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기자의 시선
KFP 본사에서 난 처음으로 사진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었다. 바로 고참 사회부 기자이신 분에게서 말이다.
“확실히 말이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취재한 글을 놓고 사진을 선택하려고 하면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야. 네 사진이 잘 나온 건 알겠는데 글 내용하고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지.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말이 아니야. 기사는 둘의 조화가 어우러져야 된다고.”
신 기자님은 내가 가지고 온 사진을 보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그의 말이 옳았다, 사실 난 지금까지 이런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과 사진의 조화를 생각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아니 내 저널리즘적 사고에 초점을 맞춰서 나온 내 고정관념일지도 몰라. 그래도 난 기사라면 잘 찍은 사진과 잘 쓴 기사가 어우러져야 좋은 기사가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문제는 네 사진은 좀 튄다는 거야.”
“··어떻게요?”
“오늘은 좀 덜하지만 저번 주에 찍은 사진 중에 원래 나가려고 했던 기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사진은 없었잖아. 물론 이건 내 생각이야. 부장은 좋아 죽으려고 하니까. 특히 요즘 같은 온라인 매체에서는 잘나온 사진이 기사와 매칭이 되지 않더라도 잘 나온 사진을 우선시하는 게 트렌드이기도 하고.”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도 모르겠다. 일단 넌 기자로서의 시선이 부족한 건 사실이야.대신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사진을 잘 찍어오긴 해. 언론사 입장에서는 후자가 훨씬 가치 있는 존재니까 그렇게 시무룩해 하지 않아도 돼.”
신 기자님은 내가 계속 묵묵히 있자 날 위로하듯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언론사에 들어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기자로서 시선을 갖추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어? 그래도 내 말 흘려듣지는 말고 이것저것 시도해봐.”
“신 기자님 같은 경우는 어떤 걸 시도해보겠어요?”
“’님’자 붙이지 마. 나 같은 경우는 일단 주제가 정해지면 사진 한 장에 모든 분위기가 다 녹아 내릴 수 있게 시도를 해보겠어. 근데 그게 말이 쉽지. 해내기 힘든 일이란 말이지. 그냥 예를 들어보자 오늘 토론회 사진 같은 거 말이야. 이거.”
난 오늘 내가 찍었던 토론회 사진을 봤다. 신 기자는 사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사진을 보면은 대상을 크게 찍었어. 왜 이렇게 찍은 거야?”
“아무래도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 사진이니까 독자의 감흥을 얻기 위해서는 대상이 좀 더 부각되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대답에 신 기자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방금 한 말에 네 장점과 단점이 모두 나타나있어. 넌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야. 어떤 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말이지. 사실 너 말고도 많은 사진기자가 그렇게 찍어. 근데 대상을 크게 찍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장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이 생명력에 있어서는 더 큰 힘을 발휘하거든.”
“현장 분위기··.”
“응 특히 대상보다도 현장과 분위기의 조화를 이뤄낸 사진은 문화 전수의 역사성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단 말이지. 좀 어렵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신 기자님은 다시 사진을 내게 보여주셨다.내가 저번 주에 찍었던 사진이었다.
“이거 보면 네 강점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진은 스팟뉴스 사진에 가까워. 말하자면 돌발적인 사태에서 넌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을 뽑아내는 재능이 있다는 소리지. 반면에 일반뉴스사진을 보면 아주 평범해. 사실 평범하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이것도 대단한 거긴 해. 다른 사진기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니까 말이지.”
확실히 호평을 받은 사진은 짧은 순간 다른 이들이 못잡아내는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한 경우가 많긴 하다.
“일반뉴스사진은 기사가 정해져 있는 거야. 결과에 맞춰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쉬울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서 네가 지금 찍고 있는 방향성 자체를 돌리지는 말고.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다음 스케줄 뭐야?”
“네 NPS 방송사 파업 끝나서 그쪽 사진 찍으러 갑니다.”
“내가 한 말 잘 기억해두고 찍어와. 어떤 기사가 쓰일지 머릿속에 집어넣고 거기에 맞는 사진을 찍도록 하는 거야.”
난 신 기자님에게 인사를 하고 촬영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섰다.
***
신 기자는 문 밖을 떠나는 길승우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부장, 나갔으니까 자리에서 좀 나오죠?”
“갔어?”
다른 자리에 숨죽이며 앉아있던 부장이 일어났다. 그는 길승우와 신 기자의 말을 하나부터 끝까지 듣고 있던 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 기자의 말은 부장이 지시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하다하다 잔소리까지 저한테 맡기십니까?”
부장은 자리에 앉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왠지 저 녀석한테 미움 받기는 싫단 말이지. 하도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했더니 잔소리하기가 좀 어색해서. 중간에 ‘부장은 좋아 죽으려고 하니까’ 멘트 아주 좋았어.”
“개인적으로 문화 전수의 역사성 어쩌구라고 한 부분은 상당히 별로였어요.”
“그렇지? 그 부분은 나도 쓰면서 싸한 기분이 들더라고.”
“참나, 아직 한 달도 안 된 녀석한테 뭐 그리 바라는 게 많으십니까. 솔직히 지금 정도만 찍어 와도 훨씬 기대치를 상회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진부 애들 샘나서 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아, 근데 아쉽단 말이지. 저 녀석이라면 좀 더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만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걸 찾아내주는 것도 상급자의 임무 아니겠어?”
“네, 비겁하게 부하직원 시키는 것만 빼면 좋은 말이겠네요.”
“대사 하나하나 다 써줬잖아. 부하 직원이 상사를 위해서 그 정도 못해주냐?”
“상사가 시키는 일이니까 이런 어이없는 일을 맡은 겁니다. 대사 하나하나 외운 건 왜 칭찬 못해주십니까?”
“야, 어디 사기를 쳐. 너 말할 때 대사 적힌 종이 몰래 가지고 있는 거 내가 못 본 줄 알아?”
“아무튼 이 일로 제가 쓸 기사 오케이 해주신 걸로 알겠습니다.”
“알겠어, 그거 내가 책임지고 서포트 해줄 테니까 염려하지 마. 뭐 사회보험이 대수냐? 잘못하면 까이기도 해야지.”
둘은 서로 결과에 만족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한편 나는 교육청으로 가면서 고민에 빠졌다. 신 기자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옳았기 때문이었다. 왜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한 번도 쓰일 기사와의 조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아무 생각 없이 인물을 클로즈업 한 사진을 많이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갈 곳은 몇 달 동안 파업 끝에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고 다시 업무로 복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줘야 되는데·· 뭘 찍으면 좋을까?”
간단한 행사와 함께 모두 같이 손을 잡고 방송국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사진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 같다. 오랜 기간 힘든 투쟁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룬 모습은 어떤 장면을 찍어야 좋을까?
“길 기자 왔어? 오늘은 혼자네.”
몇 번이나 마주쳤던 장 기자님이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사진기자들은 방송사의 입구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리도 충분하고 시간도 넉넉해서 평화로운 분위기다.
“이런 일은 이제 혼자서 나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다른 사회부 기자님은 다른 곳에 계세요. 사진만 저 혼자 찍는 거예요.”
“KFP는 사진기자 아주 강하게 키우네. 우린 한 달 내내 수습기자 데리고 다니는데 말이야. 여기선 뭐 특별한 사진 같은 거 찍을 일은 없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거의 각본이 정해진 거 아닌가요? 모두 손을 맞잡고 들어올 때 몇 컷 찍으면 되겠죠.”
장 기자님은 내 말에 끄덕거렸다. 사실 오늘 입장하는 장면은 승리 후의 세레머니 같은 느낌이라 별로 특별한 상황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고 멀리서 노래를 부르며 수백 명의 방송사 직원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들은 서로 카메라를 꺼내며 그 장면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송사 직원은 만세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고 기자들은 그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이내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 다음 할 일이 있는 듯 서둘러 나갔고 나를 비롯한 몇 명은 자리에 남아 사람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박 선배, 다 끝났어요?”
“응? 아니 노조 대표가 담화문 발표하고 질문 시간 있어. 사진은 찍고?”
“네.”
“부장이 이번에도 만족해하려나?”
“특별할 게 없는 사진이에요. 다 비슷할 걸요.”
“뭐 그 사진들 대부분 쓰이지 않을 거야. 다른 자료 사진이 많이 쓰이지. 아무래도 오랜 기간 파업을 해서 시청자들이 피해를 본 측면도 있거든. 이렇게 환호하는 사진 써봐야 반발만 생길지도 몰라.”
“에고, 전 오늘 헛고생 한 거네요.”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몇 장을 찍어줘야지. 끝나면 같이 회사로 가자. 연락할 테니까 어디서 쉬고 있어.”
“한 장이라도 더 찍어 보려고요.”
“그럼, 그렇게 하던지.”
난 주위를 돌아다녔다. 입구 주변에는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지나가다가 난 구석에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환자분을 발견했다. 내가 환자라고 명칭한 것은 그분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 기자도 엄청 오랜만에 복직하네. 몇 년 만이야? 고생 많았지?”
“뭐 심적으로도 고생하고 몸으로도 고생했죠.”
“하여튼 이 잡것들은 정권이 바꿔야 정신을 차려요. 표 선배 자리 마련해 둔다고 했으니까 이제 빨리 몸이나 회복하세요.”
얘기를 듣자하니 이번 파업 말고 저번 파업 때 해직 조치 된 분이신거 같다. 그 동안 병에 걸려서 다른 일을 못하다가 이번 기회에 어떻게 복직이 되신 거 같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여기서 찍은 사진이 다 못 쓴다고 해도 해직된 채 병마에서 돌아와 다시 복귀하는 기자를 축복해주는 거 정도라면 사람들이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KFP의 사진기자 길승우라고 합니다.”
난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에게 무슨 볼 일 있습니까?”
“여기 지나다가 말씀하시는 거 들었습니다. 5년 전 파업 때 해고 됐다가 이번에 복직하게 되신다고 말이에요.”
“귀도 좋으시네. 우리 표 기자님이 그렇지, 이번에 복귀해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5년 만에 복직을 축하드리는 의미에서요.”
내 말에 그들은 웃음을 띠며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아, 근데 여기서 그냥 찍으면 기념촬영 같지 않나? 표 선배, 입구로 같이 들어가실래요?”
“뭘 그렇게 일을 크게 키워.”
“아니죠, 표 선배가 저번 파업 때 총대매고 나간 거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저기 여기 좀 주목해주세요. 표형호 선배가 왔습니다. 모두 기억하시죠, 리얼팩트 담당하셨던 선배세요. 오늘 5년 만에 복직하니까 모두 축하해주세요.”
한 방송사 직원의 외침에 주위가 웅성대더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고없이 찾아오셨는지 그가 온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은 거 같았다. 난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울음을 참는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앞으로 행복해지길 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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