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4
47화 정면대결 (1)
루틴의 입장에선 괴도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함정으로 파놓은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괴도와 실력 싸움을 해본 결과, 괴도가 자신과 같은 드래곤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적어도…….
“괴도의 정체라도 밝혔으면 좋으련만.”
선글라스를 살짝 올린 채 현재 자신이 위치한 장소를 쭈욱 둘러보기 시작한다.
넓은 해변가.
주변에 가족 단위로, 혹은 친구들과 함께 피서를 즐기러 온 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루틴 또한 이들과 함께 여름의 피서 현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그저 선텐을 즐기는 젊은 남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한편.
“여기 계셨군요, 루틴 님.”
아찔한 비키니 차림을 갖춰 입은 젊은 여성이 루틴에게 다가온다.
매번 루틴을 보좌하는 비서 역할이 그녀의 임무이기에 휴가 때에도 이렇게 직접 루틴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이들은 딱히 휴가를 나온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업무상 목적으로 이곳, 거제도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거래 상대방은 아직 안 왔나?”
“잠시 준비할 게 있다고 막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 돈인가?”
“이미 선금의 경우에는 통장으로 입금되었음을 방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딱히 잔여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겠다는 특약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럼 돈이 아니라면 뭐지? 약속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별도로 준비해야 할 특별한 무언가가 돈 말고 또 뭐가 있다는 건가?”
“수영할 준비라고 들었습니다.”
“…….”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한 루틴이었으나,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저 가벼운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체한다.
“역시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들은 참으로 많군.”
“루틴 님도 그 이상한 사람 부류 중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하하하, 인정하마.”
자기 자신도 스스로 결코 정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드래곤의 심장을 몰래 훔친 채 레이나와 척을 질 생각을 하다니.
보통의 사람 같으면 레이나가 무서워서라도 그런 대범한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루틴은 그걸 해냈다.
게다가 레이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드래곤의 심장을 지닌 채 지금까지 멀쩡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루틴의 전임자들은 레이나를 배신하자마자 싸그리 죽임을 당했다.
루틴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운명에 처할 뻔했지만, 예상치 못한 은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은인 덕분에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목숨을 구해준 건 루틴으로서도 상당히 고마워할 일이다.
하나, 대신 루틴은 그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했다.
죽는 것보다 차라리 그게 나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절로 떠오르는군.”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할 무렵.
“어머나, 이런 곳에 계셨군요.”
달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루틴의 비서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노출도를 자랑하는 비키니 차림과 함께 등장한 아름다운 여성.
평소 운동을 즐겨하는 모양인지 피부 자체가 윤기 있고 탄력적인 면모를 뽐내고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루틴에게 다가온 여성이 목소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색기를 발산한다.
“오랜만이에요. 저번에 봤을 때에 비해서 훨씬 더 멋있어졌네요.”
“레희 님이야말로 훨씬 더 성숙해지신 것 같습니다.”
“어머나, 고마워요.”
더위에 안 어울리게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보디가드 3~4명이 여성을 경호하듯 주변을 감싸며 루틴에게 다가간다.
유레희.
6개월 전, 루틴과 모종의 거래를 한 젊은 사업가이기도 하다.
“보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요. 여태까지 제법 쓸 만하던데요?”
“하하, 그거 참 다행이군요.”
오늘은 딱히 무언가를 거래하고자 만남을 성사시킨 게 아니다.
그저 고객 관리에 불과하다.
거래 한 번 끝내고 매몰차게 연락도 안 하는 그런 부류의 상인은 아니기에 이렇게 직접 한때 자신과 거래했던 상대방과 같이 여행을 오기도 한다.
물론 단둘이 오는 건 아니다.
레희도 자신의 경호원들과 함께, 그리고 루틴도 그가 거느리고 있는 비서와 함께 이곳 거제도에 도착하게 되었다.
휴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업무상 볼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부작용에 대해서 언급을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저 가벼운 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약간 눈이 따끔거리는 정도니까요.”
“그렇군요.”
“그것보다도…….”
레희의 눈길이 더더욱 가늘어진다.
남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여자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요?”
“저야 좋지요. 레희 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부족한 저라도 충분히 어울려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나, 자괴감이 심하시네요. 당신 정도면 충분히 멋진 남자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미인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신사의 도리가 아니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얌전히 레희의 비밀 데이트 제안을 받아들이는 루틴이었다.
* * *
“이야~ 바다라… 좋네!”
레이나의 작은 탄성에 석두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좋긴 하지.”
설마 이런 식으로 바닷가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올 예정도 없었다.
나름 각자 휴가를 보냈던 적도 있고, 이제 정식으로 일을 좀 해볼까 했었지만…….
결국 이렇게 다 같이 바다에 오게 되었다.
레이나뿐만이 아니라 석두, 그리고 적룡파 간부진들까지 싸그리 다.
“두목님! 체크인 미리 해놓겠습니다!”
망치가 건너편에서 소리를 높여 말한다.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석두.
망치를 비롯해 다수의 인원들이 열심히 짐을 옮기기 시작한다.
한편 이들을 바라보던 석두가 레이나에게 다시금 확인을 받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분명 우리가 찾아야 하는 보물이 이곳, 거제도에 있다는 게 맞나?”
“응. 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대략 그래.”
“…….”
솔직히 말해서 석두의 입장에선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었다.
아니, 드래곤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이렇게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 진작부터 석두에게 정보를 공유했으면 좀 좋았을까.
그런 불만과 함께 동시에 레이나가 단순히 바다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이들에게 드래곤의 보물에 거제도에 있다고 거짓말을 치고 여기까지 데려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레이나의 성격을 따지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위치를 알 수 있으면 왜 처음부터 나에게 위치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았지?”
“이건 때에 따라 다르거든.”
“때에 따라 다르다?”
“보물이라 하더라도 비싼 보물이 있고 싸구려 보물이 있잖아? 같은 보물들 중에서도 등급이 나뉘거든. 이번에 네가 찾아야 할 보물은 소위 말해서 드래곤의 보물 중 S급 보물이야.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겠지?”
“…그렇군.”
“비싼 보물들은 그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끔 장치를 해둔 거 같아.”
“마치 자신이 안 해놓고 타인이 해뒀다는 듯한 말처럼 들리는데.”
“사실이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난 레이나라는 드래곤의 정신체에 불과하니까. 내 본체는 레어에 잠들어 있다고.”
“흠…….”
어떤 식으로 추적의 빌미를 마련할 장치를 해뒀는지 알아내면 참으로 좋겠지만, 정신체인 레이나도 가끔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헷갈려하는 모양인가 보다.
레이나의 본체가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알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본체의 수면기가 끝난다면, 빨라야 석두의 여생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인간과 다른 차원의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드래곤이라는 부류다.
“이번에는 조금 편하게 찾아냈으면 좋겠군.”
석두가 진심을 담은 말을 내뱉어본다.
다 같은 보물이라 하더라도 전부 진귀한 취급을 받거나 하진 않는다.
물론 레이나의 취향에 맞는 보물이 있다면 더더욱 그런 보물의 값어치가 올라갈지도 모른다.
이번에 찾으러온 보물 역시 마찬가지.
레이나가 지니고 있는 보물 명단 중 귀중한 보물에 속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생성하는 물건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의뢰품목을 확인하기 위해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을 이미지 형태로 발동시키는 석두.
그의 눈앞에 작은 홀로그램 창 하나가 새겨지며 이번에 그가 찾아야 할 의뢰품목들을 표기한다.
-명칭 : 죽음의 눈
-기한 : 무제한
-특수 능력 :
1. 사람의 수명을 볼 수 있다.
2. 사망 일자는 머리 위에 새겨진다. 단, 죽음의 눈을 지닌 보유자만이 알 수 있다.
-주의 사항 : 보유자의 생명력을 원동력으로 발동된다.
-약점 : 없음.
“죽음의 눈이라…….”
사람이 언제 죽는지, 그 날짜를 볼 수 있는 눈이라고 한다.
“점점 탈인간적인 보물들과 마주하게 되는군.”
“애초에 진귀한 물건들만 수집했으니까.”
“이런 물건이 인간 세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신기한 일인데.”
망상 실현기도 그렇고, 천리안 수정구도 그렇고.
보물이라고 하기에 뭔가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그런 능력을 지닌 물건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보물의 제작이나 관련 설화, 혹은 출처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뜻이야?”
“부가적으로 알면 좋겠다만.”
레이나가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흔들며 옅은 한숨을 내쉰다.
“그런 정보를 알고 있다면 참 좋겠네.”
“너도 모르는 건가?”
“글쎄. 예전에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내 육체는 의외로 기억력이 그렇게까지 좋은 편이 아니거든.”
“…….”
하기사. 인간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어마어마한 수명을 살고 있는 존재, 그게 바로 드래곤이다.
자신의 일생을 전부 다 기억하는 건 아마 힘든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도 100년이 될까 말까 한 인생에서 모든 것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천천히 찾아봐.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죽음의 눈을 가진 보유자가 잠시 거제도에 내려왔다는 것뿐이니까.”
“…알았다.”
그래도 위치라도 알아낸 건 큰 수확이다.
지금까지 여태 석두가 찾아온 의뢰 품목은 전부 서울이라는 범주 안에 있었다.
하나 이렇게까지 외곽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수색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게 사실이다.
나름 레이나의 활약 덕분에 보물의 위치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석두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단하게 자신의 스케줄을 정리한다.
그 순간.
“얍!”
갑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하는 레이나!
놀란 석두가 황급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
“뭐 하는 짓이냐.”
“뭐 하긴. 바다에 왔으면 수영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슬쩍 용기를 내어 다시 레이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이미 수영복을 갖춰 입은 레이나가 허리에 튜브를 낀 채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도 옷 안에 수영복을 미리 입고 왔으리라 추정된다.
풍만한 가슴과 S라인을 자랑하는 허리, 골반, 하체의 굴곡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글래머 몸매를 뽐내던 레이나가 대뜸 샌들로 바꿔 신고선 해변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생이라는 거, 까짓것 뭐 있겠어? 그냥 즐기면 그만이지!”
“…네가 할 소리냐.”
어이를 상실한 석두의 입가에는 그저 쓴웃음만이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