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2
65화 제안 (1)
저녁 10시.
비교적 늦은 시간에 어느 한 가게로 다시 자리를 잡게 된 석두가 맞은편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노 회장을 바라본다.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네가 고민을 좀 많이 하고 있는 거 같아서 말이야.”
“…고민?”
의아함을 드러낸다.
물론 석두의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건 그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때론 자신의 속마음을 타인에게 그대로 들켰을 당시, 기분이 좋지 않게 된다.
석두 또한 마찬가지다.
노 회장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석두는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 회장은 석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정보 자체만으로도 차이가 난다.
쾌남에게 과거에 수십 번 노 회장의 뒤를 조사해 보라 말을 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매한가지였다.
알 수가 없다.
그의 행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노 회장을 눈앞에 둔 석두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가득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레이나보다도 더 위험한 자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자네를 보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잠시 말을 중단한 노 회장이 물 컵 한 모금을 음미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석두를 보자고 한 진의가 무엇인지를 직접 언급한다.
“나와 동맹을 맺었으면 하네만.”
“그 이야기에 관한 거라면 일단 거절하기로 했습니다. 슬레이어와 동맹 따위를 맺었다간, 저도 루틴…… 그자와 같은 꼴이 될 게 뻔하니까요.”
많은 고민을 한 석두이기에 한 가지 진실은 잘 알고 있다.
슬레이어는 지금, 레이나와 전면전을 벌일 수 없다.
만약 슬레이어가 드래곤을 잡을 만한 능력과 여건이 진작부터 갖춰져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레이나의 레어를 습격했을 것이다.
수면기에 빠진 지금 이 시기만큼 드래곤을 제압하기에 적정한 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레이나가 수면기에 빠졌을 때, 그녀를 제압하는 방식이 아닌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다’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수면기에 접어든 레이나보다도 슬레이어의 전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레이나의 정신체조차 상대하지 못하는 슬레이어에게 붙어 있어 봤자 무슨 이득이겠는가. 오히려 레이나에게 살해만 당하는 꼴이 될 것이다.
비록 세계의 멸망이 드래곤의 변덕에 달려 있다는 우스꽝스런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레이나는 딱히 이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다는 듯한 의사를 내비친 적이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물론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석두는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버리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모처럼 얻은 새로운 인생이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과거의 삶을 위해서라도 좀 더 보람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노 회장은 전혀 다른 형태의 제안을 들려주게 된다.
“슬레이어와의 동맹이 아니라 ‘나’와의 동맹을 주장하는 걸세.”
“노 회장님과의 동맹을… 말입니까?”
“그래. 난 이제부터 슬레이어와 다른 독자 노선을 걸어갈 예정이거든. 의견 차이가 워낙 심해서 말이지. 후후후…….”
“…….”
슬레이어로부터의 독립.
그러나 석두는 그 사실을 결코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 슬레이어의 전력으로도 레이나를 상대하기 버겁다. 그런데 여기서 노 회장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그만큼 슬레이어의 전력 또한 약해지는 거 아닌가.
게다가.
의견 차이로 인해 독립한다면, 분명 좋게 서로 가라지는 형태가 아닐 것이다.
독립하는 즉시 노 회장은 원래의 적인 레이나와 새롭게 추가된 반대 세력, 슬레이어와의 견제까지 받게 될 것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은 석두가 과감하게 의구심을 드러낸다.
“당신에게는 무슨 능력과 힘이 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 회장은 슬레이어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이민한 힘과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슬레이어가 아닌 그와 동맹을 맺자니.
정확하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석두로서는 파악이 잘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 회장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번질 뿐이었다.
“힘… 힘이라……. 적어도 ‘슬레이어’라는 일개 집단에 비해서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직접 한번 테스트해 볼까?”
그 순간.
갑자기 노 회장이 석두를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단순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 행동이 놀라운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마나의 흐름?!’
게다가 평범한 마나의 양이 아니다!
헤일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마나의 향연에 석두 또한 양손을 뻗어 반사적으로 마나 실드를 친다.
그와 동시에…….
콰지지지직!!!!
엄청난 스파크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만약 석두가 마나 실드를 펼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마나 헤일의 충격에 사지가 찢겨 나갔을 것이다.
엄청난 충돌음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두 사람이 있는 룸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게는 우리 둘밖에 없네. 보디가드들을 시켜서 다른 직원들, 그리고 손님들을 전부 퇴장시켰거든.”
“…….”
“만약 내가 마법을 써서 다른 이들을 가게 바깥으로 퇴출시킨다면, 자네가 눈치를 챌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인력으로 우리 두 사람만의 무대를 만들었네. 어떤가.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군.”
“…무슨 의도로 이런 행동들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의도? 간단하네.”
노 회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석두는 그의 강력한 마나 공격에 의해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방어를 펼치고 있는데, 노 회장은 피곤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재차 오른손을 뻗는다.
“나의 힘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
“그렇다면 보여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그 말을 끝으로.
노 회장의 두 눈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 * *
퍼어엉!!!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가게 바깥으로 튕겨 나가는 석두.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대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이 그리 많진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다행은 절대로 아니지.’
노 회장의 공격에 의해 아직까지도 공중에 부양된 채 날아가던 석두가 이내 어느 한 건물 옥상에 착지한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무게중심을 잡아 몸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낸다.
큰 타격을 받진 않았다.
단지…….
노 회장이 이렇게나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가 어떻게 마법을…….”
도대체 무슨 원리로 마법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적어도 9클래스 이상의 실력을 갖춘 것으로 판명된다.
슬레이어라는 집단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마법 수련을 해온 끝에 9클래스의 실력을 지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슬레이어가 다수의 9클래스 마법사들을 소유하고 있다면, 어째서 정신체에 불과한 레이나조차도 제압하지 못한단 말인가.
물론 레이나의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누구보다도 석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해전술로 밀어붙인다면 분명 슬레이어게도 승산은 있을 터.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건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노 회장과 같은 실력을 지닌 자들이 다수 슬레이어에 소속되어 있다면, 슬레이어는 석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한 집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혹시 슬레이어에 나 같은 사람들이 즐비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꽤나 먼 곳까지 날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노 회장은 석두와 같은 건물 옥상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달빛을 등진 채 건물의 물탱크 저장소 위에 서 있는 노 회장의 모습은 평소 석두가 알고 있던 허약한 노인네와는 다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것은…….
…살기다.
인간이 내뿜을 수 없는 방대한 살기가 노 회장에게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슬레이어는 이미 망한 지 오래라네. 한때는 그래도 폭주하는 드래곤을 저지시킬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지닌 우수한 집단이었지만, 고위 자리를 차지한 게 ‘인간’이라는 점이 슬레이어를 약화시킨 가장 큰 이유였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간단하네. 인간은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탐욕적이고, 그리고 이기적이지.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 슬레이어든 드래곤이든 뭐든 이유는 사라지게 된다네. 오로지 권력. 그리고 돈. 그것만이 들어오게 될 뿐이지.”
“…….”
“점점 그 권력에 취한 자들이 슬레이어의 우두머리를 자칭하면서 조직을 이끌게 되고, 계속해서 꾸준히 마법사들을 양성해야 하는 슬레이어의 사명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 슬레이어 내에서 가장 마법 클래스가 높은 사람이 겨우 5클래스에 지나지 않으니…… 이미 말 다 한 셈 아닌가.”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9클래스의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게 가장 궁금한 요소다.
슬레이어라는 집단이 권력과 돈에 오염되어 본래의 사명을 게을리하게 되었다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마법 발전의 수준 역시 퇴화했다는 것도 납득한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노 회장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후후후……. 글쎄.”
노 회장의 붉은 눈이 번뜩인다.
위화감을 느낀 석두가 양팔을 각각 수평 방향으로 뻗으며 짧게 시동어를 외친다.
“아이언 실드!!”
그의 주변으로 철갑 형태의 방어막들이 형성된다.
동시에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생성된 아이스 스피어들이 석두의 주변을 강타하기 시작한다.
째재쟁!!
유리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음이 석두의 귀를 파고든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거의 7클래스에 육박하는 거대 아이스 스피어들이 순식간에 생성되었다.
‘역시… 노 회장의 마법 실력은 보통이 아니야!’
처음에는 그저 마나 덩어리를 부풀려 눈속임을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 얼음 속성 마법의 공격을 통해서 노 회장의 마법 실력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아이스 스피어들의 향연.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석두가 또 다른 마법을 발산한다.
“허리케인……!!”
그의 주변에 강력한 돌풍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그러자 주변에 붕 떠 있던 아이스 스피어들이 돌풍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얼음 조각들이 되어 흩어진다.
노 회장의 공격을 한 번 리셋시킨 뒤에서야 허리케인 마법을 거둬들이는 석두.
그의 시선이 노 회장에게 고정된다.
“과연… 뛰어난 실력이군.”
노 회장이 옅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아까 했던 말을 이어간다.
“내가 어떻게 이 정도 수준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했었나?”
“…네.”
“그렇군. 자네한테만 특별히 서비스를 해주도록 하지.”
웃음을 거둬들인 노 회장이 천천히 입을 연다.
그리고 밝혀지는…….
…그의 정체.
“난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