넘을 듯 보이는 건물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어림잡아도 대략 500정도? 그녀들은 가지런히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남자손님이 지날 때마다 간절한 눈빛을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비너스를 데리고 맨 우측서부터 차례로 엘프들을 훑어나갔다.
‘일단 여기서는 능력치를 볼 필요가 없어. 갓 엘프학교를 졸업한 얘들이 뭘 할 줄 알겠어. 그러니 잠재능력만 보면 돼.’
잠재 능력만 확인하면 된다면 검색은 빨랐다. 그저 창을 열고 지정된 위치에 있는 수치만 보고 닫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기껏해야 10여초정도? 범석은 재빨리 자리를 이동을 하며 하나하나를 살폈다.
‘627이라……..’
두 번째 줄 중간에 이른 범석이 한 금발의 엘프를 보고는 발걸음을 망설였다. 잠재능력이 627이면 잘만 키우면 에어리어리그 프로검투사로 자라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절대 만족할만한 수치가 아니기에 그냥 넘어갔다. 그녀가 모든 성장을 마쳤을 때쯤은 자신은 그보다 높은 리그에 팀을 올려놓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됐던 탓이다. 그럼 이 금발의 엘프는 하위리그로 대여만 보내야 할 터. 귀중한 초기자금을 사용하면서까지 구입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저를 선택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잘 모실게요.”
한 부유한 복장을 한 30대 남성 손에 이끌려 카운터로 가는 엘프를 보자 범석이 눈길이 돌아갔다. 혹시나 좋은 엘프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 그러나 따라가다 말고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는 옛말이 있지만, 정보창의 수치까지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잠재성장은 너무도 평범해 500을 간신히 넘을 뿐이었다.
‘얼굴은 괜찮지만, 저런 능력치의 엘프를 사기에는 돈이 아깝지.’
그는 신경을 끄고 계속해서 돌며 엘프들을 살펴나갔다. 중간 중간 미모가 출중한 엘프들이 눈에 띄어 망설여졌지만, 그저 잠자리를 위한 일에 돈을 낭비할 수 없었던 터라 질끈 눈을 감고 넘어갔다.
한참을 돌아 마지막 엘프까지 도착한 범석이 상심한 낯빛을 지었다. 한 시간 넘게 공을 들여 500명이나 살펴봤는데, 쓸 만한 엘프를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산 복권이 꽝으로 판정받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어차피 별 기대는 않았지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긴 괜찮은 얘들이라면 이미 다른 프로팀에서 낼름 먹어 갔겠지. 엘프시장까지 나오겠어.’
범석이 뒤따르던 비너스의 손목을 잡고 외부 출입문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카운터를 스쳐지나가는 순간, 외부 창가 쪽에 한 엘프 하나가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특이하게도 검은 피부에 백발의 머리카락을 지녔는데, 쭉 뻗어 나온 다리가 길고 탄력 있어 보였다.
‘어라. 저기 하나가 더 있었네. 그런데 백발이라……..’
엘프들과 잠자리를 하면 오드아이었던 눈이 동일한 색으로 변모하는 데, 그 색이 머리칼의 색과 일치했다. 그렇기에 백발을 한 엘프들은 손님들에게 그리 인기가 없었다. 양쪽 눈이 흰자위로 뒤덮이는 모습이 마치 귀신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뭐 개중에 그런 모습을 매력적으로 여기는 특이성향자가 있어 팔리기는 하지만, 아주 극소수라 가격대가 아주 저렴하게 형성되었다.
그런데 백발의 엘프를 가장 눈에 잘 띄는 카운터 근처에다 배치해 놓다니, 좀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 확인해봐야겠군.’
외모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범석이 여기 엘프시장에 들린 이유는 능력이 출중한 엘프를 찾기 위해서였다. 잠재능력만 괜찮다면, 사지 않을 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백발의 엘프의 곁으로 다가가 천천히 모습을 살폈다.
‘오. 상당히 괜찮은데.’
그래도 역시 엘프라는 명함을 가진 여인답게, 외모 하나만큼은 환상적이었다. 까만 톤의 피부는 모공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부드러웠고, 타이트한 복장으로 표현된 몸매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계란형을 이루었고, 이목구비에서 목선까지 이어지는 미려한 곡선은 확 껴안아 혀로 핥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게 했다.
입술은 약간 두텁지만 검은 바탕에서도 두드러질 정도로 선명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외모에서 합격점을 내린 범석이 바로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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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틸다.
구분 : 엘프(3년).
소속 : 오사하 엘프시장.
명성 : 143.
악명 : 0.
H유무 : 무.
스테미나 : 7500/7500.
사회성 : 55, 근력 : 73, 체력 : 75.
민첩 : 79, 균형감각 : 81, 지능 : 62.
정신력 : 74. 판단력 : 75, 재주 : 12.
운 : 48.
현재기량/잠재능력 : 62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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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어둠의 종식자.
특이사항 : 현재 오사하 엘프시장에 소속된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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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어떻게 이런 애가 엘프시장까지 나온 거야!’
범석이 놀라 만큼 그녀의 정보창의 내용은 한 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신체적인 능력은 와이드리그 핵심급 검투사에 이르렀고, 재주를 제외한 나머지 능력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잠재능력이 936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수치는 범석으로서도 오스칼 이후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특기는 어둠의 종식자였다. 태양빛이 없는 곳이라면 올 능력치 +10이 상승하는 특기로, 흐린 날이나 밤만 되면 신체능력이 센트롤리그 주전 검투사급에 해당하는 엽기적인 수치로 오르게 되었다.
예상하는 바로는 제대로 키우기만 한다면 월드리그에서도 핵심급 검투사로 성장할 것으로 보였다.
‘마틸다라? 그런데 이상하네. 왜 엘프시장에서 팔리는 엘프가 이름이 있는 거지? 원래 이름은 최초로 구매한 주인이 정해주는 건데.’
그렇다면 벌써 주인이 있을 수도 있는 일. 범석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리 엘프시장에 떡하니 진열되었다는 것은 판매되는 상품. 실망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혹시 처음 구매한 주인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중간에 반품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발의 엘프이고, 아직 처녀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그 가능성은 아주 농후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정보창을 닫고 마틸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 네 이름이 뭐냐?”
그녀가 한번 물끄러미 범석을 바라보고는 바로 대답했다.
“마틸다에요.”
“아 그래? 혹시 잘하는 거 있어? 요리나, 청소 같은 것 말이야.”
“그런 건 못해요.”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게의 엘프들은 주인들에게 귀여움을 받기 위해, 요리나 청소만큼은 엘프학교에서 확실히 배우고 나왔다. 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사항을 못한다니 좀 이상했다. 물론 오스칼과 다이아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들은 프로팀에서 지정을 받아 검투훈련에 매진했거나 아니면 재주의 수치가 극악해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된 경우였다.
“그래? 이상하네. 요리나 청소를 못하면 주인에게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너 설마 주인을 얻기 싫은 거야?”
“아니요. 주인님을 꼭 섬기고 싶어요. 하지만 전 백발에다 피부까지 까매요. 그렇기에 외모로는 다른 엘프들에게 뒤쳐지니, 경쟁력을 갖기 위해 다른 능력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어요.”
역시나 엘프다운 답변이었다. 외모를 극복하고 주인을 섬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교양과목인 요리와 청소를 포기하다니…….. 한편 그는 과연 마틸다가 어떤 능력을 개발해 주인의 환심을 사려고 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럼 잘하는 게 뭐야?”
“검술요. 3년 내내 전 검만 휘둘렀어요.”
범석이 멍한 눈빛으로 마틸다를 바라봤다.
“아, 아니. 왜? 검술을 익히는 것과 주인을 얻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
“그건……..”
하며 그녀가 자신의 지난 과거를 연상했다.
마틸다가 배양캡슐에서 탄생한 직후, 엘프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의 얘기였다. 당시 그녀는 3개월 심화언어교육과정을 거친 후라 인간의 말을 언뜻 알아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만 학교 화장실에서 결코 들어서는 안 될 얘기를 몰래 엿듣게 되었다.
바로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선생님들이 자신은 외모 때문에 주인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 어린 말이었다. 본능 상 주인을 간절히 원하는 마틸다로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로, 며칠 동안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을 정도로 크게 상심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TV에서 한 엘프검투사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별로 관심을 두고 보지 않았는데, 그녀가 헬멧을 벗자 얘기가 틀려졌다. 그 엘프검투사 또한 자신처럼 백발의 머리칼에 흰자위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시 후 화면에 등장한 주인이 그녀의 어깨 위로 한 팔을 올리며 자신의 엘프가 최고라는 양 사랑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마틸다는 급히 일어나서 선생님들을 찾아갔다. 어째서 방송에 나온 백발의 엘프검투사가 주인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인간 주인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프로검투사들은 주인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재산을 안겨 주거든.”
그 말은 들은 마틸다는 어둠속에서 광명을 본 기분이었다. 주인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주면 사랑을 받는다? 아주 세속적인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학교 내에 있는 검투서클에 들었고, 피나는 노력 끝에 3년 후 전력이 극히 떨어지는 교내 검투팀을 광역정부에서 주관하는 엘프학생배 검투대회에서 준우승을 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해 준우승에도 불과하고 광역대회 최고 검투사상까지 받았다.
============================ 작품 후기 ============================
아 깜빡했습니다. 진즉에 올려야 했었는데, 제가 날자를 착각해서요. 그런데 아무도 관심은 커녕 문의도 안 하시더군요. ㅠㅠ. 약간 섭섭했습니다. ㅠㅠ.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전 월요일 같은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