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29
29화 망상 실현기 (3)
드래곤이라는 어마어마한 생명체의 출연.
그 생명체가 주는 압박감은 실로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오두철의 망상체라 한다 해도…….
문제가 있다면 망상 실현기는 망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저 드래곤 역시 현실이다!’
망상으로 끝날 단계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말도 안 되는 드래곤을 때려눕힐 필요성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두철이 드래곤을 이끌고 세상을 멸망시키느니 어쨌느니 할 테니 말이다.
이미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패닉으로 아우러져 있었다.
도망치는 사람.
그리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
혹시 영화 촬영의 한 장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화 촬영에 임할 때에는 적어도 사람들의 안전 정도는 보장해 준다.
방금 전, 건물이 무너짐으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지 않았는가.
이것은 결국…….
현실이다!
“파이어 볼(Fire Ball)!”
짧은 시동어와 함께 석두의 오른손에 사람 키의 반절만 한 불구덩이가 생성된다.
기본적인 마법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석두는 제대로 공격 마법을 시전할 수가 없다.
연습은 하긴 했지만 살아 있는 대상에게, 그것도 드래곤이라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에게 마법을 마음껏 사용한 적도 없다.
휘웅!!
있는 힘껏 파이어 볼을 던지는 석두.
그러나 드래곤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석두의 마법을 몸으로 직접 받아낸다.
투우웅!
폭발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뭔가 툭 건드리는 듯한 소리밖에 나지 않는 충격음에 석두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드래곤의 비늘이란… 대단하군, 역시.”
말로는 들었지만 실제로 석두의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으니 나름 충격이긴 했다.
석두가 마법을 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오두철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를 비웃기 시작한다.
“고작 그런 실력으로 나를 막으러 왔다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군.”
“…….”
드래곤을 쓰러뜨릴 방법.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법으로는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가 없다. 애초에 석두가 드래곤의 심장을 지녔다 하더라도 클래스 차이도 날뿐더러, 마나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을 상대로 마법을 통해 승리를 거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없애 버려.”
두철의 지시에 드래곤이 크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거대한 입이 쩌억 벌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생성되는 거대한 불구덩이 구체!
석두가 만들어낸 불덩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저건……!”
헬 파이어(Hell fire).
파이어 볼보다도 훨씬 더 무지막지한 위력을 선보인다.
“발사.”
퍼어어어엉!!!
두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입에서 생성되어 있던 헬 파이어가 매섭게 석두를 향해 쏘아진다.
보고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가 아니다.
“제기랄……!”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려던 찰나.
“멍청한 녀석.”‘
“……?!”
뒤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에 석두의 시선이 절로 돌아간다.
바로 뒤에 나이프를 든 채 자신에게 겨누고 있는 오두철!
“잘 가라.”
적은 단순히 드래곤 하나가 아니다.
본래의 적은 바로 오두철 아니겠는가.
나이프에 담겨 있는 마나의 기운이 마치 검기처럼 뿜어지며 석두에게 휘둘러진다.
그러나.
두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석두의 순간이동 마법이 빨랐다!
슈슝!
바로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는 석두.
혀를 찬 두철이 드래곤에게 곧장 명령한다.
“녀석을 찾아!”
크롸롸롸!!
울부짖기 시작하던 드래곤이 또다시 입을 벌리며 또 다른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한다.
아니, 마법이 아니다.
드래곤이라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스킬이 거대한 입에서 발산된다.
드래곤 피어(Dragon fear). 살아 있는 생물체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동시에 공포라는 감정을 심어주는 심리계 마법이다.
석두도 인간이라면, 이 드래곤 피어에 당하지 않을 리가 없다.
“크윽…….”
사사삭.
순간이동 마법과 동시에 투명화 마법을 걸었던 석두였지만,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너무나도 허술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끝났군.”
오두철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공중을 박찬다.
마지막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채찍질한 것이다.
“그 유명한 괴도를 내가 직접 없앨 수 있다니. 영광인걸! 하하하!!”
말 그대로 광기 어린 웃음을 내뱉으며 석두를 향해 또 다시 검기가 실린 나이프를 추켜올린다.
하나.
그것이 바로 두철의 커다란 실수였다.
“멍청한 건 네 녀석이다.”
“…뭐……?!”
스르릉.
정확하게 두철의 나이프는 석두를 베었다.
그것도 오른쪽 어깨를 시작으로 해서 왼쪽 어깨까지.
나이프에 마나가 실려 있었기에 너무나도 예리하게 잘려나간 석두의 몸체.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퍼엉!
마치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났어야 할 석두의 몸체가 순식간에 연기가 되어 공중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두철의 가슴을 관통하는 한 자루의 나이프.
“가짜… 였나…?!”
“마법이라는 건 말이다, 단순히 무작정 센 마법만 날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결국 마법은 ‘응용력’이 필요한 분야지.”
“이, 이 녀석이……!”
“더 이상 말하지 마라. 가급적이면 난 굳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목숨을 빼앗고 싶진 않은 주의거든.”
“…괴도……!”
푸슉!!
박힌 나이프에 점점 더 마나를 불어넣자, 두철의 몸이 크게 한 번 더 꺾인다.
가까이서 바라만 보고 있는 드래곤을 향해 원망 섞인 시선을 던지며 두철이 손을 뻗는다.
“컥…….”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오두철.”
석두의 말이 두철의 귓가에 마치 사신의 목소리처럼 속삭여지기 시작한다.
“저 드래곤에게는 ‘자아’가 없다는 것을. 오로지 너의 명령에 행동하고, 너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결국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않나.”
“……!”
“망상 실현기. 좋은 보물이지. 하지만 그 망상의 원동력은 바로 너의 상상력 아닌가. 그리고 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면…….”
서걱!
그대로 나이프에 힘을 주며 두철의 몸을 베어낸다.
하반신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는 두철의 몸뚱아리.
점점 하늘에서 추락하는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석두가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간다.
“결국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저 쓸모없는 망상 덩어리가 되어버릴 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런 거 말이지.”
망상 실현기와 융합된 자를 제거하면 결국 망상으로 만들어진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망상 덩어리가 된다.
가짜 더미를 통해서 두철의 시선을 유도한 석두는 끝까지 상황을 엿보고 있다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만약 저 드래곤이 망상으로 만들어진 드래곤이 아니라 자의를 가진 드래곤이었다면, 석두의 더미를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망상과 현실.
그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크으으윽……!”
최후의 순간까지 망상 실현기를 통해서 간신히 목숨만은 구제한 두철.
비록 하반신을 잃긴 했지만,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자신이 추락사를 하지 않는 것을 필사적으로 망상을 해낸 탓에 실현을 해냈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망상 실현기의 힘이 유효하다!
“내 남은 생명력을 짜낸다면……!”
공중에 떠 있는 드래곤을 향해 손을 뻗는 두철.
그러나.
투둑.
붉은 보석이 어느 순간 두철의 손등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아아아아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두철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그에게 빨아들일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아아아아!!!”
점차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거대한 드래곤의 몸체.
그 모습을 아래에서 바라보고 있던 두철의 비명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 한 명의 여성이 다가와 두철에게서 분리된 붉은 보석을 집어 든다.
“시끄러워 죽겠네, 정말.”
여성의 말에 두철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외친다.
“나의 힘이… 내 드래곤이… 나의 망상이……!”
“저건 더 이상 너의 망상도, 그리고 너의 힘도 아니야. 그리고 말이지.”
여성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두철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내.
오른발을 든 채 두철의 머리 위를 향해 겨눈다.
“감히 드래곤을 네 녀석 같은 인간의 부하로 써먹을 생각 자체를 하다니. 구역질이 날 정도야.”
그 말을 끝으로, 여성의 발이 잔인하게 두철의 머리를 그대로 찍어 누른다.
뇌수가 사방으로 터지면서 더러운 골목길의 벽에 여기저기 묻지만, 여성의 몸 근처에는 아무런 이물질도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기분 나쁜 인간이야, 정말.”
금발의 미녀, 레이나는 이렇게 해서 자신의 보물 중 하나였던 망상 실현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드래곤의 출연은 하루 종일 뉴스에서도 특보로 보도될 만큼 화두거리로 남아 있었다.
과연 괴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괴생명체를 때려잡은 수수께끼의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이야기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인들은 따로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망치를 필두로 적룡파 조직 간부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면서 석두의 복귀에 환영을 건넨다.
진작부터 석두가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적룡파 간부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괴생명체 사건을 진압한 인물도 다름이 아닌 김석두라는 사실은 이미 조직원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 압도적인 힘에 직접 패배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는 김창민 역시도 망치, 번개, 그리고 쾌남과 같은 입장이다.
다만, 유일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
뭔가 못마땅하다는 시선으로 석두를 바라보고 있는 한세미였다.
그러나 그녀 역시도 석두가 없었다면 이번 사건이 더더욱 크게 변질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좀 피곤하군.”
그런 세미의 모습을 바라보던 석두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묻는다.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퉁명스럽게 말은 해도, 알아서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럴 때 보면 충실한 부하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투정을 부리는 젊은 아가씨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레이나에게선 별도로 망상 실현기를 인도받았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아마 두철의 시체에서 분리된 망상 실현기를 레이나가 직접 가지러 갔으리라 예상된다.
“큰일이 되었군요.”
뉴스를 바라보던 창민이 슬쩍 웃음을 지으면서 석두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큰일인 만큼, 괴도의 존재에 대한 유명세가 더더욱 올라갈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괴도의 유명세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괴도가 대한민국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 영향력은 나중에 필히 적룡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리라.
석두는 그 사실을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둘째 치고.
‘이번 의뢰는… 좀 힘들었어.’
일단은 쏟아지는 피로부터 풀고 싶다.
그것이 현재 괴도라 불리는 남자, 김석두의 솔직한 소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