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36
39화 함정 (6)
오수그룹 본사 빌딩 앞.
다수의 경찰관들이 사건 현장 유지를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경계선을 넘어 진입을 시도하는 한 명의 중년 남성.
“어이쿠,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이봐요, 아저씨. 잠깐만요.”
무단으로 출입을 시도하는 남성을 포착한 젊은 경찰관이 그를 제지하고 나선다.
“여긴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함부로 들어오시면…….”
“하하, 이런 사람입니다만.”
중년 남성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경찰관 앞에 내보인다.
작은 신분증으로 보이는 것을 확인하기 시작한 경찰관이 순간 헛숨을 들이켠다.
강력계 형사, 오민태.
“이런… 죄송합니다! 형사님이셨군요.”
“하하, 그럴 수도 있죠. 그것보다도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 심적 안정을 위해 귀가 조치를 취했습니다만.”
“…늦었군요.”
옅은 한숨을 내쉬던 민태가 머리를 긁적인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일단 현장을 보고 싶습니다만.”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젊은 경찰관을 따라 사건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민태.
그 순간, 멀리서 민태를 다급하게 따라오기는 또 다른 젊은 남성이 있었다.
“선배님! 같이 좀 가요!”
“이 녀석아, 누가 그렇게 게으름 피우라고 했냐?”
“게으름이라니요. 차 주차시키고 오느라 늦은 건데,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키가 근 2미터는 육박할 만큼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젊은 남성, 허소진이 어색한 웃음을 선보이며 민태의 말에 나름 합리적인 핑계를 댄다.
그래 봤자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이분은…….”
젊은 경찰관의 물음에 민태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대답해 준다.
“제 후배 녀석입니다. 그냥 무시해도 됩니다.”
“하하하…….”
아무래도 허소진이란 형사는 선배인 민태에게 많은 무시를 당하는 모양인가 보다.
젊은 경관의 안내를 받아 사건 현장에 도착한 민태와 소진.
“개판이구만.”
“난리도 아니네요.”
두 사람의 소감은 실로 직설적이었다.
어디서 공수해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수 그룹 내에서 열린 연회장을 습격한 복면의 괴한들은 개인화기를 들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벽을 폭발시킬 만큼 강력한 화력 무기도 갖추고 있었다.
“여기가 무슨 미국도 아니고.”
민태가 미간을 찡그리며 땅에 떨어진 탄피 중 하나를 집어 든다.
총기 소지가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안 그래도 괴도인지 뭐시기인지 때문에 나라가 난리가 아닌데.”
민태의 중얼거림을 경청하던 소진이 뭔가를 떠올린 듯 묻는다.
“그러고 보니 습격한 괴한들이 스스로 ‘괴도’라고 말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만.”
“그 정보는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 거다.”
“예?! 어째서요? 모처럼 괴도를 잡을 수 있는 큰 실마리 아닙니까?”
“너, 형사 생활 한두 번 해보냐? 딱 봐도 모방범일 게 틀림없잖냐.”
“모방범… 이요?”
어수룩한 반응을 보여주는 후배 녀석의 모습이 영 시원치 않은 모양인지 민태가 혀를 차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괴도가 저지른 방법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냐.”
“어떤 면이요?”
“괴도는 범행을 저지를 때 절대로 패거리 단위로 행동하지 않는다. 도적질을 할 때에도 늘상 혼자 모습을 드러내곤 하지. 그리고 녀석은 총기류를 소지하고 있지 않아. 괴도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총상을 입은 사람이 있었냐?”
“확실히… 없었지요.”
“만약 총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사용했을 거다. 그리고 괴도는 애초에 살상이 목적이 아니야. 어디까지나 도적질이 목적이지.”
“하지만 그… 용 사건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때는 분명 사상자도 출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망상 실현기와 대결을 펼쳤을 때의 일이었다.
허나 민태는 이걸 확 때려, 말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 용 사건에서 사망자가 나온 건 괴도의 소행이 아니라 용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저지른 일이잖냐. 오히려 괴도는 그 용과 맞서 싸운 일밖에 없지.”
“하긴, 그렇네요.”
망상 실현기 사건은 세간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해 준 사건이기도 했다.
드래곤의 출연.
물론 하늘 위에서 드래곤과 석두의 정면 대결을 목격한 사람들이 대다수 존재하지만, 두 눈으로 보고도 드래곤의 존재를 직접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래곤을 쓰러뜨린 괴도였으나, 문제는 그 이후로 드래곤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그대로 공중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장난식으로 환각 작용을 통해 대중들의 눈을 속인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이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튼 괴도가 살상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고려했을 때, 그리고 개인화기를 사용하지 않는 점까지 염두에 두면 이 범행을 저지른 집단은 괴도 본인이 아니라 모방범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그리고 괴도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내가 괴도다!’라고 떠벌리고 다닐 만큼 머리가 나쁜 녀석은 아니겠지.”
“범행 예고 방송 같은 건 하지만요.”
“그 영상에 나오는 남자도 괴도라 볼 수 없겠지. 녀석은 머리가 좋은 놈이야. 분명 영상에 촬영되는 남자 역시 누군가를 대역으로 세워뒀을 거다. 실제 범행을 저지르는 괴도와 별개의 인물일 가능성이 커.”
“점점 어려워지는군요. 흐음…….”
“어려워할 거 없다. 우리는 경찰이고, 괴도의 정체를 알아내서 체포하면 그만이다.”
이론상으로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이 이론을 이해하기에는 아직까지 괴도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간 잡히게 되어 있는 법이다.
“조만간 녀석도 분명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세상에 잡히지 않을 도둑이란 없으니까.”
“뭐… 사실 제 입장에서는 놔둬도 그리 크게 상관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
“도둑놈을 놔둬? 형사가 할 말이냐, 그게?”
“그치만 세간에는 의적이라고 떠받드는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능한 경찰이 괴도를 잡는 것보다 차라리 법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존재가 대중들을 대신해 여기저기 악의 무리를 심판하고 다니게끔 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걸요?”
“쯧쯧…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들, 나라의 녹을 먹는 녀석이 괴도 사건을 포기할 생각을 다 하고 있었냐. 안될 놈이구만.”
“하하하…….”
소진의 말도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민태의 입장에서 괴도의 소행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파티에 참가했던 자들의 명단을 전부 뽑아서 나한테 넘겨.”
“한 번씩 다 취조해 보시게요?”
“혹시 또 모르지.”
민태의 눈빛에 강한 이채가 어리기 시작한다.
“그 안에 진짜 괴도가 숨어 있을지도.”
* * *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어두컴컴한 저녁.
창민의 보고를 마지막으로 석두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즉, 어떤 남자가 그 녀석들에게 무기를 주게 했고, 대신 자신들을 괴도라 칭하며 범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거군.”
“예. 일단 그 녀석들에게 직접 들은 말은 그렇습니다.”
“놈들은 어떻게 했지?”
석두의 명을 받고 출동한 적룡파 인원들은 바로 사건이 벌어진 직후, 녀석들을 쫓아가 직접 손을 봐줬다.
창민이 그 일을 담당했으니 분명 빈틈이 없이 처리했을 터.
“마음 같아서는 산속에 처박아두고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끔 만들어두고 싶었지만, 얌전히 경찰에 넘겼습니다.”
“경찰이 결코 괴한 소동의 주범이 그 녀석들이라는 걸 알아선 안 될 터인데.”
“그 점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신경을 써뒀습니다. 녀석들을 경찰에 넘긴 이유는 단순한 폭력 가담으로 인한 죄명이라 그렇게 조작해 뒀습니다.”
“폭력 가담?”
“괜히 길 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서 다수가 폭행했다는 죄목을 씌웠습니다.”
“그 피해자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군.”
“덩치입니다.”
“…….”
적어도 어디서 맞고 다닐 거 같지 않은 인물인 덩치를 피해자로 꼽은 게 더 웃기기도 했다.
“그래, 아무튼 경찰 측에는 그 녀석들이 결코 괴한 소동의 주범임을 알게 해서는 안 돼. 괜히 이상한 정보를 풀어줄 수도 있으니까.”
“녀석들에게 단단히 일러뒀습니다. 행여나 너희들이 괴한 소동의 주범이라는 걸 경찰에게 일러바치는 순간, 신상을 털어 그 발언을 한 녀석을 찾아내 밤중에 몰래 항구로 데려가서 발에 100㎏ 추를 매단 다음에 바다로 생매장시켜 버리겠다고 말이죠.”
“발상 한번 참 살벌하군.”
“감사합니다, 두목님.”
석두의 이런 말이 창민에게는 칭찬으로 작용하는 모양인가 보다.
옅은 한숨을 내쉰 석두가 고개를 끄덕여주며 나가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 그러고 보니 두 여성분은 어찌 되셨습니까?”
문 바깥을 나서기 전.
적룡파 인원에 소속되어 있는 두 명의 여성들의 상태가 궁금해진 모양이지 질문을 던지는 창민이었다.
“안정을 취하게끔 귀가 조치를 내렸다. 아마 지금쯤이면 구 사무실 안에 있을 거다.
“좋은 선택이군요. 거기라면 다른 간부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석두의 선택에 나지막이 감탄하는 창민이었다.
두 여자는 적룡파의 두뇌라 할 수 있다.
한 명은 거의 기인에 가까울 만큼 놀라운 기억력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적룡파 내부에서도 학벌이 좋으면서 머리도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단점은 바로 뒷세계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 괴한 소동을 접했으니.
아마 심적으로 많이 놀라지 않았을까.
“익숙해지면 이것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만.”
“과연… 익숙해진다는 게 좋은 현상인지 모르겠군.”
석두로서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오물로 가득한 이 세계에 그 두 사람이 섞여 들어간다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아무쪼록 괴한 소동 뒤처리에 대해서는 너에게 전적으로 맡기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두목님. 아, 그리고 그 가짜 괴도들에게서 빼앗은 수정구는 어떻게 합니까?”
석두가 그 수정구를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는 창민이 넌지시 품 안에서 수정구를 꺼내 든다. 그러나 석두는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일반 쓰레기봉투 안에 넣어서 버려둬라.”
“재활용은 안 되는 모양인가 보군요.”
“아마도.”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창민이 사무실 바깥을 나서는 순간.
석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괴한 소동으로 인해 세간은 다시 한 번 시끌벅적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론들은 모방범일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괴도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전에 쾌남을 통해 이미 정보 조작 작업도 들어간 상태다.
후속 조치는 쾌남과 창민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고.
이제 석두는 석두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슬슬 가볼까.”
이제부터는.
괴도로 변신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