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0
63화 진실 (2)
노 회장과 신경전을 벌이던 웨이틀.
그러더니 이내 영향력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루틴의 죽음은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들의 계획을 뒤로 미룰 순 없을 거 같네.”
웨이틀의 한마디에 주변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네들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의해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슬레이어… 드래곤을 사냥하는 자들 아닌가. 이제 본격적으로 전면전에 나서서 레이나라는 드래곤을 우리 손으로 직접 퇴치할 필요가 있을 거 같네.”
“우리가…….”
“…직접!”
과거에 몇 번 드래곤 사냥을 시행해 왔던 슬레이어.
그러나 그건 엄연히 그들의 선조들이 거행해 왔던 일들이다.
이들이 과연 선조들처럼 드래곤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 단 한 명.
“불가능한 말을 언급하는군.”
드래곤 사냥이라는 말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남자가 있었다.
노 회장. 그가 눈빛을 빛내면서 웨이틀의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나선다.
“드래곤과의 직접 대결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게야. 비록 슬레이어를 창립한 선조들이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면전이 아닌 우회적인 형태의 공략법을 이용해서 드래곤 사냥에 성공했던 것이지, 드래곤과 직접 대면해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역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고 알고 있네.”
“그 역사를 지금부터 만들어가면 그만이지 않은가.”
“자네도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군. 아니면… 높은 자리에 올라서게 되면 본래 사람이란 그렇게 거만해지고 자만심에 빠지는 법인가?”
“노 회장. 자네는 그저 나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되네.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번에는 노 회장이 한 걸음 물러선다.
슬레이어의 수장이란 자리는 절대적인 권한을 상징하는 자리다.
노 회장이라 하더라도 웨이틀의 고집을 꺾기에는 어렵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노 회장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어리석은 판단이다.
물론 웨이틀이 이런 생각을 어찌하다가 품게 되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레이나는 지금 완전체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면에 빠진 드래곤의 정신체에 불과하다.
드래곤이 잠에 빠져 있는 순간을 노려 드래곤 사냥에 성공해 보이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노 회장으로서 이건 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드래곤의 육신이 비록 수면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강한 건 변함이 없을 터인데……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수장 때문에 밑의 녀석들이 고생 좀 하겠군.’
절로 쓴소리를 떠올리는 노 회장.
그러나 웨이틀의 선동에 의해 하나둘씩 드래곤 사냥에 의견을 모으는 이들의 모습에 더 이상 태클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 * *
적룡산업 최상층에 위치한 석두의 사무실 안.
오랜만에 적룡파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간 다들 별일 없었나?”
석두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별일이 있을 턱이 없다.
딱히 위험천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휴식만 취하고 온 것에 불과한데 큰일이야 있겠나.
“별다른 사건 사고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군.”
석두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적룡파…… 즉, 레이나의 의뢰를 필두로 해서 도난당한 드래곤의 보물을 찾는 일을 중점적으로 하는 적룡파 간부들은 휴식을 맞이했지만, 적룡산업 인원들은 이들에게 주어진 휴식과는 별도로 계속해서 일을 해왔다.
별개 체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간의 연관성도 없다.
그래서 적룡파 간부들이 쉬는 날에도 이 적룡산업 빌딩의 불은 계속적으로 켜진 상태로 유지가 되었다.
회사 매출도 점점 올라가고 있으니…… 금전적인 문제는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노 회장과 슬레이어, 그리고 레이나 사이에 서버린 김석두의 처지일 것이다.
“두목님,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괜찮으십니까?”
망치의 물음에 석두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보이나?”
“제가 잘못 짚은 거라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평소 보아오던 두목님의 얼굴 표정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서 한번 질문을 드려본 겁니다.”
“그렇군.”
망치답지 않은 배려심과 세심함에 석두가 남모른 탄식을 자아낸다.
휴가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와서 그런 걸까.
왠지 망치의 보는 안목이 넓어진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야 매번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을 항상 달고 살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두목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것보다 이제 슬슬 다시 활동을 재개해 볼까 한다. 장시간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도 했으니,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보자.”
“예!”
적룡파 간부들이 석두의 말에 목소리를 높이며 대답한다.
레이나로부터 얼마 전에 새로 의뢰를 받은 석두.
이번에도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했다.
되찾아야 하는 드래곤의 보물에 관한 정보만 취득한 상태다.
의뢰 목록
-명칭 : 청석(靑石)
-기한 : 2달
-특수 능력 : 진실인지 거짓인지 유무를 가려내는 돌.
-주의 사항 : 없음
얼마 전, 레이나로부터 받았던 도난당한 드래곤의 보물을 떠올려 본다.
청석이라는 단어 그대로 푸른색을 지닌 돌이다.
그러나 단순히 색깔만 특이한 돌덩이로 본다면 큰 오산이다.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판별이 가능한 특수 능력을 지닌 돌덩이다. 사용하는 데에 큰 제약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물론 망상 실현기나 자이언트 건틀릿처럼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물건은 아니다.
그저 진실 여부만을 밝히는 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돌이 줄 수 있는 사회적인 파장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본래는 레이나의 물건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녀가 찾아오라고 하면 찾으러 가야 하는 것이 현재 석두의 입장이다.
그에게 거부 권한은 없다.
“김창민.”
“예, 두목님.”
“쾌남에게 연락해서 지금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후보들을 추려보라고 연락을 넣어둬라.”
“알겠습니다.”
루틴이 죽었기 때문에 드래곤의 보물을 파는 행동 같은 건 당분간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석두의 기대치와 다르게 곧장 드래곤의 보물을 되찾으라는 레이나의 의뢰가 하달되었다.
물론 루틴이 죽기 전에 거래했던 물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청석이 그가 죽고 난 이후에 거래된 물건이라고 한다면…….
‘슬레이어 자체가 일부러 드래곤의 보물을 팔고 다니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솔직히 말해서 석두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레이나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다.
게다가 드래곤의 보물을 훔치고 슬레이어 측에서 무기로 사용한다면, 레이나의 전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슬레이어의 힘을 더더욱 키울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상대방의 힘을 약화시키고 동시에 자신들의 힘을 강화시킨다.
이 얼마나 좋은 플랜이라 말인가.
그러나 슬레이어는 레이나에게 훔친 보물을 도리어 팔고 다닌다.
석두의 입장에선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자본을 마련한다.
그 목표가 아니면 굳이 드래곤의 보물을 팔 이유가 없다.
“쾌남과 창민뿐만이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개별적으로 조사에 임하도록. 목표는 단지 하나다. 푸른색의 돌을 가진 자. 그리고 그 푸른색의 돌… 청석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이번 의뢰품이다.”
“예, 알겠습니다.”
“망치. 수하들을 데리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방을 수소문해라. 번개도 망치와 같이 움직이면서 최대한 정보를 모으도록.”
“예.”
“숙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두 여성 멤버들은 정보를 취합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하도록. 정리가 다 된다면 개별적으로 나한테 찾아와서 보고하면 된다.”
“네.”
세미와 서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석두의 말을 잘 이해했다는 듯한 표현을 보여준다.
업무 분담을 빠르게 하달한 석두.
이윽고 적룡파 간부들이 석두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빠르게 행동에 임하기 시작한다.
* * *
토의 아닌 토의를 마치고 다시 차량에 오르기 시작하는 노 회장.
그가 차량에 오르자마자 운전수가 능숙하게 차량을 몰아가기 시작한다.
“어떠셨습니까, 회장님.”
“…어떻긴. 죄다 하나같이 골빈 놈들 투성이었지.”
“하하, 그렇습니까.”
웨이틀도 웨이틀이지만, 그의 의견에 무조건 찬성의 의사를 내비치는 다른 원로들의 반응에 솔직히 말하자면 노 회장은 어이를 상실했다.
생각이 없는 놈들이다.
그것이 노 회장의 결론이었다.
“슬레이어라는 집단도 많이 타락했습니다. 오로지 권력과 돈만을 추구하는 썩어빠진 집단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사실 드래곤으로부터 갈취한 그 보물도 팔면 안 되는 것이거늘……. 돈에 눈이 멀어서 마구잡이로 부자들에게 보물을 넘기는 꼴이니, 보는 입장에서 뭐라 할 말이 없더구나.”
“차라리 노 회장님께서 수장의 자리에 오르셨다면 지금처럼 슬레이어가 썩어 들어가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글쎄. 과연 어떨까.”
노 회장이 슬레이어의 수장 자리에 오른다 하더라도 저들의 의식을 싸그리 다 뜯어고칠 자신은 없다.
금전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돈이 있으면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을 보다 현실 가능성 있는 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
그것이 바로 돈이다.
게다가 레이나로부터 훔친 드래곤의 보물들은 다수의 금전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빠른 길이다.
드래곤의 보물 몇 개만 팔아도 강남에 빌딩 몇 채는 금방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슬레이어가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가장 큰 이유는 레이나의 힘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반대로 슬레이어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금 확보를 위해 하나둘씩 드래곤의 보물을 팔다 보니, 이제는 드래곤의 보물이라는 것이 원로들 사이에선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있다.
웨이틀이 다른 원로들을 독촉하면서 드래곤을 사냥하자고 의견을 합치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아직도 드래곤의 레어에 쌓여 있을 남은 보물들까지 전부 다 자신의 품 안에 가져오고 싶기 때문이다.
더더욱 막대한 돈을 거머쥘 수 있다!
그 욕심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도전을 재촉하고 있다.
물론 그 재촉이 웨이틀을 비롯해 슬레이어라는 집단을 황천길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 회장으로서는 실로 매우 답답한 심정이 아닐 수가 없다.
“이대로 가면…… 슬레이어는 사라지겠지.”
노 회장의 미간이 절로 찡그려진다.
이제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