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범석의 준결승전 상대는 힐라라는 엘프로, 요하힘와이드리그에 소속된 씨 옥토버스팀의 주전 검투사였다. 주특기가 검방이라 그로서는 상대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방어에 특화가 되었기에 웬만한 공격은 아예 씨알도 먹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범석은 수십 합을 투자해 그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서야 겨우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이로서 그는 오후에 있을 결승경기를 지친상태에서 참가해야했다.
“주인님. 여기 땀 닦으세요.”
경기를 끝내고 내려오는 범석을 비너스가 수건을 가지고 나와 마중했다. 헬멧을 벗은 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휴~ 고마워.”
“자. 이것도 드세요.”
그녀가 내민 스포츠드링크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범석이 근처에 보이는 상품진열대쪽에 눈길을 주었다. 그곳에는 컵 모양의 트로피와 함께 마틸다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결승전 당일 날이라 시상식을 위해 주최측에서 데리고 나온 모양이었다.
근처 탁자위에 빈 컵을 내려놓은 범석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어. 마틸다. 그 동안 잘 지냈지.”
그를 잠시 바라본 마틸다가 다시금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링 안에서는 무투경기 준결승을 시행하기 전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별 관계도 없는 이런 행사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범석을 쳐다보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전에 엘프시장에서 있었던 레베카와 벌인 실랑이와 이번 대회 접수장면을 보고는 그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주인 없는 검투사로 삼으려는 검투팀 관계자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마틸다에게 주인이 되어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는 관계자 외 접근금지지역에요.”
범석이 그녀의 뒤를 스쳐가는 몇몇의 관객을 보고는 말했다.
“굳이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
“자꾸 이러시면 경기 진행인을 불러 쫓아내겠어요.”
냉랭한 마틸다의 말투에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 내가 싫어?”
“네. 싫어요. 우리 엘프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내가 왜 엘프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거지?”
“얼마 전에 겨우 안 사실이지만, 프로 검투팀이라는 곳에서 저 같은 엘프를 데려다가 수십 년 동안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부려먹는다고 했어요.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 범석이 검지로 목덜미를 벅벅 긁어대며 난감함을 드러냈다.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순간 마틸다의 고개가 그를 향해 팩 돌아갔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우리 팀도 검투팀이 맞긴 맞는데, 절대 주인 없는 엘프를 영입 안 해. 그래서 너를 우승상품으로 받는다면, 내 밤 시중을 드는 엘프로 만들 것이고.”
그녀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어대더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싶어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럼 범석님께서 제 주인님이 되어 주신다는 말인가요?”
범석이 곁에 있던 비너스를 내세우며 말했다.
“비너스를 봐. 얘도 검투사인데, 나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어. 너도 내게 오면 주인을 섬기게 될 거야.”
마틸다가 비너스의 양쪽 눈이 동일함을 보고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범석은 이번 결승전에 출전하는 검투사. 여기서 그가 이긴다면 자신은 주인을 얻게 되었다. 그 동안 주인을 얻고자 한 힘든 검술수련이 역으로 자신을 얽매였다는 사실에 크게 후회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딴판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간절한 눈빛을 담아, 범석을 바라봤다.
“범석님. 오, 오후에 결승경기를 하시죠?”
“응. 그래.”
“꼭 이기셔서 제 주인님이 되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 살결을 바라본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엘프를 놓친다는 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후후후. 당연하지. 나도 그럴 참이다. 대신 밤 시중을 잘 들어야 한다.”
“네. 물론이에요. 범석님께서 주인님만 되어 주신다면, 정성을 다해 모실게요.”
범석이 마침 자신에게 다가오는 행사진행요원을 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괜한 일로 주최측과 트러블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후후. 그래. 그럼 이따 결승전 이후에 다시보자.”
마틸다가 자신의 흰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일어나, 뒤돌아서는 그를 향해 외쳤다.
“네. 꼭 기다릴게요!”
범석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빠져나갔다. 잠시 행사진행요원과 눈씨름이 있었지만, 차분한 표정으로 응대함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그는 비너스와 함께 휴게실에서 일찌감치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마무리한 후, 오후 경기에 대비했다.
– 자. 이대 기대하시고 고대하시던 검투부분 결승전이 벌어지게 되겠습니다. 예상과 달리 이번 결승에 출전한 선수들은 모두 일반참가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센트롤리그 프로검투사를 비롯한 수많은 프로검투사를 단숨에 제압하고 올라온 군계일학의 실력을 지닌 검투사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어떤 경기를 펼칠지는 관객여러분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오범석 선수의 입장입니다! 모두 우레와 같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어두운 입장도로 끝에 일제히 조명이 비춰지자 슈트를 껴입은 범석과 곁에서 보조하는 비너스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비너스와 함께 현란한 싸이킥조명과 레이저 조명의 향연이 된 길을 걸으며, 성원을 보내는 관객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그리고 링에 다다르자 비너스가 들고 온 카타나를 뽑아들고는 차분하게 계단을 밟았다.
– 다음 선수는 레베카양입니다. 입장과 동시에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결승전 상대인 레베카의 입장. 하지만 범석의 시선은 상품진열대에 앉아있는 마틸다를 향하고 있었다. 주의를 기울여할 만큼 대단한 실력자였지만, 얼굴 한 번 본다고 데이터가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자신을 향해 귀여운 환호를 보내는 마틸다의 얼굴을 보며, 투지를 불사르는 편이 더욱 이득이었다.
“범석님! 꼭 이기세요!”
마틸다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날린 범석이 이제야 레베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필승을 다짐한 듯 날카로운 눈매로 그를 시선을 맞대응했다. 잠시 이들의 눈싸움이 지켜본, 중년의 심판이 링 중앙으로 불러 모았다.
“링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것 알지?”
“네.”
“그래 좋아. 이번 경기는 결승전이니까. 투지가 넘치는 결투를 벌여야 해. 만약 뒤로 빼는 감이 있다면 바로 경고가 들어갈 테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심판이 링밖에 서있는 행사요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파이트!”
순간 레베카 범석의 복부 쪽에 검을 깊숙이 찔러갔다. 그는 들고 있던 양손 카타나를 회전 시키며 막아내고는 강한 불꽃이 튀길 정도로 검을 강하게 맞대었다. 이어지는 검과 검의 힘겨루기. 근력에서 딸리는 범석이 형편없이 밀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역시 힘에서는 여지없이 밀리는군.’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그는 바로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빠져나왔다. 자신에게 불리한 힘 대결을 굳이 이어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볼 이유가 없던 레베카가 빠르게 따라붙어 검으로 범석이 머무는 공간에 널찍한 사선을 그었다. 놀란 범석이 황급히 허리를 기울여 간신히 피하고는 계속 뒤쪽으로 물러났다.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레베카가 검을 마구 휘저어대며 그를 압박해 갔다.
창. 휙. 창창.
‘역시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이러다가는 자칫 내가 당하겠어.’
휙휙 스치는 검압 속에 갇힌 범석은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펼치고 있는 검술은 기본 괴리를 벗어난 생소하고 파격적인 초식이었다. 강하게 내리치는 동작인 줄 알고 힘을 주어 막으면 흐르듯 넘어가 다음의 날카로운 공격으로 이어졌고, 약하다 싶어 허투루 막는다면 여지없이 몸 쪽까지 검이 밀렸다. 그러면서도 검술의 완성도 또한 높아 역공을 취하기도 쉽지 않았다.
마치 검형 자체가 넘실거리는 너울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약간이라도 허투루 몸을 움직였다가는 기괴하게 꺾이는 검 끝에 그대로 당해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죠? 무척 강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요.”
그녀의 조롱어린 언사에 범석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결코 대꾸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대결에서 자신이 크게 밀린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검 한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러나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녀의 약점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이 기괴한 리듬의 검세를 연속해서 뿌리기 위해서는 극한의 기교가 필요했다. 갑자기 힘을 넣고 빼는 등의 행동을 하니, 근육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시간만 끈다면 몹시 지칠 테니, 점점 상대하기가 수월해 터였다.
창. 차창. 창. 깡.
그는 그저 날아오는 검을 쳐내는 데만 집중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레베카의 검이 스쳐지나갔지만,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흐름을 읽는데 집중했다.
검투경기에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의 몸을 검으로 내리쳐야 했다. 당연히 체력 손실 말고도 또 다른 공략수가 필요했고, 그것은 바로 이 리듬을 깰 수 있는 묘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으음. 이건 검술에서 나올 리듬이 아니야. 뭔가 다른 무구를 기반으로 둔 것 같아. 아마 레베카는 전에 다른 무기를 다뤄보고 검술에다 적용시킨 것이 분명해. 뭐지? 창인가? 아니야. 창치고는 너무 변화무쌍해. 그럼 삼절곤인가?’
범석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삼절곤 또한 변화가 심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전체를 손잡이로 삼고 마디까지 있는 삼절곤은 검술에 적용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그때 레베카의 검이 그의 면전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라 범석이 급히 카타나를 올려 막았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결코 멈추지 않고 끝이 내리깔리며 범석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끼이익.
헬멧으로 길게 이어지는 기스자국. 간담을 쓸어내린 범석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자칫 한 치만 밑으로 향했어도 그는 곧바로 행동불능 상태에 빠졌을 터였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레베카를 바라봤다.
‘참나. 확실히 막았는데. 어떻게 거기서 검이 휘면서 뻗어 나와.’
도무지 알 수 없는 공격에 범석이 혼란스러움에 빠져 들었다. 방금 전 공격은 결코 자신의 몸을 스치지 말아야했다. 날아오는 검면을 정확히 막아 각을 꺾어놓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잠시,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레베카의 현란한 공세에 다시 바삐 몸을 움직여야 했다.
휙. 창. 깡깡.
요란한 금속음이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일방적인 수세에 몰린 범석은 긴장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링 주위를 뒷걸음질을 쳐댔다. 자칫 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기이한 검술의 원인을 파악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언제고 실수를 범해 패하게 되었다. 느낌에 의지해 검을 나누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다시금 길게 뻗어 나오는 레베카의 검이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범석은 허리를 꼬며 검면을 가져대어 막았다. 하지만 다시 휘어지듯 안쪽을 파고는 검 끝에, 황급히 손목을 틀어 검의 각도를 넓혔다.
스으윽.
왼쪽 팔뚝 부위를 스치는 날카로운 감각. 뒤로 몇 보 물러난 범석이 왼손을 쥐고 폈다. 다행히 물리력방응슈트가 완전한 결정타로 인식하지 않았는지, 약간 뻣뻣하기는 하지만 손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다소 안심을 한 그가 미심적인 눈빛으로 레베카를 쳐다봤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번 공격도 뭔가 큰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요번주. 주말 부터 1일 1회 연재가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주시고요.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그럼 전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