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5
5화 침투 (2)
“혼자인가?”
“…그런데요.”
“원한다면 합석이라도 하지? 저녁 겸으로 치맥 하러 왔다면 내가 사도록 하지.”
“…….”
못마땅한 시선으로 석두를 바라보던 세미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면서 같은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의자 하나에 엉덩이를 걸터앉는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보다…….”
세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망치를 가리킨다.
“저 사람, 조폭이에요?”
“아니, 도둑이야.”
“그게 더 문제 있잖아요.”
“농담이라고.”
“…….”
순간 할 말을 잃은 세미.
그때, 종업원이 때마침 맥주 500cc를 가져온다.
“맛있게 드세요.”
“아… 네.”
고개를 끄덕인 세미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맥주 정도는 마실 수 있다.
“역시 당신은 술집 여자랑은 안 어울려.”
“이제 관뒀으니까 됐잖아요.”
거칠게 맥주잔을 내려놓는다.
“그나저나 제 질문에 대답 안 하실 거예요?”
“남자가 하는 일에 아녀자가 일일이 참견하면 좀 그렇다고 하던데.”
“무슨 헛소리예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랑 동행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 저지를까 봐 불안해서 그렇죠.”
“아, 그렇게까지 수상한 행동할 생각은 없어. 그저 잠깐 뺏긴 물건을 되찾을 생각이니까.”
“도둑이라도 맞았어요?”
“뭐, 그렇지.”
석두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적월도는 본인의 물건이 아니다.
숙면기에 접어든 레드 드래곤의 레어에 있던 수집품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저랑 비슷하네요.”
약간 취기가 올라온 탓일까.
깊은 한숨을 내쉰 세미가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저도 악덕 사장한테 도둑맞았거든요.”
“무엇을 빼앗긴 거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요.”
다시 한 번 술잔을 기울이는 세미.
석두가 슬쩍 맞은편에 있는 망치에게 눈짓을 보내자, 고개를 끄덕인 망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바깥으로 나선다.
“얼마 전에 일하고 있던 공장에서 짤렸거든요. 퇴직금도 못 받고 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죠.”
“흐음.”
“당신도 TV 같은 건 보겠죠? 뉴스에 대문짝만 하게 나왔잖아요. 성진그룹 파업 사건.”
김진수가 운영하는 회사명이 튀어나왔지만 석두는 마이 페이스를 유지한다.
대한민국 땅이란 참으로 좁다.
건너 건너 알고 보면 친구에 친구, 적어도 8촌 이내의 친인척 관계는 다 나오게 마련이다.
“일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동료들이랑 웃고 지내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고아원에서 자란 탓에 대학 진학도 못 하고 어린 애들이라도 공부시키기 위해서 공장에 취직했는데… 하아.”
세미가 자신의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눈물이 나올 거 같은 모습을 낯선 남자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다른 쪽에 취업을 하려 해도 이상하게 절 꺼려하는 기분이에요. 혹시 파업에 연루되어 있어서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이제 전… 어떻게 하면 좋죠?”
솔직히 앞날이 막막하다.
다른 공장에 취업을 하려 해도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받아주질 않는다.
‘김진수 사장의 뒤끝인가.’
마저 술잔을 기울인 석두.
이윽고 잔을 내려놓은 뒤 세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취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
“…저도 알고 있어요.”
가게에 나오면서 계산을 마친 석두를 기다렸다는 듯이 망치가 담뱃불을 끄며 다가온다.
“이제 슬슬 시간입니다, 형님.”
“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그년이 무슨 헛소리라도 한 것입니까?”
“아니. 그냥 뭐.”
석두가 짙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심의 밤하늘은 이제 더 이상 별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깜깜해졌다.
그리고 그 깜깜한 하늘 밑에서 소시민들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소시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모기 같은 녀석들은 여전히 상류층에 군림하고 있다.
되찾아야 할 물건은 적월도.
그리고 방금, 석두의 의뢰에 또 한 가지 의뢰 품목이 추가되었다.
“잃어버린 신뢰라…….”
“예?”
“…아무것도 아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석두의 뒤를 망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도둑이란.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그때 당시 도둑질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석두는 왠지 모르게 당당해지고 싶었다.
그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뿐이지, 실제로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던 시민이다.
그런데 왜 그가 당당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솔직히 말해서 형님의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망치가 석두의 계획을 처음 접했을 때 했던 말을 되풀이한다.
“선택을 후회하는 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게 더 스릴이 있어서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치가 피식 웃으면서 스마트 폰을 꺼내 든다.
“쾌남. 작전 시간이다.”
망치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 한 명이 다급하게 노트북을 들고 온다.
이들이 현재 서 있는 곳은 바로 김진수의 도검 박물관.
저택으로 보이지만, 주거용이 아닌 도검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다.
일종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망치가 석두에게 말하며 주머니 속에서 작은 핀셋을 두 개 꺼낸다.
그러더니 저택의 대문 열쇠 구멍 안으로 삽입한다.
이윽고.
딸깍딸깍거리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리더니.
철컹!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제법이군.”
“제가 원래 열쇠공이었지 말입니다.”
“어쩌다가 이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지? 그대로 열쇠공 일을 했다면 됐을 텐데.”
“개인 사정이라는 게 있습죠.”
사람에게는 저마다 사정이라는 게 있다.
듣고 싶은 충동도 있었지만, 석두는 시간을 지체할 생각은 없었다.
“2차 관문입니다.”
망치가 조직원에게 슬쩍 턱으로 저택 문을 가리키자, 조직원이 노트북을 꺼내 안구 인식 장치에 연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뭐? 불가능하다고?”
스마트 폰 너머로 들려오는 쾌남의 부정적인 말에 망치가 혀를 찬다.
히키코모리라서 차마 이곳으로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격이 안 된다면 직접 본인이 와서 했으면 될 터이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체질이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어쩔 수 없군.”
석두가 저택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외벽 쪽에는 딱히 어떠한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보고를 받았다.
정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저택 내부까지 총 25대의 CCTV가 있지만, 그것들은 쾌남이 해킹을 통해서 특정 시간의 CCTV 영상을 반복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오로지 1시간.
그 1시간 안에 이 저택에 침투해야 한다.
“어디 보자.”
근처를 둘러보고 온 석두가 망치와 부하를 부른다.
“너희 말이야.”
석두가 짙은 밤인데도 손그늘을 만들어 보이며 저택의 지붕 쪽을 가리킨다.
“집 위에 구멍이 뚫린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 거 같냐?”
“그야…….”
“집 내부에 있다면 알아차리지 말입니다.”
부하 한 명이 망치의 말을 끊으며 대답한다.
“그렇다면 외부에 있을 때는?”
“외부에서 지붕이 보일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 정해졌군.”
석두가 두 다리에 마나를 집중시킨다.
파바박!
지면을 박차며 순식간에 지붕 위쪽으로 올라간 석두.
그의 기행에 두 남자는 입이 쩍 벌어진 채 석두의 행동을 지켜본다.
“기왓장 형태인가.”
도검 수집가답게 고풍스러운 취향을 지녔는지 저택 지붕도 일반 가택이 아닌 한옥을 혼합한 형태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일이 쉽겠군.”
지붕 한 가운데를 향해 석두가 사일런스와 더불어 스트랭스를 오른쪽 주먹에 시전한다.
두 가지 마법을 복합적으로 실행하는 건 아직까지 클래스 초급에 불과한 석두에게 있어서는 꽤나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지만, 곧바로 어렵지 않게 해낸다.
콰과광!!!
주먹을 지붕 위로 내지르자,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사일런스로 석두의 주변 일대의 소음을 차단해 뒀기 때문에 근처 민가에는 이 굉음이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무수한 시멘트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자, 석두가 가볍게 옅은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날려 보낸다.
“통로 개설 완료.”
안구 인식 시스템을 뚫진 못했지만, 그 대신 다른 활로를 개척했다.
사람 하나가 내려가기에는 충분한 구멍을 뚫은 석두가 밑에서 대기 중인 망치와 조직원에게 손짓한다.
“올라와라. 들어갈 통로를 마련했다.”
“…….”
한참 석두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망치와 조직원.
“니들, 뭐하냐?”
석두가 참다못해 묻자, 망치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그… 단번에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저희에게는 없지 말입니다.”
“…….”
잠시 잊고 있었다.
저들은 도둑질에 관해선 프로지만, 석두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단 사실을.
석두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지붕에 사람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냈는지에 대해선 불문에 부치기로 합의를 본 망치와 조직원.
“끙차!”
거대한 덩치의 소유자, 망치가 마지막으로 땅에 쿵! 소리를 내며 착지한다.
저택 내부에는 CCTV라는 실시간 감시 체계가 되어 있었기에 별도로 보안장치에 대해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멍청한 도둑이 도검을 훔치러 오겠는가. 차라리 간편한 현금 혹은 도검에 비해 휴대성이 높은 고가품을 훔치는 게 훨씬 낫다.
“어디 보자.”
저택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한 석두가 1층으로 내려온다.
“저거군.”
레이나로부터 받은 의뢰서에는 목적물의 내용뿐만 아니라 외형도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으로 직접 찍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형태가 명확하게 나와 있는 그림이 있어서 쉽사리 적월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슬쩍 손을 내밀어 적월도를 칼집째로 집어든 김석두.
“…음?”
손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기운이 순간 석두를 당황케 만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별다른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뭐지, 이 기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뒤끝이 남아 있었지만, 시간을 계속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적월도만 특별히 석두가 직접 챙긴다.
“쓸어 담아라.”
“예, 형님!”
벽에 걸려 있는 도검뿐만 아니라 고이 모셔져 있는 도검까지 전부.
심지어 별도의 도검 전용 금고조차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못했다.
열쇠공으로 활약했던 망치의 테크닉에 걸리면 제아무리 따기 힘든 자물쇠라 하더라도 전부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러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금고 같은 경우에는 석두가 직접 나서게 된다.
“물러서라.”
망치와 조직원에게 경고를 내린 석두가 다시 한 번 오른 주먹에 스트렝스를 건다.
이윽고 주먹을 내지르자.
콰광!!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금고는 약간 뭉그러질 뿐,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녀석은 제법 단단하군.”
다시 한 번 주먹을 세차게 내지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단단한 금고라 하더라도 석두의 스트렝스 버프를 받은 연속적인 주먹질에 찌그러지다 못해 산산히 부서지기 시작한 금고.
그 잔해 속에서 도검을 몇 자루 꺼낸 뒤 망치에게 투욱 던져준다.
“제법 값어치가 있는 놈인 거 같으니 특별히 챙겨둬라.”
“예!”
저택 내부에 있던 도검들을 싹 쓸어버린 뒤, 다시 내려왔던 지붕을 통해 올라간 이들.
이윽고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멀쩡하게 저택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