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8
51화 정면대결 (5)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건물 위로 착지한 석두가 빠르게 옥상을 올려다본다.
‘아무도 없군.’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어두컴컴한 옥상 위를 올라올 만한 사람은 혹시나 해서 순찰을 도는 호텔 경비원 말고는 없을 터이다.
로비로 당당히 들어가 봤자 어차피 굳게 걸려 잠긴 호텔 방문을 뚫을 방법은 없다.
물론 마법을 이용해 문을 부수거나 혹은 순간이동 마법으로 문을 통과하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오늘 석두가 이곳, 신도 호텔에 온 이유는 유레희라는 인물이 정말 죽음의 눈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함이다.
쾌남이 준 정보에 의하면, 레희란 여자는 현재 3층 복도 맨 끝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보가 정확하다는 가장하에서 아마 타깃은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된다.
건물 옥상 위로 올라오기 전, 그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의 불빛이 켜져 있는 것까지 확인을 마쳤다.
호텔방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의 여부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
우선 다음 날에 펼쳐질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이곳 호텔에 대해 좀 더 면밀하게 조사를 해둘 필요가 있다.
더불어 쾌남의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판별을 하고, 최종적으로 유레희란 여자가 지니고 있는 죽음의 눈까지 전부 확인을 마치고 나면 곧장 작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석두는 그저 오늘, 선발대로 먼저 와 사전 확인 작업만 마치고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이곳 신도 호텔에 온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만약에라는 말이 있듯이, 괜히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지 몰라 우선 괴도의 상징이라 불리는 가면을 가져왔다.
누군가와 마주치더라도 석두가 아닌, 괴도라는 존재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슬슬 가볼까.’
침투 경로는 간단하다.
복도라든지 문이 아닌, 베란다를 통해 몰래 잠입할 예정이다.
베란다는 외부로 통하는 통로 중 가장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바닷바람이 솔솔 들어오게끔 통풍을 고려한다면 베란다를 열어두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그것을 노리고 침투 경로를 베란다로 설정하게 되었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마나를 양쪽 다리에 집중시킨다.
이제는 거의 무난하게 드래곤의 심장에 담겨져 있는 마나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 남자와의 일전을 통해서 마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동안 수련에 매진을 한 성과가 톡톡히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가볼까.”
스스로 기합을 넣으려는 듯이 짧게 읊조리며 옥상 난간에 오른다.
그러나 그 순간.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고 그러시나, 괴도님.”
“……!”
결코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석두를 반긴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기척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옥상에 갑자기 풍성한 마나의 기운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분명 김석두,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누군가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느 한 인물이 석두의 뇌리에 새겨진다.
얼마 전.
천리안 수정구 사건 때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조우하게 된 그 선글라스의 남자가 떠오른다.
“여성이 머물고 있는 호텔 방을 그렇게 함부로 잠입하려면 쓰나. 레이디에 대한 매너를 교육시켜줄 필요가 있겠군.”
“…….”
선글라스의 남성, 루틴이 석두를 바라보며 시원스럽게 미소를 건넨다.
어두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연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순수하게 시야가 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기운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레이나에게서 받은 드래곤의 심장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모조품에 불과하지만, 가짜라 하더라도 마나의 정수라 불리는 최고급 보물, 드래곤의 심장을 본떠 만든 모조품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랜만에 보니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군.”
“덕분에 말이지.”
“하하, 휴가는 잘 지내고 있나?”
“죽음의 눈을 가져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미안해서 어쩌나.”
루틴의 한쪽 입꼬리가 초승달을 그리듯 올라간다.
“자네, 즐거운 휴가를 못 보낼 거 같은데.”
“그런 건 함부로 확신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얼마 전에 너와 겨뤘던 과거의 나라고 안심하다간 큰코다칠 테니까.”
“방심은 금물이란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가 보군.”
옅은 웃음소리를 내뱉기 시작하는 루틴.
한 명은 괴도의 가면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비교적 렌즈의 크기가 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쉽사리 알아차리기 힘든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도 있던데, 기왕 이렇게 만난 김에 서로 얼굴이라도 공개하고 인사나 나누는 게 어떤가?”
“…….”
“일종의 친목이지. 자네가 내 목숨을 앗아 갈 수도, 그리고 내가 자네의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지 않나?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얼굴 정도는 봐두는 게 그나마 이 세상을 떠나는 데 미련이 없어질 법한 행동이라고 보는데.”
“말 한번 잘하는군.”
석두가 피식 웃음을 토해낸다.
“고작해야 말다툼 따위를 하려고 옥상에서 매복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렇다면 실망이로군.”
“하하… 말이 안 통하는구만.”
석두가 스스로 가면을 벗게끔 유도를 해봤지만, 루틴의 이런 사탕발림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차피 미련은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가면을 벗은 채 자신의 존재를 외부로 드러내진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두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스스로가 괴도라는 걸 숨겨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작해야 세 치 혀에 넘어가 본인의 손으로 가면을 벗어 정체를 드러내 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그저 시도만 해봤을 뿐이지, 루틴으로선 크게 미련이 남을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루틴의 목표는 방어전이다.
죽음의 눈을 소유하고 있는 레희의 신변에 안전을 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몰래 숨겨뒀던 창으로 괴도의 뒤를 칠 것이다.
방어와 공격, 두 가지를 전부 소화한다.
그게 바로 루틴의 이번 작전이다.
반면, 괴도 김석두의 작전에는 뒤가 없다.
오로지 공격이다.
레희에게서 죽음의 눈을 되찾아 레이나에게 바친다. 그 어떠한 난관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해 내야 한다. 그게 레이나로부터 드래곤의 심장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가. 한번 자웅이라도 겨뤄볼까?”
루틴은 지금 당장에라도 싸울 준비가 끝났다는 식으로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한다.
하나 석두는 달랐다.
“거제도로 놀러오기까지 했는데, 굳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진 않은데 말이지.”
“…….”
“네가 여기서 잠복을 하고 있을 때부터 이미 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무리하게 다음 플랜에도 없는 전투를 치르고 싶진 않아. 그게 내 스타일이거든.”
“계획적인 인물이구만.”
루틴 또한 상대방이 전의(戰意)가 없음을 알고 자세를 푼다.
어차피 자신이 죽어라 덤벼봤자 석두는 오히려 반대로 죽어라 도망을 칠 것이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아니, 비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애초에 두 사람에게 능력을 준 것은 다름이 아닌 드래곤의 심장이라는 보물이다.
이 보물의 능력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진품을 지니고 있는 레이나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드래곤의 심장을 그 이상의 출력까지 끌어 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이 진심으로 붙게 된다면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이기거나 질 수 있음을 뜻한다.
탐색전에서 굳이 목숨까지 걸고 싶진 않다.
그건 석두도, 그리고 루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석두는 루틴과 옥상에서 마주쳤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이득을 봤다.
루틴.
그가 있다는 건, 곧 유레희가 죽음의 눈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소유자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루틴이 일부러 유레희가 진짜 죽음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선보이기 위한 허장성세(虛張聲勢) 전략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석두는 다방면으로 정보를 모았고, 그 정보의 끝에 도달한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대치 상황이다.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봐도, 유레희가 죽음의 눈을 소유한 당사자임은 거의 틀림이 없다 봐도 무방하다.
이득을 본 상황에서 굳이 시간을 더 끌며 자신의 이점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서로 안부도 확인했으니, 난 슬슬 가보도록 하지.”
“…….”
“쫓아오고 싶다면 쫓아와도 돼. 하지만 그사이에, 내 부하들이 유레희라는 아가씨를 급습하겠지. 그리고 네가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뭐지?”
루틴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다.
석두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대략 눈치를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나가 여기에 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
석두가 레이나의 존재를 언급한 건 대략 이런 뜻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자신을 추적하지 말라.
만약 무리하게 석두를 추적하게 되면, 그 끝에 레이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루틴은 레이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여기서는… 장군 대신 멍군의 수를 던질 때이다.
그 멍군의 수는 크게 어렵지 않다.
바로 석두가 자리를 뜨는 걸 그저 지켜만 보면 된다.
“머지않아 보게 될 거다. 각자 진영을 잘 갈고닦아서 다음에 있을 승부에 대비해 보자고.”
“…기억해 두지.”
그렇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남기고 빠르게 자리를 뜨는 석두.
마치 그의 말은 내일 있을 정면 대결을 예고하는 듯했다.
* * *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석두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간부들을 소집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석두의 연락을 받자마자 곧장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 방으로 전부 집합하게 된 적룡파 간부 인원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다 모였음을 확인한 석두가 중대한 말을 들려준다.
“내일, 바로 작전에 들어간다.”
“작전이라 함은……”
벙찐 표정으로 되묻는 망치를 향해 석두가 재차 강조하듯 말한다.
“쾌남이 방금 타깃을 찾아냈다. 타깃의 위치를 확인했다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겠지.”
게다가 루틴이 있음을 직접 확인했으니 시간을 지체했다간 분명 그쪽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게 분명하다.
혹시나 이들이 도망을 칠까 봐 우선 부하 몇몇을 대동해 감시원으로 붙여뒀다.
이들이 뭔가 대이동을 펼치게 된다면 곧장 연락이 올 것이다.
물론 석두도 루틴이 레희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루틴 또한 적지 않은 부하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다.
그 말뜻은, 분명 석두가 이곳에 올 거리라 예상을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희를 여기에 계속 데리고 있었다.
아마 루틴 역시 마찬가지로 괴도와 정면 대결을 펼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선글라스 남자…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호기가 있단 말이지.’
적으로서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석두 또한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아니, 훔치느냐, 마느냐.
피할 수 없는 갈림길에 선 두 남자들의 정면 대결이 머지않아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