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28
28화 망상 실현기 (2)
드래곤.
그것은 이미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다.
이미 석두에게는 레이나라는 드래곤의 정신체가 붙어 있다.
심지어 석두는 직접 레이나의 본체와 만난 적도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는 드래곤이란 존재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님을 아주 잘 인식되어 있었다.
하나 일반인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요, 용이다!!”
“미친… 저게 뭐야?!”
일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 거대한 서양 용.
사람들의 아우성과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도 더러 존재한다.
“차라리 도망이나 쳐줬으면 좋겠건만.”
석두가 혀를 차면서 혹시나 해서 미리 가져온 흰색의 가면을 꺼내 든다.
괴도 영상을 송출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가면이다.
가면을 착용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석두 본인이 괴도라는 사실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요인이 가장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비과학적인 일에 관여하는 건 김석두라는 인간이 아닌 바로 괴도라는 존재다.
평범한 남자가 드래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필히 모든 관심은 김석두에게 향할 것이다.
물론 예전의 김석두는 사형을 당해 세상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지금의 김석두는 완전 별개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신변의 뒤를 밟히는 건 개인적으로 석두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다.
“일단 녀석부터 처리해야겠군.”
망상 실현기라면 드래곤을 실체화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 터.
하지만 가능성의 여부는 둘째 치고.
저런 일을 벌이고 있는데 과연 망상 실현기에 과부하가 걸리진 않는 것일까?
저런 형태로 망상을 아무런 부담 없이 현실로 만들어낸다면 가히 무적이라 할 수 있다.
석두가 죽는 망상을 하게 된다면 그 망상이 현실로 벌어진다는 뜻이지 않겠는가.
“마음에 안 드는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레이나에게서 받고 있는 정보도 한정되어 있는데, 지금의 석두가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혀를 차면서 드래곤을 향해 접근하기 위해 드래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고층 옥상으로 점프한다.
바로 그때였다.
“이야, 엄청 위험한 일로 번졌네.”
“……?!”
옥상으로 착지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석두의 바로 옆에서 형체를 드러낸다.
드래곤의 정신체, 레이나였다.
“설마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현실로 만들어낼 줄이야.”
“무슨 일이지? 네가 웬일로 현장에 모습을 다 드러내고. 날 도와줄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천만에. 그저 뉴스를 보니까 엄청 재미있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거 같아서 와 봤어.”
“…뉴스?”
“밑에 카메라 든 사람들 보이지?”
“……”
벌써부터 특종을 노리고 기자들이 출동한 것이다.
물론 기자들뿐만이 아니라 안전을 위해 경찰들도, 그리고 인근 군인들도 출동을 한 모양인지 군용 트럭들이 두서없이 마구 도심 한복판에 진출하고 있었다.
“처리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곤란하게 될 거야. 온 세상에 드래곤의 보물의 존재 유무를 대놓고 광고하게 될 테니까.”
레이나가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을 한다.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빙그레 웃으며 석두를 재촉하는 그녀.
“본인 일인데 태평하군.”
“뭐, 나야 드래곤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별로 상관없게 느껴지거든. 그리고 어차피 현재 상황이 벌어져 봤자야. 아무런 소용 없어.”
“무슨 뜻이지?”
“그건 네가 이번 일을 해결하고 나서 알려줄게. 아, 돈을 부담할 필요는 없어. 무료 서비스니까.”
“…….”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 말투성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 저 드래곤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
“그럼… 가볼까!”
파바박!!
옥상 지면을 박차며 공중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석두.
망상 실현기와의 첫 정면대결이기도 하며, 마지막 대결일지도 모른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상공에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드래곤.
그나마 날씨가 흐려서 다행인지, 먹구름에 가려 드래곤의 형태가 온전하게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는 힘들다.
그저 실루엣으로만 가능할 뿐.
여성의 발언 덕분일까.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를 멈추고 드래곤의 존재를 올려다보고 있던 선글라스를 착용한 외국계 남성, 루틴이 가볍게 혀를 찬다.
“미쳤다고밖에 할 수가 없군.”
“어차피 망상 실현기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망상이 드래곤을 꿈꾼다면 저런 현상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죠.”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선글라스를 고쳐 쓴 루틴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저 사용자, 곧 죽을 거야.”
“…그렇군요.”
“뭐, 어차피 우리들은 물건을 팔았으니까.”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는 루틴이 다시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도 슬슬 가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여성 비서 역시 차량에 탑승을 한다.
어차피 더 이상 여기에 볼 일은 없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보나마나 흰색 가면을 쓴 괴도가 나타나 이 모든 일 처리를 해낼 것이다.
하지만.
“…잠깐.”
차량의 문을 열기 직전.
루틴의 뇌리에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스쳐 지나간다.
“설마……?!”
공중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루틴이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본다.
일반인의 시야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을 거리지만, 루틴에게는 마치 보인다는 듯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미친… 그랬었군…….”
“무슨 일이십니까? 루틴 님.”
“…그랬었어… 그런 이유로… 하하하……!”
루틴이 옅은 웃음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최근 풀리지 않는 어려운 난이도의 수수께끼를 이제야 풀게 되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괴도 녀석에게 어마어마한 스폰서가 붙어 있었군.”
“스폰서라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루틴에게 좀 더 상세한 대답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이는 여성 비서.
그녀에게 루틴이 자신의 정보를 자랑인 마냥 내비치기 시작한다.
“드래곤의 정신체가 보이더군.”
석두가 드래곤에게 접근을 해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으로 드래곤이 거대한 몸집을 선회하며 석두를 향해 얼굴을 정면으로 돌린다.
거대한 드래곤의 외형.
압도적인 크기의 생물체에 겁도 먹을 법도 한데, 석두는 압박감조차 느끼지 않으며 드래곤을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서 강렬한 마나의 기운이 어리기 시작한다.
“아이스 스피어(Ice Spear)!”
맹렬한 얼음 덩어리들이 마치 송곳처럼 날카로운 형태를 취하며 수십 가지의 갈래로 뻗어 나간다.
피유우우웅!!!
유도 미사일처럼 수십 갈래의 아이스 스피어들이 드래곤을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드래곤의 몸체에 닿자마자…….
콰지직!!
째쟁!!
마치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허무하게 아이스 스피어들이 종적을 감추게 된다.
한마디로…….
“전혀 통하지 않는군.”
혀를 차면서 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석두였다.
대략적으로나마 시뮬레이션으로 예상을 하긴 했다. 제아무리 망상 실현기로 태어난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결코 약한 존재는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는 현대 시대를 놓고 봐도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가히 최강의 지상 생물체라고 묘사되지 않겠는가.
특히나 레이나의 존재를 예시로 들자면 그런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하하하하!! 이게 누군가. 말로만 듣던 괴도 아닌가?”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광기의 웃음을 내비치기 시작하는 한 남자가 마법을 통해 공중에 떠 있는 석두를 가리킨다.
“…오두철이군.”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오두철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석두도 그간 목격자 명단을 지겹듯이 봐왔기 때문에 대략 누가 오두철인지는 알고 있었다.
특히나 오두철의 존재는 망상 실현기 소유자에 가장 가까운 후보자 명단으로 올라와 있는데 석두가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괴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오두철이 옅은 웃음을 선보이며 그대로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린다.
보통의 경우에는 낙하 현상이 벌어지겠지만, 오두철은 마치 하늘 위에 또 다른 별도의 지면이 있는 것마냥 석두와 동일하게 시선을 맞추며 공중에서 그대로 부양된다.
마법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망상일 터.
‘액세서리가 보이지 않는군.’
액세서리 대신에 오두철의 손등에 박혀 있는 붉은 보석이 보인다.
아마도 융합되었으리라.
망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망상 실현기는 사용자의 생명을 요구한다고 레이나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의 상세한 정보는 들은 적이 없지만, 충분히 사용자의 생명을 빨아들인다는 말 하나만으로도 석두는 쉽게 유추를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많은 생명력을 필요로 한다.
이 드래곤이라는 망상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망상 실현기는 액세서리라는 형태가 아닌, 오두철의 신체 일부가 되어 직접 생명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저 상태가 되었다면, 오두철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을 터.
그러나.
“아, 이거 말인가?”
오두철이 자신의 몸에 박힌 보석을 직접 보여주며 말한다.
“내 또 다른 심장이기도 하지.”
“죽을 각오는 했다는 거군.”
“물론. 이 녀석 덕분에 나는 죽을 거다. 하지만 말이지… 생각보다 그렇게 빨리 죽을 생각은 없거든.”
오두철의 미소가 미묘하게 틀어진다.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있을 테니까.”
“…….”
드래곤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망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오두철의 존재 자체가 무서운 것이다.
오두철을 없앤다.
지금 당장의 목표를 수정한 석두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마나 소드(Mana Sword)!”
우우우우웅!
푸른 마나의 기운이 검이라는 형태로 변모하면서 석두의 오른손에 맺혀간다.
목표는 바로 오두철의 목이다.
녀석의 생명을 미리 끊는다면, 원동력이 없어진 망상 실현기도 폭주를 멈출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석두였지만, 이 녀석이 더 많은 사상자를 내기 전에 끝내는 편이 좋다.
뒤처리라든지 그런 과정에서 석두의 존재가 연루되면 더더욱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멍청한 녀석이군.”
오두철의 한마디와 동시에 드래곤이 자신의 거대한 꼬리에 무게를 싣는다.
꼬리로 휘둘러 치는 듯한 모션을 취하자, 석두가 혀를 차면서 그대로 방향을 선회한다.
후우웅!!!
거대한 드래곤의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석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 꼬리 한 방을 제대로 맡는다면, 아마 내장이 다 터질지도 모른다.
“짜증 나게 하는 도마뱀 녀석이군……!”
레이나가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는 욕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드래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오두철을 어떻게 쓰러뜨리느냐가 현 단계의 석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