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
4화 침투
정당하게, 그리고 하루하루를 뜻 깊게 살아가는 자들의 재산은 털지 않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이 사회를 갉아먹는 자들의 재산을 털어, 이들이 대신 집행자가 된다.
그런 포부를 가지고 새로운 조직을 만든 석두였으나.
“어렵군.”
레이나가 제시한 적월도의 행방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인터넷을 뒤지면서 여러 곳의 정보를 캐봤지만, 그것도 명백히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하아.”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도 지겨워질 찰나였다.
“…음?”
울리기 시작하는 스마트 폰에 손을 뻗는 석두.
그의 귓가에 망치의 굵직한 음성이 들려온다.
-형님, 찾았습니다.
“뭘?”
-형님께서 말씀하셨던 적월도의 행방 말입니다.
“…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통화를 이어나가던 석두가 망치에게 직설적으로 묻는다.
“거짓말 하는 거면 막 낫기 시작한 코뼈를 한 번 더 부러뜨리겠다.”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형님!
“어떻게 찾았냐. 니들 중에 그 적월도라는 물건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도 있냐?”
-해킹으로 찾아냈습니다.
“……?”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생각에 잠기던 석두의 귓가에 망치의 설명이 들려온다.
-저희 조직원 중에 해킹에 능숙한 해커 녀석이 있습니다.
“그런 녀석이 있었냐?”
-예. 은행 CCTV 화면도 그 녀석이 해킹해서 실시간으로 감시하다가, 다량의 현금을 뽑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관한 인상착의를 소매치기 녀석들에게 흘려서 털어오게 하는 방식으로 매번 일을 진행했습니다.
“…….”
이것으로 신도림역에서 있었던 소매치기에 관한 사소한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석두는 그때 당시, 소매치기들이 어떻게 다수의 현금을 보유한 타깃을 찾아낸 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뒷배경에 해커가 있을 줄이야.
은행의 CCTV를 해킹할 정도면, 꽤나 실력자로 보인다.
“어디에 있나.”
-사무실입니다, 형님.
“알았다, 그쪽으로 가마.”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곧장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 석두가 엘리베이터를 붙잡는다.
내려가는 방향은 1층이 아닌 맨 위층.
옥상으로 향한 뒤, 입구에서 오른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곳에 투명한 마법진을 새겨놓은 석두가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한다.
이제 막 4클래스로 접어드는 단계였기에, 긴 거리를 이동할 만큼 효율적인 텔레포트를 사용하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마법진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어느 한 건물 옥상 위로 순간이동을 한다.
허름한 계단을 내려가 사무실 문을 열자, 망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석두를 반긴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적월도에 대한 정보가 적힌 다수의 종이 다발들을 건넨다.
그보다 석두의 관심을 끄는 건 5개의 모니터 앞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남자였다.
“저 녀석이 네가 말했던 그 해커인가?”
“예, 그렇습니다.”
“술자리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녀석은 히키코모리라서 바깥에 나가는 걸 극도로 꺼려합니다요.”
“…그랬군.”
이 녀석이 적월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아서는, 엊그제 그 술집 가게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석두와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이름이 뭐지?”
석두가 다가가 묻자, 덥수룩한 머리의 남성이 슬쩍 석두를 올려다보며 입을 뻥끗거린다.
“…….”
“뭐라고?”
“…남…….”
“야, 망치.”
“예,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이 녀석, 무슨 말 하는 건지 해석 좀 해줘라.”
작게 웃어 보인 망치가 히키코모리 남성의 머리를 거칠게 매만지며 말한다.
“이 녀석은 서쾌남이라 합니다.”
“행태와 상반된 이름이로군.”
작게 혀를 찬 석두였으나, 쾌남은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인제다.
현대 사회에 수준급의 해킹 실력을 가지고 있는 해커는 필히 석두에게 필요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웬만한 것은 컴퓨터로 기동되는 사회다.
그 컴퓨터를 자기 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정보를 갈취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현금뿐만이 아니라 정보도 훔친다.
‘나쁘진 않군.’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에 놓여 있는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망치를 부른다.
“수집한 정보는?”
“여기 정리해뒀습니다.”
“음.”
쾌남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적월도는 어느 한 도검 수집가에 의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장소는 그리 멀지 않은 구로역.
“김진수라고 해서, 이 근방에는 유명한 놈이지 말입니다.”
“유명하다고?”
“예. 최근에 벌어졌던 대규모 파업에 대해서 기억하고 계십니까?”
“…….”
석두에게는 일주일이라는 공백기가 있다.
아니, 형무소에 있을 때의 기간까지 포함하면 근 한 달 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왔다.
당연히 망치가 말하는 그 대규모 파업이라는 거를 알 턱이 없다.
“그 파업의 근원이 되는 녀석입니다.”
“무슨 뜻이지?”
“김진수라는 녀석은 컴퓨터 조립 부품을 만드는 강소기업 사장입니다.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환경이라 불리는 공장이라 하더라고요.”
“흐음…….”
“근로조건 개선에 대해 노조가 개설되자 김진수는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들을 전부 해고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애환인가.”
“생계에 지장이 갈 만큼 다급한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지요. 단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한민국은 노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이유는 돈이 되는 높으신 분들이 노예들의 단합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다.
컴퓨터 부품처럼 그저 있어도 그만, 없으면 다른 것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그런 것들.
“뉴스에도 나오고 난리통이 아니었지만, 결국 결과는 안 좋게 끝났지요.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은 회사입니다.”
소시민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상류층.
그리고 그들은.
석두를 범인으로 몰아간 공범들이기도 하다.
“잘 됐군.”
석두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린다.
오랜만에 복수라는 감정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그 잘난 녀석 면상 좀 보고 싶네.”
구로의 한 저택.
운전기사가 차 문을 열자, 40대 중반의 남성이 가볍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저택 입구에 들어선다.
그가 바로 김진수.
얼마 전, 다수의 일용직들을 노조 가입의 이유로 단번에 해고시킨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안구인식 보안장치를 통해서 문이 열리자, 익숙한 발걸음으로 저택 안에 들어서는 김진수가 뒤따라오는 검은 양복의 남자 2명을 손으로 가로막는다.
“자네들은 여기까지.”
“알겠습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있어야 할 가전제품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부엌, 침대라는 방의 구분조차 되지 않는 그저 아무런 가정용품 하나 없는 저택 내부.
그곳에 장식되어 있는 건 오로지 다수의 ‘진검’뿐이었다.
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도검 수집가.
현관에 걸려 있던 진검 중 하나를 꺼내든 진수가 칼집에서 검을 꺼내 보인다.
스르릉.
시퍼런 칼날이 마치 초승달처럼 은은한 빛을 낸다.
“이 녀석들을 보면 피로가 싹 풀리는군.”
다시 검을 벽에 걸은 진수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말 그대로 진검 박물관이 따로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거용 저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김진수 개인이 모아놓은 진검을 진열해 놓은 장소에 불과하다.
실내에도 당당히 구두를 신고 들어온 진수가 유독 한가운데에 곱게 모셔져 있는 한 진검을 응시한다.
명검 적월도.
얼마 전, 뒷세계의 도매상인으로부터 고가를 주고 구입한 명검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두 가지.
전신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점과…….
이 검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능력 한 가지.
“여전히 아름다워.”
진수의 눈동자가 적월도의 도신을 내려다본다.
얼마 전에 있었던 파업 사건이 그대로 머릿속에 잊혀질 정도로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 빌어먹을 일용직 녀석들을 이 검으로 조각을 내버리고 싶었지만… 참는 수밖에.”
만약 살상을 벌였다가는 회사가 부도나는 것은 물론이요, 형사상의 뒷감당을 할 자신도 없었다.
제아무리 강소기업이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도가 존재한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위험한 욕망을 무시할 수 없었다.
베고 싶다.
사람을 베고 싶다고.
자신이 모은 검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를 베어가는 기분이란 과연 어떨까.
그 궁금증이 나중에 가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품지만, 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금 당장은 때가 아니다.
세상이 살인도 묵시할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었을 때.
자신이 모은 검을 사람의 피로 물들인다 하더라도 돈으로 입막음을 할 수 있는 바로 그때가 오기만을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진수를 몰래 구석에서 지켜보던 한 여성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매번 이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망설인다.
자신을 실직자로 내몬 범인에게 정의의 철퇴라도 내리고 싶지만, 보디가드들을 뚫고 진수에게 그 철퇴를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한 여성에 불과하다.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여성은 구로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아원에 가서 애들에게 밥도 해줘야 하고 말이다.
“…아니지. 밥 하기는 늦었으니까 뭐라도 사 갈까.”
실직당한 이후에 퇴직금도 뭐도 없지만, 최근에 관둔 술집 아르바이트에서 김석두라는 남자가 돈을 준 적이 있다.
그 돈이 꽤나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에 당분간은 고아원 애들을 돌보는 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예상치 못한 수익도 있겠다, 애들에게 맛있는 거라도 먹이고 싶은 심정이 들어서 치킨집으로 향한 여성.
그런데 그곳에는…….
“다, 당신?!”
그녀가 손가락으로 치킨집을 미리 점거하고 있던 한 남성을 향해 대뜸 새된 비명을 지른다.
여성이 알고 있는 한, 이 남자의 이름은 틀림없이…….
김석두였다.
“또 만나는군. 술집 여자.”
“남에게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말아주실래요?”
“이름을 말해준다면 기억해 주지.”
“뭔가 굉장히 고압적인 투로 남의 이름을 묻는 것도 실례되는 행동이라 생각하는데요.”
석두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이 쌓인 여성이었지만, 저렇게 보여도 일단 은인은 은인이다.
자신의 팔자에 어울리지도 않는 술집 아르바이트에서 무사히 벗어나게 해준 사람이니까 말이다.
“한세미예요.”
“…평범한 이름이군.”
“촌스러운 댁 이름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전혀 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석두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
석두의 맞은편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던 덩치 큰 남자, 망치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세미에게 협박한다.
“감히 우리 형님에게 이래라 저래라…….”
“넌 가만히 있어라.”
“예, 형님!”
말 한마디에 곧장 애완용 강아지처럼 자리에 다시 앉아 얌전히 치킨과 맥주를 흡입하기 시작한다.
이건 또 무슨 광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