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7
50화 정면대결 (4)
서희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올 무렵, 쾌남에게서 별도의 연락이 도달하게 되었다.
“…….”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던 석두가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말없이 뚫어져라 액정 화면을 응시한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대뜸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쾌남 씨가… 타깃을 발견한 모양이군요.”
“얼추 그런 거 같구나.”
역시 서희라고 할까.
석두의 모습을 보자마자 금방 그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보여주는지 추측을 해낸다.
부하들을 불러 모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석두였으나, 이내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운다.
“쾌남이 타깃을 찾아냈다는 건 다른 녀석들에게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군.”
“네, 알았어요.”
어차피 오늘은 밤이 늦은 탓에 행동에 임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쾌남이 찾아낸 타깃이 석두가 진짜로 노리고 있는 인물과 동일한 사람이란 것도 제대로 확정짓지 못한 상황이다.
차라리 석두가 먼저 개인 활동으로 타깃과 레이나가 특정해 준 죽음의 눈의 소유자가 일치하는지 먼저 확인해 보는 게 가장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 전 방으로 들어가 있을까요?”
서희도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석두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타이밍이 있고, 혼자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 순간이 명백하게 나뉘어 있다는 걸 말이다.
다른 적룡파 간부들에 비해 석두와 함께 일한 활동 시간이 비교적 상당히 짧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석두가 적룡파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이미 웬만큼 파악하고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제안 발언이었다.
“그래줬으면 좋겠구나.”
석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서희.
어차피 자신이 석두의 곁에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 수정구 사건 때, 파티장을 습격했던 괴한들을 상대로 자신이 석두에게 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기에 얌전히 떨어지기로 한다.
만약 세미였다면 무슨 일인지 추궁하거나, 혹은 같이 행동하자는 제안을 먼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석두의 행동을 오히려 제한하는 일이라는 걸 서희는 잘 알고 있다.
알게 모르게 먼저 배려해 주는 서희의 행동에 석두는 그저 고마움을 담은 눈빛으로 잠시 그녀를 마주 응시해 주는 게 전부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먼저 서희를 올려 보낸 뒤, 쾌남이 있는 1층 방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빠르게 걸음을 재촉한 뒤 쾌남이 배정받은 103호 앞에 마주선 석두가 가볍게 노크를 시도한다.
똑똑.
“나다. 들어가마.”
“…….”
방 출입을 허가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거라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기에 일방적인 통보를 마친 뒤 곧장 문을 연다.
멀쩡하게 전등이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화면을 제외하고 꺼져 있는 불빛.
“잠깐 불 좀 켜도 되나?”
“…….”
쾌남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석두가 곧장 불을 켠다.
딱히 불을 켜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진 않다.
그냥 어두운 곳에서 밝은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눈이 나빠지기 쉬우니 말이다.
“그래, 뭐 찾아낸 거라도 있는 건가?”
“…있습니다.”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쾌남의 반응에 이제는 익숙해진 석두가 도리어 알아서 스스로 귀를 쫑긋 세운다.
“타깃을 찾았나 보군.”
“일단은… 얼추 찾은 거 같습니다.”
“누구지?”
“…유레희라고…….”
“유레희?”
“…네.”
아무래도 레이나가 지정하는 드래곤의 보물은 대다수 어느 정도 자산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배포되어 있다.
물론 드래곤의 보물 자체가 상당한 몸값을 자랑하기 때문에 돈이 있는 자가 아니고선 그 물건을 쉽사리 구입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류층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조사하는 도중에 많이 접했던지라 얼추 이름만 듣고도 이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있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유레희.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의류 쪽 사업을 통해 대박을 터뜨린… 소위 말해서 진수안과 같이 이른 나이에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거머쥐게 된 여성이라고 알고 있다.
아마 석두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진수안보다 오히려 나이가 더 젊을 것이다.
진수안도 그렇고, 인간의 상상을 그대로 형상화 시켰던 망상 실현기의 주인이기도 했던 오두철도 그렇고.
‘드래곤의 보물이라는 게 젊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인가 보군.’
사실 석두는 외형적으로 봤을 때 이들과 같은 젊은 세대에 속하긴 하지만, 그 전에는 30대 후반을 달리는 중년의 나이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나이 차이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서 얼추 그들이 드래곤의 보물을 원하는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니다.
젊을수록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드래곤의 보물을 소유한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또 다른 모험이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이능력을 얻게 되면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니게 된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기에 젊은 자들이 유독 드래곤의 보물을 구입하는 걸 선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준다는 말이 아니다.
석두도 그만의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남들과 다른 힘을 지니게 된다면, 분명 그에 합당한 책임도 따르게 되는 법이다.
망상 실현기가 시전자의 수명을 갉아먹듯, 드래곤의 보물은 특별한 능력을 주는 대신에 그에 따른 무언가를 앗아간다.
단순히 힘에 취해 훗날 잃을 것들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라도 석두가 직접 행동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 유레희라는 여자는 어디 있지?”
“…근처에 있는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위치를 알려줘.”
“…예.”
쾌남이 빠르게 주소를 복사해 석두의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내준다.
이것으로 유레희가 있는 주소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제 석두가 직접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방에 몰래 잠입해 유레희가 진짜로 드래곤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면 된다.
동시에 여건만 된다면, 확인에 그치지 않고 곧장 드래곤의 보물을 다시 빼앗아 올 생각도 하고 있다.
어차피 평범한 보디가드들은 석두를 막지 못한다.
쾌남에게서 주소를 받은 뒤 복도로 나서게 된 석두가 옅은 한숨을 내쉰다.
“빠르게 행동해야겠군.”
부하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늘상 그렇듯 드래곤의 보물과 연관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이제는 거의 가족처럼 지내게 된 적룡파 간부들.
웬만하면 이들을 사지에 몰아세우고 싶진 않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석두가 알아서 혼자 모든 것들을 해결하고 싶다.
다만, 몇몇은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적룡파 인원들을 대동해야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적룡파 인원들의 도움 없이 석두가 스스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기를.
남몰래 이런 소소한 바람을 품으며 빠르게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 * *
“하아… 하아…….”
여성의 야릇한 신음 소리가 퍼지기 시작한다.
“좀 더… 흣……!”
짧은 신음과 함께 절정을 맞이한 모양인지 젊은 여성이 더더욱 다리를 이용해 자신을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남자의 하반신을 몸 쪽으로 당겨온다.
“후우…….”
옅은 한숨을 내쉰 남자가 여성의 몸 위에서 내려와 근처에 있던 담배를 입에 물기 시작한다.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붙이자, 침대에 누워 있던 여성이 손을 내민다.
“나도 하나 줘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거부할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남성이 피식 웃음을 토해내며 불을 붙인 담배 하나를 건네준다.
자신과 함께 잠자리를 펼친 남성으로부터 담배를 받은 여성, 유레희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방금 전, 자신과 진한 관계를 유지했던 남자의 곁에 찰싹 달라붙는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더 좋은 거 같지 않나요?”
“…….”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자, 남자의 그런 반응이 미묘하게 거슬리는 모양인지 여성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다.
“영혼 없는 대답이군요.”
“하하, 아무래도 피곤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어머, 밤은 아직도 길다구요. 벌써 지치시면 곤란하죠.”
레희는 결코 남자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요염한 미소를 선보이며 더더욱 자신의 몸을 밀착시켜온다.
“그러고 보니 죽음의 눈에 부작용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네, 그랬었죠.”
사소한 거라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주긴 했지만, 남자는 다른 의미로 여자가 지니고 있는 드래곤의 보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수명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
그렇다면 과연…….
“저는 언제쯤 죽을 거 같습니까?”
그녀에게 직설적인 물음을 던지는 남자, 루틴이 똑바로 레희를 응시한다.
사람은 늘상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존재다.
생명의 불꽃은 한정적으로 타오른다. 이 불꽃이 언제 꺼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늘상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물론.
드래곤의 심장을 지니고 있는 루틴 또한 마찬가지다.
그도 결국은 사람에 불과하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유한한 시간을 지닌 존재.
그렇기에 늘상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은 언제 그 생명의 불꽃이 다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
말없이 루틴을 응시하던 레희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진다.
“당신… 오래 살진 못하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알고 있다면 다행이군요.”
애초에 오래 살 만한 안정적인 일은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언제 레이나에게 암살을 당해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최근의 적수는 레이나가 아니라 괴도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가급적이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게 어때요?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개 있잖아요. 하다못해 제가 일하는 곳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릴 수 있어요. 분명 당신이라면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건 다소 무리가 있는 스카우트 제의 같군요.”
“…….”
고작해야 레희를 거래 당사자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루틴이기에 그녀의 제안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보다 자신은 더 이상 평범한 일에 종사할 수는 없다.
이미 드래곤의 심장을 지니고 도주한 순간부터 평범한 삶과는 동떨어진 인생길을 스스로 택하게 된 셈이니 말이다.
레희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뭔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온 거 같군요.”
루틴의 눈빛이 가늘어진다.
그의 말에 의구심을 표하는 레희가 재차 질문을 던진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요? 그게 누구죠?”
“글쎄요. 저도 정확하게는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얼추 예상은 됩니다만.”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한 루틴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드래곤의 보물을 지니고 있는 유레희.
그녀를 노리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그 사람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도가 온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