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자이언트 건틀릿(Giant Gauntlet) (4)
어느 한적한 사무실 안.
다 꺼진 불빛 아래에서 TV를 응시하고 있던 청년이 선글라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 화면을 주시한다.
-…괴한으로부터의 습격이 멈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더 이상의 습격은 없을 거라고 판단하며…….
여성 아나운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청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역시.”
쓴웃음을 지으며 남자가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선글라스의 남자, 즉 얼마 전 민우에게 자이언트 건틀릿을 건넸던 남자가 사무실 바깥으로 나와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가볍게 문을 노크한다.
바로 옆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중후한 남성 한 명이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들어오게.”
“실례하겠습니다.”
남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중년 남성이 스윽 선글라스의 남자를 훑어보더니 서서히 입을 뗀다.
“무슨 일이지?”
“결과는 충분히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군.”
중년 남성이 뭔가를 고민해 보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결단을 내린다.
“좋네. 그 가격에 거래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자네의 말을 의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거인의 근력을 가진 장갑이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일부러 실험체를 통해서 그 증거를 충분히 보여드렸습니다.”
“그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군.”
선글라스의 남성이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검은 장갑을 꺼내 책상 위로 올려놓는다.
검은 장갑, 자이언트 건틀릿을 내려다보던 중년 남성이 손에 장갑을 착용해 본다.
“과연…….”
흥미로운 눈동자로 장갑을 보던 중년 남성이 씨익 웃어 보인다.
“금액은 평소 거래하던 그 계좌로 입금해 주지.”
“그럼 회장님을 믿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도 좋은 물건을 구한다면 또 거래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가볍게 목례를 마친 선글라스의 남성이 사무실 바깥을 나서자마자 조여 있던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친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선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그와 동시에 닫힌 사무실 문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그럼 또 실험을 개시해 볼까.”
약속한 기간 내에 자이언트 건틀릿을 구해온 석두는 조직의 사무실에 들르기 전에 자신의 집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저번처럼 적월도의 사례를 생각해 아무것도 증명이 되지 않은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사무실 안에 배치하는 걸 꺼려한 행동의 결과였다.
문을 열자마자 석두가 불이 꺼진 집 안 내부를 둘러본다.
“약속한 물건 구해왔다.”
석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집 안에 불이 켜지더니, 이국적인 미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레이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보다 빠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 아니겠는가.
석두가 고이 간직하고 있던 자이언트 건틀릿을 꺼내 레이나에게 건네준다.
그러나.
“으음~”
뭔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자이언트 건틀릿을 바라보던 레이나.
걸리적거리는 거라도 있는 것일까.
“그건 무슨 반응이지?”
궁금증을 참다못한 석두가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레이나가 여전히 미간을 찡그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쉰다.
“뭐어, 특별히 서비스 하나를 제공해 주지.”
“서비스?”
“자이언트 건틀릿의 특수 효과는 두 가지였어. 그중 하나는 너도 알고 있겠지?”
“거인의 근력을 손에 쥘 수 있다는 특수 능력 말인가.”
“정답.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는 두 번째 특수 능력을 모른 채로 이걸 회수해 왔지.”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해줘.”
“간단해.”
딱!
레이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석두가 얼마 전에 봤던 프로그램 창 하나가 그의 시야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특수 능력 항목 하나가 갱신되기 시작한다.
-명칭 : 자이언트 건틀릿(Giant Gauntlet)
-기한 : 2주
-특수 능력
1. 거인의 힘이 봉인되어 있는 아이템.
2. 1회 한정으로 복사가 가능(그러나 복사된 모조품은 2주 뒤 소멸).
“…복사라고?”
석두가 어이가 없는지 자신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내지른다.
“그래. 자이언트 건틀릿은 1회 한정으로 자체적인 복사품을 생산할 수 있어. 즉, 이건 ‘모조품’이야.”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설마 두 번째 특수 능력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그것보다 자이언트 건틀릿에 대한 정보를 꽤나 알고 있나 보네. 그 소유자란 사람은.”
모조품 기능을 사용할 정도라면 자이언트 건틀릿에 대한 정보를 빠삭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낭패로군…….”
모조품을 가져와 버리다니.
하기사. 생각을 해보면 일반 고등학생인 민우가 진품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드래곤의 보물이 그렇게 하찮게 관리가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일부러 모조품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달성하려 했던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낸 레이나가 소파에 앉은 채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켠다.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민우에게 자이언트 건틀릿의 모조품을 줬다.
그 목적은?
그 의도는?
“알 수가 없군…….”
“보통내기가 아닐 거야. 무엇보다도 내 레어를 털어간 지능범이기도 하니까.”
상대는 드래곤의 레어를 턴 괴도 중에서도 괴도다.
그런 녀석이 단지 충동적으로 모조품을 평범한 고등학생에게 줬을 리가 없다.
“혹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 석두가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여성 백.
그리고 명검 적월도.
이 두 개가 도난을 당했다.
물론 훔친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김석두 본인이다.
그렇다면.
드래곤의 레어에서 이 보물들을 훔쳐서 판 장본인이 과연 이 물건들이 석두에게 도둑을 맞았다는 사실을 과연 모를까?
아니, 천만에.
그 정도의 재능을 지닌 존재가 석두의 범죄 행각을 전혀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녀석은 분명…….
“날 찾으려 하나 보군.”
드래곤의 보물을 알고 있는 자.
레이나가 수면기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레이나를 대신해 보물을 되찾으려는 자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만약, 김석두 본인이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자라면 우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하지 않는가.
“좀 더 계획을 앞당겨야겠어.”
사전에 준비하고 있던 석두의 계획 실행 시기를 빨리 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나는 그저 TV 리모콘을 통해 무심한 표정으로 채널을 돌릴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석두는 망치와 쾌남을 찾는다.
“내가 어제 전화로 말한 그거는 준비가 되었나?”
“예, 물론입니다. 아마 영상을 담은 CD가 방송국에 도달했을 겁니다.”
“그렇군.”
망치의 보고를 받은 석두가 의자에 앉으며 시계를 주시한다.
본래대로라면 나중에 실행할 계획이었으나, 자이언트 건틀릿 모조품 사건으로 인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드래곤의 보물을 다시 훔치는 일인데 과연 어느 누가 눈치채지 못할까.
게다가 꽤나 고가로 거래되고 있는 물건들이다. 그 보물을 노려 훔치고 있다면 분명 언젠가는 석두의 뒷덜미가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놓고 단역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그게 바로 석두의 바리케이트가 될 것이다.
“…….”
쾌남이 손짓으로 망치를 부른다.
뭔가를 눈치챈 망치가 쾌남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형님! TV에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역시 빠르군.”
매스컴이란 존재는 특종이다 싶으면 곧장 물고 보는 습성이 있다.
리모콘 전원을 눌러 TV를 틀자, 여성 아나운서가 급히 특보를 준비했다는 티를 지우지도 못하는 사이에 방송이 시작된다.
-긴급 속보입니다. 최근 발생했던 고가의 물품들이 도난당한 사건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저희 방송국 앞으로 ‘범인’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보내온 영상이 있습니다.
아나우서가 신호를 보내자, 화면이 전환된다.
이윽고 백색의 공간 안에 마찬가지로 흰색 가면을 쓴 남성이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흰색 벽과 남자, 그리고 남자가 앉아 있는 의자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간단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괴도’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 또한 음성변조가 되어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편, 영상을 지켜보던 석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망치에게 칭찬의 말을 던진다.
“제법 괜찮은 연출이군.”
“이래 봬도 미적 감각이 좀 있습니다요.”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가면의 남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할 말을 늘어놓는다.
-제가 이 영상을 보내드린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이제부터 벌어질 고가의 물품 도난 사건을 예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이런 물건을 소유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물건들. 어떤 물건인지는 소유자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저는 그 보물들을 되찾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물론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면 얌전히 돌려줄 의사도 충분히 받아들일 생각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물건을 지금부터 되찾으려고 합니다. 도둑질로 보이겠지만 천만에요. 전 그저 제 물건을 되찾는 행위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잘 새겨두시길. ‘괴도’가 언제 당신의 물건을 훔쳐갈지 모릅니다.
그렇게 자신이 할 말만 남기고 그대로 영상은 뚝 끊어진다.
뒤늦게 아나운서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시도한다.
더 이상 볼 가치가 없음을 깨달은 석두가 TV를 끄면서 망치와 쾌남을 바라본다.
“누군진 몰라도 섭외 하나는 잘 했군.”
“감사합니다, 형님. 그런데 괜찮습니까? 오히려 이런 영상을 송출하면 그… 저희가 훔칠 대상자들의 경계가 더 삼엄해질 텐데요?”
“오히려 그걸 노리는 거다.”
“그걸 노린다구요?”
“그래. 최근 들어 경비가 삼엄해진 갑부집이 있다면, 그 갑부집에 우리가 찾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뜻하잖냐.”
“과연……!”
그렇게 되면 굳이 일일이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도 있다.
분명 석두가 말한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물건’이라는 일종의 암호는 잘 전해졌을 것이다.
이능력을 지니고 있는 보물의 소유자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터이다.
그럼 불안함을 느낀 그들은 더더욱 신변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보디가드를 늘린다든지, 경비 업체의 수를 늘린다든지 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곧 ‘내가 타깃이오’라고 알리는 꼴이다.
석두는 그런 변화를 보인 고위층들의 목록을 뽑아둔 뒤, 레이나가 의뢰 품목을 의뢰할 때마다 그 명단을 통해 대상자를 색출할 것이다.
경비가 삼엄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마법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지금 석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의뢰품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
그리고…….
석두가 의심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수수께끼의 괴도에게 시선을 돌리게끔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