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리마시티 콜로세움의 상공. 진행을 멈춰선 아론이 서서히 지면을 향해 내려서고 있었다. 그 안에 타고 있던 범석이 약간은 긴장된 모습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갓즈나이츠팀의 에어리어리그로 가는 승격토너먼트 최초의 경기이자 32강전이 오늘 여기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승격으로 가는 첫 번째 단추이기에 어떻게든 오늘 시합을 기분 좋게 마무리해야 했다.
‘오늘 여유롭게 승리를 해야 해. 그리고 이 기세를 8강전까지 이끌고 가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을 격파해야 하고.’
아론이 남쪽 주차장에 내려서자 범석과 갓즈나이츠팀원들이 일제히 하차해 콜로세움을 향해 걸어갔다. 마침 관람 차 찾아왔던 사람들이 그 행렬을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이내 성큼성큼 다가와 사인지와 펜을 내밀었다. 지난 일 년 동안의 활약으로 리마시티의 검투 팬들에게 어느 정도 갓즈나이츠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모양이었다. 특히나 반년 간 델로이 와이드리그에서 활약했던 오스칼과 에르피나는, 유명세가 높아 팬들의 집중적인 성화를 받아야 했다.
잠시 후. 시계를 바라본 아직 몰려있는 팬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려면 멀었지만, 준비할 것이 많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 경기가 있어 이만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미처 예상치 못해 여러분의 성원에 모두 보답하지 못한 점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시합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간이 사인회를 열겠으니, 경기를 관람하시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에 일부 팬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미처 사인을 받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시합이 끝난 후 사인회를 연다니 기회는 또 있었다. 그들은 그때를 기약하고는 갓즈나이츠팀을 순순히 보내줬다.
이런 군중을 헤치며 지나가는 범석이 팀원들을 대동하고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섰다.
“갓즈나이츠팀 검투사님들 어서 오십시오. 자 이리로 가시면 됩니다.”
행사진행 인의 안내로 갓즈나이츠팀원들이 해당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GA컵과 에이번드 세미프로컵 당시 몇 번 들려본 적이 있어 길은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특이사항이 있을지 모르지 진행 인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나았다.
이내 동쪽 더그아웃에 도착한 그들이 한 편에 마련된 도구 실에 짐을 정돈한 후 슈트를 착용했다. 경기 전에 몸풀기 운동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텐드 아래로 속속히 모여드는 관중을 바라보며 가볍게 몸을 풀며 앞으로 있을 32강전에 대비했다.
‘오늘은 이기고 지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이기느냐가 문제지. 확실히 초전박살을 내 팀의 사기를 끌어올려야 해.’
여유롭게 허리를 돌려가며 몸 상태를 확인하던 범석이, 전광판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버릇대로 오늘 경기의 베팅률을 살펴봤는데, 말도 안 되는 수치가 기재되어 있었던 탓이다.
3.7 대 1.
물론 갓즈나이츠 쪽의 수치가 높기는 했지만, 오늘 붙을 사우스 데빌즈 전력 차와 이곳이 자신들의 연고지인 리마시티콜로세움임을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베팅률이었다. 그는 오늘 최소한 7대 1은 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우스 데빌즈 팀은 과거 세미프로컵 대회에서 자신들에게 3 대 0 스코어로 처참하게 깨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있다고 생각한 범석이 급히 에리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팀 분석의 재능이 있으니, 작금의 상황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에리카! 이리 와봐!”
“네. 주인님.”
“당장에 사우스 데빌즈팀의 전력을 분석해와.”
“왜요? 전에는 볼 필요도 없는 팀이라고 하셨잖아요.”
“상황이 달라졌다. 뭔가 이상하니 빨리 파악하고 와.”
이 말에 에리카가 급히 들고 있던 무구를 내려놓고 더그아웃으로 달려가 사우스 데빌즈팀의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얼굴을 시퍼렇게 물들이고는 급히 달려왔다.
“주, 주인님. 큰일 났어요!”
역시나 한 범석이 심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큰일?”
“지난 경기 이후. 사우스 데빌즈팀의 주력 검투사들이 대거로 교체되었어요. 총 12명 새로 들어왔는데, 모두가 얼마 전까지 하이에나그룹의 소속의 에어리어프로팀에서 뛰던 검투사들이었어요.”
짜증스러운지 범석이 이를 악물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도 줄리앙이 벌인 짓이 분명하다고 생각된 것이다.
아마추어팀은 소속 선수들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기에, 대회 기간 중에도 언제든 팀원을 새로이 충원할 수 있었다. 이사나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팀원이 떠났을 때, 팀 전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아마추어협회에서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놈은 이 맹점을 이용해 갓즈나이츠의 경쟁팀에게 하이에나그룹의 검투사들을 대거 참여시킨 듯 보였다.
‘미치겠네. 아마추어 규약에 어긋나는 짓도 아니니, 협회 측에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따져 봐야 소용도 없고.’
아마추어협회가 이런 불합리한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음에도, 규제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자금이 달리는 아마추어팀에서 프로선수들을 임대하기란 어려웠고, 설령 막대한 자금을 들여 프로 선수를 임대해 와도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프로로 진출하는 팀들을 선별하는 자리. 실력 있고 자금능력이 되는 팀이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아마추어협회는 같은 해의 승격토너먼트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 선수를 제외하고는, 대회기간 중 팀원 구성에 그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단지 12명이라면 우리 팀의 체력을 손실시키려는 것이 분명해. 내가 줄리앙 같아서 이걸 노렸을 테니까.’
범석이 이리 생각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아무리 에어리어리그에서 활동하던 프로급 검투사들이라고는 하지만, 단지 12명을 가지고는 갓즈나이츠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팀은 선수층이 얇아 극심한 체력 소모 시 교체할 멤버가 그리 마땅하지 않았고, 승격토너먼트대회는 일정이 빡빡해 일주일에 2회씩 경기가 진행되었다. 줄리앙이 충분히 생각해 낼만한 노림 수였다.
“다이아나. 이리 와봐.”
범석이 다이아나를 불렀다. 이왕 이렇게 된 일,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줄리앙 놈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는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고는 다이아나에게 자문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프로급 검투사들이 12명 더 들어왔다고 패할 일은 없지만, 체력이 손실될 가능성이 커. 우리는 8강 전을 대비해서 어떻게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그럼 이렇게 하죠. 주력을 2, 4, 5라운드에서 뛰게 하고 후보들을 1, 3회전에 뛰게 하는 것이에요. 분명 저들은 1, 3, 5라운드에 주력을 포진할 테니, 저희는 단지 5라운드에만 상대의 주력과 싸우면 돼요.”
범석이 근심스러운 낯빛을 하며 말했다.
“괜찮을까? 자칫 라운드 승수에 밀려서 우리가 역으로 당해버리는 수가 있잖아. 그리고 우리 주력이 4, 5라운드를 연달아 뛰니 그만큼 체력 손실이 클 수가 있고.”
“하지만 저희 팀의 후보도 만만치 않아요. 일곱 명 다 상당한 수준이고 나머지 다섯은 저희 주전으로 채워지게 돼요. 이 정도 전력이면 하위급 프로팀과 맞붙어도 충분히 해볼 만해요. 게다가 저들은 팀에 들어 온 지 사흘이 넘지를 않았어요. 그 시간 내에 조직력을 가다듬기란 어려운 일.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면 절대 지지는 않을 것이에요. 그리고 저희 주력이 4, 5라운드를 동시에 뛰는 것도 별문제가 없을 듯 보여요. 상대의 비주전들이 나오는 4라운드를 이른 시간 내에 제압해 버리면 그만큼 체력 소모도 적고 긴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수긍한 듯 범석이 고개를 주억이었다. 검투경기는 1라운드 20분, 총 5라운드 합쳐 100분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라운드 중간에 10분씩의 휴식 시간이 있어, 한 게임당 총 140분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이에 4라운드에서 5분 만에 상대를 모두 쓰러뜨린다면 5라운드 시작시각까지 25분가량을 쉬게 되니, 충분히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1, 3라운드를 뛰는 후보와 몇몇 주전들이, 한 번이라도 이기거나 모두 비기게 된다면 5라운드를 뛰지 않아도 됐다.
“좋다. 그렇게 하자. 그럼 스트레칭이 끝나면 다들 불러서 변경된 전략을 설명해줘.”
“네. 알았어요.”
대화를 마친 범석이 다시 몸풀기 운동에 들어갔다. 어차피 포지션이나 특별한 전략 변경 없이, 플레이하는 라운드만 바꿀 뿐이니 세세한 회의를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스트레칭이 모두 끝나고 변경된 전략을 설명해도 늦지 않았다.
“다들 무슨 얘기인 줄 알겠지? 확실히 착오가 없도록 해. 절대로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의 수작에 놀아나서는 안 돼.”
다이아나의 말에 더그아웃에 있던 갓즈나이츠 팀원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녀들도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이 자신들을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며칠 전 장난전화는 그녀들로서 절대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자신들이야 모르지만, 주인까지 우롱했음에 큰 분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녀들은 오늘 반드시 이기겠다고 다짐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출전 준비를 서둘렀다.
이를 본 범석이 다이아나와 함께 미리 작성해놓은 1라운드 출전자 명단을 단말기를 통해 조직위원회 사무실로 전송했다. 그리고 미안한 듯 벤치 한편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엠마에게 다가갔다.
“지금 뭐해?”
엠마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갓즈나이츠팀까지…….”
“상관없어. 네 탓이 아니니까. 다 그 빌어먹을 줄리앙 놈이 요상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탓이지.”
“하, 하지만 저희 흑사회의 일만 아니었어도…….”
범석이 전혀 상관없다는 양 고개를 저어댔다.
“어차피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거야. 근자에 나는 흑사회에게 도움을 받았고, 오늘날 보답을 하는 거지. 좀 수지타산이 안 맞지만, 감수해야겠지.”
“그, 그럼 계속 저를 팀원으로 받아주실 건가요?”
“당연하지. 내가 자존심 죽이고 그 줄리앙 자식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콧대를 꺾어놔야지.”
엠마가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간 범석이 자신을 쫓아내면 어쩌나 약간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줄리앙의 방해공작이 그만큼 노골적이었다. 프로진출이라는 목적하에 눈 딱 감고 자신을 팀에서 방출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후후. 그렇게 고마우면 언제고 단둘이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자고. 너 근래에 너무 훈련에만 매진하는 것 같아. 좀 인생도 즐길 줄 알아야지.”
“호호호. 당분간은 안 돼요. 시합에 나가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빨리 실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계속 팀에 짐이 될 수야 없죠.”
범석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댔다. 지금 그녀는 끊임없는 노력과 레이미의 지도로 꽤 높은 성장을 이룩했다. 아직 검술적인 능력이 많이 모자라지만, 높은 잠재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신체능력이 이를 보충해 주고도 남았고, 전술이해 능력도 높아 팀플레이에 상당한 도움을 주리라 예상되었다. 이를 봤을 때, 당장 갓즈나이츠팀의 후보에 올려도 전혀 문제 생길 것이 없었다.
“아니야. 네 실력 많이 늘었어. 이제 안심하고 후보로 기용할 만큼 말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큰 단점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에이. 저 기분 좋아하라고 하시는 말인 줄 다 알아요.”
“참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었다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너를 후보에 올려놨겠어?”
엠마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아직 범석의 배려로 출전하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이유에서였다.
“그, 그럼. 흑사회와의 의리 때문에 저를 후보로 경기에 참가시키는 것이 아니었어요?”
“물론이지. 아무리 첫 시합이라지만, 32강전이야. 상대를 너무 만만히 봐서도 안 된다고. 특히 한 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에서는 더욱 그렇지.”
엠마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떤 경우라도 칭찬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가 감사의 뜻을 표하려는 순간,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바로 안드레아였다.
“엠마님 죄송해요.”
“괜찮아. 그런데 어디 가?”
그녀가 손에든 전자수첩을 보이며 말했다.
“네. 주인님에게서 연락이 와서 잠시 나가서 통화 좀 하려고요.”
“아. 그래. 다녀와.”
이에 범석도 한마디 했다.
“안드레아. 얼마 후에 1라운드가 시작될 테니까 빨리 와야 해. 아무리 2라운드부터 출전하지만, 1라운드를 보면서 상대의 전략을 눈여겨봐야지.”
“네. 금세 다녀올게요. 시합을 잘하라는 안부 연락이니까 얼마 안 걸려요.”
“그래. 다녀와라.”
허리를 숙인 안드레아가 빠른 걸음으로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이를 잠시 바라본 범석이 눈길을 다시 엠마에게로 돌렸다.
“그러니까. 엠마. 너무 주눅 들어 하지 마. 자신감 결여는 시합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검투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경기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상대를 이기지 못해. 실수해도 좋고, 금세 행동불능에 빠져도 좋으니까, 시합에 나간다면 마음껏 후회 없이 싸워야 해. 알았지?”
엠마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었다.
“네. 알았어요. 범석님의 말대로 마음껏 싸울게요.”
“으음. 그래. 대신 너무 정신 놓고 싸우다가 팀킬은 하지 마라. 크크크.”
농담임을 안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네. 염려 마세요. 저는 색맹이 아니라 팀 색상 정도는 구분해요.”
“그래. 그럼 1라운드. 잘 부탁한다.”
이 말을 한 범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좌측 벤치에 앉아 있는 치리아를 바라봤다. 며칠 전 장난전화 사건으로 팀을 떠나려고 했던 점이 무척 미안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팀에서 동떨어진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타 주인 소유의 엘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검투사이기에 이대로 놔두다가는 팀 전력에 큰 손실이 날 터. 어떻게든 어르고 달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치리아에게 다가가 갖은 농담과 위로로 기분전환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활기찬 모습을 한 그녀는 팀에서 가장 친한 미를리를 옆에 앉아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과거의 일로 이사장인 범석이 화가 나지 않았음을 알았으니,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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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 좋은 여름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