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사진의 재구성
진짜인 듯 보이지만 사진가의 시선으로 꾸며낸 가짜의 풍경을 앞에 두고 난 고민에 빠졌다.
“에브리아는 이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어?”
“음·· 가족? 좋아 보여.”
인간의 눈은 세상의 깊이를 판별하지 못하지만, 사진의 눈은 조리개에 따라,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세상의 깊이를 판별할 수 있다. 이 차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눈을 속인 선생님의 사진을 난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저 사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불륜을 찍은 사진일 확률이 높다고 하시네.”
돈가스를 먹던 에브리아의 눈이 커지며 ‘정말?’이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보이는 이에 따라 얼마나 모호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결국에 사진은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바라보는 사람의 관심이 제각각 어우러져서 때로는 이런 모순을 빚어내기도 한다.
“처음부터 선생님이 너무 큰 과제를 내려주셨어.”
“승우, 안 먹어?”
“응? 먹어, 먹어.”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사진을 찍어야 할지는 알겠지만 무엇을 찍어야 할지는 감도 오지 않는다. 게다가 컬러로 찍어야 하니 어려움은 두 배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공원이나 한 바퀴 돌기로 결정했다.
막 봄이 되는 시기라 공원은 새 생명을 가득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은 예전부터 꽤 유명한 관광지라 가족 단위로 찾은 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만든 법한 사진 찍는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마침 딱 찾는 게 있었네.”
“뭐가?”
난 에브리아의 말에 웃으면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 남자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진가 길승우라고 합니다.”
“··네?”
갑작스러운 내 인사에 40대로 보이는 남자는 경계의 빛을 내비쳤다. 그래, 나라도 그러겠지.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금 사진의 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이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요.”
“그런데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가족처럼 찍는 작업을 하고 있는 데 혹시 협조해주실 수 있나 해서요.”
남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날 바라보고만 있다. 아, 뭔가 내가 더 말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제가 가족사진도 멋지게 찍어드리겠습니다. 마음에 드실 때까지요. 저 나름 잘나가는 사진가거든요. 그냥 여기서 작품 하나 남기신다고 생각하시고 허락해주세요.”
“그·· 얼마나 걸리는 거요?”
“얼마 안 걸립니다!”
난 이렇게 첫 번째 가족을 섭외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던 두 번째, 세 번째 가족까지 섭외를 했다. 우선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난 본 가족사진부터 찍어드렸다.
“자, 아버지 표정 너무 굳으셨어요. 제가 지금 원래 가족분들 사진 찍는 거 맞죠?”
“흠흠, 이제 됐나?”
난 웃으며 가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포즈를 설명하며 가족들 몸에 손을 댔다. 예전에도 말을 했지만 피사체인 모델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가까운 거리와 가벼운 터치가 큰 역할을 한다.
“아이고, 이제 보기 좋네요. 어머님이 표정이 최고네요. 거기 아드님? 여기 좀 봐줄래요? 아까 그 개구진 표정 좋았는데. 응 그거!”
사진을 확인한 어머님이 입을 열었다.
“어머 어머, 역시 사진가가 찍어주니까 다르네. 그죠, 당신?”
“뭐·· 괜찮네.”
“조금 있다가 모델 역할 부탁드립니다.”
이 가족 중에서는 어머님이 모델로서의 센스가 좋다. 그렇게 난 세 가족의 사진을 모두 찍은 뒤 어머니, 아버지, 자식을 모두 다른 가족으로 구성했다.
“어색하죠? 일단 그 상태로 한 컷만 찍을게요.”
이렇게 흑백으로 한 장.
그리고 난 그들 곁으로 다가가 어떤 포즈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진을 찍어야 할지 알려주었다. 각 가족의 정예멤버가 모인 덕분인지 처음부터 결과물이 그리 나쁘지 않다.
“좋습니다. 그런데 숙녀분 조금 뒤로 붙어줄 수 있어요? 응, 와 잘한다. 딱 좋아.”
난 마지막으로 셔터를 누르고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에브리아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힘들었겠지.
“이거 어때? 가족 같아?”
“응, 그렇게 보여.”
작품 하나는 완료한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선생님도 마지못해 인정해주실 것 같다. 하지만 컬러사진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좀 실패작이다. 사진가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완성했지만 컬러사진으로 뭘 말하면 좋을까?
“추워.”
“그래? 날씨 따뜻해졌는데.”
호수 주위를 돌다가 에브리아가 내 팔에 기댔다.
뭔가 이렇게 행동을 하면 사람의 기분은 쉽게 변한다. 기분 좋게 말이지. 그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에브리아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저기, 에브리아.”
“응?”
“포옹 좀 해줄 수 있을까?”
“어··? 여기서?”
뭔가 되게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다. 주어를 빠트리고 말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지. 난 멋쩍게 웃으면서 사실대로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손을 벌렸다. 품 안으로 에브리아가 들어왔다.
그래, 이런 기분이지. 행복 가득한 느낌.
“저기, 에브리아. 다른 사람도 이렇게 포옹 좀 해주면 안 될까?”
··어깨를 한 대 맞았다. 좀 세게.
난 에브리아에게 포옹 전과 후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고 얘기했다. 단 동성만! 나도 다른 남자 품에 안겨있는 에브리아의 모습을 보기 싫은 건 마찬가지다. 그녀는 조금 투덜대더니 이내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해줬다.
“저기요.”
난 앞으로 다가오는 두 여자분을 향해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전 사진가 길승우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데 협조가 가능한지 해서요.”
“··무슨 실험이요?”
“포옹 전과 후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요. 제가 아니라, 저기 있는 제 친구랑요. 허락해주시면 제가 두 분 사진 책임지고 멋지게 한 장 찍어드리겠습니다.”
두 여자분은 서로 바라보며 의견을 나누다가 기쁘게도 내 작업을 허락해주었다.
“이거 좀 어색하다. 왜 떨리지?”
첫 번째 여자분이 에브리아가 다가오자 가볍게 웃으며 말을 했다. 난 그 표정을 사진에 담았다. 에브리아는 내 신호에 맞춰서 포옹을 했다. 음, 뭔가 보기 좋은 풍경이다. 내가 되도록 길게 안아드리라고 부탁을 한 탓인지 꽤 오랫동안 포옹하고 있다 이윽고 떨어졌다.
여자분의 표정이 좀 풀린 채 히죽 웃고 계신다. 난 놓치지 않고 그 표정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히히 되게 기분 좋아. 너도 빨리해봐.”
프리허그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자유롭게 포옹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껴안는다고 하는 건 친밀함, 사랑, 따뜻함의 상징이다. 포옹 한 번으로 난 마음속에 급격한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분 좋네요. 좋은 작업 하세요.”
두 여자분은 한층 더 친밀해진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둘이 우리 곁을 지나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프리허그를 하나보다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린다. 내가 했으면 성추행이었겠지, 정말 에브리아를 데리고 오기를 잘했다. 지금 좀 뿔난 것 같은데 나중에 집에 가면서 맛있는 것 좀 잔뜩 사주고 기분 좀 풀어줘야겠다.
***
“이런 식으로 문제를 푼 거냐? 하하.”
선생님께서는 유쾌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 내가 드린 ‘가짜 가족사진’을 보고서 모든 것을 알아채신 듯했다.
“일단, 사진의 진실을 발견한 건 칭찬해주고 싶구나. 어떻게 알았지?”
“아직까지 그 음식점이 남아있더라고요. 사장님도 계시고.”
“허허, 그건 예상하지 못했네. 다 말해줬겠구나.”
“전 그냥 처음에는 감쪽같이 가족사진인 줄 알았어요.”
“당시에 거기는 불륜 여행 장소였단다. 식당에 죽치고 앉으면서 숨 막히는 사회에서 일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았어. 사진을 찍다가 몇 번이나 내 카메라를 부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났는지 몰라, 하하.”
원래 좀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과거 사진을 보면 좀 야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다. 장난스러운 사진도 많고 말이다.
“이것도 가짜 사진이겠구나. 사진으로 보기에는 정말 가족 같아 보여. 이 꼬마가 제일 그럴 듯 포즈를 잡고 있는 게 귀엽구나.”
진짜 저 꼬마는 나중에 연기자나 모델을 해도 될 것 같다. 엄마 품에 꼭 안겨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방금 본 타인인가 싶을 거다.
“근데·· 이걸로는 좀 약하지 않니? 사진의 모순점을 찾아낸 건 칭찬할만하다만 딱 그 정도에서 사진이 멈춰있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지금부터 설득의 시간이 온 걸 느꼈다.
“선생님 이건, 가족처럼 보이기 전에 흑백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처음에 저는 흑백사진에 색을 입혀서 새로운 관점으로 피사체를 보기를 원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더라고요.”
쉽게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타인이 찍은 흑백사진에 나만의 색을 덧붙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난 현장에 가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냥 제 수준에 맞춰서 찍기로 했습니다. 간단하게 흑백은 과거, 컬러는 현재. 이런 식으로요.”
“음·· 이걸로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래서 제가 몇 가지를 더 준비했습니다.”
난 몇 명의 사람들의 사진을 꺼내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뭐지 이건? 급격하게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구나. 이렇게 짧은 순간에 처음 본 사람을 무장 해제를 시킨 비법이 뭐니?”
“포옹이에요.”
“아하, 재미있구나. 그러니까 흑백은 포옹 전, 컬러사진은 포옹 후의 사진이구나. 그래도 좀 의문인데 이 여자분들이 전부 네 포옹을 받고 이렇게 기분이 좋아졌다고? 아무리 사회가 개방적으로 되었다고는 하지만 낯선 남자의 포옹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내 마음을 할퀴는 적절한 선생님의 지적이다.
“··에브리아가 해줬습니다.”
“음, 이해가 가는구나. 그 예쁜 애의 포옹을 받으면 동성이라도 이런 표정이 나올 수 있겠지. 하하, 이 처자는 술을 한 잔 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 괜찮구나. 변화의 전과 후를 이렇게 색채로 표현하는 방식이 색달라. 사진 자체도 아주 좋고.”
다행히 사진에 대해서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자 기세를 몰아서 난 마지막 사진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이건··.”
“사장님이 창고가 넓으셔서 예전 테이블이나 의자 멀쩡한 건 놔두셨더라고요. 그래서 예전 테이블하고 의자 세팅해놓고 한 장 찍어봤습니다.”
“흑백사진이 과거를 대변한다는 얘기를 하기에, 고작 그 정도냐고 생각을 했었다만··.”
선생님이 찍으신 사진에 사람 없이 낡은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컬러사진이었다.
선생님은 사진을 보고 웃으시면서 말을 이어나가셨다.
“이 정도 정성과 종류면 괜찮다고 생각되는구나. 애초에 내가 준 사진이 흑백사진의 대변하는 사진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인정하마.”
선생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앞에 보고 싶었던 문구가 떴다.
[특성 획득 조건 카운트 : 9/10]다행이다, 이렇게 따로 작업을 해도 협업으로 인정해주는구나.
“다음에도 이런 과제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번 작업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습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면 될 거야.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다가는 복잡해지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이 내주신 첫 번째 과제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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