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버림받은 베테랑
트레이드란 말이 있다. 여러 뜻이 있지만, 스포츠에서는 팀끼리 선수를 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야구 쪽에서는 그리 활발하지 못한데, 그 이유는 단일리그인 데다가 팀이 고작 10개뿐이라 트레이드를 하는 상대방이 자신의 경쟁자이기 때문에 좋은 트레이드든 나쁜 트레이드든 곧바로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레이드가 일어났다고 하면 모든 언론사의 좋은 기삿감이 된다.
– 오늘 김은광 선수가 트레이드 되는 모양이야.
특히 오늘과 같이 즉시 전력 감의 선수의 트레이드는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 테고 말이다. 난 수원 경기장에서 강 부장님의 통화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기자 회견 안 합니까?”
– 일단 오늘 경기 끝나고 할 예정인가 봐. 발표는 5시에 날 예정인데 이미 선수한테는 지금쯤 연락이 갔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김은광 선수 찾아서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어봐.
“네? 제가요?”
– 지금 수원 구장이잖아. 좀 일찍 나가서 구장의 풍경 같은 것 좀 찍고 싶다고 말을 했다며.
진짜 말 그대로 야구장 주위의 풍경을 좀 찍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중임을 맡게 될 줄은 몰랐고 말이다.
“네, 지금 구장 주변이긴 합니다. 그럼 김은광 선수 연락처 좀 알려주십시오.”
– 안 받아. 지금 모르긴 몰라도 전화 수십 통이 그 선수에게 가고 있을 거다. 지금 누가 가장 트레이드가 된 대상의 선수와 먼저 접촉하는지 경쟁이 붙었어. 다행히 우리 쪽에는 수원 구장에 네가 나가 있어서 조금 유리한 편이고.
“그럼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 그건 스스로 생각해야지. 내가 그런 것까지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무책임한 경우가 있나. 난 꺼진 핸드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유일한 형제.
-미친놈아, 갑자기 전화해서 김은광 선배님에 대해서 아는 바를 말하라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서 경기에 뛰어야 할 형한테 이게 할 소리냐.
“그건 좀 미안한데, 이 넓은 곳에서 그 선수 찾으려면 실마리라도 찾아보게.”
– 나이가 들수록 더 뻔뻔해지네. 어휴, 이걸 무슨 동생이라고. 있어봐.
이럴 때 믿을 건 같은 야구 선수인 형밖에 없지. 기자들은 잘 모르는 정보도 알고 있을 테고 말이야.
– 그 선배 붉은색 랜드로버 타고 다니신다고 하네.
“아 형, 내가 어떻게 신발만 보고 다니냐.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 멍청한 또라이 새끼야, 차. 차! 누가 멍청하다는 거야.
“아·· 차 말하는 거구나.”
– 야, 오늘 무안타로 끝나거나 에러라도 저지르면 넌 집에서 죽을 줄 알아.
“형, 형 또 다른 거 뭐 없어? 형?”
아, 통화를 끊어버리네. 그래, 이 정도라도 알아낸 게 어디냐. 정보를 토대로 난 주차장에서 붉은색 SUV를 쥐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이 건가?”
난 인터넷을 검색하여 형이 말한 차종과 비슷해 보이는 차 앞에 섰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차가 제일 비슷해 보인다. 난 좀 떨어져서 그 차를 일단 사진에 담기로 했다. 사진을 찍어서 이게 맞냐고 형한테 물어보기 위해서다.
“선배, 짐 챙겨 가셔야지요.”
“됐어. 지금 당장 오라는데 구단에서도 양심이 있으면 잘 챙겨서 보내주겠지.”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난 차 뒤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두 명의 남자가 차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의 한 명은 김은광 선수였다.
“됐으니까, 가봐. 경기 준비해야지. 오늘 선발투수란 놈이 이러고 있으면 경기 망한다.”
“··정말 가시는 겁니까?”
“그럼 가야지. 내가 안 가겠다고 버틴다고 여기에 계속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딸려있는 식구도 있는데 돈 벌어야지.”
“선배하고 같이 야구하고 싶었는데··.”
김은광 선수는 후배를 보낸 뒤, 차에 기댔다. 난 가서 인터뷰 요청이라도 할까 하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얼굴에는 씁쓸함과 분노, 그리고 실망감이 그대로 나타났다. 난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었다.
“으아!!”
난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혹시 들켰나 싶어 그를 봤더니 날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일어나서 경기장을 향해 크게 뭔가 외치고 한동안 그곳을 뚫어지듯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몇 초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눈앞에 어른거려 난 또다시 셔터를 눌렀다.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고 말이다.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KFP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물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카메라의 화면에는 한 야구선수의 인생이 담겨 있는 듯 보였다. 팀에 필요하지 않은 선수로 취급된 노장의 슬픔과 분노가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뛰던 구단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김은광 선수는 야구장을 보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낀 듯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기자?”
“네, KFP의 길승우입니다.”
“하아, 인터뷰할 기분 아니니까 저리 가쇼.”
“저도 인터뷰를 기대한 건 아니고, 사진을 남겨도 되나 해서요.”
“하하, 언제는 뭐 허락받고 남기나. 보아하니 막 들어온 신입 같은데··. 좋습니다. 시간 없으니까 여기서 한 장만, 인터뷰는 없고.”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그는 사진을 남기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난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수원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된 그를 사진에 담았다. 그는 얼굴에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와씨, 이거 뭐야?”
강 부장은 길승우에게 날아온 몇 장의 사진을 보고 크게 외쳤다. 그는 길승우에게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찾았어? 아니, 사진 보니까 찾은 거네. 인터뷰는?”
– 인터뷰는 할 기분이 아니랍니다. 다행히 사진은 허락해줘서 몇 장 찍었습니다.
“아니 근데 이 사진 포즈 잡은 거야? 네가 시킨 거야?”
– 마지막 한 장 빼놓고는 몰래 찍었습니다. 다행히 허락은 해주셔서··.
“인터뷰까지 했으면 완벽한데 아쉽네. 그래도 잘했어.
강 부장은 전화를 끊고 입을 열었다.
“표 기자. 여기 와봐. 트레이드 기사, 김은광 선수 중심으로 하나 쓰자. 베테랑의 슬픔 뭐 이런 거 담아서 감성적이게.”
“네? 갑자기 왜요. 그냥 담백하게 사실만 열거해서 쓰라고 하셨잖아요.”
“이 사진 좀 봐봐.”
강 부장은 그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표 기자는 사진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니미··. 아, 죄송합니다.”
“왜 그렇게 쓰라고 했는지 알겠지.”
표 기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사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진이었다. 여기다가 약간의 기사만 더하면 많은 사람이 볼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진, 그냥 올리기는 아깝기는 하네요. 아이고, 기사 새로 써야겠네.”
“그럴 가치 있잖아.”
“네, 무슨 말 인줄 알겠습니다.”
표 기자는 사진을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수원 팍스의 제3선발 김은광이 인천 돌핀스의 전태진과 정지환과 2:1 트레이드 된다.
수원 팍스 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투수 김은광을 인천 돌핀스의 전태진, 정지환과 트레이드 한다고 발표했다.
김은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MLB에 도전했지만 오른 손목 골절상, 감독의 편파적인 기용, 인종 차별 등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몇 번씩 있었던 콜업 기회를 날려 버렸다. 결국, 병역 문제로 2011년 한국에 돌아와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문제를 해결하고 수원 팍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된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팀의 에이스로 꾸준한 활약을 펼치던 그는 다시 어깨 부상이 발생하면서 2017년 상반기를 날렸다. 후반기에 돌아온 그는 거듭된 어깨부상으로 구속은 줄었지만, 팀의 2~3선발로 활약하기에는 충분했다.
(중략)
– 실버옹, 진짜 가시는군요,
– 아·· 정말 이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아무리 유망주 패키지로 받았다지만 우리 팀을 누구보다 사랑했었는데.
–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게 맞긴 한데.. 아쉽다.
– 김은광 선수는 정말 수원을 사랑한 듯, 표정 보소
– 나라 잃은 표정
– 여기서 은퇴하고 첫 레전드 대접을 받아야 할 선수인데. 솔직히 김은광 선수만큼 팀을 사랑하는 선수 있냐.
– 나라 잃은 표정 2
– 팀에 심장이 빠졌네. 선수 요청이 아니라 구단에서 그냥 밀고 나간 듯
– 사랑합니다, 대장. 어디에 있더라도 응원합니다
여론이 뒤바뀌며 수원의 팬들은 울었다. 그 뒤에 나온 수원 구단 감독의 말은 더욱 그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수원 팍스의 마영식 감독은 김은광 선수가 빠진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트레이드는 내가 동의한 거다. 그의 공백은 나머지 선수들이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생각하면 팬분들도 납득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 심장 파내고 근육 붙여봐야 무슨 소용 있나
– 구심점이 없는데 잘해봐야 정도 안갈 것 같아. 이미지 최악
– 난 수원 야구 이제 안 보련다.
– 납득이 안 간다. 납득이 절대 안 가.
– 팀 창단부터 죽어라 던진 에이스를 이렇게 버리면 누가 우리 팀에 오려고 하겠냐
***
이틀 뒤에 나는 강 부장님의 호출을 받았다.
“네 사진 하나로 수원 관중 반이 줄었다. 항의하는 팬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하네.”
“그·· 제가 잘못한 건가요?”
“뭘 잘못해. 트레이드한 구단이 잘못한 거지. 우리가 뭐 그 구단 비난을 한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김은광 선수가 우리한테 직접 연락했어. 널 콕 집어서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더라.”
“제가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나요?”
“응, 그래서 내가 말했어. 길승우 기자는 사진기자라서 기자 한 명 동석시키겠다고.”
그렇게 나는 인터뷰 장소로 나갔다. 첫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은광 선수는 인천 쪽의 한 카페에 앉아 나와 우리 일행을 반겼다. 그는 날 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 길승호 동생이라며. 건너 들었다. 내 후배 동생인데··.”
무슨 말을 하시려는 줄 알겠다. 다른 야구 선수들도 내가 동생인 거 알면 다들 이렇게 말들을 하셨기 때문이다.
“네, 말 놓으셔도 됩니다. 형 선배면 저에게도 형님이시죠.”
김은광 선수의 얼굴은 삼 일 전과는 달리 편해 보였다.
“올라온 사진이 다르던데? 언제 찍은 거야?”
“사실 김은광 선수가 오기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연히 찍었죠.”
그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사진을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죄송합니다.”
“뭐 사진은 좋더라. 당시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사진 덕분에 내가 이렇게 많은 팬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 울컥하더라고. 만약에 그 사진 없이 그냥 갔다면 난 그냥 그저 그런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았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감사합니다.”
“네가 찍은 사진 덕분에 내 이름이 전국구로 알려 졌나 봐. 우리 구단에서 엄청 기뻐하고 있더라고.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어서 적응하기는 쉬울 것 같아. 무슨 내 이미지가 로맨티스트 비슷하게 가가지고 그건 좀 불만이지만. 오늘은 무슨 사진 찍을 예정이야?”
“글쎄요. 저도 정하고 찍는 건 아니에요.”
“조금이나마 고마움을 갚고 싶어서 부른 거야. 앞으로 뭐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닙니다. 앞으로 부상당하지 말고 롱런 해주세요.”
“네 형한테 전해 내가 특별히 주자 없을 때 쉬운 공 던져 준다고 말이야.”
“에이, 그런 식으로 하시면 형이 싫어합니다. 그 인간 봐주는 거 정말 싫어해요.”
나와 동행한 최 기자님이 마이크를 놓고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인터뷰나 할까요.”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김은광 선수는 컨디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고 얘기했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팬들 덕분에 빨리 지나갔다며 새로운 구단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했다.
난 내 사진이 이 선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직접 전해 듣고 기분이 묘했다. 사진 몇 장으로 누군가의 마음가짐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일 자체가 다시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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