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5
68화 선전포고 (1)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중절모를 푹 눌러쓴 노 회장.
얼마 전, 김석두와의 혈전 때문에 실로 오랜만에 고클래스 마법들을 무리하게 사용했다.
하나 잠깐 지친 기분만 들 뿐, 몸에 큰 이상 징후는 없었다.
드래곤의 심장을 지니고 있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노 회장의 몸에도 드래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법의 정수라 불리는 종족, 드래곤.
인간과 드래곤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드래곤.
그게 바로 노 회장이었다.
“하여튼… 요즘 젊은 것들은 도통 그 생각을 읽을 수가 없구만.”
노골적으로 석두를 염두하고서 한 말이었다.
설마 그가 이미 진작부터 레이나와 동맹을 맺을 줄은 몰랐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레이나를 택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석두는 레이나에게 속박되어 있는 몸. 분명 레이나의 흉폭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레이나를 배신할 줄 알았다.
지금까지 모든 인간들이 다 그래왔으니 말이다.
물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죽음.
단지 그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레이나의 손에 희생된 배신자를 꼽으라면 루틴이 있지 않겠는가.
여하튼 그게 중요한 점이 아니었다.
석두는 개인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적룡산업과 적룡파라는 자신만의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레이나라는 든든한 아군을 등에 업었다.
이들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노 회장 또한 슬레이어와의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까지 노 회장은 슬레이어 측에 대놓고 ‘당신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라고 선포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슬레이어들은 노 회장의 진의를 잘 알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어쩔 수 없군.”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조직 단위의 인원들은 분명 필요한 존재였다.
결국, 슬레이어와의 동맹은 피할 수 없을 터.
하지만 동맹이라는 형태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었다.
“…….”
무언가를 결심한 듯 스마트폰을 집어 든 노 회장.
이윽고 어디론가 바삐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 * *
슬레이어를 이끌어가는 원로들이 하나둘씩 본부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귀찮음과 불만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슬레이어 본사에 출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장로들 축에서도 최상급 서열에 놓여 있는 남자, 노 회장의 호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인네가 뭐하러 우리를 부른 건지 원…….”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쇄도하고 있었다.
의장 또한 다른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불평이 가득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 모였는가.”
문을 활짝 열어재낀 노 회장이 장로들을 바라봤다.
그의 등장에 다른 장로들이 일제히 강한 반발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길래 우리를 부른 것이오.”
“게다가 오지 않는 자는 응징을 가하겠다니…….”
“지금 우리랑 장난하자는 거요?!”
여기저기서 노 회장에게 강한 공격을 시전해 왔다.
하나 노 회장은 이들의 불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다른 장로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간에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전부 다 죽어줘야겠소이다.”
“…뭐?!”
“지금 무슨 소리를……!”
장로 한 명이 결국 참다못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푸욱!
날카로운 얼음 창 하나가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다.
노 회장이 마법을 사용했는지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마나의 움직임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회장은 자유자재로 공격 마법들을 빠르게 시전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이긴. 이제부터 슬레이어를 내 손으로 직접 차지하려고 하네만.”
“그, 그런……!”
여기저기서 장로들이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호위병을 부르기 위함이었다.
하나 그건 소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이미 노 회장은 회의장에 들어오기 전에, 광역 침묵 마법진을 발동시킨 지 오래였다. 제아무리 이들이 소리를 쳐봤자 외부에 소리가 새어 나갈 일은 결코 없을 터.
그리고 말이 장로들이지, 사실 이들은 고위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도 아니었다.
노 회장이 손가락을 하나 까딱하기라도 하면, 이들의 목숨은 추풍낙엽처럼 없어지는 셈이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가 되었든 간에 아무도 노 회장을 말릴 수 없었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장로들을 대량 학살해 가기 시작하는 노 회장.
그 많던 장로들이 순식간에 5명 안팎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 순간.
“멈추시오, 노 회장.”
의장의 말에 노 회장이 갑자기 공격 마법을 멈췄다.
탐욕에 물든 다른 장로들과 비교해 봤을 때 그나마 말이 통하는 존재가 바로 의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언이라도 남길 생각인가?”
노 회장이 노골적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장은 침착하게 그와의 대화를 이끌어갔다.
“당신이 원하는 게 뭔가.”
“아까 말했을 터인데. 슬레이어를 내 손으로 직접 차지하고 싶다고.”
“우리들과 협력하지 않고 어째서 그런 강압적인 수단을 펼치는 게요.”
“네놈들의 행동이 워낙 답답했기 때문이지. 보는데 너무 답답한 나머지 화병이 걸릴 뻔한 경우도 몇 번 있었고.”
“…그게 당신의 본심이오?”
“물론.”
노 회장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이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슬레이어란 집단은 그저 노 회장의 입장에선 전령사, 행동요원 정도로밖에 활용되지 않을 게 뻔했다.
물론 일반인들보다 어느 정도 마법이라는 개념을 깨닫고 있는 자들이기에 이용 가치는 훨씬 많았다.
그래서 노 회장은 이런 수고스러움을 들이면서까지 슬레이어를 차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장로들을 모두 학살한다.
그리고 그 죄를 의장에게 전부 뒤집어씌워 의장이 스파이었다는 사실을 널리 퍼뜨릴 생각이었다.
장로들을 암살하기 위해 발악하는 스파이를 막기 위해 노 회장이 고군분투를 한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노 회장 한 명뿐.
그렇게 되면 그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질 터였다.
천천히 오른손을 뻗기 시작하는 노 회장.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걸로 알고 있겠네만.”
“…….”
“오래 살아봤자 괴로운 꼴만 볼 뿐이지.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세상만사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이 짜증 나고 불쾌한 일투성이. 오히려 죽음이 자네에게 안식을 선사해 줄 걸세.”
“안식이라…….”
의장의 눈에 순간 강한 이채가 어렸다.
“자네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 순간조차도 안식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말이야.”
“…….”
노 회장의 오른손이 밝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의장의 머리가 사정없이 터져 버렸다.
사방으로 튀기는 뇌수.
그리고 붉은 피.
남은 장로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지만, 회의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차피 무슨 발악을 하든 간에 이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건 오로지 죽음뿐.
* * *
야심한 밤.
적룡산업 건물 빌딩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석두의 사무실에 순간이동으로 모습을 드러낸 레이나가 볼멘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석두의 연락을 받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순간이동을 통해서 온 거라 사실 이동 시간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할애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나가 이렇게 짜증을 내는 이유는 실로 매우 간단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할 기회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녹화를 하고 난 이후에도 충분히 볼 수 있었지만, 가급적이면 리얼 타임으로 보고 싶었기에 이런 볼멘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레이나의 이런 불만 소리를 가볍게 흘려들은 석두가 그녀에게 색다른 제안을 해왔다.
“너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양해? 뭔데.”
“너의 정체를 비롯해서 나의 현재 상황을 적룡파 간부들과 공유할까 한다만.”
“…….”
확실히 레이나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레이나는 과거, 김석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가급적이면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포함해서 석두의 상황을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드래곤에 관여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면 유출될수록 레이나만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석두는 아직까지도 적룡파 간부들에게 드래곤의 보물을 찾아야 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그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뭔데?”
석두에게 진의를 묻는 레이나.
그러자 석두가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노 회장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해올 거다. 그렇다면 분명 슬레이어를 자신의 손으로 차지하려 하겠지.”
“어차피 그 녀석, 장로라며? 그런데 굳이 차지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노 회장은 슬레이어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어. 그래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 했지.”
“그 세력에 너를 포함시키려 했다 이거야?”
“그래.”
“영악한 녀석이네.”
드래곤의 피가 섞인 데다가 인간의 영악함까지 지니고 있었다.
레이나의 입장에선 상당히 껄끄러운 적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녀의 그런 반응을 뒤로하고, 석두가 계속 말을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만약 노 회장이 슬레이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우리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해 온다면… 우리 또한 조직으로 응수해야 한다.”
“적룡파로?”
“그래. 하지만 이런 전면전을 치르는 와중에 언제까지 내 부하들에게 이 모든 것을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아.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냥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다만.”
사실 그러는 편이 석두도 편했다.
이들이 찾는 물건이 드래곤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일일이 감추는 것도 곤욕이었다.
게다가 제멋대로 하는 레이나의 언행에도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현재 적룡파 간부들은 레이나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품고 있었다.
거제도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잔혹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어필하면, 그나마 레이나가 어째서 자신의 멋대로 행동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라도 간부들에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석두는 레이나에게 모든 것을 밝히자는 제안을 해오게 되었다.
지금 중요한 건 같은 팀원들끼리의 불신이 아니었다.
조직.
그리고 견고한 결속력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레이나의 협력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노 회장을 막아서려면 적어도 레이나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석두 혼자서 노 회장을 상대할 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레이나라는 존재와 같이 이 사태를 해결해 나가야 했다.
“으음.”
잠시 고민하기 시작하는 레이나.
그녀는 사실 인간에게 자신의 정체를 발설하는 것에 대해 별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 아니겠는가.
조직 대 조직의 싸움으로 변질된다면, 적룡파 간부들도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음대로 해.”
“알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석두가 창민에게 간부들 소집을 명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