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스포츠부
“네? 스포츠부요?”
“아니면 정치부나 문화부도 괜찮고. 사진부에서는 아마도 받아주지 않을 거야.”
출근하자마자 갑자기 염 부장님이 내게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권유하셨다. 늘 하던 것처럼 법원으로 출근을 준비하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왜지? 내가 어제 뭐 잘못한 것이 있나?
“나중에 설명해줄게. 좋은 일은 아니라서 내가 계속 널 여기에 잡아둘 수가 없어서 그래.”
틀림없이 뭔가 잘못을 한 모양이다. 어제 점심 이후에 나온 사진 때문이 분명하다. 어제 내가 찍은 거라고는 소방대원들이 누워있는 사진과 현장 잔해 사진밖에 없을 텐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강 부장이 받아준다고 하니까, 지금 바로 가봐. 너 원래 스포츠 사진 찍었다며. 야구 같은 경우는 하루에 다섯 경기씩 벌어지니까 경기 관심도에 따라 사진 수준이 널뛰기한다며 투덜대더라. 내가 잘 말해놨으니까, 어서 가봐. 한동안 거기서 사진 좀 찍다가 나중에 내가 부탁하면 한 번씩 와주고.”
“··알겠습니다.”
납득은 되지 않지만, 부장님도 좋아서 나를 보내는 건 아닌 거 같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좀 알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복잡한 머리로 사무실을 나오자 신 기자님이 복도에서 날 불렀다.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을 해줘야 될 것 같아서. 너도 어림짐작하고 있지 않아?”
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가 될만한 사진을 찍어 보낸 일은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신 기자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어제 찍었던 길바닥의 영웅들이란 제목을 붙인 사진 기억나지.”
“네··. 그 사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는데요.”
“그게 사실 문제가 될 게 있었어. 많이 있었지. 그 소방대원들이 지원을 못 받아서 길바닥에서 자는 것처럼 비쳤다고 그쪽 시에서 노발대발했다고 하더라.”
“그런 의도로 찍은 사진이 아닌데.”
“알아, 그런 의도로 찍은 사진이 아닌 건. 그래도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너와는 다른 모양이더라. 보아하니 아직 기사 확인도 안 했구만. 어제 그 사진 올라오자마자 각 사이트에서 꽤나 화제가 되고 있어. 덩달아서 욕먹는 사람도 많고 말이지. 기사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야.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오인돼서 기자의 목을 죄거든.”
“그래서·· 이렇게 쫓겨나는 건가요?”
“부장이 엄청나게 편의 봐준 거야. 이 정도 사고를 프리랜서가 치면 대부분은 바로 잘리는 게 이 세계야. 특히 안전제일을 우선시하는 우리 회사 특성상 말이지. 부장이 위에서 직접 명령 내려오기 전에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구나.”
난 이 일이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 좀 어이가 없었다.
“그게 그 정도로 큰 사안이었어요?”
“뭐 우리 부서 책임도 있어. 네 사진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하고 올렸어야 하는데 거의 실시간으로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까 사진 확인도 제대로 못 했고, 또 그 사진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올지도 몰랐으니까 말이야. 어쨌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일로 실망하지 말라는 거야. 네 편도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일부러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부장한테 잘 설명해줘. 신 선배 덕분에 이 일을 실망하지 않고 잘 넘겼다고 말이야.”
아쉽긴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언젠가는 벌어질 거라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들 얘기했었고, 난 남들보다 빠르게 약간의 불편함을 겪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건 시련 축에도 안 끼지. 아쉬운 건 내 의도와는 다르게 사진이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난 마음을 다잡고 스포츠부로 들어갔다. 어제 식당에서 본 강 부장님이 나를 보고 손짓했다, 내가 그 자리로 다가가 인사를 하자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사고 쳤다며. 사회부나 정치부 쪽에는 그런 일 많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얼마간 우리 부서에 집중해. 평화롭게 가자고.”
강찬도 부장님의 느릿하지만 자신감 있는 말을 듣자니 좀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자, 그럼 네 실력 좀 한번 보자. 잠실로 가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거기엔 배정이 완료돼서 말이지. 수원 쪽 그림이 안 나올 것 같으니까 한 번 가봐. 최 기자, 이 친구하고 가서 수원하고 인천 경기 취재하고 와.”
“알겠습니다.”
***
오랜만의 야구장이다. 정말 옛날에 많이 왔었는데.
슬슬 중반을 향해 가는데 이렇게 관심이 없는 이유는 꼴찌 간의 다툼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기사는 사진이 중요해, 알지? 훌륭한 스포츠 사진하고 잘 쓰여진 뉴스 기사는 비슷한 점이 많아.”
“어떤 점이 그렇죠?”
“양쪽 모두 시기가 적절해야 하고,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지. 야구는 좀 알지?”
“그럼요, 형이 프로야구 선수입니다.”
“아·· 그럼 걱정할 필요 없겠네. 저번에는 사진부에서 웬 수습을 막 띤 사람을 붙여줬는데 야구 규칙도 하나도 모르는 녀석이더라고. 미친 거지. 야구라는 스포츠가 한국에서 얼마나 큰 사업인데, 기사 하나가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 최소한 각 야구팀의 중심 타자가 누구인지, 에이스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넌 알지?”
큰일이다. 작년까지는 정말 잘 알고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 형네 경기 빼놓고는 제대로 결과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년 정보를 근거로 유추해보자.
“아무래도 수원 울프즈는 그 외국인··.”
“맞아, 이번에도 용병 농사 잘했지. 신생팀이라서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에 새로 뽑은 용병 윌리엄스가 모든 타격 지표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어. 작년에 잘 던졌던 버지스도 여전히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고 말이지. 잘 아네.”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난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오늘 경기를 할 두 팀의 기록과 현재 상황을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아직 경기 시작 한참 전이라 프레스석에는 기자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난 카메라를 들고 텅 빈 야구장을 찍으며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기분을 느꼈다.
“KFP가 부지런해.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인 줄 알았더니. 함께 온 친구야? 처음 보네.”
난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 인사를 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하나둘씩 자리에 앉고 경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옆에 앉은 기자 두 분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시구자는 누구야? 연예인인가?”
“야, 홈페이지 한번 들어가면 알 수 있는 걸 나한테 물어보냐.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냐?”
“오늘이 무슨 날이긴 12일 화요일 아니냐.”
“세계 헌혈자의 날이란다. 최다 헌혈자 두 분이서 시구하고 시타를 맡는다고 하네.”
“별로 나올 그림은 없겠네.”
그래도 기자들은 정성스레 시구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10위와 8위의 싸움이고, 화요일 경기라 그런지 관중석은 반 이상 비어있었다. 항상 그렇지만 야구는 일순간에 액션이 발생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촬영을 하는 데 극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투수전이네··. 별로 좋은 그림은 나오지 않겠어.”
투덜대는 기자의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난 역투하고 있는 인천 돌핀스의 투수에게 초점을 맞춘 뒤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현장이라 아이템을 써줘야겠다는 생각에, 난 하나의 아이템을 골랐다.
인천 돌핀스는 홈팀의 에이스에 맞서 올해 처음 풀타임을 뛰는 4년 차 유망주를 선발로 내세웠다. 나도 저 선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3년 전 우리 형의 머리에다가 멋지게 공을 던진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야, 드디어 영점 잡히는 건가? 원래 구속은 좋았는데 컨트롤이 엉망이라 못 써먹었는데 점점 잡혀가나 보네.”
시속 150km가 넘는, 힘 있는 볼을 꽂아 넣고 있는 선수를 향해 난 셔터를 눌렀다. 석양이 그윽할 무렵 역광에서 찍은 사진에는 한 투수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공을 던질 때 로진 가루가 선명하게 나타나 마치 로켓을 발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하원진이 인생 샷 건졌네.
– 법사였었군요. 화염법사.
– 올해 딱 한 경기 잘했는데 일생일대의 사진이 나왔다. 이것도 재주겠지?
– 와… 가…간지
– 보면 모르겠냐, 기자들 눈에 이렇게 보일 정도로 볼이 무시무시 했던거야. 컨트롤 되는 하원진은 메이저리거 부럽지 않아.
– 워워, 너무 나가신 듯. 나도 인천 팬이지만 4년 동안 한 경기 잘했습니다.
– 와 불의 강속구를 던지는 듯 ㄷㄷㄷ
– 오늘 1:0으로 끝난 이유가 이 한 장으로 설명되네. 한 명은 공을 던졌고 한 명은 불을 던졌어
***
스포츠부의 강찬도 부장은 타 언론사에서 가장 많이 사간 길승우의 사진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 기대가 있던 건 사실이었지만 야구장에 보낸 지 하루 만에 이런 사진을 찍어온 것을 보니 사회부의 염 부장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최 기자, 그 녀석 어땠어?”
“글쎄요, 뭐 별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나름 야구를 잘 알고 있는 듯해서 제 어드바이스 없이도 쓸 만한 사진을 찍더라고요. 사실 야구만큼 사진 남기기 힘든 종목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나도 예전에 가봐서 알아.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포기할까 싶으면 갑자기 일이 벌어지는 게 야구니까 말이지. 근데 이 녀석은 어떻게 투수에 중점을 맞출 생각을 했대?”
“아, 그거 노린 거예요.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이걸?”
“일부러 석양 때를 노려서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찍고 나서 생각보다 좋은 사진이 나왔다고 좋아하긴 합니다. 그때야 저 녀석도 인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거 말고도 결승타 장면도 건졌습니다. 정확하게 타자에게 초점을 맞춰서요.”
“그랬던가? 이 사진 임팩트가 너무 세서 다른 사진은 보이지도 않더라고.”
“제 생각으로는 그 사진기자 망부석처럼 야구 쪽 중요 경기 박아놓으시면 평균 이상으로 사진 찍어서 올릴 겁니다. 야구사진 잘 찍으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야, 나 부장이야. 선생처럼 가르쳐 들려고 하지 마. 그래도 내가 생각한 걸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예측력입니다. 이 뒤에 훌륭한 사진을 찍는 비결은 예측이라고요. 무슨 일이 일어날 지로 그치면 안 됩니다.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도 예측하면서 사진을 찍어야 돼요. 이거 되는 사진기자 드물죠. 근데 그 녀석은 되더라고요.”
“··여전히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구나. 며칠 써보고 영 아니면 다른 부로 넘기려고 했는데 데리고 있어야겠네.”
“꼭 데리고 있으십시오. 사진이 죽이니까 기사 쓰기도 쉽더라고요.”
***
그 시각 난 오랜만에 형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내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형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형은 작년 겨울 절치부심한 덕분인지 두 달이 지난 지금 꽤 잘나가고 있었다. 유격수 중에서는 두 번째로 타격성적이 좋았고, 수비는 여전히 최고였다.
“형, 요즘 잘하더라.”
– 야, 너 무슨 사고 쳤냐? 내 방 물건 뭐 건드렸어?
“왜 그래, 오랜만에 동생의 칭찬이 반갑지 않아?”
– 나 지금 굉장히 불안해. 빨리 잘못한 거 있으면 불어.
“아!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오랜만에 야구장에 와서 형 기록 찾아봤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모두 상위권에 있어서 전화한 거야.”
– 미친놈아. 저번 주에 내가 집에서 말했던 건 귀로 안 듣고 뭐 했어.
“응? 형이 그런 말 했어?”
– 됐다, 시발 놈아. 그때 대답은 잘만 하더니 그게 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단 말이지.
“나 오늘부터 다시 스포츠 사진 찍어. 형 경기 찍으러 갈 때 연락할게.”
– 쓸데없는 얘기할 거면 끊는다.
난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오늘 촬영은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구장도 편안하고 사진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내 사진에도 뭔가 발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