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1
64화 동맹 제안 (1)
대표 사무실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는 석두.
슬레이어와 노 회장의 존재가 그를 고심 끝에 빠뜨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더불어 레이나와 그들 사이에 석두가 놓여 있다는 미묘한 관계 역시 스트레스를 줄 만한 요인이다.
둘 중에 어느 한 곳에 가담을 하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게 좋을까.
불행하게도 석두에게 자립이란 선택지는 아직 많이 힘들다.
레이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없다. 석두와 비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던 루틴도 레이나에게 단번에 암살을 당했다. 그런데 과연 석두가 레이나를 이길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선 이미 석두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불가능하다.
본체의 정신체인 레이나조차 이길 자신이 없는데, 하물며 그녀의 본체가 수면기에서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일말의 희망도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슬레이어와 대적하자니… 레이나를 견제할 세력을 자신의 손으로 없애 버리는 꼴과 같게 된다.
슬레이어와 척을 지는 건 지극히 간단한 문제다.
비록 석두가 혼자서 슬레이어를 전부 다 상대할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레이나에게 노 회장에 관한 사실들을 비롯해 슬레이어와 연관된 정보들을 넘기게 되면, 레이나가 알아서 슬레이어를 정리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슬레이어란 집단 자체가 인류의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도 문제다.
슬레이어가 사라지게 되면 레이나의 폭주를 막을 만한 집단이 없어지게 되는 꼴이다.
드래곤 독재 체제로 가게 되는 것 또한 석두가 결코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기분에 따라 세계의 운명이 좌지우지된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불안한 평화의 세계가 될 것이란 말인가.
여러모로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엔 변함에 없겠지…….’
더 이상 상황을 질질 끌다간 석두에게 그나마 부여된 선택권조차도 행할 수 없는 사태까지 오게 될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지금 이 상황 정도는 자신의 손으로 매듭짓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보다 빠른 선택이 필요하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식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후폭풍과 책임은 늘 당사자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고민이군…….’
지금쯤 석두의 부하들은 청석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평소와 같은 레이나의 의뢰를 수행하는 일.
그러나 이번만큼은 뭐라고 할까.
석두의 감이 ‘위험한 일이다’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뭔가가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바뀌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석두의 노림수다.
생각의 늪에 빠져있을 무렵, 그의 귓가에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
“두목님, 접니다.”
“김창민인가… 들어오도록.”
“예.”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석두가 문 밖에서 출입 허가를 기다리는 창민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들려준다.
석두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장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는 창민.
“며칠 전에 명령하신 타깃 후보 명단을 가져왔습니다.”
“빠르군.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쾌남도 그렇고 다른 간부들도 이제는 이런 명령에 익숙해진 것이겠지요.”
“하긴…….”
창민의 말이 맞다.
이제는 석두의 이런 식의 명령에 익숙해질 만도 한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적룡파 간부들은 석두가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이런 식의 괴도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의 명령이기에 반감을 갖기보다는 가급적이면 납득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으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김창민이 석두의 진의를 파악하고자 조사를 행하려고 했으나, 석두의 경고에 의해 더 이상 개별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
위험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이런 식의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창민이기 때문에 석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망치라든지 쾌남, 그리고 세미 등 다른 인원들은 어차피 창민만큼 석두가 하는 일에 관한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결국 창민만 잘 관리하면 그만인 일이다.
“…….”
간부들이 가져온 명단을 쭉 훑어보던 석두가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익숙해진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군.”
“그런 거 같습니다.”
조사 기간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결코 허투루 석두의 명을 수행한 건 아니다.
여기서 몇 명 더 추스르다 보면 청석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분명 드러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노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잘 안 오는 거 같더군요.”
창민이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 온다.
본래 석두가 찾고자 하는 타깃의 명단을 작성할 때, 석두는 노 회장으로부터 미리 정보를 건네받은 뒤 간부들에게 넘겨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그 점을 수상하게 여긴 창민이 슬쩍 떠보는 식으로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글쎄… 그 어르신도 나름 사정이 있으신 거 같더군. 요즘은 좀 바빠 보여서 연락을 시도할 수가 없었어.”
“그렇군요.”
얼추 노 회장과 접선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핑계를 둘러댄다.
더 이상 노 회장에 관한 사실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강하게 풍겨오는 석두.
낌새를 감지한 창민이기에 굳이 노 회장에 관한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목님.”
“그래. 나중에 따로 연락을 주도록 하지. 이만 들어가 봐.”
“예. 알겠습니다.”
대표 사무실 바깥으로 창민을 내보낸 뒤.
명단을 훑어보던 석두의 시야에 그간 자주 보이던 부유한 자들의 이름이 들어온다.
“대한민국 상위 0.1%라…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다들 거기서 거기군.”
이제는 익숙한 이름들도 더러 보인다.
후보에는 항상 포함될 만큼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들.
그중에서도 대개 탈세라든지 아니면 부정적인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은 사람들이 90% 이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뢰를 핑계로 이들 또한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치는 석두였으나,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레이나로부터 받은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레이나의 의뢰를 수행하다 보면 겸사겸사 이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는 일도 부가적으로 실행하면 된다.
“그럼 또 한번 움직여 볼까.”
쾌남과 적룡파 간부들의 활약으로 인해 청석 소지자 후보가 12명으로 좁혀졌다.
이 정도 숫자라면 석두가 직접 나서서 일일이 이들을 조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석두가 전부 다 하나하나씩 확인을 해보는 편이 더욱 정확하다.
슬슬 움직이려고 하던 찰나에.
띠리링!
그의 스마트폰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을 들려준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석두.
이윽고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묻어 나온다.
내용은 상당히 간단하다.
-오늘 저녁 10시에 한번 봤으면 좋겠군. 내가 자네 회사 건물 쪽으로 찾아가겠네.
석두와 직접 만나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메시지다.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이 메시지를 보내온 자의 이름이다.
“노 회장… 이번에는 무슨 꿍꿍이로 나를 만나려는 거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석두를 다시 한 번 찾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선 노 회장을 만나볼 필요성이 있다.
마땅히 어떤 세력에 붙을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고르지 않은 상황에서 노 회장과의 만남은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 볼 수 있다.
“말 정도는 들어봐야겠군.”
결심을 했으면 곧바로 행동에 임하면 그만이다.
레이나로부터 연락을 해 우선 그녀의 현재 위치를 파악한 뒤, 가급적 레이나가 눈치채지 못할 만한 장소를 물색해 두는 편이 좋다.
“눈치 보며 사는 인생이란… 참으로 답답하구만.”
* * *
저녁 10시가 되면 늦은 퇴근을 서두르거나 혹은 아직 한창 회식 자리가 무르익는 모습을 종종 시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소한 일상 내에서 인류의 운명을 거머쥔 만남이 성사되려 하고 있었다.
“음…….”
백발의 노인, 노 회장이 차량에서 하차하자, 그를 따르는 남자들이 각각 노 회장의 좌측, 우측에 붙는다.
그러나 노 회장은 손을 살짝 내저으며 이들의 동행을 거절한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도록 하마.”
“하지만 노 회장님.”
“괜히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게 된다면…….”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 한 몸 정도는 간수할 수 있으니까.”
“…….”
노 회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그와 동행할 수 있겠는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한 의사를 표현하는 남자들.
어차피 자신의 호위병들에겐 신변의 보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기려 했다.
“주변에 슬레이어에서 파견된 감시자가 있는지 살펴라.”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암살하도록.”
“……!!”
노 회장의 말에 남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슬레이어 소속의 감시자를 죽인다는 건, 그들과 대놓고 척을 지겠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노 회장은 아직까진 그런 의사가 없는 모양인지 추가적으로 부연 설명을 들려준다.
“괜찮다. 어차피 슬레이어에는 커다란 적이 있으니… 그 적에게 암살을 당했다고 조작을 하면 될 일이니까.”
“드래곤… 입니까.”
“그런 셈이지.”
드래곤의 존재는 지금 당장 노 회장에게 좋은 핑곗거리로 작용할 수 있다.
감시의 눈길을 제압해도 슬레이어의 낌새를 눈치챈 레이나가 그들을 죽였다고 대충 둘러댈 수 있으니 말이다.
감시자들도 기본적인 마법을 익히고 있는 마법사들이다.
현대 시대에 마력을 지닌 자가 레이나와 마주친다면… 레이나는 우선 그들의 정체부터 추궁하려 할 것이다.
마법이 발달되지 않은 현대 시대에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가 있다는 건, 그들이 혹여나 드래곤의 보물을 훔쳐 간 용의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 된다.
레이나도 바보는 아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이 드래곤의 레어에 몰래 침입해 그녀의 보물을 훔쳤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필히 이능력…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만약 인간에 비해 지나치게 방대한 마력을 지닌 자와 조우하게 되면, 레이나는 우선 그들부터 처리할 생각을 할 것이다.
노 회장은 그 점을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슬레이어의 전력을 이번 기회에 줄여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알겠습니다.”
어차피 노 회장은 더 이상 슬레이어와 한배를 탈 생각이 없다.
혹시나 만약에 슬레이어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본인의 손으로 슬레이어와의 전면전을 일으킬 의도도 있다.
그러기 전에 우선 해결을 봐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
‘괴도 김석두… 이자와 먼저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