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언루트 촬영
오늘 있을 언루트의 촬영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찍을 예정이었다. 실내와 실외 모두 촬영이 가능하게 꾸몄다고 해서 기대를 하는 중이었다. , 의 이미지를 조합하여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일찍 오셨네요.”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스튜디오를 세팅하고, 소품을 정리하던 잡지사 직원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난 우선 촬영을 할 장소를 보고 의상을 체크했다.
“포토그래퍼님, 오늘 이 옷은 꼭 찍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유군한테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그녀가 내게 보여준 옷은 푸른색과 흰색 패턴의 체크무늬 반바지였다. 보통 사람은 소화하기 힘든 옷일 것 같긴 하다.
“하하, 이거 너무 애들 옷 같다고 유군이 싫어할 것 같아요. 근데 이거 꼭 찍어야 되는 옷이겠죠? 그럼 소품 좀 준비해주실 수 있어요? 여기에 어울리는 운동화 같은 거.”
“네, 문제없어요.”
뭐 잡지사에서 주도하는 작업이니까 이 정도 요청을 들어줘야 한다. 되게 근사한 곳인 줄 알았더니 그냥 펜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략 모든 의상과 찍을 장소를 보고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김형세 교수님께 사진이 어려운 건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다른 몸을 빌려 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창조적인 형상과 형태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회화나 음악, 춤보다 어려운 것이 사진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내게 있어서 상상과 표현을 말하는 데 사진보다 좋은 게 없다.
“에디터님, 여기 뒤편에 분위기 좋은 장소 있던데, 거기서도 몇 장 찍으면 안 될까요?”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시선으로 사물을 재배치하거나 사진 기술로 부족한 점을 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일단 난 최대한 있는 자원을 이용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길승우 작가님. 컨셉보면 나중에 흑백으로 몇 장 찍는다고 되어있는데 뭐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정장 계열로 입고 흑백으로 찍으면 분위기가 달라지니까요.”
나는 이런 꼼수를 써야지 인물의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지만 정만종 선생님은 이런 거 상관없이 피사체가 되는 인물의 다른 면을 잡아내는데 도가 트셨다.
그렇게 잡지 관계자와 현장에서 수정된 촬영 계획을 다 잡을 때쯤 언루트 멤버들이 도착했다.
“길승우 작가님, 같이 가자니까 왜 혼자 오세요.”
신 실장님이 다섯 명의 멤버를 앞세우고 내게 다가왔다. 외진 곳이라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어 언루트 멤버들은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게 보인다.
“사진 찍기 전에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요사이 꽤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컨디션은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여기저기 말이 많이 돌았나보다. 난 별 일 아니라고 얘기해준 뒤 컨디션도 좋다고 말을 해줬다. 돌아다니다가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오는 다섯 남자들을 찍기 위해 난 발걸음을 옮겼다.
“내 옷 왜 이래요!”
예상대로 촬영장에 나온 유군이 의상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소년이잖아, 소년.”
“이건 여자 옷 같은데··.”
“그런 느낌 나지 않게 찍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유군은 오른편에 혼자 서서 모자 만지고 있어, 신호는 주머니에 손 넣고 무게 잡고. 그래, 그 표정 좋다. 재민이는 무릎 꿇고 앉아서 저기 보이는 에디터 님한테 윙크!”
처음에는 잡지사에서 원하는 대로 찍기로 했다. 딱 봐도 의상을 위한 배경에 의상을 위한 하얀 벽지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잡시사가 원한 촬영이 끝나고 난 더 멋진 장면을 찍기 위해 소리쳤다.
“차혁아, 지금 너무 남자 같아. 조금 어려 보였으면 하는데. 좀 더 철없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카메라 옆 거울을 들여다봐. 가완이는 너무 무심하게 서 있는 거 같아 보인다. 팔짱 끼고, 좀 더 자신을 방어하는 느낌으로.”
시작은 러버걸스였지만 같이 여행도 간 언루트 애들도 참 마음에 든다. 생각해보면 되게 짧은 기간인데, 소속사에서 시간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동지라는 느낌이 든다.
“형, 여행가방 위로 앉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이거 자꾸 미끄러져서·· 어이고.”
“에디터님, 가방 좀 고정시켜주세요.”
내가 지금 저 애들한테 느끼는 이 활기찬 기분과 멋들어짐을 사진에 남기고 싶다. 나는 내 사진을 본 사람들이 다시금 내가 찍은 사진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차혁이 단독샷 가자, 문 앞에 앉아서 소년답게 초콜릿을 씹어 먹어!”
“형 빨아먹지 말고 베어 먹으라는 소리야.”
요즘에는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실제로 다양한 사진을 찍고 있다. 내가 그들보다 다른 것은 이렇게 인물의 얼굴에 나타나는 온갖 느낌을 보기 좋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재민이, 뿔테 안경 잘 어울린다. 범생 같아. 공부는 제일 못하면서.”
“유군아 지방방송 끄자. 재민이는 지금 포즈 좋다. 가완아 다리 하나 올려줄래. 응, 그렇게 손으로 붙잡고 살짝 미소.”
어느 유명한 사진가가 양감과 선, 그림자와 빛이 내 뜻대로 되어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모든 것을 내가 제대로 조정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지 모르겠다.
“형, 지금 이건 컨셉이 뭐에요?”
“너 같은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방을 쌀 때 벌어지는 일이랄까?”
“너무한다! 이 정도는 아니란 말이에요.”
바닥에는 옷가지들이 널려있고 그 위에 신호가 누워있는 장면이었다. 바닥에 널린 옷가지와 몇몇 소품이 그곳에 누운 피사체를 돋보기에 하고 있다. 반쯤 만들어낸 우연이지만 색감의 조화가 아름다워 보인다.
“유군아, 몸은 또 왜 그렇게 기괴하게 꺾어. 어디서 본 모양인데, 모델이 몸의 라인을 살리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야. 다 계산되고 공부한 포즈라고, 넌 그냥 자연스럽게 서 있자. 그냥 서 있기 싫으면 작게 움직여서 봐.”
아무리 전체적인 효과에 대해 계획을 세웠더라도 막상 촬영 때가 되면 난 피사체가 되는 모델의 분위기와 태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차혁이는 주저앉은 느낌 좋다. 어서 빨리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서 좌절하는 느낌이 들어.”
차혁이는 연기자로 나서도 크게 성공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가끔씩 흘리는 표정들을 보면 확실히 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상을 갈아입은 언루트 멤버들이 야외 촬영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모두 정장 스타일을 입고 머리도 곱게 손질해서 어찌 보면 회사원 같기도 하다.
“단체컷 하나 가자. 좀 거친 남자 느낌으로 눈에 힘을 줄 수 있어? 잠깐만, 포즈 좀 손 보자.”
난 그들 곁으로 다가가 차혁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살짝 주저앉은 유군에게 다가갔다.
“유군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모델 흉내를 내려고 해.”
“어? 형 이거 멋지지 않아요?”
내가 유군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자 양옆에서 도움이 들어온다.
“너 되게 이상해.”
“하나도 안 멋져.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여.”
그 말에 유군이 투덜댔고, 난 웃으면서 포즈를 교정해 주었다. 언루트 멤버들과 몇 번이고 촬영을 같이하다 보니까 확실히 이렇게 하면 좋은 사진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날 강하게 한 번 쳐다봐, 강하게.”
[등급을 초과하는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렌즈로 그들을 보는 순간 작품이 하나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이들은 사진의 정형적인 프레임 안에서 서로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이 사진에는 언루트 멤버들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두르는 재민이와 신호, 차혁이는 이 무리의 약간 뒤쪽에 서서 멤버들을 지켜주는 느낌이고 가완이는 앞으로 살짝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유군은 팔짱을 끼고 있는데 아마도 자신의 모습에 확신이 없어보였다.
“이거 표지로 가도 될 것 같은데요.”
“너무 거무죽죽해서 좀 그렇지 않나요?”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사진이네요.”
잡지 에디터가 사진을 알아보고 칭찬을 해주셨다.
“신호랑 가완이, 멈추지 말고 그냥 여행 가방 들고 걸어가.”
사진에는 사진가의 얘기가 담겨있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찾다 보면 나와 피사체의 관계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내게 말을 건다.
“걸으면서 둘이 얼굴 마주쳐. 좋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나 꾸며진 순간을 무언가 가치 있는 순간으로 만들어내는 게 이 일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이런 직관도 내 작업을 이끄는 한 요소다.
“조금, 의외의 조합으로 가보자. 재민이랑 차혁이.”
“네? 키 차이가 좀 나는데··.”
재민이가 투덜대며 앞으로 나왔다. 난 둘 사이로 다가가 포즈를 정해줬다. 사진 중앙에 차혁이의 어깨에 얹은 재민이의 손이 이번 사진의 핵심이다.
“우리의 우정은 영원해! 뭐 이런 느낌으로 진지하게. 아, 표정 좋다. 그대로!”
[등급을 초과하는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예상대로 사진 중앙에 배치된 재민이의 손이 재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남자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남성상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좀 여성적으로 보이는 재민이의 손이 연약함과 망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젊음과 허세가 친근감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왜 이렇게 나 찐따 같냐. 차혁이 형만 멋지게 나왔어.”
“야, 너도 괜찮게 나왔어. 사진 팬들이 보면 다 멋지다고 할 거야.”
재민이가 사진을 확인하고는 투덜거려 위로해주었다. 점점 언루트 멤버들이 나와 공동 작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작업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촬영을 다 마친 후 언루트 멤버들이 내게 다가와 사진을 하나씩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거 잡지에 실리면 팬들 되게 좋아하겠어요. 강인한 컨셉으로는 찍어봤지만 뭔가 오늘 찍은 건 어른의 냄새가 나.”
가완이가 야외에서 찍은 사진을 신나게 보며 말했다.
“전 실내 쪽 사진이 괜찮아요. 뭔가 색깔들이 풍성하고 기묘해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마치 다른 세상 같다고 할까?”
“난 실외 쪽에 한 표. 유군하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진 진짜 마음에 들어요.”
신호에 이어 차혁이가 감상을 말했다.
“이 단체 컷은 잡지사에 넘겨주기 아깝네요. 앞으로 쓸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대표님께 연락해야겠네.”
신 실장님은 야외에서 찍은 단체 컷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 역시 사진을 보며 내가 꽤 늘었다는 거만한 생각이 들었다. 얼른 스튜디오로 돌아가서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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