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54
57화 내면의 갈등 (2)
레이나 덕분에 적룡파에는 적지 않은 동요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잠시 레이나를 호출하는 석두.
노크도 없이 대표 사무실 문을 벌컥 열면서 들어오는 레이나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앉아봐라. 할 말이 있으니까.”
“또 뭔데. 의뢰라면 아직 멀었을 텐데.”
“앉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
어차피 레이나는 적룡산업 빌딩까지 직접 찾아왔다.
그녀의 행동이 의미하는 건, 곧 그녀 또한 석두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다.
“어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석두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 레이나.
그녀를 앉히고 나서 본격적으로 그녀를 호출한 용무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거제도에서 네가 보여준 행동 덕분에 적룡파 인원들은 현재 적지 않은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 혹시 알고 있나?”
“얼추.”
“그런 일이 벌어질 거란 사실도 너라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인 건지 설명부터 해보실까.”
석두가 말릴 틈도 없이 레이나는 독단적으로 레희를 죽이고 죽음의 눈을 빼앗았다.
물론 석두가 그녀의 행동에 잘잘못을 가릴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드래곤이다.
그리고 죽음의 눈은 본래 그녀의 것이었다.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레이나라면, 레희의 목숨보다는 죽음의 눈을 회수하는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석두도 그런 점은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거제도에서의 일전은 석두 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석두가 직접 루틴을 쓰러뜨린 건 아니지만, 레이나의 개입으로 인해 루틴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이미 게임은 끝난 셈이다.
레희의 존재도 수색을 통해 알아냈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죽음의 눈을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독단적으로 강압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 덕분에 적룡파 내부에서도 꽤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야기되었다.
이건 석두가 바라고 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나 이미 일은 발생했다.
지난날을 후회해 봤자 현재와 미래의 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사후 대처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 일 중 하나가 바로 레이나의 행동을 최대한 자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네가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펼치게 된다면, 내 수하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질 거다. 그렇게 되면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커다란 차질이 빚어지겠지.”
“어째서 사기가 떨어진다는 거야? 타깃을 해치웠는데도?”
“해치는 중간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잖아. 우리는 물론 강탈, 그리고 도둑질이라는 불법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집단인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유 없는 살인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왜인지 알고 있나?”
“그야… 모르겠는데.”
“괴도의 이미지를 최대한 의적으로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
대중들… 특히나 서민들에게 있어서 괴도는 홍길동과 임꺽정의 화신이라 불릴 만큼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비록 현행법상으론 불법 행동을 저지르고 있는 괴도 일당이지만, 이들은 서민들에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명분이라는 걸 얻고 있었다.
그것이 레이나에 의해 붕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직 세간에는 거제도 살인 사건이 괴도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우리들이 거기에 관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시선도 있다. 지금은 비록 대놓고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훗날 이런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면, 괴도라는 존재는 결국 다른 악당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셈이야.”
“인간들의 시선을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어? 그냥 물건만 가져오면 그만이잖아.”
“앞으로의 일들도 생각해서 명분이라는 걸 제대로 쌓아둘 필요가 있다. 만약 괴도가 대중들에게조차 사회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우리가 앞으로 네 의뢰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차질을 맞이하게 되겠지. 안 그런가?”
“흐음…….”
레이나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굳어진다.
물론 그녀도 석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인간의 눈치를 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석두는 미리 쐐기를 박아둔다.
“의뢰를 수행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와 적룡파 녀석들이다. 넌 의뢰인이고. 의뢰인이면 의뢰인답게 그냥 얌전히 보고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네 방식이 간혹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 그래서 일부러 관여를 한 거야.”
“거제도 사건 때에도 그랬나?”
“그건 답답하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좀 많이 섞여 있었지.”
“…….”
루틴을 일격에 살해했다.
레이나의 난입은 애초에 석두의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루틴과 계속해서 자웅을 겨루던 일이 레이나에게는 시간 끌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나섰다.
배신자에게 강한 응징을 선사하기 위해서.
결국 방식의 차이다.
드래곤의 보물을 어떻게 다시 되찾아오느냐에 따라 석두와 레이나의 의견이 서로 맞부딪치게 된 셈이다.
그건 거제도 사건을 통해서 여실이 드러났다.
여기서 레이나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사건이 반복되어 발생할 것이다.
석두의 입장에서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서고 싶다.
드래곤을 납득시키는 건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석두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좋다. 그렇다면 협약을 맺자.”
“협약?”
“내 방식에 특별한 말이 없다면 관여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그 대신 나도 너에게 뭔가를 제공하지.”
“…….”
석두의 제안은 레이나로서 상당히 의외였다.
협약이라니.
그것도 드래곤과 인간이?
“아하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협약? 그건 어디까지나 서로 대등한 자들이 하는 약속 아닌가?”
“…….”
“잘 들어, 괴도 김석두. 너와 난 대등하지 않아. 난 드래곤이고, 의뢰자야. 하지만 넌 나의 하수인이지. 내 말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하수인이 나에게 협약을 맺는다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레이나가 이렇게 나올 것도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 석두는 초강수를 띄우기로 한다.
“만약 여기서 협약을 거절한다면… 넌 조만간 새로운 하수인을 찾아야 할걸?”
“…….”
순간적으로 레이나의 눈빛에 강한 이채가 어린다.
석두가 한 말이 뭔지 레이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녀를 배신할 예정이다.
그 말에 레이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배신자의 말로가 무엇인지 네 눈으로 똑똑히 봤을 텐데?”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녀석 주제에 감히 날 배신하겠다는 건가?”
“그건 너 하기 나름이야.”
“지금 여기서 네 녀석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수도 있어.”
“물론 너라면 그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날 죽이는 순간, 네 존재가 세상에 드러날 거다.”
“……!!”
석두의 말에 레이나의 표정이 또 한 번 변한다.
드래곤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웃기는군.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진실을 쉽사리 믿을 거라 생각하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은 드래곤의 존재 자체를 직접 본 적이 있을 텐데? 그리고 지금까지도 화두가 되고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망상 실현기 사건을 기억하고 있나?”
“……!!”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망상 실현기.
그것을 가지고 있던 오두철은 이 세상에 커다란 혼란을 심어줬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들을 모두 현실로 소환 가능했던 최악의 보구.
최종적으로 오두철은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생물체를 만들어냈다.
도심 상공에 드러난 드래곤의 존재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그때 당시 드래곤의 존재를 목격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수십… 아니, 수백에서 수천 명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영상 자료도 근근이 남아 있으니… 물증까지도 확보된 셈이다.
이 상황에서 과연 석두가 레이나의 존재에 대한 증거물을 세간에 뿌리게 된다면?
사람들은 진짜로 드래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네 녀석……!!”
지금 당장에라도 석두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했다간, 석두의 말 그대로 레이나의 존재가 인간들에게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 레이나? 우리 적룡파 간부들은 우수한 인재가 많다고. 난 이미 내가 너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수를 염두에 두고, 그다음의 한 수를 생각해 뒀다. 물론 너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수가 될 수도 있지.”
“…….”
“그 한 수가 너에게는 체크메이트라는 말을 들려주게 될 거야.”
그의 말대로다.
석두 밑에는 쾌남이라는 IT 계통에 특화된 인재가 있다.
뿐만 아니라 도서희를 포함해서 김창민, 그리고 기억력이 좋은 세미까지.
이들이라면 레이나가 손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게끔 빠르게 인간계에 드래곤의 존재를 알리는 증거물들을 퍼뜨릴 것이다.
이곳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다.
현대 세계다.
판타지와 현대가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인터넷… 즉 온라인의 여부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눈은 온라인을 주목하고 있다.
게다가 퍼져 나가는 속도 역시 빠르다.
제아무리 9클래스 마법사라 하더라도 그 마법사가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서 컴퓨터를 해킹할 수는 없다.
온라인에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레이나가 손을 쓸 수 없다.
게다가 온라인 세계는 국경을 초월한다.
레이나의 존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면…….
더 이상 그녀가 머물 곳은 없어진다.
“얄팍한 수를 쓰는구나… 괴도 김석두.”
“이것도 다 나름 살기 위한 노력이지.”
“후후… 거제도에서 보여준 나의 행동이 너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것 같군.”
“정답이다.”
레이나의 행동은 경솔했다.
그때 당시, 레이나 본인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배신자 루틴을 죽이고, 하찮은 인간의 생명보다 죽음의 눈을 회수하는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
순식간에 두 명의 사람을 죽인 레이나.
그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석두의 통제에서 벗어나 멋대로 행동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석두는 어떻게든 레이나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머리를 쥐어짜 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러한 형태의 협박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서로 대등한 관계가 된 거 같은데… 협약을 맺을 생각이 들었나?”
석두가 표정 관리를 하며 레이나를 응시한다.
그의 말대로다.
레이나가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만, 석두는 대신 뛰어난 조직력과 두뇌를 지니고 있다.
더 이상 레이나의 협박이 먹혀들지 않는 존재로 부상하게 되었다.
“…좋아. 협약을 해보도록 하지.”
레이나가 결국 자신의 의견을 굽힌다.
이것으로 석두의 협박이 성공적으로 먹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