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16
16화 폭력배 소탕 (2)
카페 머메이드.
석두가 자신을 도와준 것까지는 좋으나,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당신, 어떻게 할 거예요?”
세미의 직접적인 질문에 석두가 도리어 의아함을 표현한다.
“뭘?”
“뭐긴요. 도끼파를 건드렸는데, 그쪽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아까는 기세 좋게 선전포고도 하더만…….”
“어차피 한 번 제대로 맞짱 뜰 예정이었어. 오히려 수고를 덜어준 셈이니까 내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을 뿐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혼자서요?”
“아니, 나만의 세력이 있어.”
“저번에 그 술집에서 마시던 덩치 큰 사람들이요?”
“기억력이 생각보다 좋군.”
“유일한 장점이니까요.”
“그래?”
기억력이 좋다.
그건 다른 사람에 비해서 특출 난 장기가 될 수 있다.
“시험해 봐도 될까?”
“왜 제가 아저씨의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요.”
“심심풀이로. 아니면 아까 구해준 보답으로.”
“커피로 퉁친 거 아니었어요?”
“다시 생각해 보니 커피 한 잔으로 퉁치기에는 너무 수지가 맞지 않은 거 같아서. 어떤가? 별다른 수고도 안 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좋아요.”
기억력을 자랑하는 건 매번 겪어온 일이다.
경이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항상 그녀의 기억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별별 문제를 다 내기 때문이었다.
석두가 주섬주섬 꺼내든 작은 서류 용지 하나.
그 용지는 바로 얼마 전, 자이언트 건틀릿 사건에서 빼돌렸던 각종 회사들의 기밀문서 중 한 장이었다.
“이 글자들을 전부 외울 수 있나?”
“그 정도야 뭐…….”
“시간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
“벌써 다 외웠어요.”
종이를 전면으로 단 한 번 보여줬을 뿐인데, 세미는 벌써부터 다 외웠다고 주장한다.
짐짓 놀란 석두였지만, 평정심을 가장하며 세미를 응시한다.
“거짓말이라면 재미없을 텐데.”
“그럼 시험해보시든가요.”
“…….”
가장 정확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람은 타인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접 자신이 테스트를 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적혀 있던 회사 중 왼쪽 하단에 새겨져 있던 회사 명칭을 이야기해 볼까?”
“VICT 회사였죠? 약제 관련 제품을 만든 주식회사에요.”
“그 회사의 밑에 적혀 있던 알파벳 코드 같은 것도 기억하나?”
“위에서부터 차례로 DEW2012WER, SWQ123QWE, DPW0312XCFFS, 그리고 BHTRE02S3이에요.”
“……”
빼도 박도 못 하게 외웠다.
특히나 코드는 절대로 한순간에 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회사 명칭과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세미가 우연히 그 회사 명칭과 그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 우연에 우연이 겹쳐 기억력을 대신해 마치 아는 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얼 넘버는 차원이 다른 별개의 문제다.
5분, 아니 10분이 걸려도 보통은 잘 외우지 못하는 게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미는 단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모든 시리얼 번호를 외워버린 것이다.
“더 필요한가요?”
“…이런 수준일 줄은 몰랐는데.”
“저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그럼 공부 같은 걸 해서 좋은 대학에 다닐 수 있었을 텐데? 공부라는 학문이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암기력 아닌가? 좋은 대학에 간다면 그만큼 더 고소득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테고. 그러면 굳이 이런저런 일 찾아다니지 않아도 알아서 웬만한 기업들이 데려가려고 난리를 칠 터인데.”
“고아 주제에 무슨 좋은 대학이에요. 저희 고아원 원장님도 힘들어하시는데. 지금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어요. 애들 먹여 살리려면 저라도 일해야죠.”
“고아원 출신이군.”
“알고 계셨을 줄 알았는데요?”
“흐음.”
석두는 여자에 비해서 그다지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설사 그런 낌새가 보였다 하더라도 눈치도 그렇게까지 빠른 편도 아니기에 모를 수도 있다.
“뭐, 아무렴 어때요. 어차피 당신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일자리는 구했나?”
“구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렇군. 괜찮다면 우리 쪽에서 일할 생각은 없나?”
“…네?”
황당한 표정으로 석두를 바라보는 세미.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전 조폭이랑은 연관되고 싶지 않은데요.”
“조폭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
“그럼 무슨 일 하시는데요?”
“도둑질.”
“…더 연관되기 싫은데요. 그것보다 정말이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진짜로 신고할 기세인 모양인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는 세미였다.
그러나 마땅히 제지는 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 이어가는 석두.
“돈은 많이 주도록 하지.”
“남의 재산을 훔쳐 자신의 돈인 마냥 사용한다면 그 돈 같은 건 받지 않겠어요. 비록 가난하다고는 해도 범죄에 손을 댈 그런 의사는 없으니까요.”
“만약 악인들의 돈을 턴다면?”
“현대판 홍길동이나 임꺽정이라도 될 생각인가요?”
“혹시 TV를 자주 보는 편인가?”
“…자주는 아니지만, 뉴스 같은 건 보는 편이에요.”
“그럼 잘 알고 있겠군.”
석두가 살짝 주변을 둘러본다.
몇몇 사람들이 있기에 혹시나 몰라서 임시로 빠르게 사일런스 마법을 시전한다.
푸른 마나의 기운이 둘 사이를 감싸기 시작하지만, 세미는 그 아우라를 눈치채지 못한다. 마나와 관련된 일을 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마나를 수련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괴도를 알고 있나?”
“네. 얼마 전에 TV에서 대놓고 물건을 훔치겠다고 말했던 가면의 남자죠?”
“그 남자가 바로 나다.”
“…….”
순간 할 말을 잃은 세미.
그러나 이내 피식 웃으면서 석두에게 일침을 가한다.
“농담이 심하시네요. 그 괴도란 사람은 얼마 전에 오금서 회장의 기밀문서까지 털어갔다고 뉴스에서 나왔어요. 더불어 지금까지 저지른 비리가 전부 폭로돼 회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요.”
“네가 방금 본 서류 내용을 기억하고 있나?”
“물론이죠.”
“그 기밀문서가 바로 오금서 회장의 재산이었다면?”
“…….”
순간 세미의 안색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한다.
분명 시리얼 코드라든지 회사에 관한 상세 정보가 적혀있던 것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아마 석두가 어디 고위급 회사원이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간부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기억력이 좋다고 주장하는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기밀문서를 보여줄 이유는 전혀 없다.
괴도는 현실이다.
이미 각종 미디어에서는 괴도의 존재를 특집으로 방송하는 등 그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눈앞에 있는 남자가 괴도라면?
“제가 신고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보군요.”
“신고하면 너에게 무슨 득이 되지?”
“포상금을…….”
“얼마 되지도 않는 포상금을 받아봤자 고아원 아이들의 입에 풀칠이나 시켜줄 수 있을까?”
“…….”
“그리고 그 얻은 포상금 또한 언제 빼앗길지 모르지. 도끼파에게 말이야.”
“당신……!”
“잘 생각해 봐, 아가씨. 그 도끼파 조직원들이 나에게 당한 이유는 아가씨에게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이대로 모습을 감추게 된다면? 분명히 아가씨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 뻔하지. 아가씨는 도끼파에게서 고아원을 지켜낼 자신이 있나? 경찰을 신뢰하나? 이 나라의 법체계를 신뢰하나? 천만에! 인간을 지배하는 건 법도, 그리고 신뢰와 우정도 아니야. 바로 돈, 그리고 공포지.”
김석두의 눈빛에 이채가 어리기 시작한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한.
아마 세미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될 것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 시달리며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도 포기하고 고아원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른 나이 때부터 공장에 전전하며 돈을 벌어 와야 했다.
물론 그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세미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까.
원장은 세미에게 대학에 진학해 자신만의 인생을 살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세미는 스스로의 인생길을 포기하고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런 세미에게 정부는 조금의 배려심도 없이 횡포를 휘둘러 왔다.
살던 고아원의 폐쇄.
직장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해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사회적인 약자를 버리는 건 이 나라 정부의 특기지.”
“…그렇지만…….”
“잘 생각해 봐. 우리는 머릿속에 오로지 자신들의 살을 찌우기 위해 고민만 하는 높은 녀석들을 심판하는 정의의 사도들이야. 물론, 괴도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
“조만간 도끼파를 아작 낼 거다. 아마 괴도가 이렇게 말하겠지. ‘이번 대상은 바로 도끼파입니다’라고 말이야.”
석두의 말에 세미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던 세미가 간신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묻는다.
“당신은… 도끼파에게 무엇을 훔쳐갈 거죠? 그들의 재산?”
“아니.”
석두가 사일런스 마법을 해제하면서 동시에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녀석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훔칠 거다.”
사무실로 돌아온 석두가 내뱉은 한마디에 망치는 패닉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오자마자 한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도끼파를 아작 낸다.”
물론 석두는 예전부터 도끼파를 박살 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조직은 지금 도끼파의 발아래에 놓여 있는 하청업체 비스무리한 입장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석두를 포함해 자신의 조직이 괴도 일을 하고 있다는 비밀을 유지하기 도끼파에 돈을 헌납하는 식의 태도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금.
드디어 석두가 도끼파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망치의 입장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형님이 강하신 건 분명 저도 알고 있지만… 아직 저희가 도끼파와 대놓고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숫자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저희 중에서 실제로 주먹을 쓸 수 있는 녀석들은 별로 없습니다. 기껏해야 소매치기라든지 사기꾼, 해커나 열쇠 따기 같은 그런 부류가 특기인 녀석들밖에…….”
“싸움은 내가 혼자서 한다.”
“…네?!”
“못 들었냐. 싸움은 내가 혼자서 한다. 가서 녀석들을 아작 내는 일은 내가 한다. 알겠냐.”
“그, 그치만 형님! 상대는 도끼파입니다! 조직원만 100명이 넘어가는…….”
“100명 정도면 충분해. 아니, 200명이 와도 거뜬하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100대 1의 싸움은 듣도 보도 못 했다.
그러나 석두는 너무나도 자신감 있게 승리를 장담한다.
그렇다고 석두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걱정 마라. 진짜로 나 혼자 가는 건 아니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강력한 조력자 ‘한 명’을 데려갈 생각이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거기서 거기입니다, 형님!!”
“괜찮다. 그 한 명은 모든 인간이 덤벼도 쓰러뜨릴까 말까 한 놈이거든.”
“……???”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망치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석두는 그저 의미 모를 미소만 지은 채 사무실의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발을 까딱까딱 움직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