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34
37화 함정 (4)
“어디 보자…….”
거대한 빌딩을 올려보기 시작하는 석두.
오밤중에 손그늘까지 만들어가며 빌딩 끝을 바라본다.
“높구만.”
적룡산업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높이가 큰 편이다.
“그만 구경하고 들어가시는 게 어때요? 그러다가 괜히 오해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군.”
평소에는 여성용 정장을 입고 있어야 했지만, 오늘은 정말 보기 드물게 붉은색의 타이트한 드레스 차림을 한 세미가 퉁명스럽게 석두의 행동에 태클을 건다.
참고로 석두의 탄식을 자아내게끔 만든 이 빌딩의 정체는 바로 진수안이 이끌고 있는 오수그룹의 본사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이 정도까지 회사를 성장시키다니. 능력이 제법인가 보구만.”
“글쎄요. 그것보다 서희 씨는 아직 안 왔나요?”
“창민이가 데려올 거다. 그보다 아직 서희와 통성명을 안 했나 보군.”
“제가 왜 그 아가씨랑 말을 섞어야죠?”
“서로 범죄 관련 경력도 없는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도 형성되고, 게다가 같은 여성이라서 서로 잘 친해질 줄 알았는데 예상외인데.”
“…그 아가씨는 괴도인 당신을 칭송하고 있잖아요. 겉으로는 착하게 보일지 몰라도 속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니까요.”
“불신주의인가? 그 점도 서희와 같군.”
“자꾸 저랑 서희 씨랑 비교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일이 바로 타인과 비교당하는 일이니까요.”
세미는 압도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희는 뛰어난 눈치와 빠른 두뇌회전력을 지니고 있다.
머리를 쓰는 두뇌파 포지션이기도 하고, 그리고 험상궂은 남자들만 있는 적룡파 간부 세력진에서 풋풋한 두 20대 여성이 만났다 하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친해질 거라 예상했던 석두였다.
하지만 같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친해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가 보다.
‘역시 여자들의 마음은 모르겠군.’
애초에 레이나는 20대 인간 여성도 아니기에 논외로 쳤다. 그리고 레이나의 성격상 타인과 친해지는 일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에 굳이 석두가 나서서 레이나를 적룡파 간부들에게 소개시켜 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본인도 굳이 인간 종족과 친분을 다지고 싶어 하는 눈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포지션은 철저하게 고정되어 있다.
석두에게 되찾아야 할 드래곤의 보물을 일러주고, 그 보물을 수거하면 된다.
수면기에 빠진 레이나의 본체를 대신해서 말이다.
회사 앞에서 잠시 딴 생각을 품으며 대략 5분 정도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차량 한 대와 함께 뒷좌석에서 두 명의 젊은 남녀가 하차한다.
바로 석두와 세미가 기다리고 있던 도서희와 김창민이었다.
“주차는 어디로 하면 됩니까?”
“지하 쪽으로 가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창민의 지시에 운전수가 능숙하게 차를 몰며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윽고 석두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두목님. 늦었습니다.”
“아니, 괜찮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늦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보다도…….”
슬쩍 서희를 바라보는 석두.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정장보다는 드레스 차림이 더 어울리는군.”
“고, 고마워요…….”
수줍게 석두의 칭찬을 받아들이는 서희였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듯 지켜보고 있던 세미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한다.
“자, 빨리 들어가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구요.”
대뜸 퉁명스럽게 말하는 세미를 향해 창민이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석두에게 충고한다.
“두목님, 여성의 드레스 복장을 칭찬하실 때에는 골고루, 그리고 평등하고 공평하게 해주시는 편이 좋습니다.”
“무슨 뜻이지?”
“서희 양뿐만이 아니라 세미 양도 아마 두목님의 칭찬을 바라고 있을 거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석두가 세미의 전신을 훑어본다.
두 남자의 이야기를 미처 듣지 못한 세미가 눈을 흘기며 석두를 노려본다.
“뭔데요.”
“잘 어울리는군, 그 차림.”
“…정말 뒤늦은 칭찬, 고맙네요. 흥!”
코웃음을 치며 대뜸 오수그룹 빌딩 내부로 들어가 버린다.
세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석두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옆에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석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마주 선 창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두목님은 아무래도 여자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특강을 받으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음, 그런가?”
이번만큼은 창민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까라는 생각을 품게 된 석두였다.
* * *
김석두와 세미, 서희, 그리고 창민까지.
이 4명의 남녀가 오수그룹 빌딩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빌딩 내부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파티 자체는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다.
그리고 초청받은 몇몇 소수의 중요 인사들만 올 수 있는 파티장인지라 사실 이 초대장을 구하는 데에 제법 애를 먹었다.
이게 다 쾌남의 정보 조작과 더불어 적룡산업이라는 든든한 기업 하나를 등에 업고 있는 효과가 빛을 발하게 된 결과물이었다.
사실은 석두와 창민, 두 사람만 와도 별로 크게 상관없지만, 세미의 기억력은 분명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도움이 될 때가 많고 서희에게는 자주 이런 자리를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쌓게 만든다는 목적 탓에 두 젊은 여성을 데려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티장의 자랑거리라 함은 바로 화사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 아니겠는가.
세미와 서희, 두 여성의 외모만으로도 이미 파티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사로움으로 물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등장하게 된 석두 일행들.
그곳에 오늘 파티의 주모자이기도 한 진수안을 찾아간다.
“안녕하십니까, 진 사장님.”
“누구…….”
수안은 사실 석두를 처음 보는 셈이다.
석두는 진작부터 수안이 천리안 수정구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임을 알고 있지만, 수안은 애초에 석두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적룡산업의 김석두입니다.”
“아… 김석두 대표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직원들로부터 말은 많이 전해들었지만, 직접 보게 되는 건 처음이군요.”
“하하, 언젠간 한 번쯤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는데, 비로소 그 일이 성사되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외관상 결코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 석두의 모습에 수안은 알게 모르게 성공한 젊은 사업가라는 공감대를 느끼게 된다.
“옆에 계신 아리따운 분은…….”
“도서희라고 해요. 대표님의 비서를 맡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바, 반가워요.”
어색해하는 서희가 그와 마주 인사를 나눈다.
물론 겉으로만 비서라 부를 뿐, 실질적인 보좌관 임무는 창민이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수안을 직접 만나는 건 석두와 서희뿐, 창민과 세미는 따로 할 일이 있다.
창민은 혹시 모를 석두의 보디가드 역할을, 그리고 세미는 진수안이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게 된 참가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전부 외워야 한다.
드래곤의 보물은 애초에 상류층 사람들에게 거래되는 고급 물건이다.
물론 특이한 케이스로 자이언트 건틀릿의 경우가 있었지만, 그건 결국 진품이 아닌 모조품에 불과했다.
상류층 인사들을 직접 한 번씩 눈으로 보고 암기를 해두면 분명 차후에 드래곤의 보물을 또다시 찾아와야 하는 임무가 떨어질 때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또 모르지 않겠는가.
파티장에 온 이들 중에 다음 괴도의 타깃이 존재할지도.
“그나저나 화려한 파티장이군요. 감동받았습니다.”
“하하하… 사실은 애초에 이렇게까지 돈을 들이면서 파티를 열 생각은 없었지만요.”
수안의 너스레에 석두가 의문을 표한다.
“어째서입니까? 이런 파티도 한 번씩 여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전 이런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하 직원들과 같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치고 노는 게 더 좋지요.”
“삼겹살에 소주…….”
예상외로 너무나도 소박한 이야기가 나와서 석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는다.
순간 석두가 이 반응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사과하기 시작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무례한 반응을…….”
“하하, 아닙니다. 모두들 김 대표님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왜 굳이 부하 직원들과 같이 소주나 진탕 마시면서 어울릴 생각을 하냐고 말입니다. 상류층이면 상류층답게 품위를 지키라는 잔소리도 들었죠.”
“품위라…….”
“사실 전 품위가 굳이 이런 파티장을 열면서 지켜야 하는 매너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된 도리를 다하는 게 품위가 아닐까요.”
진수안은 다른 일반적인 상류층 계급과는 뭔가 다른 면모가 있다.
자수성가 타입의 성공 사례라 그런 것일까.
근로자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 고충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수안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장에 대해 입을 모아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에게는 인덕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성품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모범적인 상류층 사회인의 품격이 아닐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석두였으나…….
드래곤의 보물이 걸려 있는 이상.
진수안은 괴도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착한 사람이라고는 하나… 드래곤의 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걸 못 본 척할 수는 없지.’
이능력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의 보물은 자칫 진수안 같은 심성이 바른 사람을 타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진수안에게서 천리안 수정구를 빼앗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괴도가 이번에 진수안을 습격한다면 여론은 아마도 의아함을 품게 될 것이다.
악인을 처단하는 괴도가 어째서 진수안을?
외부에 비쳐지는 건 괴도가 악인을 심판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나 그건 엄밀히 다르다.
석두가 노린 타깃들이 그저 우연치 않게 악행을 일삼던 상류층 계급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 뿐, 그는 정확히 말하자면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기회를 노린다.’
이번 파티장에서 천리안 수정구를 소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시, 석두는 거침없이 행동에 임해 그에게서 천리안 수정구를 빼앗을 것이다.
물론.
적룡산업 대표 김석두가 아닌 괴도 김석두로서.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쿠우우우웅…….
콰과광!!
“……?!”
난데없이 파티장 한쪽 구석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려온 것이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폭발의 충격파에 말려들어 그대로 넘어진다.
“큭……!”
무의식적으로 서희를 품에 안으며 충격파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석두.
“이게 무슨…….”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회장의 문을 발로 걷어차며 순식간에 복면을 쓴 남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하나같이 전부 다 총기류를 휴대하고 있었다.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는 석두의 귓가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타아앙!!!
“모두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라. 벌집이 되기 싫으면 말이야.”
“…….”
비명을 내지르거나 도망가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멈춘다.
총 한 발의 위력은 이들에게 무한한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나 그다음에 이어진 복면의 남자가 내뱉은 말이 회장 안에 있는 이들에게 더한 충격을 선사해 줬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우리 ‘괴도’의 인질이 되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