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7
70화 충돌 (1)
석두가 적룡파 간부들에게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이후.
같은 시각, 슬레이어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벌어졌다.
간부들의 떼죽음에 의해 조직은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로이기도 한 노 회장은 의장이 갑자기 이들을 배신해 난데없이 살육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혼란에 빠진 슬레이어는 이 말을 믿어야 좋을지 말지를 제대로 판가름하지 못했다.
노 회장은 사실 그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있었다.
인간과 드래곤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드래곤.
사실 슬레이어가 지니고 있는 전력의 과반수를 투자해도 노 회장, 한 명을 제압하지 못할 정도였다.
예전부터 강한 힘을 지니고 태어난 노 회장.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상당히 영악했다.
함부로 발톱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 회장은 자신의 실력을 철저히 감춰왔다.
그래서 슬레이어 내부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 회장이 혼자서 모든 장로들을 전부 다 압살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의장과 몇몇 장로들이 함정을 설치해 이런 일을 벌였으리라고 믿기 시작하는 여론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 회장이 여기저기 심어놓은 스파이들이 슬레이어의 여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이들 덕분에 슬레이어 내부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 회장의 말을 믿는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결국 슬레이어가 다시 지휘 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노 회장이 단독으로 집권을 하게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노 회장의 계획대로였다.
“바보 같은 놈들이구만…….”
슬레이어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노 회장의 사무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휘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슬레이어를 통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노 회장도 사실은 슬레이어 내부에선 그리 나쁜 이미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조직을 위해 그 어떠한 장로보다도 많은 공헌을 해온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실제로 드래곤의 레어에 잠입해 드래곤의 보물들을 훔쳐오는 데에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이 바로 노 회장이었다.
덕분에 다른 장로들에 비해 노 회장을 추종하는 추종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설마 장로들을 학살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질 만한 사람은 슬레이어 내부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설사 의심을 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노 회장이 그 반동분자를 색출해 내 뒤처리를 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노 회장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은 말 그대로 억제당하는 수준이었다.
“대략… 2주일 정도 되겠군.”
노 회장의 입에서 비교적 구체적인 기간이 새어 나왔다.
슬레이어 조직을 자신의 산하로 완전히 들여오는 것.
그것을 노 회장은 2주라는 기간을 잡고 있었다.
슬레이어가 자신의 조직이 된다면, 노 회장은 석두와 레이나에게 전면전을 선포할 예정을 지니고 있었다.
레이나가 물론 강한 존재이긴 하지만, 이들 역시 슬레이어로서 드래곤을 사냥하는 자들이란 별칭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개개인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예전부터 내려오던 오랜 노하우와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드래곤의 압도적인 힘과 인간의 조직력.
그 두 가지의 싸움이 될 예정이었지만…….
김석두라는 존재가 레이나에게 가세하고 말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녀석이… 설마 나를 가지고 놀 줄이야.”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기왕 벌어진 일.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겼다.
어차피 한 번은 꺾어야 할 상대라면 차라리 잘됐다.
레이나와 함께 일찌감치 미리 밟아두는 게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품자, 노 회장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존재는 노 회장으로부터 오랫동안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드래곤이란 드래곤들은 죄다 내 손으로 없애주지……!”
한동안 적막한 사무실 안에는 노 회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분노만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 * *
동굴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이들.
빛의 구체를 멍하니 바라보는 적룡파 간부들이 여전히 신기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법.
이들의 입장에선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르게 김창민은 어렴풋이나마 눈치를 채고 있었다.
김석두는 분명 남들과 다른 이질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그에게서 일격을 맞았던 경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그의 힘.
헌데 그것이 설마 마법이었을 줄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
아직까지는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인생을 운운하는 게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그만큼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석두의 마법으로 인해 환하게 밝혀진 동굴 내부를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이들.
그리도 드디어.
그 끝에 도달했다고 판단되었을 무렵.
“이곳이다.”
석두가 또 다른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동굴 내에 위치한 새로운 동굴 입구.
구조 자체가 상당히 신기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앞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작은 동굴 입구에서 주기적으로 바람이 왔다 갔다 하는 듯한 촉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앞에… 뭔가가 있다!
꿀꺽 침을 삼킨 적룡파 간부들이 조심스럽게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명씩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
“세, 세상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는 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생명체가 몸을 만 채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다 들어오지 못할 만큼 거대한 생명체.
처음 보는 존재였지만, 적룡파 간부들은 이 생명체를 보자마자 어느 한 단어를 연상할 수 있었다.
“드, 드래곤……?!”
망치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순간, 큰 실수를 했다는 듯이 두 손으로 본인의 입을 틀어막듯 가려 버렸다.
지금 드래곤은 잠들어 있다.
만약,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강제로 기상을 하게 된다면…….
눈앞에 있는 이들을 잡아먹을지도 몰랐다.
그 걱정이 들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석두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딱히 걱정할 단계까지는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깰 일이 없으니 그렇게까지 크게 신경 안 써도 된다.”
“그, 그걸 어떻게…….”
“이 녀석이 있으니까.”
석두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내는 한 여인.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갑자기 슈슉! 하는 효과음을 동반하며 마치 순간이동을 해온 듯이 갑작스럽게 출연했다.
적룡파 간부들도 익히 잘 아는 얼굴이었다.
금발의 미인, 레이나.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일순간 적룡파 인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예전부터 레이나에게는 뭔가 남들에게 쉽사리 말하지 못할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란 추측은 이미 난무하고 있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선 석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유라든지 명분이 있었을 터.
그런데 그것이 설마…….
드래곤과 연결되어 있을 줄은 이들도 생각하지 못했다.
“두목님, 혹시 그녀가… 이 드래곤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가장 먼저 김창민이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적룡파 간부들 중에서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 그의 물음에 석두가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실례 되는 말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 설명을 해주기 위해 너희를 이곳으로 부른 거다.”
너무 그렇게 조급하게 닦달하지 말라는 식으로 일침을 가한 석두였다.
한편, 드래곤이 숙면을 취하고 있는 이 장소에 등장하게 된 레이나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적룡파 간부들을 바라봤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레이나가 한 번 정도는 봤을 법한 얼굴들이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 모인 거야?”
“어.”
“그렇다면 이야기해도 되는 거지?”
“그래.”
“응, 알았어.”
석두로부터 허가를 받은 레이나가 여전히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여기 잠들어 있는 이 드래곤이 사실 내 본체야.”
“…네?”
“……???”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적룡파 간부들.
하기야.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할지도 몰랐다.
말이 본체지,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와 연관이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 등 엑기스는 쏙 빼놓고 생략성이 강한 발언을 하니… 제아무리 머리 좋은 적룡파 간부들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순 없었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인데, 어찌 쉽게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점에 대해서는 석두도 십분 공감하는 모양인지 재차 레이나에게 말을 건넸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줘.”
“이게 상세한 건데?”
“…아니다, 말을 말자.”
레이나에게 친절이라는 것을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석두가 레이나로부터 발언권을 넘겨받게 되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레이나는 이 드래곤의 정신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체라면…….”
“육신은 이곳에 잠들어 있고, 이 드래곤의 정신체가 레이나라는 형태를 만들어 따로 활동을 하고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걸로 따지면 드래곤이라든지 마법의 존재 자체도 진작부터 부정을 당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다.
비록 그러한 일들의 인간의 눈앞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아닐 뿐.
드래곤과 마법.
하루아침에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두 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접한 덕분일까.
적룡파 인원들의 머릿속은 점차적으로 생각하는 걸 관둬가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 좋은 도서희마저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꺼내야 좋을지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눈앞에는 거대한 드래곤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가 사실은 이 드래곤의 정신체라고 했다.
믿기 어려운 말투성이였다.
그러나 신빙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석두라든지 레이나는 직접 마법을 부리는 모습을 이들에게 선보여 줬다.
마법이란 존재를 두 눈으로 목격했고, 심지어 드래곤의 실체도 보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안 믿고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중요한 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 모두가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이 현실에서 눈을 돌릴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