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새로운 동료 (6)
“그래서 절 부른 이유가 뭐예요?”
세미의 말투가 오늘따라 상당히 날카롭다.
그도 그럴 것이, 번지르르한 빌딩을 놔두고 후줄근한 사무실로 출근을 하라니 세미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괴도에 관한 일들은 적룡산업과 별도로 다르게 운영된다고 하니, 아마도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세미는 이쪽 사람들과 연을 만들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세미의 얼굴에 파악 주름이 새겨진다.
“좋은 얼굴을 하고 있군.”
“제 말 못 들으셨어요? 절 부른 이유가 뭐냐니까요.”
“간단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전부 외워주면 좋겠군.”
“…….”
석두가 내민 인물 명단은 대략 200여 명이 넘어간다.
누군가에게 이걸 외우라고 한다면 절대로 외우지 못할 것이다.
하나 세미는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으로 석두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거랑 도둑질이랑 무슨 상관이죠?”
“요즘은 도둑질도 상당히 스마트해졌거든. 머리를 쓰지 않으면 도둑질도 하기 쉽지가 않아.”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세미의 입장에서는 전혀 모를 만도 하다.
여하튼 명단을 곱게 받아 든 세미가 천천히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외워가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대략 5분.
“다 외웠어요.”
“빠르군.”
“당연하죠. 이것 때문에 절 섭외한 거 아니었나요?”
여전히 말투는 틱틱거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미의 불순한 태도니 뭐니 하는 그런 게 아니다.
“면접을 볼 거다.”
“면접… 이요?”
“그래, 면접.”
사고가 일어날 당시, 나이트클럽에 오고갔던 사람들을 전부 한 명씩 취조하기로 이미 손을 써뒀다.
창민을 통해서 아마 경찰 쪽에서 이야기가 갔을 것이다.
석두는 일일 형사, 그리고 세미는 석두를 사수로 데리고 있는 신입 여경찰로 활약할 것이다.
“얼굴을 잘 기억해 두고, 그 사람들이 실제로 출석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사람들을 믿지 못해서 저보고 이걸 외워달라고 하시는 건가요?”
“난 애초에 타인을 쉽게 믿지 않거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국가적인 죄인이 되었고, 그 덕분에 사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었다.
레이나가 그때 석두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석두는 아마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내일은 내가 지정한 장소로 출근을 하도록.”
“…후줄근한 괴도 본부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건가요.”
“다이나믹한 인생이로군. 마음에 들지 않나?”
“아니요, 전혀.”
세미의 태도는 끝까지 단호했다.
다음 날 아침.
창민이 일러준 대로 취조실에 들어간 석두와 세미.
본래대로라면 창민 혹은 망치를 뒤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더 든든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미의 기억력이 필요로 할 때에는 이들의 활약도 잠시 접어둬야 한다.
그녀의 기억력을 대신할 사람은 적룡파 내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세미 정장 차림으로 최조실 맞은편에 앉은 석두.
그리고 그 뒤에는 여경 복장을 한 세미가 어색한 표정으로 석두의 뒤에 마주선다.
“잘 어울리는군.”
“…흥.”
코웃음을 치며 석두의 칭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적룡파에 몸을 담그고 있는 조직원들이 세미의 이런 태도를 봤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테지만, 석두는 오히려 그런 세미의 행동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본다.
한편, 두 사람이 이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무렵, 슬쩍 문을 열고 들어선 형사 한 명이 석두를 바라본다.
“곧 있으면 목격자들이 들어올 거요.”
“감사합니다.”
“…….”
형사로서는 석두가 무엇을 하는 인물인지 전혀 모른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석두에게 취조실을 빌려주고, 목격자들을 섭외해 순차적으로 석두와 면담을 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게 바로 부하직원으로서의 불만 혹은 해야 할 의무와도 같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젊은 남성.
그를 보자마자 석두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으로 안내한다.
“어서오세요,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네!”
고작 나이트클럽 한 번 갔을 뿐인데, 엄청난 죄를 지은 듯이 어물쩡하게 의자에 앉는 젊은 남성.
표정으로 보나 반응으로 보나, 그에게는 딱히 커다란 일을 저지를 만한 배짱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그저 그때 당시에 보고 목격한 그대로만 진술해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사실 경찰에서 연락이 왔을 때에는 엄청나게 놀랐었다.
그렇기 때문에 석두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때 당시의 목격담을 들으려 애를 쓴다.
하나.
“그, 그게 말입니다…….”
“…….”
말을 더듬거나, 혹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거나.
사람들은 석두를 전부 ‘형사’로 알고 있다.
게다가 현재 이들이 있는 장소는 바로 ‘취조실’이다. 당연히 일반인이라면 지레 겁을 먹는 게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효율성이 없군.’
오늘을 포함해서 며칠간은 족히 200여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물들을 놓고 목격담을 이끌어내야 한다.
200여 명의 신상을 일일이 조사하고 있는 쾌남에게 별도로 연락이 올 동안, 아마도 이 지겨운 업무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쾌남은 현재 200여 명 중에서 재벌가의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드래곤의 보물은 주로 있는 집에 좀 사는 사람들이 그 보물을 구입한 경우가 대다수다.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도둑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 도둑이 중시하는 건 아무래도 ‘수익성’으로 판명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드래곤의 보물을 거액의 돈을 주고 파는 행위 같은 건 아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드래곤의 보물을 노리고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 드래곤의 보물을 팔아서 현금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닐까.
괜히 복잡한 관계에 서버린 석두는 첫 번째 목격자를 방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방금 본 목격자는?”
“사진이랑 일치해요.”
“그렇군.”
사진이 드러나 있는 명단을 대놓고 일일이 목격자들과 대조할 수는 없다.
모양새에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인물이 대신해서 왔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뒤에 보험 차원으로 세미를 세워둔 것이다.
자신의 기억력이 이런 곳에 이용된다는 점을 처음 접한 세미는 약간 신기한 기분도 들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어느 세월에 200명을 다 취조해요?”
하루 종일 굽을 신고 서 있는 것도 지겨운 모양인지 세미가 살짝 불만을 토로한다.
이제 겨우 한 명이 끝났을 뿐이다.
게다가 취조라는 것 자체도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작업이 결코 아니다.
“…그러게.”
“나 참, 엄청 무계획적이네요.”
“어쩔 수 없지. 우리 중에서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은 없으니까.”
석두가 두목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머리가 비상하게 좋은 건 아니다.
쾌남은 특별히 해킹 분야에 관해서만 머리가 좋은 편이고, 창민의 경우에는 수완이 좋은 편이다.
망치야 뭐… 누가 봐도 머리를 쓸 만한 그런 타입은 결코 아니니 말이다.
“핵심적으로 브레인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군.”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가급적 빨리 섭외를 하는 편이 좋겠네요. 몸이 고생하기 전에요.”
“그러도록 하지.”
이번만큼은 세미의 의견에 찬성을 표하는 석두였다.
조직을 움직이라면 머리가 좋은 녀석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라….”
명단을 바라보고 있던 석두의 시선에 유독 관심이 가는 인물이 보인다.
“명문대 출신이라도 알아볼까?”
“글쎄요. 굳이 학업이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방면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을 뽑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런 방면?”
“범죄라든지 그런 거요. 어차피 학교에서는 이런 것도 잘 알려주지도 않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지.”
학교에서 알려주는 건 말 그대로 학업이다.
인생을 살면서 정말 쓸모없는 것들.
오로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놓고 판단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수치 측정기.
그게 바로 학업이 아닐까.
그리고 그 학업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변한다.
누구는 초엘리트.
그리고 누구는 꼴통.
이런 식으로 평가가 갈리는 데에 경멸을 느낀 젊은이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는 유명한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주변에 이런 쪽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줘.”
“제가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세미의 말에 석두가 피식 웃어 보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인다.
“농담이라고.”
쾌남의 수색과 더불어 경찰서 쪽에서도 석두와 세미, 두 사람의 인물 탐방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었다.
총 200여 명의 개인 정보를 해킹한 쾌남으로부터 정리 자료가 날아온 것은 경찰서에 출근한지 대략 3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흐음, 과연…….”
석두가 잠시 휴식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음미하며 쾌남이 보내온 자료들을 검토한다.
옆에서 같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세미 또한 궁금한 모양인지 슬쩍 얼굴을 들이민다.
“이게 뭐예요?”
“우리가 조사한, 그리고 앞으로 조사할 사람들의 개인 상세 정보.”
“이런 걸 다 어디서 가져온 거예요?”
“훔쳤지. 괴도답게.”
“…….”
나름 이해가 가는 대답이기도 했기에 세미는 차마 뭐라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석두의 정체는 바로 괴도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그 괴도가 자신의 옆에 있다고 하니 뭔가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석두가 괴도라는 걸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해킹도 할 줄 알아요?”
“저번에 봤지만, 그 히키코모리 녀석이 유능한 해커거든.”
“하아, 그렇군요.”
도둑질에 대해서는 이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많이 봐왔다.
더 이상 석두의 행동에 태클을 거는 무의미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결심한 세미였다.
“너도 봐두는 게 좋겠군.”
“전 별로…….”
“보면서 제법 잘 사는 재벌 2세가 있는지 한번 살펴봐.”
“…돈이 많은 가정환경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되나요?”
“일단은.”
확률상의 문제일 뿐이다.
돈이 많은 집안, 혹은 그 집안의 자제인 사람들이 드래곤의 보물을 접할 확률이 높다는 것일 뿐, 사실 아직까지는 100퍼센트 증명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민우의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민우는 자이언트 건틀릿의 모조품을 지닌 대상자에 불과했지만, 그런 식으로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드래곤의 보물을 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결코 재벌과 드래곤의 보물이 100퍼센트 연관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저 비교적 돈이 없는 사람에 비해 돈이 많은 사람이 드래곤의 보물을 접할 가능성이 높다는 확률뿐이다.
물론 세미가 이 말을 들었다면 정말 대책 없는 이야기라고 태클을 걸 게 뻔하기에 석두는 그 점까진 발설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