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4
67화 제안 (3)
석두의 목을 치기 바로 전.
노 회장과 석두의 사이에 끼어든 레이나가 붉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프 드래곤이라… 예전에 그런 존재가 있긴 했었지. 하지만 최근 들어서 본 기억인 없었는데.”
“…네가 어째서 여기에.”
“어째서긴? 자신과 계약한 인간의 현재 위치 정도는 파악해 두는 게 기본 아닌가?”
“…….”
레이나의 말에 노 회장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와 동시에 일시적으로 한쪽 손에 맺혀 있던 마나를 증폭시켰다.
“마침 잘됐군. 이대로 내 손에 죽어라, 드래곤이여!!”
“웃기는 소리.”
레이나의 코웃음과 함께.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석두의 귀에 메아리쳤다.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리며 최대한 눈에 힘을 줬다.
바로 앞에서 상당한 규모의 마나 폭발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석두와 레이나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마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 레이나의 앞에선 노 회장의 강함도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
폭발이 발생하고 난 이후.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구름을 향해 레이나가 오른손을 뻗었다.
“윈드(Wind).”
그녀의 말 한마디에 매서운 바람이 옥상 건물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탁 트인 시야가 확보가 되었다.
하나 이미 노 회장은 그들의 앞에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시간 벌기였군. 인간 주제에 꽤나 잔머리 좀 쓸 줄 아나 보네.”
노 회장을 죽일 생각으로 왔던 레이나였지만, 절호의 찬스를 놓치게 되어버렸다.
한편,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낸 석두가 레이나에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도와주려면 좀 더 일찍 와서 도와주지 그랬어.”
“미안. 지켜보고 있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관람 모드였어.”
“…….”
“뭐,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잖아?”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레이나의 말대로 석두는 노 회장으로부터 목숨을 빼앗기진 않았다.
이게 다…….
사전에 미리 레이나와 ‘동맹’을 맺어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사실 석두는 이미 마음속으로 어느 세력을 선택할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석두가 선택한 편은 레이나였다.
노 회장은 아직까지 제대로 검증이 안 된 미지의 존재였다. 그리고 슬레이어의 경우에는 이미 석두를 안 좋게 보고 있었으니, 굳이 말할 가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레이나 하나뿐.
레이나가 언제, 무슨 일을 독단적으로 벌일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 요소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레이나는 한 가지 자신만의 법칙을 지니고 있었다.
배신하지 않는 자는 해하지 않는다.
루틴이 레이나에게 목숨을 잃긴 했지만, 그건 애초에 루틴이 그녀를 배신했기에 맞이한 비참한 최후였다.
루틴뿐만이 아니라 이미 그의 선대 드래곤 심장의 보유자들 역시 하나같이 다 배신이라는 선택지를 골랐기에 레이나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레이나는 ‘배신’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나는 결국 또다시 인간을 계약자로 선택했다.
본인이 직접 보물 수색에 나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석두는 그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을 해봤다.
반복되는 인간의 배신.
그런 와중에도 레이나는 김석두라는 인간을 또다시 계약자로 삼았다.
그 말인즉슨.
인간을 다시 한번 믿어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레이나는 석두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을 터.
물론 그 법칙은 나중에 가서 깨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중의 일에 불과하지 않은가. 만약 석두가 레이나를 배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숨을 앗아 가려고 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당장의 일을 봐서는 노 회장이나 슬레이어가 아닌 레이나와 힘을 합치는 게 더 이득이었다.
그래서 석두는 노 회장을 만나기 직전, 레이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동맹을 제안했다.
레이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석두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에서야 이어지게 된 것이다.
“뭔가 아쉽네.”
여전히 노 회장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모양인지 입맛을 다시기 시작하는 레이나.
하나 놓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레이나의 탐지망에서 벗어나 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레이나도 본래의 힘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인간 형태의 레이나는 본체가 아닌 정신체에 불과했다. 본체라 할 수 있는 레드 드래곤의 육신은 현재 레어에서 수면기에 접어든 상태였기에 완벽하게 레이나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순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슬레이어와 노 회장, 두 존재가 진심을 다해 덤벼든다면 제아무리 레이나라 하더라도 버겁다.
그래서 레이나로서도 석두와 힘을 합치는 게 좋았다.
괜히 제2의 루틴을 만들어봤자 눈에 거슬리는 적만 늘릴 뿐이니까.
“어떻게 할 거냐, 레이나.”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는 레이나를 향해 석두가 앞으로의 향방을 어떻게 잡을지 물어왔다.
하나 그녀가 들려준 대답은 어떤 의미로 보자면 상당히 무책임했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별다른 생각이 없나보군.”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
결국 석두에게 자문을 구해왔다.
상대는 인간이다.
물론 노 회장의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하프 드래곤이기에 인간의 피가 섞여 있는 건 변함이 없었다.
“우선 내 부하들을 시켜서 슬레이어와 노 회장의 세력에 관한 정보들을 더 캐내도록 하겠다. 녀석들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전면전을 선포하면, 자칫 잘못하다가 우리가 당할지도 몰라.”
“하긴, 그렇겠네.”
레이나도 석두의 이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레이나가 정신체가 아닌 완전체인 레드 드래곤으로서 서 있었다면 지금 당장 슬레이어의 본진과 노 회장의 추적을 추진했을 것이다.
완전체인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같은 종족인 드래곤밖에 없을 테니까.
애초에 슬레이어는 드래곤을 제거하기 위해 조직된 곳이다. 그런데 슬레이어의 협력자 중에 드래곤이 과연 있을까?
석두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Yes 대신 No를 골랐다.
그래서 사실 슬레이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노 회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하프 드래곤. 그를 낳은 부모 중 한 명이 드래곤이라는 뜻이 된다.
어쩌면 그 드래곤이 노 회장의 뒤를 봐주고 있을지도 몰랐다.
‘노 회장을 조심해야겠군…….’
슬레이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 회장은 여전히 수수께끼투성이었다.
게다가 그가 하프 드래곤이라는 정보 또한 처음 들었다.
드래곤의 힘과 인간의 영악함을 가지고 있는 노 회장.
어쩌면…….
노회장이야말로 레이나보다도 더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일지도 몰랐다.
* * *
슈슉!
순간이동으로 순식간에 레이나의 탐지 범위에서 노 회장이 짧게 혀를 찼다.
설마 김석두가 레이나를 선택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설마…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건가.”
석두가 어느 쪽을 선택할까 고민을 하는 척하면서 일부러 자신을 꾀한 것일 수도 있었다.
만약 정말로 그러하다면…….
“거참…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루틴 녀석보다는 그래도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는 놈일지도 모르겠어.”
겉으로는 칭찬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노 회장은 더 이상 슬레이어와 같이 행동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계속 남아 있어 봤자, 오히려 전력만 약화될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노 회장이 단독으로 세력을 구축해 제2의 슬레이어를 만드는 게 훨씬 더 나았다.
어차피 그동안 레이나의 레어에서 훔쳐 온 보물들도 있겠다.
이것들로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김석두였다.
레이나는 인간처럼 정보전을 펼치거나 심리전을 걸어오는 그런 방식이 아닌,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힘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었다.
굳이 잔머리 굴릴 필요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잘한 재주 같은 걸 부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노 회장은 레이나의 이런 방심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하나 김석두가 레이나에게 붙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노 회장이 봐왔던 김석두는 머리가 나쁜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상한 머리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 회장의 입장에선 김석두가 레이나보다도 더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군. 우선은… 슬레이어 녀석들을 좀 이용해 볼까.”
노 회장의 눈빛이 일순간 가늘어졌다.
* * *
다음 날 오전.
일찌감치 적룡파 간부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린 석두가 이들을 한 번씩 훑어봤다.
오늘은 특별한 명령을 내릴 예정이었기에 방구석 폐인인 쾌남까지도 직접 석두의 사무실로 행차하게 되었다.
물론 레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크게 연관되어 있는 존재가 바로 그녀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석두의 계획에 발뺌을 할 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번 적룡파 간부 회의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그녀의 정체가 드래곤이긴 하나, 신분상으로는 적룡파 간부 중 한 명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형식에 맡게끔 이런 회의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데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모두 다 모였나?”
석두의 물음에 김창민이 대표로 대답했다.
“예, 두목님.”
방구석 폐인이기도 한 쾌남까지 왔을 정도면, 웬만해선 빠지지 않고 다 모였다는 것을 뜻했다.
간부들을 향해 일일이 얼굴 도장을 찍어둔 뒤.
서서히 입을 열며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조직은 지금, 상당히 중요한 기로에 마주 서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모두 애들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
“…중대한 일……?”
“도대체 그게 무슨…….”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간부들.
석두의 말대로 조직의 존폐가 걸려 있는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목숨 전부가 이번 일에 걸려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김석두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만큼 위험하고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는 거였다.
“김창민, 그리고 쾌남.”
“예.”
“…네.”
창민과 쾌남이 석두의 말에 반응했다.
그런 두 사람에 곧장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노 회장과 연결되어 있던 모든 통신, 정보 전달 수단은 단절한다. 알겠나?”
“……?!”
순간 석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쾌남.
그러나 창민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석두의 말에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쾌남은 대답이 없군.”
석두의 시선이 쾌남에게로 고정되었다.
평소의 김석두에 비해 뭔가 분위기가 다름을 인지한 쾌남이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어차피 쾌남이 따르는 사람은 노 회장이 아닌 김석두였다.
그렇다면 굳이 대답을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