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사진 울렁증 (1)
제이필터 뮤직의 대표 유수민은 김훈철 홍보팀장을 방안으로 불렀다.
“요즘 말이야, 뭔가 부족해.”
“대표님, 뭐가 부족합니까. 우리 간판 그룹은 전부 탑 찍고 휴식 기간이고, 무언가에 홀려서 무작정 데리고 온 애들은 역주행 신화를 새롭게 쓰고 있잖아요. 3연타석 홈런입니다. 지금 3대 기획사 빼놓고 한 소속사에 1위 그룹 3팀을 데리고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어요.”
“뭔가 말이지, 부족하단 말이야.”
김훈철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대표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일자리가 위험하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일 년 사이 회사에서 받은 풍족한 보너스가 그의 참을성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었다.
“그럼 혹시 새롭게 그룹이라도 만드시려고 합니까?”
“홍보팀장이라는 녀석이 왜 그리 내 마음을 모르나. 이래서 대표 자리에 오르면 친한 친구가 더욱 필요한 거야.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가 말이지. 영혼의 동반자 같은 거.”
“영혼의 동반자이신 사모님 계시잖아요.”
“그 여편네는 내 마음을 몰라. 배부른데 투정한다고 맞을 뻔했어.”
“··이미 해보셨군요.”
최근 들어 사춘기의 여고생마냥 감정 기복이 심한 대표를 보며 김훈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이 이랬다며 허허 웃고 넘어가면 되지만 그 인물이 대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 기복 있는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뜩 그는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혹시, 길승우 작가님 문제입니까?”
“그래! 역시 우리 회사의 홍보팀장이야! 우리 길 작가님 회사에 왜 안 오시는 거야? 우리한테 뭐 섭섭한 거 있으시데?”
역시 그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김훈철 홍보팀장은 입을 열었다.
“지금 그분 언론사에서 일하시잖아요.”
“아니, 그래도 우리 소속사인데 왜 오지도 않는 거지? 이쪽 계열은 아주 손 놓으신 거 아니야? 그러면 정말 큰 일인데.”
“저번 주에 광고 찍으셨어요. 우리 소속사에는 지금 일이 없잖아요. 그리고 몇 주 전에 우리 애들 사진도 찍어주셨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근데 왜 난 본 적이 없는 거지?”
“여기서 안 찍었으니까요!”
유수민 대표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김훈철 홍보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쪽 계열 친구가 하나 있거든.”
“이쪽 계열 친구분들 많으시잖아요.”
“그중에 배우 계열로 소속사 차린 친구가 있거든. 너도 알 걸, 나인제로 엑터스라고.”
“알죠, 대표가 구영배 씨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들었어요.”
“응, 이름 짓는 센스는 형편없는 데 사람은 좋아.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그 친구하고 술 먹다가 자기 배우 중 하나가 사진 울렁증 같은 게 있대.”
“사진 울렁증이요? 배우가요? 누굽니까?”
“송선아 씨.”
“네? 그 배우 연기 기가 막히게 하잖아요. 재작년에 영화 찍고 조연상도 받지 않았습니까? 작년에는 주연 배우로 자리를 잡았고요.”
“그래서 영배 그 친구가 미치려고 해. 스틸사진만 찍으면 어색하게 나와서 좋은 기회를 죄다 놓치고 있다고 말이야. 20대 때 패션 화보 하나 못 찍는 게 말이 되냐면서. 그래서 내가 길승우 작가님 얘기를 꺼냈지.”
“근데, 그래서요? 저기 대표님 길승우 작가님은 사진 잘 찍는 분이시지 마술사가 아닙니다.”
“지금 광고 퀸 빈아 씨도 우리 작가님이 수렁에서 건져냈다며. 그리고 촬영 현장마다 모델하고 거리 좁혀가면서 찍는 스킬이 대단하다는 우리 실장들의 보고가 있어. 아무튼, 영배 그 친구가 송선아 씨 사진 울렁증만 고쳐주면 우리 소속사의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단 말이지.”
“그래도 길승우 작가님한테 이 일은 부탁하는 건 계약 위반 아닌가요. 우리 소속사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일을 성공하면 우리 소속사에 큰 도움이 되니까 소속사 일이라고 우기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저한테 이 일 맡기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 왜 이런 일을 제가 맡아야 합니까, 홍보팀의 수장으로 지금 상황이··.”
“한가하잖아, 엄청 한가하잖아. 요즘 같이 한가할 때 없을걸. 혹시 계속 놀고먹고 싶은 거야?”
결국 홍보팀장은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
난 주말, 오랜만에 제이필터 뮤직의 본사를 방문했다. 홍보팀장이 특별히 부탁할 것이 있다면서 시간이 되면 꼭 방문해달라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일주일간 매일 일을 하니 점점 지쳐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김훈철 홍보팀장님이 꼭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니 가보고 싶었다. 원래 뭘 부탁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무슨 일일까?
“이건 제 ‘개인적인’ 부탁입니다만.”
··뭔가 뼈가 있는 말처럼 느껴진다. 이거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볼 수 없겠는데.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송선아 씨라고 아십니까?”
“알죠, 영화배우시잖아요.”
“그 배우분이 사진을 찍는데 공포증이 있답니다.”
“그 배우가요? 연기 되게 잘하시던데?”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일수록 오히려 스틸 카메라를 보면서 뭔가 표정 짓는 것을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억지로 꾸며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꺼린다고 하네요. 그 배우 측에서 우리에게 요청을 해왔어요, 이번에 영화 홍보 겸해서 패션 잡지와 인터뷰를 하는데 몇 컷 찍어줄 수 없냐고 말이죠.”
원래 소속사 사람들 빼놓고는 다른 현장에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게 부탁하는 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무정하게 거절하면 안 될 것 같다.
“제가 근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네? 하면 안 되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 시간 괜찮으신지··.”
“오늘, 내일 괜찮습니다. 주말에 시간 되고, 주중에도 시간만 좀 맞추면 하루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그때 대표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입을 열었다.
“길 작가님 오셨습니까! 우리 얼굴 본 지 꽤 됐지요.”
“네?”
아니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이런 말을 하지? 아니 뭐 길다면 길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대표님은 내 앞에 앉으며 잘 포장된 상자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더워질 텐데 몸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 좀 준비했습니다. 저도 매년 먹고 있는데 괜찮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홍삼즙입니다.”
“대표님, 뭐 이런 걸 다 준비해주시고··.”
“요즘 매일 같이 현장으로 나가시느라 힘들다고 생각해서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몸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나하고 대표님하고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차이가 엄청난데 ‘우리’라는 단어로 묶기는 좀··. 그래도 이런 것도 준비해주시니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길승우 작가님 부모님 거랑.”
어? 이건 좀 많은 거 아닌가.
“작가님 형님이 야구선수라고 들었습니다. 이게 몸에 잘 받을 겁니다.”
옆에서 김훈철 홍보팀장이 선물꾸러미를 보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표님은 좀 더 신경 써야 되는데 이 정도로 될지 모르겠다며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다음날, 점심쯤에 난 송선아 씨와 스튜디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송선아 씨는 10대 때 청소년 드라마에서 연기 커리어를 시작, 5년 전 드라마로 탑의 위치에 오른 뒤, 작년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도 흥행에 성공한 배우다. 20대 여자 배우가 기근이라는 충무로에서 그녀의 위치는 상당했다. 연기와 미모, 흥행력까지 갖춘 배우는 좀처럼 찾기 힘드니 말이다.
“오빠, 나 정말 사진은 싫다니까. 그냥 인터뷰만 하고 자료 사진 쓰는 거로 대체하면 안 될까?”
난 시계를 확인했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배우 측에서 먼저 와 있는 모양이다. 오늘 우리가 촬영할 스튜디오 1층 카페에는 송선아 씨의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 대표님이 특별한 사진작가 불렀다니까 한번 시도는 해보자.”
“일부로 멈춰서 표정 지으면 꾸며낸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연기 생활하면서 잘 나온 사진 한 장이라도 있는 거 봤어?”
난 조심스럽게 그들 앞으로 가 고개를 숙였다.
“오늘 촬영을 맡게 될 길승우입니다.”
송선아 씨는 날 훑어보더니 매니저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 특별한 사진작가분이 이 사람이야? 너무 어리지 않아? 대체 뭐가 특별한데?”
저 송선아라는 배우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못 붙이거나, 예의가 더럽게 없거나 둘 중 하나로 보인다. 내가 당황해서 자리에 서 있자 매니저 분이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선아 매니저 전기용이라고 합니다. 우리 선아가 낯을 좀 가려서요.”
매니저는 첫 번째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선아 씨는 입을 다물고는 음료수를 물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굉장히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나도 우리 소속사 직원하고 같이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입으로 ‘전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설명할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촬영 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왜 사진 찍는 걸 싫어하시죠?”
“하하, 우리 선아가 카메라 공포증이나 뭐 그런 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공포증이 있으면 영화나 드라마를 못 찍죠. 저희도 이유를 몰라서 고민 중입니다.”
“저기 매니저님.”
“하하, 네?”
“송선아 씨랑 둘이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네?”
“일단 사진이 잘 나오려면 피사체가 되는 모델과 사진작가 간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모델과 관계에 따라서 사진의 결과물은 변하죠.”
그 말에 송선아 씨가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제가 불편해서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못하기는, 엄청 또박또박 불쾌한 말을 잘하는구만. 난 그녀를 바라봤다. 진짜 소문만큼 한 미모 하신다. 내가 이 일에 익숙하기 전이었으면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예전의 내가 아니지.
“그래도 오늘 여기에 나오신 건 좋은 사진 남기려고 오신 거잖아요. 배우로서 패션 화보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테고 말이에요.”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되죠. 사실 오늘 여기에 나온 것도 다 대표님이 떠밀어서 그런 거예요.”
“떠밀려서 이곳에 왔으면 시간 아깝지 않아요? 일단 저도 송선아 씨 사진 제대로 찍을 자신이 있어서 나온 겁니다.”
“되게 자신감 넘치시네요.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이 세계도 직업에 대한 자신감 없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세계는 아닙니다. 경력은 짧아도 남들보다 더 많이 찍으려고 했고, 결과물도 좋았죠.”
“하아, 지금 당신이랑 이런 일로 실랑이하고 싶지는 않아요. 오빠, 그냥 사진 찍지 말고 인터뷰만 하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사정한다고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이 일에 내 목숨이 걸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난 짐을 챙기고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같으면 아까울 것 같아요. 이쪽도 따지고 보면 연기계열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하면 영상보다 훨씬 다른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상이 못 담는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한 채 지나가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사진가님은 그 세계로 절 이끌 수 있는 능력은 되시나요? 제가 이 바닥에서 10년 이상을 일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다들 제게 화를 내거나, 답답해하거나, 욕을 하면서 자리를 떴죠. 그냥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예요. 안 될 걸 아는데 끝까지 바동거리다가 우스운 꼴을 몇 번이나 당한 줄 아세요?”
차가운 그녀의 말이 귓가에 들렸다. 대충 이해는 간다, 특히 신인 시절에는 더욱 그런 일을 많이 당했으리라는 것도 알겠고 말이다.
난 화를 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미쳤어요!”
“이런 걸 캔디드 포토라고 그래요.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 촬영된 사진을 말해요. 이렇게 굳이 몰래 사진을 찍는 건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기 위해서죠.”
송선아 씨는 화난 얼굴로, 매니저님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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