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74
프롤로그
사형을 앞둔 죄인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이 찾아온다.
그중에서도.
죄수번호 23826, 김석두는 특히나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비록 고아였지만, 고아원을 나와 자수성가하고 취직을 해 나름 생활도 잘 꾸려나가던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
그런 그가…….
범국민적인 죄인이 되고 말았다.
“드디어 내일이 사형 집행일이군요, 김석두 씨.”
“…….”
“어떤가요? 지금의 기분이.”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석두에게 계속적으로 말을 붙인다.
석두는 이 여자의 정체를 모른다.
그저 교도소 측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여성과의 면회를 시킨 것일 뿐이다.
직업도, 심지어 왜 자신을 면회한 것인지도 모르는 여성.
“억울하겠죠?”
“……!”
“네, 물론 억울할 거예요. 당신은 그저 범죄 현장에 있었을 뿐. 그리고 돈 있고 권력을 쥔 자들의 타깃이 되어 범인 취급을 당한 것일 뿐이지요.”
여성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어두컴컴한 방에 손발이 구속된 채 앉아 있는 석두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당신은 희생양이에요. 시끌벅적한 국민들의 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장치. 그리고 작은 톱니바퀴. 김석두라는 남자의 목숨은 고작 그런 이유로 사라지는 거죠.”
“난 그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왔을 뿐이죠. 세상에 대한 원망도…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변혁을 직접 일으킬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죠. 그만한 용기가 있었다면, 당신은 평범한 샐러리맨을 하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소시민.
여자가 석두에게 표현하고 싶은 단어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소시민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할 범죄를 저지를 이유 같은 건 전혀 없다.
시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보를 훔치고.
주변에 있던 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물론 그 국보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석두는 끝까지 주장했다. 자신이 훔친 게 아니라고. 자신이 살해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세간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범인으로 몰아세우기에 바빴다.
“불쌍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여성이지만, 표정에는 전혀 동정심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대역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당신의 인생이 불쌍해지는군요.”
“…….”
“자~ 이제 억울함의 시간은 지났습니다.”
여성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자, 답답하던 작은 공간이 사라지고 무수하게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오로지 흰색.
그림자조차 없는 백색의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석두의 눈이 놀라움을 가득 찬다.
“이제부터 바로 ‘복수’의 시간.”
아까부터 자신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던 여성의 모습도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는…….
“으, 으아아아악!!!”
놀라 비명을 지르는 석두가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의자에 구속되어 있는 입장이기에 도망칠 수도 없다.
그저 눈앞에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 ‘드래곤’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게 그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
-억울한가요, 김석두 씨.
“이, 이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여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뜨거운 콧김을 뿜어낸 붉은 색의 드래곤이 석두를 응시한다.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습니다.
“서… 선택지… 라고?”
-네. 얌전히 내일의 태양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죽든가, 아니면.
드래곤의 눈빛이 살짝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도둑이 되든가.
“…도… 둑?”
-드래곤의 체면으로서 말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최근 제가 자는 사이에 어떤 간덩이가 부은 인간이 제 보물들을 훔쳐갔더군요. 아마 수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고 진작부터 훔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겠지요.
“그게 무슨 소리…….”
-세계에 각양각색으로 제 소중한 보물들이 뿌려져 있습니다. 근 10년 정도 되었을까요? 아마 그 도둑은 제 보물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겠지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그 녀석을 찾아내 브레스라도 선물해 주고 싶지만, 공교롭게도 제 본체는 다시 숙면기에 접어들어서요.
드래곤의 머리 위에 아까 보았던 여성의 형체가 투명하게 생성된다.
이윽고 다시 제 모습을 갖춘 여성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석두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전 당신에게 일시적으로 힘을 부여해 그 보물들을 다시 되찾을까 합니다.”
“그럼 나에게… 도둑이 되라는 의미가… 그 물건들을 다시 훔쳐오라는 뜨, 뜻입니까?”
“네. 당한 것은 그대로 돌려준다는 게 바로 저의 철칙. 도둑질로 당했다면 도둑질로 갚아줘야지요. 물론, 수십 배로 돌려줄 예정입니다. 더불어 그 도둑을 찾아서 응징을 해준다면 저는 당신에게 무한한 부와 권력을 주겠습니다. 아, 잊지 마시길. 이건 엄연히 ‘계약’이니까요. 만약 어길시…….”
여성의 눈빛이 잠들어 있는 드래곤과 같이 살기를 담는다.
“당신의 목숨을 가져가겠습니다.”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가는 여성의 협박.
그러나 석두는 이성적으로 이미 결론을 지은 지 오래다.
내일 누명을 쓰고 죽으니 차라리…….
도둑이 되겠다.
“후훗.”
석두의 대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여성은 답변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손을 뻗는다.
“당신에게 힘을 주겠습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아직도 얼떨떨한 석두가 여성의 빛나는 손을 뒤로하며 간신히 입을 뗀다.
“보물을 되찾는 거 이외에… 제 마음대로 이 힘을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힘은 당신의 재량 권한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머, 오히려 고마움을 표하는군요.”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억울하게 죽을 뻔한 위기도 겪었지요. 이제부터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겁니다. 힘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 하니까요.”
“좋은 마음가짐이군요.”
힘의 전이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시점에서.
여성은 간략하게 석두한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도둑이 된 걸 축하합니다, 김석두 씨.”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괴도(怪盜)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