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1
44화 일상 (3)
석두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주고아원 인근에 위치한 대형 마트.
카트 하나를 끌며 마트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한 쌍의 커플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알고 보면 상관과 부하 관계로, 아직까진 연애 관계로 발전하지 않은 두 사람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말이다.
“이거하고… 또 요거…….”
식품 코너에서 많은 시간을 할당하기 시작하는 세미였다.
“먹을 걸 많이 고르는군.”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가서 요리할 거니까요.”
“오호, 요리도 할 줄 아는가?”
“절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사무실 이전하기 전에 제가 했던 요리를 직접 드셔보신 적도 있었잖아요.”
“그랬나. 워낙 망치 녀석의 요리가 수준급이라서 그 녀석 요리밖에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말이야.”
“…저랑 싸우자는 건가요?”
“하하, 농담이야, 농담.”
세미의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인지 노골적으로 석두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여자애를 놀리는 기분이, 마치 악동 시절 때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석두였다.
‘그래… 나도 평범한 아이였지.’
석두 또한 예전에는 사회에 묻혀 사는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수의 국보급 보물들을 훔쳐 갔다는 혐의와 동시에 대량 살상을 저질렀다는 죄목까지 누명을 받게 되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레이나와 만나게 되었다.
석두를 구해주는 대신 레이나를 위해서 도둑맞은 드래곤의 보물을 되찾아야 한다는 일종의 계약과 함께 남들과 다른 뛰어난 이능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그래, 평화로운 게 제일이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도 살 건 다 샀나?”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이 정도고요. 이제 선물 사러 가야죠.”
“그렇군. 선물이 남아 있었어.”
식품 코너를 지나쳐 상층으로 올라가자, 저연령층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상품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이건…….”
유독 여러 장난감들 중에서 한 장난감 코너에 시선을 던지는 석두.
그의 발걸음이 잠시 정지하자, 세미 또한 관심을 가지며 다가온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장난감 시리즈를 보고 있었지. 혹시 알고 있나? ‘네고’라고 해서, 작은 블록들을 가지고 조립하는 재미가 있지. 아마 넌 모를 거야.”
“모르긴요. 저도 예전에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요.”
“그런가?”
“지금도 충분히 인기 있는 장난감이니까요. 그리고 저, 당신과 그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지 않아요.”
“음… 그렇군.”
괴도로서 두 번째 인생을 살기 전, 과거의 김석두는 결코 젊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핏 봐도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음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예전 자신의 나이 대에 맞는 행동과 사고방식에 젖어든 석두가 빠르게 머릿속을 비우며 현재의 괴도 김석두로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정립시킨다.
“이걸 사 가면 좋아하겠지?”
“글쎄요… 요즘 애들 성향은 잘 모르겠어요.”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군.”
“…때릴 거예요!”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세미.
덕분에 근처에 있던 손님들이 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순간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세미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주변인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사과를 하는 동안, 석두가 또다시 장난 끼가 다분히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세미를 약 올리듯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선 조용히 있어야지. 안 그런가?”
“…내가 진짜 못 살아…….”
부글부글 속을 삭히는 세미였다.
* * *
네고를 비롯해서 남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로봇 계열의 장난감, 그리고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 예상되는 인형들도 다수 구입하고 차량에 싣는 두 사람이었다.
“으라차!”
무거운 짐 덩어리를 혼자 나르며 주차장까지 도달한 석두.
세미가 중간중간에서 도와주고 싶다는 어필을 했지만, 석두는 오히려 혼자 드는 것이 편하다는 말로 그녀의 도움을 거부했다.
어쨌든 석두의 활약 덕분에 주차장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차근차근 차량 안에 짐을 실으며 출발 준비를 마친 두 사람.
“안전벨트 착용하고.”
“알고 있어요.”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차량에 탑승한 세미였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과연…….”
먼발치에서 이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던 한 명의 그림자가 옅은 한숨을 토해낸다.
“데이트인가… 하긴, 바쁜 일상 뒤에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인간이란 결코 계속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지치기 전에 충분한 휴식을 통해 쉬어줘야 하는 게 좋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석두와 세미를 감시하고 있던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김석두.”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너풀거리기 시작한다.
금발의 머리카락이 한눈에 그림자의 주인이 여성임을 알게 해준다.
석두와 계약을 맺은 드래곤의 정신체이기도 한 레이나가 공허한 눈빛으로 점점 사라지는 석두의 차량을 응시한다.
“조만간 커다란 사건이 터질 거 같으니까 이럴 때 충분히 쉬어두라고.”
레이나로서는 진심을 다한 충고를 건네주는 게 전부였다.
* * *
“어이, 나 왔다.”
“오셨습니까, 망치 형님.”
왜소한 체격을 지닌 소매치기의 달인, 번개가 구사무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망치를 향해 반가운 눈치를 선보인다.
양손 가득히 잔뜩 무언가를 들고 온 망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반면.
“왜 제가 이런 심부름을…….”
적룡파 간부진들 중 막내이자 가장 늦게 합류한 젊은 책략가, 도서희가 불만을 터뜨리며 망치에 뒤이어 구사무실로 들어선다.
사실 서희는 구사무실을 자주 접하진 못했다.
지금 위치한 적룡산업 빌딩 건물로 이주하기 전에 본래는 이 낡아빠진 사무실에서 괴도의 전설이 시작되었다는 게 서희로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괴도에 대한 환상이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이 존경하는 괴도가 이런 곳에서 활동했다는 것 자체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다.
그것보다 남자들만 득실거리며 사는 곳이다 보니 청소도 원활하게 되고 있지 않는다.
‘청소 좀 하지…….’
뭐라 확 말하고 싶지만, 서희의 성격도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닌지라 차마 겉으로 말은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킨다.
만약 세미가 있었다면, 서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속 시원하게 내뱉어줬을 것이다.
세미는 서희와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대상이 석두라 해도 말이다.
“어이, 쾌남. 살아 있냐?”
망치가 주방으로 향하기 직전, 컴퓨터 책상에 머리를 묻은 채 숙면을 취하고 있던 쾌남이 잠에서 깬 모양인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생존 신고(?)를 한다.
구사무실의 더러움 지분을 꽤나 많이 차지하고 있는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누구나 단연 쾌남을 선택할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다수의 전자기기들이 내뿜는 열기하며 각종 컴퓨터 부품들 탓에 여기저기 방이 어질러져 있는 상태다.
번개 또한 집에서 주구장창 담배만 피워대니 더러움 콤비 두 사람이 구사무실을 제대로 망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의외로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가정적인 취미가 있는 망치 덕분에 그나마 사람 사는 장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희 양.”
“네?!”
예상치 못한 지목을 당하게 된 서희가 화들짝 놀라며 망치를 바라본다.
앞치마를 두른 망치가 시원스럽게 웃으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미안하지만, 저 두 녀석들 대리고 사무실 청소 좀 해주겠어? 그래도 땀내 나는 남자 녀석들보다 여자가 더 잘할 거 같으니까 말이야.”
“아… 네…….”
그다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은 서희의 상관이기도 하다.
싫은 티를 내진 말자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번개와 쾌남을 데리고 청소를 시작하려는 서희였으나.
“청소…….”
“저희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지요.”
순차적으로 쾌남과 번개가 청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내뱉는다.
즉, 청소하기 싫다는 표현을 간접적으로 둘러서 표현한 셈이다.
“저, 저기… 그러니까…….”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청소하기 싫어하는 상관들을 데리고 어떻게 청소를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온갖 작전을 구사하려던 서희였으나.
“어이, 이봐.”
그녀의 고민을 단숨에 날려 버릴 만한 발언이 구사무실 내부에 강하게 울려 퍼진다.
“잔말 말고 서희 양 말 얌전히 들어라. 거절한다면 오늘 저녁 식사 대신 얼차려를 먹여주마.”
“…….”
“아, 알겠습니다요. 헤헤헤.”
쾌남과 번개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지만, 그래도 차마 망치의 말을 거절할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어쩔 수 없지 각자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선다.
말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쾌남과 더불어 그다지 청결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번개가 서희에게 빨리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달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한다.
“에… 그러니까… 쾌남 씨는 빗자루로 바닥 좀 쓸어주시고요, 번개 씨는 마대 걸레로 쾌남 씨가 쓴 곳을 닦아주시면 되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크크큭.”
정말 제대로 알아들은 것일까.
그래도 일단 화장실로 가서 제대로 된 청소 도구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아선, 정확히 이해한 것으로 판명된다.
한창 그렇게 청소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
“열심이로군.”
구사무실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인물이 쓴웃음을 내지으며 말한다.
바로 석두의 보좌를 맡고 있기도 한 김창민이었다.
“오, 오셨습니까.”
아직까지도 창민이 영 어색하게 느껴지는 모양인지 망치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마중 나온다.
근육질의 덩치남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언밸런스한 외형에 창민의 입가에 다시금 썩은 미소가 번진다.
“그나저나 서희 양도 있을 줄은 몰랐군.”
“제가 데려왔습니다.”
“네가?”
“예.”
“무슨 의도로 데려온 거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니면 두목님께서 너에게 서희 양을 데려오라고 명령이라도 내려줬나?”
“그냥 제 독단으로 초대한 겁니다.”
“무슨 의도로.”
“예, 모처럼 휴일인데 혼자 있으면 심심할 거 같아서 말이죠.”
“…그렇군.”
어느 정도 서희의 대학 생활을 잘 알고 있는 창민으로선 망치의 이런 행동이 서희를 상대로 한 배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인 동물이다.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쁘진 않겠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망치의 판단에 칭찬을 던져 준 창민이 부엌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는다.
“오늘 저녁은 카레인가 보군.”
“예, 맞습니다.”
“기대하고 있겠다.”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석두와 세미가 고아원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남은 적룡파 인원들도 알아서 휴일을 만끽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