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69
72화 충돌 (3)
세미는 머릿속으로 많은 고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건 싸움.
그리고 김석두의 비밀.
물론 세미도 그에게는 뭔가 남들에게 알리지 못할 특별한 비밀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돌아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드래곤이 엮여 있을 줄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아…….”
계속해서 깊어지는 한숨 소리.
집 안에 틀어박힌 채 불도 켜지 않고 몸을 웅크린 채 고민의 시간만을 가지던 그녀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현재 시간, 저녁 8시.
그렇게까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정을 내릴 거면 빠르게 대답을 주는 편이 좋았다.
그게 석두를 위해서도, 그리고 세미를 위해서도 옳은 길이라는 사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참가한다 해도… 과연 도움이 될까? 그리고… 나한테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애들은 어떻게 하지?’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이 점이었다.
도움이 될지 말지도 그렇지만, 세미에게 무슨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고아원을 이끌고 있는 원장 한 명에게 너무나도 큰 부담을 쥐여주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원장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
석두는 그런 두려움들을 극복하면서 세미에게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다.
지금까지 석두의 도움만 받으며 살아왔던 세미.
물론 세미 역시 그녀의 능력으로 석두에게 도움을 준 적도 있었지만, 사실 그 도움들은 구태여 세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기도 했다.
결국 석두는 마지막까지도 세미의 조력자로서 활약을 한 셈이었다.
늘상 도움만 받아왔던 세미.
이제는…….
그녀가 석두를 도울 차례가 아닐까.
* * *
굳은 결심을 한 채 적룡산업 빌딩 앞에 마주선 세미가 로비 안쪽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큰 결심을 하셨군요, 세미 양.”
세미는 이 남자의 목소리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석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는 남자, 김창민.
팔짱을 낀 채 세미를 응시하던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요… 그보다 창민 씨도 합류하기로 결정을 내리신 건가요?”
“네. 어차피 조직도 와해되었고, 제가 돌아갈 곳도 없으니까요.”
“그, 그렇군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세미는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다.
조직이 와해되긴 했지만, 창민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다른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조직을 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민은 마치 이곳 아니면 돌아갈 곳이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자기 변론에 불과한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왈가왈부 이야기를 길게 끌지 않기로 결심한 세미가 그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올라가실 거라면 같이 가요.”
“예.”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게 된 창민이 최상층 숫자 버튼을 터치했다.
한동안 계속해서 수직 상승을 하던 엘리베이터가 제자리에 멈추더니,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듯 띵! 하는 소리를 들려줬다.
복도에 진입한 뒤, 석두가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 문을 여는 두 사람.
그들의 모습에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바로 김석두였다.
“두 사람 다, 충분히 심사숙고한 뒤에 결정한 거겠지?”
“네.”
“물론이에요.”
창민과 세미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이것으로 적룡파 간부들이 전원 소집되었다.
남은 것은…….
노 회장이 이끄는 슬레이어와의 전면전뿐.
* * *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다음 날 오전, 이들은 다시 석두의 사무실로 모이게 되었다.
게다가 어제와는 다르게 레이나라는 새로운 인물 한 명이 추가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희한한 일이네.”
기존의 간부들 전원이 소집된 상황과 마주하게 된 레이나가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러자 석두가 무표정으로 왜 그런 말을 해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뭐가 희한하다는 거지?”
“아니… 분명 죽을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알아서 이렇게 모인다는 게 좀 신기해서 말이야.”
“본래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흐음, 그래?”
드래곤의 감성으로 인간의 생각을 이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레이나였기에 머리로 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을 진작부터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 어쨌든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체스 말이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이득 아니겠는가.
레이나가 입을 다무는 순간, 창민이 먼저 손을 들어 발언권을 구했다.
그의 행동을 지켜본 석두가 말해보라는 식으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창민이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저희의 입장은 공격입니까, 아니면 방어입니까?”
“아마도… 방어가 되겠지.”
잠시 입을 다문 석두가 리모콘을 들어 티비를 켰다.
그와 동시에 어느 한 젊은 남자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발언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희 슬레이어는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괴도란 존재를 유심히 관찰하고,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특출 난 능력에 대해서도 말이지요.
“저건……?!”
티비를 지켜보던 망치가 탄식을 자아냈다.
젊은 남자가 하는 말에 절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을 슬레이어라고 지칭하면서 동시에 괴도의 존재를 부정하는 중인데, 어찌 가만히 흘려들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남자가 슬레이어입니까?”
창민의 직설적인 질문에 대신 대답을 들려준 건 석두가 아닌 쾌남이었다.
“…아닙니다.”
“그럼 누구지?”
“…슬레이어와 연관이 없는 남자입니다.”
“일부러 정체를 은폐하기 위해 대역을 세운 건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도 각종 방송국에 괴도 경고 방송을 보낼 당시, 괴도의 존재가 김석두임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 대역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들 역시 대역을 세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철두철미하구만.”
번개도 슬레이어의 위장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서, 저희 슬레이어도 괴도를 체포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슬레이어가…….”
“…먼저 선전포고를 해오다니.”
여기저기서 큰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석두가 방금 말한 ‘방어’라는 의미가 어떠한 뜻을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칼을 빼어 든 쪽은 다름이 아닌 슬레이어였다.
오히려 그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사실 석두를 비롯해 적룡파는 슬레이어에 대해 그렇게까지 많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노 회장을 통해 간단한 소스만을 접했을 뿐.
이것만 가지고 슬레이어의 전부를 파헤칠 순 없었다.
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슬레이어가 먼저 결단의 칼을 뽑은 것이었다.
정보는 슬레이어 측이 훨씬 더 많았다.
노 회장은 그간 석두와 적룡파의 곁에서 같이 활동을 하면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빼 간 상태였다.
이미 정보 싸움에서 지고 들어간 마당에 과연 노 회장이 김석두에게 만회의 시간을 주려 하겠는가?
천만에. 오히려 빼어 든 칼로 시간을 지체할 것도 없이 석두의 목을 치려 덤벼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방송국을 통해 대놓고 괴도 퇴치를 위한 포석을 깔아두게 되었다.
비록 의적과 같은 행동을 해왔다 하더라도 괴도는 엄연히 법을 어긴 범죄자였다.
슬레이어는 한국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반절은 성공한 셈이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군요.”
김창민의 한마디였다.
그의 말에 석두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왔다.
“이것까지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크게 상관하지 마라.”
“비장의 무기라도 지니고 있으신 겁니까?”
“이미 여기에 있지 않나.”
석두의 손이 특정 인물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에 서 있는 인물은 바로…….
이번 사건의 중심적인 존재라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자, 레이나였다.
“상대는 정보와 조직력을 앞세우고 있지.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힘’이 있다. 그게 바로 레이나라고 할 수 있지.”
석두의 말 그대로였다.
레이나의 능력은 분명 강했다.
다른 적룡파 간부들은 잘 모를 테지만, 김창민은 그녀의 힘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직접 체험했다.
도끼파를 제압할 당시, 전선에 나섰던 인물은 김석두 한 명만이 아니었다.
레이나. 그녀 또한 도끼파를 궤멸 상태까지 몰아넣은 주축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석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데해서 김창민은 별다른 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레이나 씨가?’
‘…드래곤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연약해 보이는 일반 여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드래곤의 본체를 보긴 했지만, 레이나는 여전히 레이나였다.
그녀가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르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의심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레이나 또한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이들의 눈초리에 담긴 의심이란 감정을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태여 반응을 하진 않았다.
보여줄 순 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진 않았다.
“레이나의 능력은 충분히 믿을 만하다. 그건 내가 보장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결국 석두가 직접 나서 이들의 신뢰를 높였다.
석두가 이 정도까지 변호를 해주는 건 드문 일이었다.
부하 된 입장으로서, 그리고 괴도 김석두를 따르는 적룡파 간부로서 그의 말에 의심을 가질 순 없었다.
레이나가 지닌 힘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수밖에.
티비를 끈 석두가 재차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분명 우리들에게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우리는 녀석들이 먼저 습격을 해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역으로 공격을 가해 놈들을 제압한다. 그게 우리의 작전이다.”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군요.”
김창민의 냉정한 평가였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슬레이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일 각오를 다지고 있는 석두의 방식은 자칫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 시간을 기점으로 해서 절대로 혼자 행동하지 마라. 그리고 당분간 자택 출입을 금하고, 이곳 건물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라.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되기에 앞서, 석두는 적룡파 간부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전의를 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