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모두 모여! 이대로라면 끝장이야!”
42번의 등번호를 단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의 대장 검투사가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자팀 검투사들을 수습하지 않으면 1라운드는 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갓즈나이츠의 파상적인 공격 속에서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뒤로 물러나도 곧바로 달려들어 거검을 날리는 오스칼로 인해 간신히 모이던 진이 여지없이 부서지기 일쑤였다.
이를 잘근 물은 42번 검투사가 오스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되겠다! 저 아이부터 없애!”
이에 15번 검투사와 31번 검투사가 그녀에게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수적 우위를 보이는 갓즈나이츠에서 이를 두고 보기만 할 리가 없었다. 곧바로 마틸다와 레이미가 가세하더니, 오히려 압박하며 밀어붙였다.
차창. 창. 깡!
“꺄아아아!!”
사방에서 번뜩이는 검격에 그레이트 하이에나즈 검투사들이 차례로 픽픽 쓰러졌다.
솔직히 이번 1라운드는 에이스인 로리아와 제르미아를 잃고, 또다시 범석을 막기 위해 38번과 46번 검투사가 진에서 이탈했을 당시, 끝이 났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두세 명의 적에게 겹겹이 싸여 조직적인 공격을 당하면 쉽사리 상대하기 어려웠다.
이는 범석에게도 마찬가지. 와이드리그급의 검투사인 38번과 46번 검투사를 맞아 지금 꽤 고생하고 있었다. 추호의 머뭇거림 없는 연합공격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쳇. 미치겠네. 아무래도 프리롤을 포기해야겠어.’
버티기만 한다면 까짓것 상대하지 못할 쏘느냐만, 이대로라면 극심한 체력 손실이 예상되었다. 차라리 동료들과 가세해 함께 상대하는 편이 나았다. 다행히 지금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의 본진은 철저히 무너져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 지금 38번 46번 검투사가 가세한다고 해도 전황은 달라지지 않을 듯 보였다.
생각을 정리한 범석이 곧바로 뒤로 물러서더니, 한창 마무리 작업을 수행하는 팀원들을 향해 냅다 줄행랑을 쳤다.
“레이미! 미를리! 나를 도와라!”
힐끔 그가 쫓기는 모습을 본 레이미와 미를리가 급히 진형을 빠져나와 38번, 46번 검투사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의 본진은 서너 명만이 남은 상태. 다른 팀원에게 맡겨도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주인님. 수고하셨어요.”
바로 뒤돌아선 범석이 레이미를 보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바로 달려드는 38번 46번 검투사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검을 내질러야 했다.
차창. 창. 캉.
2명의 팀원이 가세하자 상황은 판이해졌다. 비록 레이미와 미를리가 상대보다 실력이 떨어지지만, 어느 정도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여기에 후위로 빠져 있던 범석이 빈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공격을 날려대는 터라, 충분히 차이를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범석이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이들을 해치워버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공세를 감행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앞으로의 경기를 위해 앞으로 계속 프리롤 역할을 맡게 될 자신의 체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었고, 또 1라운드가 곧 있으면 끝나기 때문이다.
– 1라운드 경기 끝났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갓즈나이츠가 손쉽게 승리를 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방송멘트에 범석이 검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봤다. 에르피나가 이끄는 팀원들 외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은 것을 보아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의 대장 검투사를 잡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여전히 앞에서 씩씩거리는 38번과 46번 검투사를 보며 싱긋 웃고는 더그아웃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아아아! 갓즈 나이츠 최고다! 다음에도 그렇게만 해!”
“우우우우!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다음 라운드에는 그런 요행이 없을 테니 좋아하지 마라!”
요란한 팬들의 성화를 받으며 범석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겨우 10분 남짓이 흘렀을 뿐이었지만, 그는 무척 지친 상태였다. 프리롤을 수행하며 4명의 상대 검투사와 차례로 맞붙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라운드에는 ‘위대한 의지’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라, 평상시보다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벤치에 덥석 주저앉고는 심호흡으로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일단 1승이다. 이제 2승째를 올릴 차례다.’
범석은 2라운드에서도 승수를 쌓을 셈이었다. 1라운드의 패전으로 적의 기세가 한 층 꺾이기는 하겠지만, 좀 더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레이트 하이에나즈 팀에서 초반 2패를 안게 된다면, 불안 차원을 넘어서 공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다음 세 번의 라운드에서 1패나 2무만 한다면 바로 경기가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안드레아를 불렀다. 1라운드의 행운의 여신이 제르미아였다면 2라운드는 바로 그녀였다.
“안드레아. 다이아나와 함께 이쪽으로 와봐.”
“네. 범석님. 무슨 일이시죠.”
범석이 다급히 다이아나와 함께 다가온 그녀를 보며 말했다.
“으음. 별것은 아니고 2라운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물어보려는 거야.”
“글쎄요. 이번에는 정석대로 2진을 내보내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2진은 왜?”
“1라운드를 수행한 후 주전들이 무척 지쳐 보이니까요.”
그가 이번에는 다이아나를 바라봤다.
“다이아나. 감독으로서 네 생각은 어때?”
“네. 저도 2진을 내보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주전을 내보내 2승을 얻으면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저희는 저들에 비해 체력적인 면이 떨어지잖아요. 만약 주력을 내보냈다가 비기기라도 하는 날이면 앞으로의 라운드가 힘겨워질 테니까요.”
“그렇지? 하긴 나도 헛물이 나오도록 싸우는 통에, 무척 지쳤다. 일단 이번 라운드는 쉬는 편이 좋겠다. 그럼 다이아나 1라운드에 참가하지 않은 팀원과 후미. 그리고 일부 주전들을 포함 시켜서 2진을 구성하도록 해. 난 빼고 말이야.”
“네. 알겠어요.”
결정을 지은 범석이 모두를 돌려보낸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열심히 2진급 명단을 작성하는 다이아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 옆에서 유심하게 지켜보는 안드레아의 모습도 보였던 탓이다. 이제 그녀가 저 명단을 그레이트 하이에나즈 팀에 전해주는 순간. 바로 2승이었다. 약간 지쳤다지만 자신들 주력이 놈들의 2진을 이기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얼마후 스쿼드 작성 작업을 마무리되자 안드레아가 슬그머니, 뒤쪽으로 빠져나와 전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이를 본 범석이 휘파람을 불며 일어나 탈의실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단말기에 전원을 공급해주는 플러그가 있었던 탓이다. 그는 다른 팀원들이 보지 않는 틈에 바로 코드를 뽑아버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간신히 명단 제출 시간까지 30초가 남았을 때, 다이아나가 비명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님! 단말기가 고장 났나 봐요! 아무리 조작해도 화면이 안 켜져요.”
범석이 유유히 일어나 그녀에게 걸어갔다.
“무슨 소리야? 잘 만져 봐. 이상이 생길 리가 없잖아. 시합 전에 항시 전산시스템 운영자가 와서, 고장 여부를 살핀다고.”
“하지만, 진짜 안 켜져요.”
이때 탈의실 문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너스가 소리쳤다.
“주인님. 여기 전원 코드가 빠졌어요!”
“정말이야? 빨리 연결해! 시간 없어!”
이윽고 다시 켜지는 단말기 화면. 부팅 하는 동안 전전긍긍 거리던 다이아나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명단 제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한 무언의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규칙에 따라 주전이 다시 2라운드에 출전해야 했다.
“주인님. 어떻게 해요. 제출 시간이 넘었어요. 아무래도 이번에는 주전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뜻하는 바 결과를 얻었지만, 범석이 팀원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이번 사건이 사고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안드레아를 이번 한 번만 이용하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었다.
“도대체 누구야! 지나다닐 때 조심해야지! 그리고 코드가 뽑혔으면 다시 끼워놔야 할 것 아니야!”
“…….”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푹 숙이는 팀원들을 본 범석이 표정을 풀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계속 노기를 뿜어내,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코드를 뽑은 것은 자신이었고, 괜히 분위기를 다운시켜 1라운드의 승리로 급격히 상승한 사기를 다시 떨어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광판에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의 2진급 명단을 떠있음을 본 범석이 흥겹게 박수를 쳐대며 격려를 해댔다.
“자자. 과거의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모두 잊도록 해라. 운이 좋게도 상대 팀에서 2진급을 내보냈다. 자 모두 힘을 내서 2라운드도 승리하자. 그럼 2승으로 승격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넷!”
승격 가능성을 언급하자 팀원들이 언제 그랬다는 양 들뜬 얼굴을 했다. 프로가 되어 당당히 주인님 앞에 설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 탓이다. 이번 2라운드만 승리를 한다면, 프로의 꿈은 바로 발 앞에 놓이게 되었다.
“자! 나가자!”
손을 번쩍 들어 기세를 돋운 범석이 헬멧을 착용하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이번 라운드만 제대로 잘 풀어나간다면 그레이트 하이에나팀은 끝장이었다. 초반에 2패를 안으면 팀 분위기가 극악으로 달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들 대부분은 주인 없는 엘프들이라, 자신들과 달리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다.
“여어. 이게 누구야? 로리아. 또 만났네.”
경기장 중앙으로 와 다시 프리롤 역할을 맡은 범석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로리아를 보고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이에 반해 그녀는 불안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들고 있던 검 끝을 살며시 떨어댔다. 자신의 버릇이 노출되어 2진급 경기에 나섰는데, 다시 범석을 만나게 된 것이다. 1라운드처럼 어이없게 당할 수 없던, 로리아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되지 않을 것이에요.”
“후후. 그게 쉽게 될까? 너는 이미 내게 약점이 노출되었다고. 그 버릇이 나오는 순간 끝이야.”
그녀가 이를 부득하고 갈았다. 남의 약점을 가지고 놀리고 범석이 너무 얄미웠던 탓이다.
“도대체 내게 무슨 버릇이 있다는 거죠!”
“글쎄 뭘까? 뭐 당장에 고칠 수는 없으니, 힌트 정도는 줘도 되겠지. 네 버릇은 정신을 집중할 때 은연중에 나오고 있어. 다만, 자세히 비디오 플레임 하나하나를 판독하기 전에는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랄까? 덕분에 우리 팀에서 결투 중에 네 버릇을 알아챌 수 있는 정도의 실력자는 나밖에 없지. 그러니 나 이외에 상대를 만나면 안심해도 돼.”
로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두루뭉술한 내용으로 자신의 버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석도 이 이상은 말할 수가 없었다. 없는 버릇을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그가 이처럼 떠벌이는 이유는, 그저 로리아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어 결투를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만약 조언대로 정신집중을 하지 않고 취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의심한다면, 너무도 손쉽게 해치울 수가 있었다. 정신이 흐트러진 상황에서 이길 만큼 범석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로리아가 검을 상단에 세우며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평소와는 다른 검식을 취해 버릇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좋아요. 이번에는 아마 다를 것이에요.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당신과 싸울 테니까요.”
“뭐. 상관없지. 하지만, 네 버릇은 본능 차원에서 비롯되는 약점. 쉽사리 고칠 수가 없을걸.”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죠.”
범석이 경기시작 카운트 장면을 흘낏 본 후 검을 중단에 세웠다.
“하긴. 네 말대로다. 경기 중에 알 일을 지금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이번에도 네 도강을 막지 않을 테니, 얼마든지 건너와 봐라.”
로리아가 피식하고 웃었다. 지금은 2진급과 함께 나온 상황. 2라운드의 목적은 무승부였다. 자신이 일부러 도강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장난하세요. 제가 왜 넘어가야 하죠.”
삐익!
경기 시작 신호와 함께 범석이 좌측을 향해 힘껏 뛰었다.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뒤따라 달리던 로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스피드가 장난이 아닌 탓이다. 월드리그의 후보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조차 따라잡을 수 없다니, 이건 말이 안 됐다.
얼마후 경기장 좌측 외벽에 거의 다다른 범석이 힘껏 점프해 도강했다. 그러나 미처 따라오지 못한 그녀는 별다른 공격을 취하지 못했다. 로리아는 그를 해치울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버렸다는 사실에, 무척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가 있죠?”
“원래부터 빨랐어.”
범석의 검이 맹렬한 기세로 공간을 갈랐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이미 태세를 갖추고 있던 로리아가 가볍게 검을 내리치며 공격 방향을 꺾어놓았다. 그러나 이미 막힐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검이 기괴하게 휘어지며 그녀의 하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힘보다는 부드러움과 속도에 기인한 공격이기에 로리아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칫 힘으로 맞대응하다가는 예상치 못한 변초에 당한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가 취한 자세는 상단. 방어보다는 공격에 주안점을 둔 자세라 막기보다는 피하는 편이 나았다.
휭.
“받아요!”
범석의 검이 안면 앞을 스쳐 가자, 로리아가 발을 박차고 검을 내질렀다. 거의 반사적인 공격이라 무척 빠르고 위력적이지만, 범석은 쉽사리 검을 맞대어 막을 수가 있었다. 거리를 둔 상태에서 날아온 터라, 대응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 탓이다.
‘훗. 역시 제법이군. 하지만, 너무 조심하고 있어.’
그녀는 상단의 동작으로 범석을 대적하고 있었다. 공격 위주의 자세이기에 언제든 상대를 갈라버릴 듯한 기세를 담고 있어야 하지만, 몇 보나 떨어진 채로 자신을 견제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한 마디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지만, 꼬리를 가랑이 밑으로 감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어색함은 본연의 실력을 떨어뜨리거나 실수를 유발하기 쉬운 법. 그 틈을 노린다면 반드시 해치울 수 있었다.
어느덧 여유가 생긴 범석이 한 참 전투를 수행 중인 본진 쪽을 바라봤다.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도 이미 도강을 하고는, 그레이트 하이에나즈의 2진급 검투사를 밀어붙이는 상황이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빠른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서 상대의 본진 후위를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찌 됐든 주전은 한 더 싸워야 하니, 경기 시간을 줄여 체력소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 요사이 롯데가 잘 나가네요. 오늘 12 : 4. 그것도 기아를 상대로요. 후덜덜. 반면 LG는 ㅠㅠ. 아무래도 LG는 플레이오프와 그리 인연이 없나 보네요.
그럼 모두들 편한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