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손님. 여기 있습니다.”
“아.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네. 안녕히 가십시오.”
품 안 가득 봉투를 든 범석이 그 안에 든 핫도그 하나를 꺼내며 제르미아에게 다가갔다.
“자. 먹어.”
화들짝 놀란 제르미아가 그제야 범석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사흘 후면 상대할 팀의 에이스를 몰라볼 리가 없었던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벌써 자리를 피하고도 남았을 터였지만, 범석의 손에서 아른거리는 핫도그에 도저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올가미 속 꿀단지 앞에서 갈등하는 곰과 같은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내가 뭐? 난 핫도그 먹으면 안 돼?”
“그, 그건 아니지만…….”
짜증스런 표정을 지은 범석이 손안에 든 핫도그를 흔들었다.
“먹을 거야? 말 거야?”
제르미아가 잠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쟁팀에서 검투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어도 되는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껏 몰래 팀에 빠져나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워낙 급히 나왔던 터라 깜빡 잊고 지갑과 전자수첩을 두고 왔기에, 지금 수중에는 가진 돈이 없었다.
본능에 지배된 그녀가 냉큼 손을 뻗어 그의 손에서 핫도그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고민이 역력한 눈빛을 지으며 핫도그와 범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 정말 먹어도 되나요?”
“먹어! 돈 안 달래!”
그러자 그녀가 핫도그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매우 처량해 보일 정도, 며칠 굶은 걸신처럼 보였다. 이내 범석이 한적한 자리를 찾아 주변을 살폈다. 남들이 자신을 소유 엘프를 굶기는 나쁜 주인으로 여길까 봐 걱정이 들었고, 그녀와 긴 대화도 나누어야 했던 탓이다. 때마침 멀리 보이는 작은 공원을 본 그가, 핫도그 하나를 다시 꺼내 제르미아의 앞에다 살랑살랑 흔들며 유인했다.
“자. 할 말이 있으니까 따라와라.”
여지없이 꼬리를 흔들며 제르미아가 따라나섰다. 딱 그 모습이 된장이 발릴지 모르고 먹이를 든 행인들을 따라가는 누렁이와 흡사했다.
“그,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저와 할 말이 뭔가요?”
공원 한 벤치 앞에 도착한 제르미아가 꾸물대며 범석의 눈치를 살폈다. 핫도그 때문에 따라오기는 했지만, 그녀로서는 절대 그와 대면해서는 안 됐다.
벤치에 털썩 앉은 범석이 핫도그 샌드위치가 담긴 봉투를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별일은 아니야. 그냥 얘기나 나눠보자는 거야.”
“무슨 할 얘기요. 저는 특별히 할 말이 없을 텐데요.”
“상관없어 특별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야. 그냥 우연히 만났으니 같이 핫도그나 먹으며 소소한 얘기나 좀 나누자는 것뿐이야. 혼자 있기 심심하니까.”
봉투 안의 내용물로 입맛을 다신 제르미아가 벤치 한쪽에 살며시 기댔다. 그런 일이라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시식시간을 가지며 대꾸만 해주면 충분한 일이었다.
그녀가 염치없이 핫도그를 하나 꺼내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우적우적. 말씀하세요. 들어는 드릴게요.”
대화할 분위기를 만든 범석이 슬슬 작업을 개시하기로 했다.
“제르미아. 그런데 핫도그 노점상 앞에는 입맛만 다시고 있었냐? 혹시 팀에서 용돈도 안 줘?”
“아니요. 제가 몰래 빠져나오느라 깜빡 잊고 지갑과 전자수첩을 가지고 오지를 않아서요. 용돈은 충분히 줘요.”
“그럼 다시 가서 가져오면 되잖아. 노점상 앞에서 꽤 오래 머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다시 돌아가면 매니저 언니들에게 이끌려서 바로 팀으로 가야 하거든요. 그럼 당분간 핫도그를 못 먹게 돼요.”
“왜? 그냥 매니저에게 사오라고 시키면 되잖아.”
“그게 좀 힘들어요. 팀에서 지정된 식단 외에는 절대 못 먹게 하거든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월드리그 팀들은 검투사들에게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음식만을 먹여요. 핫도그 같은 영향이 불균형한 군것질거리는 절대 못 먹게 하죠.”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월드리그 정도에 이르게 되면 팀은 검투사 관리에 만전에 기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 몸값의 엘프가 70억 크랑에 이르는데, 음식 잘못 먹여서 탈이 나버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해당팀에서는 엘프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가 있으니 엘프애호가들의 질타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겠군. 월드리그 엘프들은 꽤 몸값이 비싸니까. 팀에서 그만큼 정성을 쏟겠지.”
“네. 그래서 저도 힘들어요. 사실 그레이트하이에나팀에 오고 나서 안 일인데. 하위리그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치사하게 먹는 것 가지고는 뭐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후후. 그런 면이 좀 있지. 팀 재정 문제도 있고, 몸값 자체가 싸니 특별히 터치할 이유도 없고. 또 사실 먹는 음식을 통제해서 얼마나 경기력에 도움이 되겠어? 그냥 골고루 잘 먹이면 그뿐이지.”
“그러게 말이에요. 월드리그팀들은 정말 소소한 것 하나까지 간섭해서 무척 피곤해요.”
미소를 지은 범석이 이제 대화를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제르미아. 너 검투사 생활을 한 지는 몇 년이나 됐어.”
“글쎄요. 한 5년 됐죠. 하지만, 검술을 배운 지는 8년가량 됐어요. 다크 하이에나즈 팀에서 제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훈련 코치를 붙여주었으니까요.”
“아. 그래? 그런데 왜 네가 아마추어리그에서 뛰는 거지? 아무리 2군이라지만 월드리그 검투사단에 소속되어 있잖아. 자존심 안 상해?”
제르미아가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팀에서 자신을 이곳에 보내면서 한가지 약조를 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은퇴날짜를 30살로 해준다는 내용으로, 이제 그녀는 적게 잡아도 2~3년은 일찍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스포츠선수로 뛰고 있는 엘프들에게는 충분히 자존심을 버릴 정도로 탐이 날 만한 제의였다.
“주인님을 빨리 만날 수 있는데 이깟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에요.”
범석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어가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단지 은퇴날짜를 30살로 줄여준다는 얘기에 프로로서의 자존심까지 내팽개치며 아마추어 검투사로 뛰는데, 그보다 더 빨리 주인을 얻게 해준다고 말하면 무슨 짓이라도 벌일 터였다.
“역시 그랬어.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과연 그들이 30살 은퇴 약속을 지킬까? 프로팀은 필요에 의해 선수들을 사고팔기도 하는데, 만약 네가 다른 팀으로 이적 갔을 때 그 약속이 유효할 수 있겠어?”
그 점은 제르미아로서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뭐. 다른 팀에 이적 갈 때, 이 같은 계약조항을 넣어주지 않으면 절대 안 간다고 버티면 되니까요.”
“으음. 그래도 되겠군. 그런데 30살에 풀어준다고 했지?”
“네.”
“그럼. 아직 22년이나 남았네. 좀 힘들겠어.”
직접적으로 숫자를 언급하자 제르미아는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군대 열 번만 다녀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딱 그 심정일까? 그녀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하고 땅이 꺼지라 밖으로 내뱉었다.
“휴~ 그래도 다른 팀 동료에 비하면 꽤 잘 풀린 편이니 위안을 삼아야죠. 저희 팀에 검술 능력이 뛰어난 언니가 하나가 있는데 40살이 되도록 팀에서 뛰고 있어요.”
대충 분위기를 띄웠다고 생각한 범석이 이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제르미아에게 여러 명의 매니저가 붙은 듯 보이니, 지금쯤 행방불명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찾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빨리 끝내고 종적을 감출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제르미아 너 은퇴기간 좀 더 단축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겠어?”
“몇 년이나요?”
“글쎄? 몇 년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 갓즈나이츠팀이 언제 프로에 진출해서 자금을 모으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
순간 제르미아의 눈빛이 파르르 떨려왔다. 언뜻 듣기에 따라서는 범석이 자신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의미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갓즈나이츠는 절대 주인 없는 엘프를 영입하지 않는 검투팀. 갈 수만 있다면 자신은 행복한 엘프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가 몸을 돌리며 범석을 똑바로 직시했다.
“서, 설마. 저를 영입하시려고 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쑥스러운 얘기지만 전에 조추첨식에 네 자태를 보고 한 눈에 반했거든. 그래서 언젠가는 꼭 너를 내 밤 시중을 드는 엘프로 만들고자 다짐했다.”
전혀 틀리지 않는 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제르미아의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꼭 안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다만, 몸값이 너무도 비싸 도저히 엄두를 못 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에 진실함을 느꼈는지 제르미아가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주인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탓이다.
“하, 하지만 제 몸값은 버, 범석님이. 감당할만한 수준이 아닐 텐데요. 자그마치 4억 1,000만 크랑이나 되요…….”
“사실 그게 문제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비싸. 하지만, 우리 팀이 프로로 진출하고 총력을 다해 돈을 모은다면 충분히 가능할 듯도 보여. 또 운이 좋아 네 몸값이 떨어지고 하이에나그룹에서조차 떠난다면 그 기간은 더욱 빨라질 수 있고.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 몇 년 안에 내가 주인이 되어줄 테니까.”
확실히 제르미아의 몸값이 비싸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하위리그라지만 프로팀에서 총력을 기한다면 영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에어리어 리그팀 중 하위팀이라고 해도 매해 입장 수입료가 최소 6,000만 크랑 이상이 되었고, 방송수입에 광고수입, 유니폼판매와 스폰서비 등등해서 대게 입장료 수입 이상을 추가로 얻고 있었다.
물론 팀 운영비와 주주들에게 주는 배당금을 제외하면 별로 남지 않았지만, 갓즈나이츠는 후자를 제외하니 꽤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이를 봤을 때 마음만 먹는다면 적어도 6~7년 안에 그녀를 영입할 수도 있었다.
“노, 농담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지. 몇 년만 기다려 봐. 그럼 침실에서 나와 함께 나신으로 뒹구는 네 모습을 확인할 테니까.”
제르미아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이 바로 몇 년 앞으로 앞당겨졌던 탓이다. 그리고 자신이 작업해서 몸값을 다운시키고 그의 경쟁팀인 하이에나그룹 소속의 검투팀에서만 나간다면 그 기간은 훨씬 짧아졌다.
어느새 먹던 핫도그 샌드위치를 내려놓은 그녀가 떨리는 시선을 모아 범석을 바라봤다.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있으니 감격스러운 것이다.
제르미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흑. 버, 범석님을 주인님을 모실 날을, 저 항상 준비하고 기다릴게요.”
“그래. 그리 말해주니 나도 기쁘다. 하지만,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까 꾹 참아야 한다. 막상 이번 승격 토너먼트에서 떨어지면 기다림의 시간이 일 년이 늘어날 테니까.”
그녀가 고개를 마구 저어댔다. 자신을 위해서나 주인 될 자인 범석을 위해서나, 갓즈나이츠가 올해 승격토너먼트대회에서 탈락의 고배를 맛보는 일이 절대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됐다.
“그럴 리가 없어요. 갓즈나이츠는 올해 반드시 승격될 것이에요. 아니어도 제가 그렇게 만들 것이에요.”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어갔다고 생각한 범석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나 엘프들은 주인이란 이름 앞에서는 너무나 단순한 존재였다.
“어떻게? 설마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짓을 벌이려는 것은 아니지? 그럼 내가 절대 용납 못 해.”
제르미아가 몽롱한 눈빛을 지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양심적일 수가 있는지 감탄스러웠던 것이다. 이미 콩깍지가 씐 이상, 그녀는 범석을 항시 좋게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범석님께서 양심에 걸릴 필요는 없어요. 저들은 그보다 더한 짓을 벌이고 있으니까요.”
“더한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제가 줄리앙과 그 측근들이 하는 짓을 알고 있어요. 같이 온 로리아언니가 그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주워들은 얘기가 있어요.”
아무래도 줄리앙의 그간 벌여온 수작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미 알고 내용이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눈치챘다는 사실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데?”
“여러 가지 있는데 가장 악질적인 수작이 바로 갓즈나이츠의 검투사 한 명을 매수한 것이에요.”
범석이 놀라는 척 입을 벌렸다.
“저, 정말이야? 그게 누군데?”
“그건 신경 쓰지 않아서 듣지 못했어요. 다만, 아는 내용은 8강 전이 벌어지는 날. 그 첩자가 범석님을 실수하는 척 팀킬을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만약 그레이트하이에나즈 팀이 지게 되더라도 갓즈나이츠는 절대 승격할 수 없게 작업해 놨어요. 매수된 그자가 고의로 금지약물을 복용해 갓즈나이츠팀을 반칙패 시키기로 했거든요.”
그가 이번에는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후자의 얘기는 전혀 들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줄리앙 이 자식! 정말 추잡하게 노네! 이거 모르고 넘어갔다가는 된통 당할 뻔했잖아.’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이 게임에서도 약물복용에 대한 페널티는 아주 컸다. 프로라면 1군이든 2군이든 누군가가 약물복용을 한 후 경기를 치르다 걸리면 바로 해당 선수는 한 달간 경기 출전 금지에 팀은 승점 -3점이라는 제재를 받게 되었고, 순수성을 강조하는 아마추어리그는 더 심해 해당 선수는 1년간 선수자격 박탈과 팀은 참가한 대회 무조건 탈락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즉 갓즈나이츠가 이번 대회에서 승격할 가능성은 제로였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에서 이딴 식으로 나간다 이거지. 그럼 나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맞아요.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 해요.”
범석이 지그시 시선을 모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제르미아. 혹시 갓즈나이츠가 승리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말씀만 하세요. 성심성의껏 도와드릴게요.”
“고맙다. 그럼 경기중에 이렇게 해줘.”
그가 제르미아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이번에 8강전에서 도와줄 내용과 이후 다크 하이에나팀으로 돌아갔을 때 몸값을 떨어뜨리는 방도에 대한 얘기였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모든 내용을 끝까지 들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반드시 범석을 위해 갓즈나이츠팀이 이기게 해주겠노라고 약조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오랜만에 개인 날씨였는데, 그리 덥지 않더라고요. 작년만 해도 더위에 좀 고생한 기억이 있는데요. 이러다가 여름을 모르고 한 해를 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에는 좀 더워야 제맛인데요.
그럼 다들 편안한 여름날 보내시고요. 전 내일 같은 시간에 또 찾아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