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5
48화 정면대결 (2)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시작하는 레이나를 한동안 응시하며 지켜보던 석두의 스마트폰이 머지않아 신호음을 보내온다.
“나다. 무슨 일이지?”
-체크인 끝났습니다. 두목님 호텔 방 같은 경우에는 요청하신 대로 1인실로 잡아뒀습니다.
“잘했다.”
망치의 보고를 받은 뒤 자리에서 일어선 석두가 바로 코앞에 있는 호텔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새로 잡힌 자신의 호텔 방에 가기 위함이었다.
석두가 자리를 뜨려고 하는 낌새를 눈치챈 레이나가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한다.
“넌 물놀이 안 할 거야?”
“안 해. 처리해야 할 일도 있으니까.”
“쳇.”
가볍게 혀를 차는 레이나였으나, 그녀의 장난에 계속 어울려 줄 수는 없다.
자신은 드래곤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조금의 시간 낭비조차 용납할 수 없다.
* * *
호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알로하 티셔츠를 걸치고 있던 망치가 반갑게 로비에 모습을 드러낸 석두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오셨습니까, 두목님!”
“…그 차림은 뭐지?”
“아, 이거 말씀이십니까?”
망치가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티셔츠의 출처에 대해 언급한다.
“바다에 온다고 하길래 하나 장만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바다 사나이 같지 않습니까?”
“전혀.”
“하, 하하… 그, 그렇습니까.”
냉담한 석두의 반응에 그저 힘없이 웃을 뿐이었다.
석두로서는 휴식을 만끽할 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드래곤의 보물을 찾아야 하는 의뢰가 접수되면, 그때부터는 장난기 이런 거 싹 다 거둔 뒤에 본격적으로 괴도로서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기에 지금의 석두는 진지함 그 자체였다.
물론 주변인들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다들 바다에 왔다고 신이 제대로 난 모양인가 보군.’
레이나는 둘째 치고, 망치까지.
그래도 딱히 이들의 복장에 대해 태클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괴도라 함은 자신의 정체를 타깃에게 들키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며 몰래 물건을 훔쳐야 하는 그런 존재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도 자신들은 바다에 그저 야유회로 놀러왔다는 인식을 주변인들에게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하는 것처럼 거제도까지 와서 양복 차림으로 다닐 순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석두는 본인이 오히려 부하들에게 색다른 명령을 내렸다.
피서 온 척하라고 말이다.
지금 석두의 복장도 사실은 정장이 아닌 평범한 반팔 티에 반바지 차림이다.
누가 봐도 일하러 온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힘든 그런 복장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망치를 포함해 번개, 그리고 평소 검은색 정장만을 고집하던 창민도 이번 의뢰만큼은 피서지 차림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로비에서 석두를 기다리고 있던 창민이 슬쩍 그에게 다가와 의미심장한 말을 들려준다.
“이번 의뢰는 상당히 특이한 거 같습니다, 두목님.”
“…그렇게 생각하냐.”
“예. 노리시는 물건이 어떤 것이길래 거제도행을 선택하셨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할 따름입니다만…….”
“넌 그냥 내가 하는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 이상의 호기심을 지니는 건 금물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말을 했군요.”
“알면 됐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적룡파 간부들에겐 이제껏 레이나의 진짜 정체, 그리고 드래곤의 보물에 대한 진실을 숨겨온 석두다.
앞으로도 이들에게 이런 정보를 공유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설령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만을 공유하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이들은 가급적 레이나의 의뢰와 엮이지 않게끔 하고 싶다는 것이 석두의 작은 희망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 있나.”
“여성분들은 현재 옷 갈아입고 있는 중인 거 같습니다.”
“다 갈아입으면 간부들은 전부 다 내 방으로 소집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회의실이 별도로 없는 만큼, 그나마 혼자 사용하면서도 넓은 축에 속하는 석두의 방을 회의실 대신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창민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려준 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석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에서 허리를 세운 뒤 바른 자세를 취하며 명상에 잠기기 시작한다.
루틴과의 대결에서 그와 자신의 실력이 엇비슷함을 깨닫게 된 석두이기에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잠시 게을리했던 마나 수련도 이제는 빠뜨림 없이 수행하기 시작한다.
루틴이 레이나에게 드래곤의 심장을 이식받은 남자라면, 그리고 석두의 전임자라고 한다면 분명 석두보다 드래곤의 심장을 보다 더 잘 다룰 것이다.
즉, 둘이 정면승부로 맞붙게 된다면 석두가 루틴에게 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시사한다.
자신이 이기려면 최대한 루틴과 동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실력이 동급이라면, 그래도 루틴에게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패배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
무아지경의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석두.
마나의 흐름을 느끼고, 동시에 체내에 있는 마나 덩어리를 점점 부풀려 간다.
마법이라는 건 정신적인 요소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소위 말해서 멘탈을 단련해야 보다 손쉽게, 그리고 보다 더 강한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그것을 목표로 명상의 시간을 가지던 석두의 귓가에 그의 수련을 정지시키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두목님, 접니다.”
창민의 목소리에 잠시 명상을 중단한 석두가 그에게 방문의 이유를 묻는다.
“무슨 일이지?”
“간부들을 전부 소집했습니다.”
“…알았다. 들어오도록.”
“예.”
끼리릭.
호텔 방 문이 열리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간부진들이었다.
창민을 시작으로 번개, 망치, 세미와 서희까지.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집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아주 높은 확률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적룡파 간부 쾌남이 직접 모습을 비춘 것이다.
“별일이군. 네가 소집 명령에 응할 줄이야.”
“…….”
쾌남은 별다른 말 없이 소파 구석을 차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애초에 이 거제도 여행길에 동참한 순간부터 이미 방구석 폐인으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구사무실에서 짱박혀 있어야 쾌남다운 면모라 할 수 있다.
하나 이미 구사무실을 떠난 시점부터 그는 더 이상 틀어박힐 곳도 없는 외부임을 깨닫고 얌전히 이리 오라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는 그런 신세가 되어버렸다.
평소에도 목소리도 작고 허리를 푹 숙이고 다니는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더욱 기운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쾌남도 회의에 직접 참가를 하게 되었다면 이야기는 빨라진다.
“다들 주목해 보도록.”
석두의 말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고정된다.
“이번 일은 간단하다. 거제도에 놀러와 있는 유명 인사 중 한 명에게 특정 물건을 빼앗으면 된다.”
“유명 인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나요?”
세미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을 던진다.
날카로운 질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석두는 세미의 그 칼 같은 질문에 완벽한 해답을 내려줄 수가 없었다.
“그건 이제부터 조사해 봐야 한다.”
“조사라니… 그럼 유명 인사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아니, 그건 거의 100% 확실할 거야.”
지금까지 드래곤의 보물을 지니고 있던 인물들은 대다수가 상류층 사회에 살고 있는 갑부였다.
어느 정도 자금력을 가지고 있어야 드래곤의 보물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석두는 이번 타깃도 잠정적으로 이번에 거제도로 여행을 온 유명 인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조금 이따가 쾌남에게 별도로 지시를 내릴 거다. 어차피 평소에 비하면 이번 수색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 금방 누군지 드러날 거다.”
“…알겠습니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쾌남이었다.
“타깃을 찾자마자 곧장 행동에 임한다. 목표는 일주일 안으로 해결하는 것.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석두의 질문에 모두가 기운 넘치는 답변을 들려준다.
1주일, 그 이상 동안 거제도에 머무를 생각은 전혀 없다.
너무 오랫동안 머물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라든지 수사기관에 자신이 괴도라는 코투리를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 같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행태 같은 건 최대한 피해야 하기에 이번 야유회도 기간을 1주일로 한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호텔 하나를 한 달 동안 점거한 채 바다에 머무른다면 누구라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석두가 괴도라는 걸로 연결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따진다면 수상한 건 마찬가지다.
한번 의심을 받는 순간, 잘못하면 졸지에 석두와 괴도의 연관성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기에 일부러 자체적으로 의뢰 수행 기간에 제한을 둔 것이다.
그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상한 행동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그 일환으로 모든 간부진들에게 피서에 어울리는 복장을 착용하라는 말까지 했다.
최대한 타인의 시선을 끌 만한 짓들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괜한 의심을 사면 석두의 행동에 큰 제한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쾌남이 타깃을 찾아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가급적 여기 피서객들에게 각인되지 않게끔 행태를 조심하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각자 해산하도록. 별다른 일정이 생기게 되면 또다시 소집하마.”
“예…….”
석두의 말이 끝났음에도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가 없다.
의아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던 석두가 질문을 던진다.
“왜 안 나가지?”
“저기… 두목님!”
망치가 용기를 내어 손을 번쩍 든다.
뭔가 대표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가 보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도록.”
“딱히 정해진 일정이 없다면…….”
침을 크게 꿀꺽 삼키며 말을 끊는 망치였으나, 이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본다.
“…바다에서 놀아도 되겠습니까?!”
“…….”
순간 할 말을 잃은 석두.
레이나도 그렇고, 이 녀석들도 그렇고.
바다가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마법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가볍게 한숨을 토해낸 석두가 쓴웃음을 지으며 망치가 원하는 답변을 들려준다.
“마음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이얏호!”
망치가 두 손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토해낸 석두가 다른 사람들을 주욱 훑어본다.
“너희들도 가서 놀아도 좋다. 지금 당장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
“…….”
세미와 서희가 서로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여성진 또한 물놀이가 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차피 쾌남은 타깃 검색을 위해 호텔 방에 틀어박힌 채 일해야 한다.
굳이 일이 없다 하더라도 쾌남은 애초에 바깥으로 나갈 생각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번개는 망치와 함께 이미 지금 당장에라도 물놀이를 즐기고 오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 창민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휴가를 만끽할 시간이 없었다.
“전 따로 할 일이 있는 관계로… 물놀이는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목님이야말로 이번 기회에 편히 쉬시다 오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동안 일도 많았으니까요.”
“그렇군.”
일시적으로 부여된 자유 시간.
이미 이들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놀아야 보다 효율적으로 거제도 여행길을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