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52
55화 격돌 (3)
드래곤의 심장.
마나의 정수라 불리는 보물이 아직도 체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듯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의 심장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나 외형이 어찌 되었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레이나의 손이 루틴의 몸을 꿰뚫었단 점이다.
“네, 네년이 어느새……!”
“어머, 내가 근처에서 대기 중인데 설마 이 싸움에 관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큭……!”
이미 레이나가 이곳에 왔다는 점을 안 시점부터 루틴의 패배는 확정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틴은 어떻게 해서든 석두와 마주해야 했다.
괴도란 자를 없애지 못하면, 자신이 돌아갈 곳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의 눈을 지니고 있는 유레희를 인질로 삼다시피 해 이곳으로 석두를 유인했다.
그럴싸한 함정도 파놨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레이나가 이곳 거제도까지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푸슉!!
루틴의 몸을 꿰뚫은 손을 과감하게 빼버리는 레이나.
그 덕에 루틴의 상반신에는 거대한 구멍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심장을 잃게 되면 사람의 생체 기능은 정지한다.
“허억… 헉…….”
서서히 죽음을 맞이해 가는 루틴.
점점 감기는 눈.
얼굴에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진작 레이나에게 죽임을 당했어야 할 목숨이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연명하고 버티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기왕이면 좀 더 버티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죽어가는 루틴을 내려다보던 석두가 굳게 입을 다문다.
루틴과 자신은 적이다.
드래곤의 보물을 고위 관료층들에게 파는 보물 상인과 그 보물을 다시 되찾아야 하는 괴도의 관계.
그러나 석두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루틴에게 의미심장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
레이나를 조심해라.
그녀는 언젠가 네 인생을 영원히 구속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나도 알고 있어.’
일찌감치 드래곤의 심장을 얻으면서, 그리고 마법이라는 능력을 얻으면서 동시에 석두는 머릿속 깊은 곳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언젠가는 레이나에게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고.
인간의 배신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레이나다. 더불어 석두의 전임자들도 모조리 그 목숨을 레이나의 손으로 빼앗아 갔다고 했다.
물론 아직까지 레이나에게 별반 눈에 띄는 반항 같은 의사는 내비친 적이 없다.
하나 훗날, 석두는 과연 레이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갑과 절대적인 을의 입장에서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루틴은…….
평생의 을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서서히 신체 기능을 정지해 가는 걸 몸소 느끼는 루틴.
이윽고…….
석두의 전임자였던 그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한 남자의 비참한 최후였다.
“후우, 드디어 골칫덩어리를 없앴네.”
반면, 레이나는 별다른 감정 변화를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루틴에게 줬던 드래곤의 심장을 다시금 손에 쥐어 보인다.
동시에…….
꽈직!!!
오른손에 들려 있던 드래곤의 심장을 그대로 박살을 내버리는 게 아닌가.
심장이라는 형태에서 그저 핏덩이로 변모한 드래곤의 심장이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아깝지 않은가?”
석두가 형식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모조품이라 하더라도 드래곤의 심장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드래곤의 심장을 스스로의 손으로 제거해 버렸다.
“어차피 모조품은 또 만들 수 있으니까. 애초에 이런 걸 남겨두게 되면, 루틴 같은 녀석이 또 생길지도 몰라. 그렇다면 차라리 없애 버리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렇군.”
미연에 생길 후환(後患)을 방지하고자 스스로 만든 드래곤의 심장을 파괴한다.
석두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차피 레이나는 드래곤의 심장과 비슷한 희귀 능력을 지니고 있는 보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도둑에게 빼앗긴 상황이지만, 모든 보물을 갈취당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석두와 같은 하수인을 만들어두면, 알아서 보물을 찾아줄 것이다.
별다른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자, 이제 죽음의 눈을 찾으러 가야지.”
“…위치를 알고 있나?”
“물론.”
레이나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가볍게 윙크를 건넨다.
방금 전에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기사.
레이나는 드래곤이다.
사람 한 명 한 명의 목숨 같은 건 그저 인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개미들의 목숨과도 같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죽여봤자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하찮은 목숨.
레이나에게 인간이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 * *
“두목님, 이쪽입니다!”
망치가 오른손을 붕붕 흔들며 석두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얼굴 여기저기에는 멍과 할퀸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 부상은 뭐지?”
“이 녀석들을 제압하느라 생긴 부상입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평소 싸움판을 전전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 부상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하하하!”
호텔 안에서 루틴의 정신조작 마법에 의해 강제로 조종당한 사람들을 줄로 포박해 놓은 적룡파 인원들.
이들의 얼굴과 몸은 망치와 같이 상처투성이로 물들어 있었다.
석두는 가급적이면 이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사로잡아 제압을 하라는 식의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하나 그 명령 덕분에 자신의 부하들이 고생을 하게 된 셈이다.
“…미안하군. 내가 괜한 명령을 내린 거 같아서 말이야.”
“아닙니다! 두목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희가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
순간적으로 레이나와 루틴의 관계가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무엇이든 강제적으로 시키는 절대 갑의 입장과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절대 을의 입장.
석두와 적룡파 인원들의 관계도 대략 그러할까?
‘…아니, 난 레이나처럼 되지 않겠다.’
애초에 석두는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보는 드래곤이 아니다.
영겁의 세월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는 드래곤과 김석두, 두 존재가 어찌 같은 입장을 고수할 수 있겠는가.
루틴의 죽음을 본 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당사자인 석두도 정확하게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결고 이 감정을 레이나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호텔에 있던 모든 인원들은 전부 다 모아뒀겠지?”
“예, 그렇습니다.”
망치가 다시 한 번 석두의 물음에 기운차게 대답한다.
루틴과의 싸움은 레이나의 참견으로 인해 허무하다 할 만큼 간단하게 종료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게 있었다.
‘이중에… 유레희가 있을 터인데.’
적룡파에 의해 신변을 구속당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을 응시한다.
루틴은 죽였지만, 그가 데리고 있던 유레희의 흔적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혼자서 도망치게끔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주변 일대를 철통같이 막아서고 있는 적룡파 인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빠져나간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 백여 명 중에 유레희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석두에게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투숙객들과 종업원들에게 최면을 걸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백여 명의 사람들 속에 유레희를 몰래 심어 넣는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신분도 안전해질지도 모른다.
루틴과 함께 다니며 행동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타깃을 석두에게 대놓고 보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유레희를 마치 최면에 걸린 투숙객처럼 꾸며 뒤 이들 속에 심어 넣어두는 것이 그녀의 신변을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다.
결국 적룡파 인원들에게 혼란을 심어주려는 것도 목적이지만, 또 다른 목표로 유레희를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최면 작전을 펼친 게 아닐까 싶다.
석두라면 분명 최면에 걸린 이들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들어 갔다.
실제로 석두는 적룡파 인원들에게 최면에 빠진 무고한 시민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덕분에 밧줄에 포박당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백여 명이나 된다.
만약 이 광경을 지나가던 제3자가 봤다면, 인신매매 현장인 줄 오해하고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인력을 대동해 주변 통제를 해서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유레희를 찾아내는 작업에 큰 지장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망치.”
“예, 두목님.”
“이 안에 유레희라는 여자가 있을 거다. 애들을 대동해서 찾아봐라.”
“알겠습니다!”
망치에게 지시를 내려둔 뒤 석두 또한 천천히 포박되어 있는 사람들의 안면을 살펴간다.
유레희의 성별은 여자다.
기본적으로 남자들은 제외하고 젊은 여자들만 쭈욱 훑어보며 누가 유레희인지 수색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석두는 죽음의 눈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루틴의 죽음과 의뢰를 수행해야 하는 일은 별개다.
평범한 인간의 손에 드래곤의 보물이 넘어가게 되면, 그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선 이미 석두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레이나의 억압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망상 실현기와 같이 괜한 피해가 양성되지 않게끔 드래곤의 보물을 회수해 두는 편이 좋다.
“…역시나…….”
어느 한 여성의 앞에 걸음을 멈춘 석두가 조심스럽게 오른팔을 뻗는다.
사진으로 봤던 유레희의 모습과는 다르다.
하나 석두는 이것이 루틴의 속임수라는 걸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우웅!
가벼운 울림과 함께 여성의 모습이 점차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니, 변하는 게 아니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여름의 아스팔트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마냥 시각의 왜곡이 한바탕 지나가자, 낯선 여성의 모습에서 다시 유레희의 모습을 되찾는다.
“찾았군.”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유레희를 바라보며 말을 꺼낸 석두.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유레희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여, 여긴……?!”
“정신이 드는 모양인가 보군.”
혹시 몰라 재차 가면을 다시 쓴다.
괴도의 모습을 알아차리자 레희가 새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괴, 괴도! 어, 어째서 여기에… 그, 그보다 루틴은?!”
“그자는 이미 죽었다.”
“마, 말도 안 돼… 그자가 죽을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여기에 레희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의 눈을 회수하고 돌아가기만 하면 될 터인데…….
“망설이고 있구나, 괴도 씨.”
레이나가 석두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툭 치고서 레희에게 다가간다.
석두도 죽음의 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망설임은 불필요한 습관이야.”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레이나가 석두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던져 준다.
이윽고…….
푹!!
레이나의 손이 레희의 한쪽 눈을 잡고 꺼낸다.
“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당황한 레희였으나, 머지않아 한쪽 눈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또다시 피로 물든 레이나의 손.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