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50
53화 격돌 (1)
망치와 번개가 카운터 종업원들을 상대하고 있을 무렵.
“…….”
석두는 남몰래 비상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고 했으나, 비좁은 공간에서 무슨 짓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굳이 자신의 위기를 자초하고 싶지 않은 터라 계단이란 수단을 선택하게 된 석두가 천천히 문고리를 잡는다.
그와 동시에.
“어이쿠, 이런. 실례합니다.”
“…아닙니다.”
때마침 호텔 복도를 청소하던 중년의 청소부 남성과 마주치게 된다.
괜찮다는 듯이 가볍게 남성을 지나치는 석두.
하나, 사건은 이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괴도님께서 이번에는 야심한 새벽에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
순간 석두의 오른손이 남성에게로 향한다.
마법을 발동시키려던 찰나였으나, 이미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었다.
펄럭 소리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석두의 발밑에 깔린다.
동시에 석두의 발아래에 사람 형태를 하고 있는 작은 종이가 놓인다.
무심코 그 종이를 집어 든 석두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쏟아진다.
“마법인가……!”
드래곤의 심장을 가지고 있기에 마나의 잔재 역시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종이 인형이 자신과 마주쳤던 청소부 남성이었음을 깨달은 석두가 빠르게 계단 입구를 벗어나 호텔 로비로 향한다.
타다닥!!
로비에 들어서자, 석두가 우려했던 그대로 당황한 모습의 망치와 번개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두, 두목님!!”
“무슨 일이냐.”
“방금 전까지 저희랑 이야기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망치와 번개, 두 사람의 눈에 적지 않은 당혹감이 물들어 있었다.
“잠깐만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두 사람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석두가 곧장 카운터로 향한다.
그러면서 바닥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역시나 마찬가지로 사람 형태의 종이들이 널려 있었다.
“그자의 짓인가.”
안 봐도 뻔하다.
루틴이 저지른 짓일 게 틀림없다.
짧게 혀를 차며 종이를 그대로 찢어버리는 석두.
그때, 망치와 번개가 놀라 새된 비명을 지른다.
“두, 두목니임!!!”
“이번에는 또 뭐냐.”
“저, 저기… 저길 보십시오!!! 사, 사람들이……!”
망치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린 석두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어그적거리며 천천히 석두 일행을 포위하기 위해 걸어오는 사람들.
초점이 없는 눈동자.
행태가 마치… 영화에서 보던 좀비와 흡사하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도 몰라, 이 녀석아!!”
번개가 놀라 묻자, 망치가 되려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숫자도 상당히 많다.
게다가 복장으로 보아선 호텔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투숙하고 있는 고객들까지 전부 다 대동한 듯하다.
“…속았군.”
함정이 있을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호텔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뒀을 줄이야.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저자들은… 진짜 사람들인가.”
방금 전, 자신이 목격했던 호텔 직원들은 단순히 루틴의 마법에 의해 움직였던 가짜에 불과하다.
하나 마나의 기운으로 어림잡아, 저들은 진짜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틀림없다.
아마도 대행으로 종이 인형들을 둔갑시켜 두고 겉으로는 정상적인 호텔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이 건물 내에 있던 모든 인간들을 납치해 정신을 세뇌시켜 석두를 공격하게끔 함정을 파둔 게 아닐까 싶다.
“번거로운 일을 하는군.”
석두가 이를 잘근 깨물기 시작한다.
차라리 저들이 종이 인형이었다면, 마음껏 공격 마법을 써서 일망타진(一網打盡)의 기회를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함부로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거둬들이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나도 많다.
게다가 만약 사람들의 목숨을 전부 앗아 갈 경우, 괴도에 대한 이미지에도 커다란 누를 끼칠 우려가 크다.
석두가 연기하는 괴도란 존재는 서민들로부터 ‘신(新) 홍길동’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괜히 필요 없는 살생(殺生)을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그 이미지가 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을 것이다.
도둑질에 대한 정당한 의미를 유지해 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아선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들을 상대할 여유 따윈 없다.
석두가 노리는 건 유레희가 지니고 있는 죽음의 눈, 단 하나뿐이니까.
“망치, 번개.”
“예!”
“네, 두목님!”
“애들 불러서 최대한 저 사람들 안 다치게 제압해 둬라. 알겠냐.”
“제, 제압 말입니까?!”
망치가 재차 석두에게 진심이냐는 식으로 되묻지만, 계속 왈가왈부 떠들 시간조차 없다.
“그래. 가급적이면 제정신 차릴 때까지 묶어두든가 알아서 해!”
“아, 알겠습니다!”
망치와 번개, 두 사람이서 저 많은 사람들을 감당해 낼 순 없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원군을 부르기로 선택한 석두였다.
적룡파 인원들도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방치해 둘 순 없지 않겠는가.
‘그 녀석… 쓸데없는 일을 벌여뒀군!’
빠르게 사람들을 재치며 유레희가 머물고 있는 호텔 방으로 향한다.
석두를 잡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따라붙기 시작하지만, 마법으로 그들의 행동을 묶어버리는 것으로 임시 조치를 취한다.
세뇌당했을 뿐이지, 저들 한 명 한 명이 전부 다 마법을 이겨낼 능력을 가지고 있진 못하다.
마치 좀비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유레희가 머물던 방문을 거칠게 발로 차 부숴 버린다.
빠르게 안으로 들어선 석두였으나, 그의 예상대로 그곳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이 건물 안에 있을 터인데…….”
적어도 건물 외부로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호텔 방들을 이 잡듯이 뒤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루틴을 쓰러뜨리고 죽음의 눈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급적이면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완수해야 하는 것이 석두의 일차적인 목표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호텔 투숙객들을 포함해 직원들까지 석두 일행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인질로도 활용할 수 있다.
여러모로 괜찮은 수를 둔 셈이지만, 정작 당하는 입장에서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다.
‘찾아야 한다……!’
빠르게 마나의 기운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드래곤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그 거대한 마나 덩어리를 숨기긴 힘들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면서 루틴과 유레희의 위치를 수색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석두가 절로 혀를 찬다.
‘날 놀리는 건가.’
마나의 기운이 포착된 곳은…….
다름이 아닌 ‘옥상’이다.
“그렇게까지 정면 대결을 원한다면… 가주도록 하지!!”
석두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 * *
한편.
망치의 연락을 받고 호텔 로비로 급습한 적룡파 인원들.
이들을 이끌고 도착한 창민이 짧게 혀를 찬다.
“지옥이 따로 없구만.”
사람들이 좀비마냥 걸어오는데,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약간이나마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인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두목님이 뭐라고 했었지?”
사람들을 피해 대기하고 있던 망치가 석두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기 시작한다.
“가급적이면 강도 높은 폭력은 사용하지 말고 저들을 제압하라고 했습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겠단 뜻이군…….”
석두다운 판단이다.
괴도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저들을 죽이거나 해선 안 된다.
그것보다도 창민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저들이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해선 두목님께서 별도로 말씀해 주신 건 없나?”
“그것까진… 듣지 못했습니다!”
“…….”
역시 뭔가가 있다.
김석두. 이 남자에게 연관되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투성이다.
그것이 창민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지신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었기에 알아내려 해도 도저히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석두의 말에 따르는 게 최선으로 보인다.
“두목님 말대로 행한다. 가자, 애들아!”
“예!!”
창민을 필두로 적룡파 인원들이 호텔 로비로 다시 입성한다.
적룡파들이 난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투숙객과 직원들이 이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이 정도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다.
부웅!!
창민을 향해 날아드는 투숙객 한 명.
제법 덩치가 있어 보이는 남성이지만, 창민은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남성이 날아오는 힘을 역으로 이용해 멱살을 집고 그대로 엎어치기 한 판을 시도한다.
쿠웅!!
지면에 그대로 얼굴을 박은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무자비한 폭력은 삼가라는 석두의 명이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저항을 해오는 사람을 상대로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제압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너희도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끝내라.”
“아, 알겠습니다!”
창민의 시범을 본 적룡파 인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한다.
* * *
옥상으로 향한 석두의 앞에는 몇 시간 전 만났던 루틴의 모습이 변함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이군.”
“그러게 말이야.”
설마 옥상에서 다시금 진을 치고 석두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들이 원하는 건 시간을 끄는 일이 아니었는가?
괴도가 활약할 시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즉시, 석두는 지금 이 작전을 그만두고 철수를 감행해야 한다.
보는 눈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괴도의 행동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두는 루틴이 최대한 오래 시간을 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였다.
오히려 석두가 찾기 쉬운 장소를 골라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어리석은 것인지, 아니면 배포가 있는 것인지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석두의 입장에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는 것엔 변함이 없다.
물론 그의 목적은 죽음의 눈을 지니고 있는 유레희다.
그러나 드래곤의 보물을 팔고 다니는 상인 역할을 도맡고 있는 루틴을 여기서 제거하게 된다면, 앞으로 레이나에게 의뢰를 받아 매번 괴도 짓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루틴만 제거하면 된다.
그가 유레희를 몰래 탈출시켰다 하더라도, 다시 그녀의 행적을 찾아내면 그만이다.
어차피 죽음의 눈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 유레희라는 여자라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미 신원 파악을 완료했는데, 두 번째 수색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석두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저 남자를 제거한다!’
석두의 두 손에 강한 마나 덩어리가 응집되기 시작한다.
한편, 석두의 그런 반응을 지켜보던 루틴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그 또한 석두와 마찬가지다.
여기서 괴도를 없애야 자신의 일이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석두와 루틴.
그리고 괴도와 보물을 파는 상인.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서로 결판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