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38
41화 함정 (8)
“루틴…….”
방금 전, 진수안에게 들었던 바로 그 남자의 이름이다.
그에게 천리안 수정구를 넘겼고, 기타 다수의 중요 인사들에게 드래곤의 보물을 넘긴 장본인!
“네녀석이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녀석인가?”
“글쎄요. 그 점에 대해선 굳이 답변을 드려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도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심한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현재 7클래스 수준까지 마법 실력을 키워온 석두.
웬만한 마법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마법사와 대결한다 하더라도 결코 쉽게 밀리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석두는 드래곤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인간으로서 도달하지 못한다는 9클래스 마법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9클래스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게 석두의 신경을 자꾸 거슬리게 만들기 시작한다.
만약 루틴이라는 남자가 레이나의 레어에서 드래곤의 보물을 훔쳐 갈 정도의 실력자라면?
최소 드래곤과 엇비슷한 실력자라는 것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최대한 9클래스까지는 도달할 수 있게끔 만들어둘걸…….’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절망적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편 보스가 알아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준 게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저 루틴이라는 남자를 제압하는 순간, 아직 수거하지 못한 드래곤의 보물을 한꺼번에 가져올 수 있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여기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 남자를 포획한다. 그러면 이 모든 게임이 끝나는 거야!’
언제까지고 레이나에게서 영문도 모를 의뢰를 받으며 평생 드래곤의 보물을 되찾다가 생애를 마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사형을 당할 뻔한 위기에서 다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는 석두 또한 레이나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인간이라 함은 본래 편안함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생명체다.
눈앞에 이번 도적질의 끝을 맺을 수 있는 키 플레이어인 루틴이 등장했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 과연 석두의 실력으로 제압이 가능할까?
확신할 순 없지만, 우선은 해보자는 식으로 오른손을 쭈욱 뻗는다.
“아이스 스피어!”
그의 손에서 맺히기 시작하는 날카로운 얼음송곳들이 매섭게 루틴을 향해 뻗어 나간다.
하나 루틴 또한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내밀며 간단하게 시동어만을 영창할 뿐이다.
“배리어.”
콰직!!!
아이스 스피어 3개가 눈앞에 형성된 반투명한 배리어에 막혀 사정없이 부서져 나가기 시작한다.
허무하게 공격이 막히긴 했지만, 이미 석두도 자신이 날린 공격 마법이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단은 탐색전이다.’
상대방의 전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덤벼들어 봤자 승산이 없다.
행여나 자신보다 클래스가 더 높은 마법사라면 석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당장에는 없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적룡파 간부를 불러와 봤자 도움이 되지도 않을 터.
‘레이나라면 가능하겠지.’
비록 드래곤의 정신체이긴 하지만, 레이나가 석두보다 강한 건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왼손에 화기의 기력을 모은 석두가 지면을 박차며 루틴이 있는 곳까지 그대로 점프한다!
공중으로 치솟은 석두가 배리어를 향해 왼손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배리어가 사정없이 깨져 버린다.
뒤이어 재차 오른손을 뻗으며 외친다.
“매직 미사일!”
반투명한 형태의 무언가가 무수한 갈래로 뻗어나가며 루틴을 향해 집중적으로 꽂히기 시작한다.
하나 여기서 가만히 당하고 있을 루틴이 아니다.
“그래도 나름 마법 좀 다를 줄 아는 인물이군요.”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몸을 이동시키는 루틴.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아오른 루틴이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외친다.
“안티 매직.”
그의 외침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그를 향해 날아들던 수많은 매직 미사일 갈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텁!
지면에 착지한 루틴이 오른손에 들려 있는 단검을 매만진다.
“알고 계십니까? 이 단검 또한 드래곤의 보물이란 사실을.”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아이템인가.”
“예. 마법사를 상대하기에 참으로 좋은 무기라 할 수 있죠. 매직 브레이커라 하는 아이템입니다만… 아시려나 모르겠군요.”
“공교롭게도 제아무리 괴도인 나라고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드래곤의 보물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그럼 제가 정보 하나를 제공한 셈이군요. 불공평한 거 같은데… 당신도 저에게 정보 하나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형평성에 맞을 거 같습니다만.”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모양인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딜(Deal)을 제안한다.
하나 루틴의 농간에 넘어갈 석두가 아니다.
“그 아이템을 내 앞에 선보인 건 정보 교환 의사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네녀석의 실수에 불과한 거다. 알겠냐?”
“후후후, 실수라… 인간인 이상 누구나 다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법이죠.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옅은 웃음을 흘리던 루틴이 단검을 든 채 빠르게 석두를 향해 달려든다.
순식간에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루틴의 공격에 석두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어차피 마법은 매직 브레이커 덕분에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군!’
크게 침을 삼키며 그대로 자세를 낮춘다.
그와 동시에 양팔을 마치 가드하듯 세운 석두가 루틴에게 마주 돌진하기에 이른다.
“육탄전이라도 펼칠 생각입니까?”
“얕보지 마라, 도둑놈. 이래 봬도 조직폭력배와 싸운 경력도 지니고 있으니까!!”
허리춤에서 빠르게 나이프를 꺼낸 석두가 루틴을 향해 가로 형태로 길게 사선을 긋듯 휘두른다.
후웅!
날카로운 흉기가 공기를 가르며 정확하게 루틴의 옆구리를 노린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할까?
공격과 방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루틴에게 주어졌다.
그러자 루틴이 선택한 경우의 수는 지극히 단순했다.
까아앙!!
귀를 간지럽히는 금속들과의 충돌음이 두 사람에게 들려온다.
“서로 안전하게 갑시다, 괴도 양반.”
“흥.”
짧게 코웃음을 친 석두가 그대로 힘을 주며 옆구리를 방어하기 위해 날을 세운 채 방어한 루틴의 매직 브레이커를 그대로 쳐 낸다.
“인사는 이 정도로 해두죠. 계속 당신과 여기서 이능력 배틀을 펼쳤다간, 주변이 남아나질 않을 거 같으니까요.”
“…….”
“그럼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조만간… 보게 될 거 같군요.”
“또 누군가에게 드래곤의 보물을 비싼 값에 넘기기라도 했나?”
“좋은 건수가 하나 생겨서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루틴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진다.
두 다리에 마나를 주입한 채 공중으로 솟구치며 점차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하는 루틴.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석두가 빠르게 스마트폰을 들고 어디론가 연락한다.
“나다. 그래, 방금 그 녀석을 추격하도록. 위험한 일이 벌어질 거 같으면 곧장 돌아와라.”
-예, 알겠습니다!
망치가 기운차게 대답하며 통화를 끊는다.
물론 루틴이라는 남자가 쉽게 추격을 허락할 거 같지는 않다.
별다른 기대를 하진 않지만, 그래도 석두는 혹여나 녀석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본다.
* * *
다음 날 오전.
“죄송합니다, 형님…….”
대표 사무실을 방문한 망치가 고개를 푹 숙이며 석두에게 사과한다.
“그 녀석, 뭐 그리 재빠른지… 인간이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석두의 입장에선 루틴이란 남자가 인간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드래곤의 보물을 훔쳤을지도 모르는 장본인 아니겠는가.
석두가 빼앗긴 보물을 다시 되찾는다고 한다면, 루틴이란 남자는 드래곤으로부터 다수의 보물을 훔친 진짜 괴도다.
물론 루틴이 훔쳤다는 가장하에 보면 말이다.
“알았다, 나가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망치가 고개를 숙이며 바깥으로 나설 무렵, 김창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뒤이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두목님, 간부 회의 일정은 몇 시로 잡아두면 됩니까?”
“11시로 잡아줘. 장소는 이곳으로 한다.
“예, 알겠습니다.”
본래는 별도 회의실에서 진행하던 간부 회의였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자신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싶은 기분이 든 석두였다.
사실 회의를 할 때 장소 자체는 그렇게까지 크게 의미가 없다.
적룡파 간부로 등록되어 있는 쾌남과 망치, 번개, 김창민, 그리고 세미와 서희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레이나의 존재와 드래곤의 보물에 관해서 이야기할 생각은 아직까진 없다.
어디까지나 이건 적룡파의 일이 아닌, 김석두 개인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래곤의 보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면 목숨이 하나로는 모자랄 것이다.
이들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모은 석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부하들을 일부러 사지에 몰아가는 행동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루틴은 어떻게든 자신이 전담해야 한다.
만약 루틴과 충돌할 일이 생긴다면 석두는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그 자리를 뜨라는 말을 해둘 것이다.
어차피 루틴을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건 석두이니 말이다.
‘어렵군…….’
도대체 정체가 뭘까.
루틴에 대해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는 석두였다.
* * *
11시로 예정되어 있는 간부 회의.
그전에 석두를 방문한 자가 있었다.
“안녕~”
가벼운 인사말을 건네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금발의 여성, 레이나였다.
“무사히 살아남았네?”
“…대충.”
어제저녁.
루틴과의 혈전을 펼친 뒤 석두는 곧장 레이나에게 연락해 루틴의 존재를 알렸다.
동시에 루틴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물어왔다.
그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내일 말해줄게.’
그 말을 끝으로 오늘 처음 만나게 된 레이나가 직접 자신의 말을 이행하고자 석두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아침 일찍 올 줄은 석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루틴이라~ 그 녀석, 아직 제대로 살아 있었구나.”
“역시 알고 있나 보군.”
“뭐, 일단은.”
레이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사무실 내부에 위치한 소파에 앉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는 모양인가 보다.
아니, 오히려 사건이 흥미진진해져서 기쁘다는 듯한 기색까지 보일 정도였다.
“루틴이라는 남자의 정체가 뭐지? 네게서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진짜 도둑놈인가?”
“나도 도둑의 정확한 정체는 몰라. 수면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어.”
레이나가 이른 아침부터 자신이 직접 사온 아메리카노 한 잔을 음미한 뒤 말한다.
“그 녀석은 결코 아니야.”
“도둑의 정체를 모른다면서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뭐지?”
“간단해.”
작게 어깨를 으쓱이던 레이나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발설한다.
“루틴이란 남자는 너처럼 나에게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아 도난당한 보물을 되찾아주기로 협력했던 인간 중 한 명이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