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70
73화 충돌 (4)
그렇게 전의를 다지며 간부들을 해산시키려던 찰나였다.
“…아, 아.”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한 레이나가 이제 막 사무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적룡파 간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 엎드리는 게 좋을 거야.”
“…뭐?”
“그게 무슨 말씀인지…….”
뜬금없는 레이나의 말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멤버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석두가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엎드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콰과과과광!!!
사무실 한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리창뿐만이 아니라 벽까지 모두가 다 폭발에 휘말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상태.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갑작스러운 폭발이 이들을 덮쳤다는 점이었다.
“쳇.”
짧게 혀를 찬 레이나가 오른손을 뻗었다.
동시에 석두를 향해 외쳤다.
“녀석들이야. 정신 바짝 차려.”
“…슬레이어인가!”
보충 설명이 부족한… 비교적 불친절한 레이나의 말이었지만, 석두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어떤 자들을 지칭했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하나 설마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격을 퍼부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노 회장은 석두와 적룡파 간부들의 정체를 얼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 노 회장이 먼저 칼을 뽑아 들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무식하게 덤벼들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고층에서 발생한 폭발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 레이나가 마나를 퍼뜨려 일시적으로 방어막을 형성시켰다.
어차피 적룡파 간부들에게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다 밝힌 마당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감출 이유도 없어졌기에 부담 없이 막 사용하기로 했다.
석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속타가 들어오겠지……!’
그의 예상대로 폭발은 첫 번째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석두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곧장 두 번째 폭발의 원흉이 적룡빌딩 최상층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구덩이의 구체.
그것을 보자마자 석두가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저 불구덩이가 방금 그 폭발의 원흉이라는 건 이제 안 봐도 뻔했다.
‘마법을 구사하는 건… 노 회장이겠군.’
슬레이어 내부에서 이 정도까지 고차원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하프 드래곤인 노 회장밖에 없었다.
슬레이어는 노 회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석두와 적룡파가 제대로 된 대처를 마련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미리 선공을 치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속도전에서 이미 노 회장과 슬레이어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 점이 큰 실수였다.
오른손에 최대한 마나를 불어넣으며 불과 상반된 속성 마법을 선보였다.
“아이스 월(Ice wall)!!”
석두의 시동어와 동시에 뻥 뚫려버린 벽 대신에 견고한 얼음의 벽이 형성되었다.
불의 구체와 얼음의 벽이 서로 맞부딪치는 순간.
쿠구구구궁!!
엄청난 흔들림이 적룡산업 빌딩을 강타했다.
석두의 기질로 인해 두 번째 불의 구체는 쉽사리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일단 밑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계속 있어봤자 샌드백 신세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은 이들도 싸울 만한 진영을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 쾌남이 들고 있던 작은 노트북을 통해 추가적인 상황을 보고해 왔다.
“…이미 건물은 놈들에 의해 점령을 당한 상태입니다.”
“빠르군…….”
마법으로 석두와 레이나의 정신을 쏙 빼놓은 와중에, 슬레이어의 다른 멤버들을 대동해서 이미 적룡산업 빌딩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잠식해 나간 셈이었다.
거의 최상층에 다다른 모양인지, 석두의 대표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슬레이어 멤버들.
“꼼짝 마라!”
“저항하는 즉시 사살할…….”
그러나 슬레이어 멤버의 그 말은 차마 이어질 수 없었다.
순식간에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슬레이어 멤버 한 명의 앞까지 돌진한 김창민이 발을 걸고 남자를 넘어뜨렸다.
이윽고 허리춤에서 커터칼을 꺼내들어 정확하게 슬레이어 멤버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푸욱!!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살인을 행한다는 죄책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른손에 잔뜩 피를 묻힌 채 뒤에 있는 슬레이어 맴버들을 응시하던 김창민이 곧장 연이어 행동에 들어갔다.
한 명의 맴버는 권총을.
그리고 다른 한 명의 맴버는 레이나의 레어에서 탈취한 드래곤의 보물로 추정되는 단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두 녀석을 보는 순간, 김창민은 권총을 든 자가 아닌 단검을 든 자에게 몸을 날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권총을 먼저 탈취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 이 전투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전투 방식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끼리의 싸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김창민 역시 마법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눈에 봐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단검을 들고 있는 슬레이어 맴버 중 한 명.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창민은 지금까지 석두를 따라 훔쳐오던 물건, 드래곤의 보물로 추정되는 보구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가장 먼저 단검을 빼앗기 위해 움직였다.
스윽!
커터칼의 사선이 정확하게 남자의 오른손을 절단시켰다.
툭 하는 소리를 내며 지면으로 떨어진 남자의 오른손을 짓밟으며 손에 들려 있던 드래곤의 보물을 가로채는 데에 성공한 김창민.
이 단검이 무슨 능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것으로 김창민도 슬레이어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기존에 들고 있던 단검은 그대로 권총을 든 남은 한 명의 슬레이어 멤버의 미간에 정확히 투척해 꽂아 넣었다.
일격에 세 명을 제압한 김창민이 가로챈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단검을 매만졌다.
“과연… 이게 드래곤의 보물이라는 건가.”
김창민의 입가에 이죽거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적룡파 간부들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특히나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은 세미와 서희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애써 현실을 외면해 버렸다.
“레이나 님, 이 무기는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까?”
단검을 들어 보이는 김창민.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레이나가 오랜만에 본다는 의미를 가득 담은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거? …뭐였더라… 아마 플레임 소드일걸?”
“플레임 소드?”
“불의 정령의 기운이 어려 있는 칼이야. 사용자의 의식에 따라 자유자재로 불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나쁘지 않군요.”
“하지만 좀 다루기 어려울…….”
레이나가 말을 하기도 전에 플레임 소드 주변에 붉은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방금 막 무기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자재로 불길을 다루는 그의 모습에 레이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창민의 역량은 레이나도 이미 인정하는 바였다.
일반인 중에서는 그가 가장 높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드래곤의 보물을 맡겨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석두나 레이나가 드래곤의 보물을 가지고 있어 봤자 사실 효율성은 그다지 없었다.
두 명 다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구태여 드래곤의 보물이라는 도구를 이용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창민.”
“예, 두목님.”
석두의 외침에 곧장 대답을 들려주는 창민.
이렇게 된 이상, 역할을 분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난 노 회장을 찾으러 갈 거다. 너희는 그동안 애들 불러서 슬레이어와 바깥에 있는 경찰들을 상대해라.”
“알겠습니다.”
석두는 노 회장과의 싸움에 집중을 해야 했다.
자잘한 인원들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창민에게 통솔권을 넘겨주게 된 것이었다.
저 멀리서 불구덩이를 날려대고 있을 노 회장.
그를 찾아 움직일 생각을 갖춘 석두가 슬쩍 레이나를 바라봤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나야 뭐… 잔챙이들 좀 상대하다가 네가 힘들어진다 싶으면 지원 병력으로 합류할게.”
“그래.”
레이나가 바깥에서 난동을 부려준다면, 김창민 일행이 빌딩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로 역할점에 대해 합의를 본 뒤, 레이나가 그대로 건물 바깥을 향해 뛰어내렸다.
고층의 빌딩 끝에서 떨어지는 금발의 여성.
이윽고 쿠웅!!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 충격파가 파도의 물결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여자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바깥에는 슬레이어 멤버뿐만이 아니라 경찰, 심지어 군인들까지도 대동되어 있었다.
티비에서 본 그대로였다.
슬레이어는 대한민국의 공권력과 손을 잡고, 괴도 일행을 소탕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이들의 동맹 관계는 분명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레이나의 존재였다.
국가 단위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의 출연에 이들은 두려움보다 황당하다는 감정을 노출시켰다.
왜냐하면 레이나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슬레이어 멤버들 역시 레이나가 드래곤인지 제대로 파악하지조차 못했다.
드래곤을 실물로 본 사람은 슬레이어 내부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설로만 내려져오던 생물, 드래곤.
그 드래곤의 존재가 지금…….
이들의 눈앞에 강림한 것이다.
팔을 빙빙 휘두르며 몸을 푸는 시늉을 하던 레이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한번 제대로 난동 좀 부려볼까?”
* * *
불구덩이가 날아오는 방향을 응시하던 석두 역시 곧장 부서진 벽을 향해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앞서 레이나와는 다르게 석두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공중부양 마법을 발동시켜 일직선으로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김창민을 필두로 적룡파 간부들은 빌딩 아래를 향해 대피 중이었다.
더 이상 최상층에서 샌드백 신세가 될 필요는 없었기에 곧장 빌딩 바깥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 있어봤자 석두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선 노 회장의 위치를 찾는다.’
그게 석두로선 최선의 임무였다.
슬레이어의 중축이자 전력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 회장.
그를 찾아 제거하는 것이 이 싸움을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석두가 공중으로 치솟는 순간, 마치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수많은 불의 화살들이 그를 덮쳤다.
며칠 전에는 노 회장의 이런 공격 마법들에 의해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석두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때는 노 회장이 그 정도로 강한 마법을 구사할 줄 몰랐기에 당했을 뿐이지, 경각심을 지니고 있다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다.
물론 그를 완벽하게 제압해 쓰러뜨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이제부터 직접 전투를 통해 확인해야 했다.
“흡!!”
주변에 마나 배리어를 치며 불덩이들을 튕겨내는 석두.
덕분에 마법이 날아온 방향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파악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