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스카우트
송선아 씨 사진을 찍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 사진을 찍었던 잡지사 크리미(Creamy) 측에서 연락이 왔다. 조용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을 내줄 수 있냐는 말을 전해 와서 난 오늘 밤늦게 한 호텔의 바(Bar)로 향하는 중이었다.
난 하품을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직원은 나를 구석진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멋진 옷을 입은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나와 있었다.
“처음 뵙겠어요, 크리미의 편집장 구희양이라고 합니다.”
“네, 길승우입니다.”
“어려운 자리 해주셔서 감사해요. 길승우 작가님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 데 기다릴 수가 없었네요. 오늘 자리 나오기 싫어하는 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꼭 만나고 싶었어요.”
“스포츠 사진 찍다 보면 저도 지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일 없는 주말에 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제가 찍은 사진이 문제 있었나요?”
난 편집장이 이 늦은 시간에 나를 만나러 나온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먼저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예상을 너무 뛰어넘는 사진을 찍어 오신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사진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좀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작업이었어요.”
영상보다는 스틸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송선아 씨의 특성상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음, 우선 길승우 씨에게 하고 싶은 말 중 하나는 그 날 찍은 영상을 우리가 좀 쓸 수 있는지 여쭤보기 위해서예요.”
“네, 써도 됩니다. 근데 그건 어디다가 쓰시게요?”
“요즘은 종이잡지로만 내서는 살아남기 힘들죠. 삼백만 가까운 SNS팬도 있고, 자체적으로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어요. 길승우 작가님이 찍은 영상 같은 경우는 웹상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탁 정도야 전화상으로도 금세 허락을 해줬을 텐데··. 아니지 다른 얘기가 또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다른 일을 맡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마시고 있던 칵테일 잔을 내려놓았다. 잡지 쪽 하고의 일은 유쾌한 경험이 대부분이다. 스케줄 조정만 잘된다면 더 해봐야지 마음을 먹고 있을 때였다.
“혹시, 본격적으로 우리 잡지에서 일해 볼 생각 없어요?
아, 이거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말인데. 난 바보처럼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편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동상처럼 몸이 굳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며 구희양 씨는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길승우 사진작가님은 길을 완전히 잘못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해요.”
“··네?”
갑자기 나온 뜬금없는 충고에 난 겨우 입술을 뗄 수 있었다.
“대체 왜 그곳으로 들어간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래요. 여기 오기 전에 길승우 씨가 했던 작업을 조사해봤어요. 처음 기자로 시작해서 러버걸스를 찍고, 정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굵직한 일을 해냈죠. 화보하고 광고 쪽을 성공적으로 촬영하셨더군요. 근데 갑자기 언론사로 다시 들어가셨어요, 왜죠?”
“그건 제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물어보셨으니 대답은 해드려야겠네요, 좀 더 다양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들어갔습니다.”
구희양 씨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고 싶네요, 재미있으세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재미를 느끼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전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래서 길승우 작가님이 언론사에 들어가 찍은 사진도 살펴봤어요. 그곳에서도 센스는 어디 가지 않아서 화제가 되는 사진을 남기시고 있더라고요. 카메라 앵글이나 피사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뉴스 사진들과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생각이요?”
“대체 왜 이 정도 인재가 보도사진 쪽에서 뭘 하고 있는 지에 대한 그런 생각?”
어떻게 보면 칭찬인데, 또 어떻게 보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을 까내리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여기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없는 과거가 아니에요. 사진기자가 영향력을 언론에 끼치는 시대는 지났죠. 지금 뭘 찍고 있죠? 매일 반복된 스케줄로 뭘 얻을 수 있다는 겁니까.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좀 조사를 했습니다. 애초에 길승우 작가님은 길을 잘못 들어가셨어요.”
“··왜죠?”
“요즘의 보도사진이요? 똑같은 장소에서 카메라를 들고 똑같은 피사체를 찍는 사진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그 경우가 더 심하죠. 기자들의 출입처 문화 아시죠.”
“알죠.”
출입처란 특정 지역에 설치한 기자들이 취재하는 영역을 말한다. 기자들은 출입처가 있을 경우에는 이곳에 상주하며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고하고 기사로 올린다. 그리고 출입처를 가진 곳에서는 그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보도 자료를 돌린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가 편하게 취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큰 기관이나 기업 같은 경우는 백이면 백 다 출입처가 존재하죠. 이런 출입처 문화 속에서 현장 취재나 창의적인 기사 발굴은 힘들어요. 기자의 실력이나 정신, 인재 양성의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죠.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왜 사진기자가 되셨습니까?”
애초에 큰 사명을 가지고 이곳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의 조언을 받아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보도사진 쪽을 관두고 왜 잡지 쪽에 들어가야 되는지에 대한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공격적으로 말했죠? 그래서 사람들이 뒤에서 나를 많이 욕해요. 흥분하면 생각하지 않고 말이 나오는 편이라서··.”
그녀는 일단 내게 사과를 한 뒤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 길승우 작가님께 스스로 생각해서 사진을 찍을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네?”
“지금까지는 고용주의 사정에 맞춰서 컨셉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사진을 찍어오셨을 게예요. 어쩌면 그게 당연하죠, 그게 룰이니까요. 하지만 저희 잡지에 합류하시게 되면 길승우 작가님의 주도로 이뤄지는 작업을 드릴게요. 무조건.”
“제 주도의 작업··.”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을 저희 도움을 받으면서 찍는 겁니다. 너무 야하거나 폭력적이지만 않으면 제 권한으로 모든 걸 지원해 드릴 겁니다.”
예상했던 답변보다 괜찮은 제안이었다.
“그런데 라는 잡지는 여성 패션 잡지 아닌가요? 제 주도로 한다고 해봤자, 패션 화보 정도 일텐데요.”
“우리 잡지는 기본적으로 여성 패션잡지지만 아이돌 중심이고, 한국의 문화, 패션, 이슈를 다루고 있어요. 생각보다 범위가 넓죠. 기사가 글 중심이라면 잡지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사진입니다. 제가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아쉬운 점은 잡지의 중심을 잡아줄 사진가가 없다는 거였어요.”
“잡지의 중심을 잡는 사진가요?”
“길어도 몇 개월마다 사진작가분이 바뀌니까 사진의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저랑 에디터들과 길게 일할 수 있는, 그리고 자기의 색을 가진 젊은 사진작가를 원해요.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은 길승우 작가님밖에 없더라고요.”
“요즘은 잡지도 하향세 아닌가요? 저랑 작업하셨던 관계자분들은 전부 죽겠다고 난리던데.”
“솔직히 예전과 비교하면 국내 판매 부수가 떨어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아이돌과 인기 배우를 중심으로 화보를 찍어서 해외에서 사 가는 판매 부수가 어마어마하죠. 게다가 사이트나 우리가 운영하는 SNS도 팬들이 많아서 광고 수익은 예전보다 오히려 상승했어요. 알죠? 우리는 판매부수보다는 광고로 먹고 사는 거. 제 예상에는 아무리 부정적으로 봐도 향후 5년 이상은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번 제안은 솔깃하다. 특히 내 주도하에 모델을 섭외하고 컨셉을 생각해서 사진으로 언제든지 담아낼 수 있다는 조건은 나를 고민에 빠지게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까지 이직을 고민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아직도 이쪽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점이 많아서 난 고개를 저었다.
“거절인가요?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일단 회사로 와서 함께 맞춰보는 것도 좋아요.”
“저 이쪽에서 일한 지 아직 두 달도 안 됐어요. 맞아요, 편집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뻔한 사진만 찍게 되는 경우도 많고, 아직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좀 더해 보고 싶네요.”
“처음부터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마디 더 하자면 우리가 길승우 씨를 주목한 건 나이 때문이기도 해요. 지금 길승우 씨 나이가 25살이라고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전 나이 대에 맞는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전 우리 직장이 20대 중반의 사진작가가 일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시기에 우리 잡지에 합류하신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연락은 항상 기다릴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인 뒤에 자리를 떠났다. 난 한동안 창밖의 야경을 보면서 남은 칵테일을 홀짝거렸다.
***
하지만 다음날, 나는 강 부장님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네?”
“미안하지만, 승우 너는 오늘부터 야구장에는 못 들어가.”
“대체 왜요?”
“수원 구단 측에서 항의 들어왔어. 저번에 찍은 사진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건 부장님도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우리야 좋다면서 말이에요.”
“네 신분이 좀 문제야.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온 건 아니야. 수원 구단 고위층 쪽에서 우리 회사 윗분에게 ‘접대’ 비슷한 걸 하면서 그 사진 얘기를 흘린 모양이야.”
“그게 왜 제 신분이 문제가 되죠?”
“누군지 알아봤더니 네가 프리랜서 신분인 거지. 그리고 더 파봤더니 예전에 사회부에서 말이 나왔던 게 밝혀졌어. 그래서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사내 사진기자만 경기장 프레스증을 받게 할 거라는 거야. 그리고 기자실 출입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금 사회부 부장이 반대하고 있긴 한데, 지금 넌 우리 소속이니까 힘이 없지. 결국, 야구장 쪽은 가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럼, 다른 종목도 괜찮습니다. 비인기 종목도 상관없어요.”
“지금 시즌에 비인기 종목이 뭐가 있겠어. 현재로서는 우리 부에서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일단은 좀 쉬다가 한 달 뒤에 있을 공채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이야. 우리들은 자네 괜찮게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서류만 집어넣으면 우리 사원이 되는 거지. 난 지금까지 어떤 프리랜서한테도 이런 제안을 한 적은 없어.”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는데, 정식직원이 되면 복잡한 상황이 벌어진다.
“저기 그럼, 제 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응? 일단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면 한 가지를 선택하는 방법밖에는 없어.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해. 일단 들어온다면 겸직은 불가능이야. 듣자 하니 주말에 다른 일도 하는 모양인데, 이제는 관둬야 할 거야.”
“그건 좀 곤란한데요. 사정이 좀 있어서··.”
부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물론 네 사진 몇 장이 포털 사이트에서 화제를 일으킨 건 알아. 그렇다고 해서 네 편의를 봐주면서 회사의 질서를 무너트릴 수는 없단 말이지. 일단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길게 일할 수 있을 거야. 한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회사가 망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신문사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우리는 끄떡없거든.”
“그럼 일단·· 저는 여기를 나가야 되는 건가요?”
“아쉽지만 그렇게 됐네. 한 달간 쉰다고 생각해. 정식으로 들어와서 같이 일하자고. 솔직히 나도 자네의 신분이 좀 걸리긴 했어. 좋은 사진은 찍어오는데 우리 정식 직원은 아닌 점이 문제가 될 때도 있었고 말이지.”
그 순간 이 회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도사진에 매력을 느꼈다고 해도 모든 걸 걸기에는 주저했을 것이다. 광고나 제이필터 뮤직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도 싫고 말이다. 일단 나는 임 부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난 명함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길승우입니다. 저번에 했던 제안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어서요. 네, 좀 더 자세하게.”
이대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