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중대발표
이제 카메라의 성능이 오르기 위해서는 풍경사진을 3등급으로 올리기만 하면 됐다. 난 이를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사진을 찍는 시간을 늘리고, 포인트는 풍경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이대로 계속해나가면 적어도 가을이 되기 전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보였다.
“오늘 너희들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구나.”
매 주마다 있던 회의시간에 정만종 선생님은 굳은 얼굴을 하며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또 해외 촬영이 잡히셔서 스튜디오를 비우는 거면 아쉬울 것 같다. 요즘 선생님 현장에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상반기까지만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해외로 나가볼 생각이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나와 영효 선배, 미선 선배 모두 이런 폭탄이 떨어질 예상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폭탄도 그냥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급이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미선 선배였다.
“저기,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스튜디오 망했나요?”
“아니, 스튜디오가 왜 망하겠니? 단지, 사진으로 돈을 버는 건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원래 이런 생각은 몇 년 전부터 조금 가지고 있었다. 원래 작년 하반기에는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 시기가 조금 늦어진 건 승우 때문이었지.”
갑작스레 내 이름이 나와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네? 저요?”
“내 밑으로 들어와 뭘 배우겠다는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남겨줘야 했으니까 말이지. 최소한 너희들이 배웠던 거의 일부나마 말이지. 그래서 요즘 부쩍 말이 많아졌지, 허허.”
아니, 선생님 지금 웃음을 지을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야 그렇다고 치고 저기에 눈을 치켜뜬 채 눈물이 고인 미선 선배를 봐주세요.
미선 선배는 조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런 결정을 저희하고 상의도 없이 할 수가 있으세요? 저희는 어떻게 하라고요.”
그 말에 정만종 선생님은 미선 선배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미선이 너는 이제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야물었어. 패션이나 광고 쪽의 일을 하면 될 것 같구나. 최근 부쩍 네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진 것을 알고 있단다. 내가 없어도 문제없을 거야.”
“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리시게 된 건가요? 선생님은 이 바닥에서 전설이나 다름없으시잖아요. 게다가 병행해서 할 수도 있고요. 작년에도 스튜디오 유지하시면서 서울시에서 프로젝트도 잘 해내셨고··.”
“미선아, 나도 그런 일이 싫은 건 아니란다.”
“그럼 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리신 건가요?”
“사실 직업으로 하는 사진은 크게 재미가 없다는 점이 크다고 할까?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나는 별로 하기 싫은 분야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 내 신체 나이를 볼 때 해외로 나가 마음껏 찍고 싶은 것을 찍을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얼굴이 잔뜩 굳은 영효 선배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정만종 선생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진이 싫어지셨나요? 아니지, 사진이 싫어지시려고 하나요?”
“응? 아니. 사진은 좋아. 매일매일 난 어떤 장면을 보게 되고 그것을 담게 될지 기대가 된단다. 하지만 이제는 기다리기보다는 찾아다니고 싶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래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극단적이라니, 뭐가 말이냐? 이 스튜디오의 운영을 그만두는 것을 말하는 거냐?”
“네, 한때 선생님이 꿈이 자기만의 스튜디오를 소유하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스튜디오 운영을 잠시 중단하는 거뿐이야. 나중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 내 취향에 맞게 다시 스튜디오를 꾸밀 거란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스튜디오와는 아주 다르겠지.”
“하아, 전 이런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언제까지 내가 너희들을 품고 다닐 수는 없잖니. 사실 너도 나이에 비하면 독립은 좀 늦었지. 너도 혼자서 자기 몫은 넘칠 만큼 하지 않니.”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저는 사진 기술이 뛰어나지도 않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곁에서 오랫동안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덕분에 시간은 걸렸지만 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선 선배도 선생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선생님. 다른 사람들이 왜 여기서 계속 어시로 남아있냐고 의아해했지만 전 여기가 좋았어요.”
“무슨 내가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 같구나. 아직 3개월 정도는 더 운영을 할 거야. 좀 이르게 너희들에게 얘기를 한 건 준비할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서란다. 내 일은 점점 줄일 생각이니, 일이 들어오면 서로 맡아서 하거나,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개인 활동을 하려무나.”
선생님께서 이제 뭔가 말씀을 마무리하시려는 기색이 보인다.
나는?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건 나일 거 같은데.
“··선생님 저는요?”
“승우는 점심에 나랑 얘기 좀 하자. 나쁜 얘기는 아닐 거야.”
나쁜 얘기가 아니라면 좋은 얘기일까? 설마 같이 떠나자고 하시려나? 만약에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난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로 영효 선배의 쇼핑몰 상품을 찍는 일을 보조했다.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내 시선은 계속 시계로 가있었고 마침내 시간이 되자 난 부리나케 정만종 선생님의 방으로 달려갔다.
“저기, 선생님. 저 왔습니다.”
사진을 살펴보던 정만종 선생님은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선생님은 사진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았다. 한동안 일을 하던 선생님은 마침내 끝났는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여셨다.
“다름이 아니라 네게는 뭔가 특별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어서 말이다.”
“어떤··거요?”
동행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말이 나오자 좀 당황스럽다. 특별한 길이라니?
“사실 네가 내 밑에 있기는 하다만 내 생각에는 그 누구의 밑에 있어도 훌륭한 사진가가 됐을 거다. 몇 달 동안 네가 보여준 발전상은 정말 내게는 놀라웠지.”
“아직 갈 길이 먼걸요.”
“점차 자기만의 색을 찾아가면서 발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기초부터 공부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김형세 교수님과 연결시켜준 것이 컸다. 필히 알아야 될 것을 지나친 내게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배움의 기회를 얻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지금의 너를 보면 그건 기폭제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단다. 지금 시점에서 승우 네가 내 밑에 있는 건 족쇄라고 생각해.”
“네? 아니 제가 매일 선생님께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예전에 우리가 전주로 여행 갔던 거 생각나니?”
“네.”
1등 했었지. 뭘 찍을지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한 컷을 담을 수 있었다.
“그때 네가 찍은 사진을 보고 형세와 얘기한 적이 있었단다.”
“네? 어떤 얘기요.”
이런 얘기는 또 처음 듣는다.
“승우 너는, 주제나 형식에 대해서 즉각적인 인식을 하는 재능이 있다는 거지.”
“제가요?”
“그 말은 넌 다른 분야의 사진을 찍더라고 충분한 소질을 가졌다는 얘기란다. 예를 들면 다큐사진이나 보도 사진 같은 분야 말이다.”
뭔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내 처음 시작은 보도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왜 지금에 와서 다시 그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러웠다.
“아·· 제가 그런 쪽으로 나갈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요.”
“승우야,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네 사진의 세계가 두 배 이상으로 넓어진다는 소리야. 내가 너라면 기뻤을 것 같구나. 난 아쉽게도 그 분야엔 발을 담가 보지도 못했단다.”
“다른 분야에 도전을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운으로 난 상업사진계에서 제법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걸 버리고 다른 곳으로 다시 간다는 건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네 나이가 지금 25살이던가? 얼마든 시간이 있지.”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글쎄, 그건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언론사의 소속이 되는 방법도 있고, 혼자서 뭔가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네 생각은 어떤데?”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떤 결정을 하든지 난 널 지지해주마.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남은 시간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에 조금 안도감은 들었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선생님은 내게 실망을 하거나 다른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
집에 오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보여 난 슬그머니 다시 현관문을 잡았다.
형이 와 있었다.
“이 새끼! 내가 전지훈련 내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다!”
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형의 손아귀를 빠져나가기에는 늦어버렸다.
“아아악!! 형, 형!! 진짜 아퍼,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잠시 후, 우리는 현관문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한심하게 지켜보던 어머니에 의해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쫓겨난 뒤 기운이 빠졌는지 형은 나를 보며 물었다.
“밥은 먹었냐?”
“아직, 별로 먹을 기분이 아니야.”
“일단 뭐 좀 먹자. 진짜, 내 팬들은 이 나이에 부모님께 쫓겨났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뭐 어릴 때부터 다반사였잖아.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라고 소리치시던 모습은 하도 자주 봐서 익숙하네.”
그렇게 형과 나는 가까운 분식집으로 들어가 요깃거리를 시킨 뒤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형은 서비스로 나온 반찬을 집어 먹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난 순간 고민하다가 형에게 오늘 있던 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뭐가 고민이야? 다른 일로 빠지면 지금까지 네가 쌓은 노력이 무너져? 되돌아갈 수 없어? 그런 것도 아니잖아.”
김밥을 먹으며 형이 말했다.
“형은 잘 몰라서 그래.”
“야, 난 운동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 틈에서 성장했어. 어떤 녀석들은 자의로 또 어떤 녀석들은 타의로 말이지. 우리 세계에서 야구를 놓고 다른 일로 빠진다는 건 엄청난 핸디캡을 지고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말이지. 그런 고민을 나한테 털어놓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를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이걸 놓고 다른 데에 가면 좀.”
“힘들겠지. 당연한 거야. 이건 네가 판단해야 해. 지금 있는 곳에 만족하면서 정착하든지, 다른 곳을 한 번 도전해보던지. 넌 어떤데?”
형의 말에 난 다시 고민을 했다. 과연 내 생각은 어느 곳을 향해 있을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과연 그곳에서 내가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였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진을 찍으면서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속물적인 생각 말이다.
“야, 이거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어떤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아직 젊으니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도 있다.
“뭘 그렇게 인생 다 산 표정을 짓고 있어. 꺼림칙하면 관둬.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의 충고라고 해도 떠밀리듯이 결정하지 말고 네가 잘 생각해. 결국, 네 인생이야. 어떻게 살면 더 행복할지, 기대가 될지, 네 머리로 생각을 하고 결정하라고.”
“만약 다른 분야로 가게 되면 날 믿고 일을 맡겨주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아니지. 타인에 의해 네가 하고 싶은 결정을 방해받으면 안 돼. 스스로의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져.”
“아씨, 되게 잘난 척하네. 형은 그러고 있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는 있다. 너도 그러면 좋겠고 말이야. 밥이나 먹어.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형의 대책 없는 말에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고민은 지속되지만 일단은 남은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내 자신의 선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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