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시합 당일. 범석은 오사하 해변 동쪽에 위치한 엘라임 투기장을 찾아갔다. 그저 단순한 개장기념 투기대회로 여겼던 범석은 입구부터 벌어지는 이벤트 행사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주차장에는 선수들의 이동전용차량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플라잉버스가 주룩 늘어서 있었고, 2곳의 돔형 거대 경기장까지 이어지는 길 양옆으로는 끈이 달린 풍성들이 무성히 하늘로 솟아있었다. 거리에는 레이싱걸 입을 법한 야시시한 복장을 한 수많은 엘프들이 무지개 빛 양산을 쓰고 지나가며 분위기를 띄웠고, 참가 선수들로 보이는 무투사와 검투사들은 광장 잔디에 앉아 각자 가지고 온 장비를 체크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대로변 한 복판에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버드카메라와 가족단위로 이동하는 관람객들로 번잡함을 보이고 있었다.
“휴~ 투기장 개장기념대회라 무시했는데, 보니 보통 대회가 아닌가 보네.”
“그, 그러게요.”
비너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용한 성격인 그녀가 대회장 분위기를 보고 기가 죽은 모양이었다. 이에 범석이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비너스를 바라봤다.
“긴장하지 마. 전에 GA컵에도 많은 관객을 상대로 경기를 했었잖아. 그때와 똑같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면 돼. 그러다가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또 좋은 경험이 됐으니 좋지.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지면서 경기에 집중해.”
“하,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꼭 마틸다라는 엘프를 가지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초반에 떨어져서 주인님께 실망을 드리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네게 기대하는 부분은 프로를 상대로 홀로 싸우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이야. 마틸다를 얻는 일은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이고. 그러니 각자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만 돼.”
그 말이 위로되었는지 비너스의 떨림이 크게 줄어들었다.
“네. 알았어요. 최선을 대해서 주인님께 좋은 경기모습을 보여드릴게요.”
“후후. 그래. 그럼 빨리 경기장을 찾아가자. 준비할 사항이 많으니까.”
그들은 2개의 경기장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서로 헤어졌다. 비너스는 A조이기에 1번 경기장에서 경기를 해야 했고, 범석은 B조니까 2번 경기장으로 가야만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비너스 힘내라고 응원하고는 2번 경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출전 선수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곧 경기가 시작됩니다.”
출전선수 대기실. 선수로 보이는 엘프들 틈에 껴있던 범석이 헬멧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입고 있던 슈트를 계속 손질했다. 자신의 순번은 아직 멀었으니, 그 틈에 장비가 이상이 없는지 체크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 슈트는 주최 측에서 제공한 장비이기에, 혹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손상 부위가 있을 수 있었다.
“자. 그럼 B-01 선수와 B-02 선수 분들은 경기장으로 나오십시오.”
행사진행인의 말에 그의 전면 부위에 앉아 있던 금발의 엘프와 우측 멀리 앉아있던 흑발의 엘프가 일어서서는 밖으로 나섰다.
이에 출전선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자수첩을 꺼내서는 홀로그램 영상을 띄웠다. 이번 대회는 주최측이 거금을 주고 초청한 지역TV방송사에서 중계를 하기 때문에, 방금 나간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화면을 통해 낯선 상대의 전력을 파악할 요량인 듯 보였다. 역시나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답다고나 할까? 하지만 범석은 여전히 장비를 손질하는 여념이 없었다.
그가 걱정하는 선수는 단 하나. A조에 소속된 힐리스라는 검투사였다. 그녀는 이곳 오사하를 연고로 두고 이르스센트롤리그에 소속된 블랙로즈팀의 주전 검투사였다. 센트롤리그 검투사는 한 번도 맞상대해 적이 없으니,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는지 출입문 밖과, 다른 출전선수들의 전자수첩에서 일제히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요시간은 1라운드당 3분에 휴식시간은 1분씩. 총 4라운드를 수행하는 1차전의 최대 플레이 시간은 16분이었다. 하지만 검투경기는 한 번의 제대로 된 검격으로 승패가 가늠되기에, 그 이전에 끝나기가 다반사였다. 잠시 후 청명하게 울려 퍼지던 금속음은 이내 잦아들었고, 경기가 종료되었다.
“자 그럼. 두 번째 경기 출전자 나오십시오.”
대기열은 급속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대략 2~3회전만으로 경기가 끝나버리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범석은 느긋하게 등을 벽에 기대로 편안 자세로 앉았다. 1회전 상대가 그저 에어리어리그 하위팀 주전급 검투사라 긴장할 필요성도 없었고, 가장 마지막경기에 배정 받은 탓에 시간도 많이 남아돌았다.
– 자 그럼 A조 11번째 경기를 속행하겠습니다. 이번 출전선수는 여러분들이 고대하시는 블랙로즈팀 소속의 힐리스선수와 일반 참가자인 레베카선수입니다. 자. 선수들 입장하십시오.
근처에서 들려오는 TV방송 소리에 범석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자신이 주의를 기우리고 있던 선수의 시합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힐리스는 부전승으로 2차전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나?’
지난번 간담회가 열렸을 때 이번 출전 선수들은 간단한 대진표추첨을 했었다. 당시에도 범석은 힐리스를 주시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가 1차전 경기를 면제받는 장면을 분명히 보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1차전 경기에 출전하다니. 그는 궁금한 마음에, 또 전략 탐색 차원에서 전자수첩을 꺼내 TV홀로그램 영상을 띄웠다.
다행히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 않았는지, 화면상의 힐리스는 라운드 우측 옆에 서서 가볍게 몸을 푸는 자세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얘는 또 왜 나온 거야?’
화면이 상대 선수인 레베카로 향해지자, 범석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며칠 전에 엘프시장에서 본 개조인간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저번 간담회 때 나오지를 않아, 참가신청이 거절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돈과 빽의 위력인가? 참나 돈 없는 놈 서러워서 살겠나.’
알아보니 레베카의 가문인 채플린가는 에이번드 지역정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르칸이라는 지역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일구는 입지적인 가문이었다. 전자, 플라잉카, 조선등의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거대 기업체였고, 전문스포츠웨어와 건설, 유통업, 식품쪽도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모두를 합치면 세계 재계 순위 10위권 정도? 당연히 채플린가문의 자금과 빽이라면, 이런 개장기념대회쯤이야 뒷구멍 출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별로 상관이 없을 듯도 보였다. 아무래 개장기념대회라 주최측의 입김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TV에 방영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판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특히나 검투부분은 서로 비겨 판정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후후. 게다가 상대가 센트롤리그 선수라…….. 그럼 끝났지 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범석이 편히 다리를 꼬며 경기를 관람했다. 곧이어 공이 울리고 힐리스와 레베카가 서로의 검을 들고 상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뒤이어 이어지는 레베카의 검격이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창. 까아앙. 창. 끼이잉.
연이어 터져 나오는 청명한 금속음. 힐리스와 그녀의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불꽃이 터져 나오며, 경기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어, 어라? 제법 하네.’
일방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 두 여인의 결투는 거의 막상막하로 진행되고 있었다. 대등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검을 맞대도 누군가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공중을 수놓은 검형을 볼 때 경험에서 나오는 검술의 센스도 거의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교면에서는 레베카가 상당히 앞서는 것으로 생각됐다. 검끝이 요상하게 변화되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상하좌우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뭐야? 둘이 짰나? 으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차츰 검세가 난잡해지고 빠른 템포로 흐르자 힐리스가 무척 당혹해하며 수세에 밀리고 있었다. 혹시 둘이 모종의 거래가 오갔는지 의심을 해봤지만, 지금의 움직임을 봤을 때는 절대 아니었다. 이들이 경기장에서 펼치는 수준은, 과거 와이드리그에서 큰 활약을 했던 에르피나보다 높았다.
땡하고 울리는 소리와 1라운드 종료 벨과 함께 두 여인이 자신들의 좌석으로 돌아갔다. 레베카는 여유가 있게 의자에 앉는 반면 힐리스는 지쳤는지 헬멧까지 벗어가며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연기라면 힐리스는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감이었다.
“쳇. 아무래도 레베카가 결승전 상대가 되겠군.”
승패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바, 범석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 떨어질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1라운드의 경기결과를 봤을 때 레베카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힐리스가 그녀의 괴이한 리듬에 전혀 적응하고 있지 못하니, 사소한 실수만 나와도 승패는 결정이 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승부의 시간은 단지 16분. 그 안에 저 요상한 검술의 정체를 알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는지 2라운드 중반쯤에 정확히 이마를 격타당한 힐리스가 바로 행동불능 상태에 빠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거. 나도 조심을 해야겠는데. 자칫하다가는 당할 수 있겠어.’
사실 기본적인 신체능력과 검의 숙련도면에서 이 둘은 거의 막상막하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 승패가 손쉽게 결정이 난 이유는 바로 레베카가 보유하고 있는 이상한 리듬이었다. 검의 강약과 변화가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정확히 검을 맞대어 막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러다보면 상대 검투사는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야 했고, 극심한 체력손실을 유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결승전에 오를 터. 난관이 예상이 되었다.
“자. 그럼 B-63 선수와 B-64 선수 분들은 경기장으로 나오십시오.”
진행자의 호출에 범석이 장비를 정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B-64의 선수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허리에 찬 카타나를 비스듬히 세우고는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우와와와! 우와와와!
장내에 가득 찬 관객들이 선수의 등장과 함께 고함을 질러댔다. 돔형 천장에 달려있는 조명은 뜨거울 정도의 밝은 빛으로 중앙의 경기장을 비추고 있었다. 지나는 길목마다 가지각색의 레이저가 하늘을 수놓았고, 출입문 바로 위쪽 공간에서 출전할 선수들의 활약장면이 하이라이트영상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경기장 쪽으로 향하던 범석이 문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베팅결과가 화면에 나오던 탓이다. 1.8 : 1. 자신에게 불리한 베팅금액이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경기 장면을 봤다면 절대로 상대에게 돈을 거는 멍청한 도박사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 예상키로는 오늘 경기장에는 도박사보다는 일반 가족 나들이 관객이 많이 온 듯싶었다. 덕분에 이번 승리로 그가 벌어들일 돈은 총 39만 크랑. 제법 쏠쏠하다고 볼 수 있었다.
‘으음. 39만 크랑이 어디냐. 후후.’
사각의 링 위에 올라선 범석이 경기장 중앙으로 가서, 올라오는 상대선수를 바라봤다. 엘라야라는 엘프로, 에어리어리그에 소속된 썬더 제우스팀의 주전급 검투사였다. 미리 정보를 파악해보지는 않았지만, 들고 나오는 무구를 보아하니 양손검을 주무기를 삼는 듯싶었다.
이윽고 그녀가 올라오자 심판이 다가와 둘을 링 가운데 세웠다.
“링 밖으로 3회 나가면 실격패를 당하니 조심해라.”
검투부분의 투기대회에는 사방을 막는 로프가 없었다. 검을 휘두를 시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검이 링에 걸려 패한다면 그만큼 우스운 얘기도 없었다.
대신 실수로 놓친 검이 관람객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 관람석 전면은 튼튼한 투명 강화아크릴판으로 막고 있었다.
“그럼 파이트!”
시합 시작을 알린 심판이 급히 링에 아래로 빠져나갔다. 뒤이어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푸른색의 불꽃. 엘라야가 기습적으로 뻗은 검을 그가 쳐낸 때문이었다.
창. 캉. 창.
계속되는 그녀의 일방적인 공격에 관중들이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팅률은 범석이 2배 가까이 많지만,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이 지역 출신의 엘라야에게 돈을 걸었던 탓이다. 그에게 돈을 건 자는 일부는 돈이 많은 전문적인 도박꾼뿐이었다.
‘으흠. 너무 분위기를 띄워줬나?’
코너까지 밀린 범석이 그녀의 옆을 스치면서 어깨로 툭하니 밖으로 밀었다. 우당탕탕 게 다리를 짚으며 링 밖으로 나간 엘라야가 바로 심판의 경고를 받았다.
“엘라야. 경고 1회!”
어두운 낯을 한 그녀가 머뭇거리며 링으로 복귀했다. 경기 전 비디오를 보고 상당히 강한 자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맞았던 것이다. 암만 봐도 GA 4차전에 올라 작년 지역 프로순위 11위 팀의 핵심급 검투사 다섯을 여유롭게 이긴 장면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프로검투사로서 아마추어에게 당할 수는 없는 일. 반드시 이겨야 했다. 관중들은 범석이 어떤 실력자인지 아직 모르니, 지며 상당한 야유가 쏟아질 터였다.
심판의 경기재개신호를 받은 엘라야가 조심스레 링을 돌고 있었다. 처음의 기습작전이 실패했으니, 이제 지공으로서 상대의 실수를 노리려는 모양이었다.
‘으음. 이번에는 느슨하게 가려는 모양인가?’
그렇지만 범석으로서는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이번 대회는 3일간 7경기를 치워야하는 빠듯한 일정이니, 체력안배가 무척 중요했다. 괜히 시간을 끌며 정심과 체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범석이 빠른 동작으로 그녀를 향해 카타나를 내질렀다.
“?!”
스텝을 밟으며 피한 엘라야가 들고 있던 롱소드로 작은 궤적을 그리며 그를 공격했다. 아주 작지만 그녀의 허리가 열려있는 모습을 확인한 범석이 날렵한 동작으로 어깨차징으로 밀쳤다. 그리고 잠시 중심이 흐트러진 사이, 바로 카타나를 올려치며 정확히 목 부위를 강타시켰다.
서서히 경직상태에 빠져든 엘라야의 몸이 앞으로 기울여졌다. 경기가 종료되었음을 깨달은 범석이 뒤로 물러났다. 쓰러진 상대에게 손을 대는 일은 비신사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반칙패가 선언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럴 의도가 없음을 심판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곧이어 심판이 튀어나와 둘 사이를 가로막고는 시합 종료를 알렸다.
============================ 작품 후기 ============================
계속 간당간당하게 올리네요. 이번 회는 간신히 어제야 끝을 맺었습니다. ^^;;;; 에고 빨리 킹판월이 끝나야 신경을 쓸 텐데요. 8월만 되면 좋은 날이 오겠죠. 하하하.
그럼 전 월요일 새벽에 다시 찾아뵙습니다. 좋은 주말들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