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1
12화 정 스튜디오
정 스튜디오는 규모에 있어서는 작은 편이지만 이름값으로만 치자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이 모든 것은 정만종이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만종 선생님은 미국 유학파로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돌아와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 전시회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그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2000대 초반에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많은 연예인들의 화보, 패션사진, 광고,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은 이유는 선생님과 협업을 하는 사진작가가 없기 때문이었다.
“새로 온 어시스턴트라고? 우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우상진 부장님의 말을 듣고 아침 일찍 왔건만 정만종 선생님은 출타중이었고 이곳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대뜸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 어제 얘기가 다 됐다고 알고 있는데. 정만종 선생님이 오늘부터 출근하라고 하셨다고··”
“누구 맘대로?”
“네?”
이 사람은 누군데 처음부터 시비조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앞의 남자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몸에서 썩은 내가 풍기고 몰골을 보아하니 며칠 씻지도 않은 듯했다.
“우리하고 경쟁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편이 좋을 텐데.”
“만손 형님, 누굽니까?”
“아, 경훈아 이 분이 오늘부터 어시스턴트로 오셨단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또 사람을 뽑아? 대체 선생님은 무슨 생각인지. 원.”
마른 체격에 뿔테 안경을 쓰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남자가 우리 곁으로 오더니 나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쬐려봤다.
“여긴 아무나 받는 곳이 아니야. 나가는 게 좋을 텐데.”
“그래, 보아하니 아직 어려 보이는데 여기 들어오면 고생만 직살나게 하다가 울면서 돌아갈 것이 뻔해.”
어릴 때 동네에서 많이 본 양아치들 같다. 혹시 잘못 왔나 싶어서 난 한걸음 물러나 입구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정 스튜디오’라고 흘림 글씨가 적힌 간판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난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선생님과 통화 후에 오던지 하겠습니다.”
“야, 오긴 어딜 와?”
만손이라 불리던 남자가 나를 향해 말을 했다. 난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 웃어? 이 건방진 놈이.”
“이보세요들. 칠겁니까? 뭐가 그렇게 배배꼬여서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르겠는데 난 정식으로 허락받아서 이곳에 온 거고 여기서, 정만종 선생님 곁에서 일할 생각입니다.”
솔직히 저 둘의 시비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운동 좀 한 형님을 둔 남동생은 누구나 그럴 거다. 괴물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 주먹을 내지르지 않는 한 말로 으르렁대는 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
“후회할거다.”
뭘 더 어떻게 할 생각은 없는 지 둘은 나를 한 번 흘겨보고는 다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환대를 바란 건 아니지만 이런 적대적인 환경이라니 좀 걱정이 되긴 했다. 곧이어 9시가 되어가자 다른 직원들이 속속 출근하기 시작했다. 난 안내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 쯤 이곳의 주인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가인 정만종 선생님이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할 때 선생님은 손짓으로 내 행동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상진이가 보낸 아이가 너냐?”
“네? 아, 우상진 부장의 소개로 온 길승우라고 합니다.”
“내 어시스턴트를 하고 싶다고 들었어. 일단 얘기하자면 난 어시스턴트가 필요 없다. 지금 있는 애들도 많기도 하고 별 도움도 안 되거든. 그리고 난 가르치는 방법을 몰라서 내 밑에 있다고 해서 뭘 크게 배우지도 못할 거다.”
“아··”
“그래도 일하고 싶으면 우리 직원하고 얘기해서 서류 작성하면 될 것 같군.”
“저기·· 전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밑에 애들이 알려주겠지. 여기서 일할 생각인가? 잘 생각해봐.”
[전수자 : 정만종] [상위 능력치의 전수자를 발견했습니다. 을 전수자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전수자는 현재 1명 등록이 가능하며 등급이 오르면 추가 등록이 가능합니다.]“네!”
“대답한번 시원하군. 그럼 열심히 해보게.”
정만종 선생님이 나가버렸다. 아니, 난 시스템에 응답한 건데. 착각했으니 뭐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건 무슨 기능이야?
[전수자가 등록되었습니다. 전수자와의 관계, 협업 등으로 전수자의 관련 능력치가 두 배 이상 빠르게 성장 가능합니다. 또한 일정한 조건을 달성하면 전수자의 특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전수자와의 관계는 1년 마다 갱신 가능하며 전수자나 사용자의 사망 시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 임무가 주어집니다. 임무를 완수하면 전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특성을 얻게 됩니다.> [3000시간 내에 전수자와의 협업을 10회 이상 달성해야 합니다] [특성 조건 카운트 : 0/10]후아, 이제 내게도 스승이란 분이 생기는 거구나. 그나저나 협업이라니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줄 모르겠네. 3000시간이면 거의 네 달이니까 10번 정도는 함께 나가서 일할 기회가 있을 거야. 그동안 열심히 배워야겠어.
“협업? 지랄한다. 나 여기에 온지 2년이야. 그 동안 선생님하고 협업은 고사하고 사진 찍을 기회도 거의 없었다.”
네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아 깨어졌다.
정만종 선생님과 헤어진 후 난 직원의 소개로 아침에 시비를 걸었던 한경훈과 대면해야 했다. 그는 아침과는 다르게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줬는데 대답 하나하나가 전부 내 미래를 어둡게 하는 말 뿐이었다.
“2년 동안 내가 한 게 뭔지 아냐? 가끔 운전수 부족하면 운전기사 노릇하고 사진 찍을 장소 관계자하고 협의해서 잡아놓고 선배들 서브컷 촬영한 거 정리하는 게 다였어. 아 또 있다, 스튜디오 촬영할 때 장비 빌려오고 가져다주는 일도 하고 있어. 이게 잡부지 어시스턴트냐?”
“그럼 왜 여기에 계신 거죠?”
“너 크게 돈 되는 일 하는 스튜디오가 대한민국에 몇 개나 된다고 생각 하냐? 꾸준한 곳은 2~3곳이고 수많은 신생업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지. 어차피 사진 찍는 사람은 한 명이면 되고 기왕이면 이름 있는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일거리는 터줏대감 스튜디오들이 꽉 잡고 놔두질 않아.”
“아·· 그래서.”
“언젠가 저 인간도 늙어서 일을 맡길 때가 오겠지. 그 때를 기다리는 거야. 결국엔 이 스튜디오의 일거리가 우리 어시스턴트에게 떨어질 날이 올 거란 생각에서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그 자그마한 기회라도 잡으려고. 저 인간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나까지 4명이야. 너도 일하다보면 알겠지만 저 인간은 기술이라고는 없어. 그냥 느낌가는 대로 꼴리는 대로 찍는데 사진은 기가 막혀. 그냥 천재야·· 따라갈 수 없는.”
“그럼 전 뭐해야 하나요?”
“일단 미선이 누나하고 영효 형님이 좀 있다 정해주실 거야. 간만에 막내 생활 벗게 생겼네. 아까 막대한 건 미안하다. 만손 형님이 누가 들어오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 지 밥그릇 빼앗길까봐 걱정이 태산인 양반이야. 난 그 형님 학교 후배여서 남아있는 거고.”
“그런 겁니까.”
“내 밑으로 한 여섯 명 들어왔다가 만손 형님 때문에 다 나갔어. 그래서 아직도 내가 막내인 거야. 넌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그는 말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난 정 스튜디오 식구들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선생님은 회식에 원래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정만종 선생님 밑에는 나를 제외하고 4명의 어시스턴트가 있었다. 첫째는 배영효라고 하는 35살 형님. 성격도 몸짓도 푸근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할 때 정만종 선생님의 촬영보조를 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정미선이라고 하는 31살 누님. 금발로 염색하고 피부는 검은 편이었다. 뭐랄까 전형적인 재미교포의 외모랄까. 이 누님은 야외촬영 때 촬영보조를 하는 모양이었다. 셋째는 문제의 만손이라고 하는 분. 이름은 차만손으로 나이는 33살. 넷째 한경훈과 스튜디오의 잡일을 맡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술자리에서도 내가 건네는 술잔을 본체만체 하며 적대적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첫 번째 일거리가 떨어진 건 그 불편한 술자리가 끝날 무렵이었다.
“야, 급하게 연락이 왔는데 일주일 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들 중 몇 장이 더 필요한 모양이야. 내가 서브컷들 모아놓은 폴더가 있으니까 거기서 괜찮은 거 몇 장 뽑아서 내일 아침 선생님이 출근하시면 드려.”
물론 내게 일거리를 던져준 건 날 잡아먹으려는 눈빛을 술자리 내내 간직하고 있던 차만손이었다. 난 거절할까하다가 집에 가도 별 할 일도 없고 정만종 선생님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요구에 응했다. 차만손은 그런 내 모습에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내가 정만종 선생님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눈 앞에 문구가 떠올랐다.
[사진 판독 시스템이 발동됩니다.] [앞으로 사용자는 사진의 수준을 수치로 확인 가능합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