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57
60화 고민 (2)
노 회장의 한마디에 석두는 그 어떤 반응도 보여줄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늘 침착함과 냉정함을 보이던 석두였으나… 이번 일은 결코 평소처럼 냉철하게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면 혹시나 노 회장이 본인을 떠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기 시작한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노 회장님. 만우절까진 아직 시간이 꽤 남은 거 같습니다만.”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해서 무슨 이득을 보겠는가?”
“…….”
그건 맞는 말이다.
노 회장이 굳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이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장본인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왜 있을까.
아니, 이 거짓말이 도대체 노 회장에게 어떠한 이득을 가져오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두 가지밖에 없다.
거짓이거나.
아니면 진실이거나.
“…말 한마디에 모든 걸 덥석 믿는 그런 취미는 없습니다. 노 회장님이 정말로 본인이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범인이라고 주장하신다면… 그 증거가 있습니까?”
“루틴의 존재를 들려주면 되나.”
“……!!”
루틴.
그자에 대해선 석두도 익히 잘 알고 있다.
어찌 모르겠는가. 루틴은 자신과 목숨을 걸고 대결했던 적수이기도 하다. 물론 레이나가 중간에 강제적으로 참전한 끝에 루틴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했던 말들이 아직까지도 석두의 뇌리에 남아 있다.
레이나를 너무 믿지 말라고.
힘을 줌과 동시에 레이나의 도난당한 보물들을 찾아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루틴은 그게 싫어서 레이나로부터 도망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선 석두도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감이 전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거제도에서 보여준 레이나의 잔혹함이 석두에게 향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말이다.
일단 레이나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그 억제력이 과연 레이나의 본성을 얼마나 억누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미지수다.
물을 한 모금 들이켠 노 회장이 말을 이어간다.
“루틴이 도망칠 수 있게 해준 것도 다 내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지.”
“조력자라 함은… 당신을 가리킨 것이었습니까.”
“물론.”
“루틴을 도망치게 만든 이유가 뭐죠?”
“드래곤의 조력자를 없앰과 동시에 동료를 만들기 위함이었지.”
“그럼 저에게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것도… 저를 동료로 만들기 위해서입니까.”
“그렇다고 해두지.”
“…….”
지그시 노 회장을 응시하는 석두.
하지만 그렇다고 노 회장의 말을 전부 다 신용할 수는 없다.
루틴의 존재를 알고 있긴 하지만, 단순히 노 회장의 정보만으로 그 사실을 알아냈을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따지면 아직까지 노 회장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 된다.
“여전히 날 못 믿고 있군.”
“보통은 저의 이런 태도가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하긴, 그게 맞는 말이지.”
노 회장도 석두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준다.
“이 정도면… 날 믿어줄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노 회장이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 든다.
금색으로 치장되어 있는 팔찌 같은 액세서리다.
“이게 무엇입니까?”
“자네도 보자마자 어렴풋이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드래곤으로부터 훔쳐 온 보물 중 하나라네. 착용자의 외형을 변화시켜 주는 팔찌지.”
“그게… 가능합니까?”
“직접 보여주면 믿겠나.”
그 말을 들려줌과 동시에 노 회장이 스스로 팔찌를 차기 시작한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석두가 헛숨을 삼킨다.
“……!”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노 회장의 외형이 20대의 젊은 청년으로 바뀐다.
마나의 움직임을 탐지해 보지만… 마법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드래곤의 보물이기에 가능하지. 굳이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시전자의 마음대로 외형을 바꿔주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네. 물론… 이거 말고 더 있지. 더 보고 싶다면야 그리해 줄 수도 있네만…….”
“…….”
석두의 머릿속에 어렴풋이나마 드는 생각은 전혀 다른 쪽이었다.
지금 여기서 노 회장을 노린다면… 드래곤의 보물을 전부 회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석두는 레이나에게 굳이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석두의 이런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모양인지 노 회장이 팔찌 착용을 해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을 연다.
“나를 노린다 하더라도 드래곤의 보물을 되찾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네. 훔친 드래곤의 보물을 관리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거든.”
“…집단이란 뜻입니까?”
“그 이상의 정보까지 들려줄 생각은 없네. 하지만 만약… 자네가 우리 측에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면 특별히 정보 몇 개를 더 넘겨줄 의도는 있지.”
“거래를 하러 오셨군요.”
“목숨을 건 거래라 해도 무방하지.”
노 회장의 말이 맞다.
지금 이 장면을 레이나가 몰래 감시라도 하고 있다면, 노 회장은 말 그대로 죽은 목숨일 것이다.
“노 회장님은… 인간이라는 겁니까.”
“허허, 세상에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어디 있겠나? …아니지. 드래곤이 있으니 이런 내 말도 결국 틀린 셈이구먼.”
“인간이면서 어떻게 드래곤의 레어에 침투해 보물들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겁니까?”
괴도 생활을 하면서 석두가 매번 생각했던 가장 큰 궁금증이 바로 이 점이다.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드래곤의 보물을 훔칠 수 있었단 말인가.
물론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고 하지만, 석두의 입장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노 회장은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 더 이상의 말을 아낀다.
“아까도 말했듯이, 자네가 우리의 편이 되어준다면 그 이상의 정보를 말해줄 의도는 있다만.”
“합류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정보라도 제공해 주시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단지 노 회장님이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도둑이라는 것만 알고서 레이나와 척을 지는 걸 결심한다면, 그거야말로 말이 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한 마디로 석두를 설득할 만한 뭔가 매력적인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노 회장도 석두의 이런 주장이 전혀 근본 없는 주장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여 준다.
“자네에게 한 가지 확실하게 들려줄 수 있는 건… 우리는 하나의 조직이며, 예전부터 드래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네.”
“그 예전이 언제부터입니까?”
“인류가 문명과 사회라는 것을 구축할 당시부터.”
“…….”
드래곤의 수명은 상당하다.
물론 정확한 나이에 대해선 석두도 예측하지 못하지만, 여하튼 최소 6~7천 년 이상을 살아온 존재라고 알고 있다.
“드래곤의 존재 자체는 예전부터 상당한 위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지. 심심하면 인류를 멸망시키는 게 바로 드래곤이니까.”
“…….”
“별다른 정치적인 성향 없이… 그저 유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류를 멸망시키는 게 드래곤이네. 인간으로선 최악의 재앙이라 할 수 있지.”
노 회장의 이 말은 결코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다.
드래곤이 자신의 기분 내키는 그대로 행동한다는 건 이미 레이나와 같이 행동을 해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 중에 하나다.
만약 좀 더 이성적으로, 그리고 훗날을 위한다면 거제도에서 보여준 그런 행동처럼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가 나쁜 게 결코 아니다.
그저…….
드래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류의 문명은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행태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드래곤의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조직된 집단, 슬레이어(Slayer)라고 하지.”
“슬레이어…….”
“어떻게 하면 드래곤을 제거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지와 같은 문제들을 고찰하고 연구해 온 집단이라고 보면 되네.”
“…그렇군요.”
인간계를 위해서라도 드래곤의 존재를 말살시키는 건 어찌 보면 공감은 된다.
기분에 따라 인류 문명을 멸망시키는 위험 요소를 인간의 입장에서 그대로 방치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레이나의 존재는 인류에게 있어서 크나큰 재앙과도 같지. 그래서 우리 슬레이어는 예전부터 드래곤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온갖 연구를 거듭해 왔네.”
“그렇다면… 그게 레이나의 레어를 턴 이유 중에 하나입니까?”
레이나가 지니고 있는 보물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특수한 능력들을 지닌 아이템들이다.
그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레이나의 능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노 회장을 비롯해 슬레이어란 집단은 우선적으로 드래곤을 제압하기 위해 레이나가 지니고 있는 힘의 일부라 할 수 있는 드래곤의 보물을 우선적으로 빼올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비로 현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 회장도 자신들의 도둑질에 나름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서서히 입을 연다.
“드래곤이 지니고 있는 보물들은 원래부터 인류의 보물이지. 단지 드래곤이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강탈해 갔을 뿐… 도둑질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우리는 그저 선조들의 유산을 다시 되찾아온 것뿐이라네.”
“…….”
인류의 유산.
그리고 인류의 보물.
레이나가 직접 만든 물건들이 아닌, 인류로부터 강탈해 온 물건들.
그게 바로 드래곤의 보물이다.
석두도 어렴풋이나마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만약 레이나가 스스로 그런 보물들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면, 굳이 강탈당한 보물들에 대한 집착을 보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레이나는 보물을 다시 재현한다는 선택지보다 석두와 같은 앞잡이를 따로 선출해 도난당한 보물들을 다시 되찾아오기로 결심했다.
그런 선택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레이나의 보물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슬레이어라고 한들… 드래곤과 맞서 싸울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레이나를 상대한다는 겁니까?”
석두가 강력한 일침을 가한다.
만약 슬레이어가 드래곤과 정면으로 싸울 힘이 있었다면, 애초에 도둑질 자체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싸울 힘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레이나의 힘을 빼놓고자 드래곤의 보물을 빼앗아올 생각부터 먼저 한 셈이다.
“드래곤의 보물들이 아직 레어에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수 많이 빼앗아온 건 사실이지. 그리고 드래곤의 보물들을 우리의 힘에 보탤 수도 있고.”
“…….”
“자네도 알겠지만, 드래곤의 보물을 지닌 것만으로도 많은 힘을 보유할 수 있게 되네.”
석두도 그 점에 대해선 심히 공감한다.
일반인이 드래곤의 보물을 사용하는 순간, 석두조차 고전을 면치 못할 만큼 강력한 이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석두도 망상 실현기를 비롯해 다수의 드래곤의 보물들을 탈취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기에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자… 우리와 손을 잡겠는가?”
노 회장의 마지막 제안.
석두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노 회장의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