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3
14화 스틸 컷
“한 달 동안 임팩트 있는 사진을 많이 찍었네. 이 도촬 사진 같은 것도 수준 있고, 시구 사진보면 보통 사진 기사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까지 잡아냈어. 이건 언제 찍은 거지?”
영효 선배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고 있다. 시구자 사진은 그러니까··
“아, 첫 날 찍은 겁니다.”
영효 선배가 고개를 들고 날 바라봤다. 뭔가 추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스포츠 오션에서 일을 받기 전에 포트폴리오 만들려고 야구장에 갔었는데 그 때 찍은 겁니다.”
“첫 날? 원래 야외 촬영 경험이 좀 있었어?”
“학교 때 실습이나 과제 삼아 찍은 거 말고는 이때가 처음이었는데요.”
미선 선배는 여기에 들어오기 직전 찍었던 걸그룹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너 연예인 쪽도 담당했었니?”
“네? 아니 그건 스포츠 오션 문화연예부 부장이 시범삼아 방송사에 가보라고 하셔서 그 때 찍은 겁니다.”
“원래 이런 무대 사진 찍는 거 좋아했어?”
“아니요, 학교 때 모델들 런웨이 때 찍은 게 제일 비슷했겠네요.”
“이게 말이 되나? 너 뭐니?”
내 이름을 물어보는 건 아니겠고 내 사진에 놀라서 저러는 걸 텐데 가만히 있어야겠다. 대부분이 카메라 시스템 덕분이라고 하면 내가 미친 놈 취급 받기 딱 좋을 테니까. 영효 선배는 머리에 손을 얹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사진만 봐서는 어시하기 아깝다. 특히 마지막 사진 보면 인물 사진 쪽에도 꽤 재능 있어 보이는데.”
“아아, 몇 백 장 중에서 겨우 몇 장 건진 거예요. 나머지 사진을 보면 그런 소리는 안 나오실 텐데.”
내 말에 미선 선배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대부분의 애들은 몇 천 장을 찍어도 이런 사진 못 건져.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촬영장에 혼자 가기 싫었는데 같이 가자.”
“네?”
“오늘 회의실에서 봤잖아. 나 오늘 영화 스틸 컷 찍으러 가거든. 어차피 오늘은 주연 배우 나오는 씬 없어서 선생님도 안 가시는 날이라 혼자 가야했는데 나랑 같이 가보자.”
갑작스러운 제의에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영효 선배가 끼어들며 말했다.
“미선아, 너 누구랑 같이 가는 거 싫어하잖아.”
“영효 오빠 , 궁금하잖아요. 이런 사진을 찍는 애하고 같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게 되면 어떤 차이가 날지 넌 궁금하지 않아요? 1시간 뒤에 출발이야. 준비하고 있어.”
그렇게 돼서 나는 지금 미선 선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충북 제천으로 향했다. 지금 그곳에서는 촬영 중인 영화의 스틸컷을 찍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왔으니 그 안에서 대부분 촬영이 이뤄질 것 같았는데 야외 촬영의 비중도 꽤 높다고 한다.
“근데 왜 영화 스틸컷을 야외에서 찍나요?”
“너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영화포스터 때문이지.”
“네? 그거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거 아닌가요?”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어. 요즘에는 스틸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대세야. 물량으로 승부하는 액션 영화 말고 멜로나 드라마 같은 장르 영화는 요즘은 스틸컷을 포스터로 촬영해.”
“와 그럼, 촬영 때마다 가는 건가요? 아니 스케줄 보니까 선생님 굉장히 바쁘실 텐데 이럴 시간 있으신가?”
“이번 영화 찍는 제작가분이 절친 이신가 봐. 저예산영화인데다가 촬영기간도 짧아서 보통 영화는 한 편당 50~60회 정도 가는 데 이번 영화는 30회만 가기로 했어. 그것도 선생님은 절반인 15회 정도만 스틸 컷 작업에 참여하시고 나머지는 나하고 영효 선배가 가고 있지.”
“아아, 그렇군요.”
영화 포스터에 이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 포스터는 죄다 정해진 콘셉트에 따라서 별도로 촬영한 포스터인데 언제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영화관 가는 횟수가 손꼽을 정도로 줄긴 했다.
“오늘은 주연 배우 둘 다 나오지 않아. 주위 사람들 에피소드 촬영만 있을 거야. 오늘 촬영할 대본이야. 가면서 읽어보고. 어떤 장면을 찍는지 알게 되면 확실히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니까.”
“고맙습니다.”
“영화 찍을 때만 촬영이 가능한 건가요?”
“아니, 촬영 중간 중간 다음 장면을 준비하기 전에 배우들한테 양해를 구하면 연출 사진도 찍을 수 있어. 그리고 사진 소리 조심하고. 그걸로 신경 쓰는 배우들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이 카메라서 소리가 난 적은 없는 것 같으니까 소리 조절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차는 고속도로를 따라 제천에 위치한 촬영장으로 도착했다. 많은 스탭들이 촬영 준비에 한창인 모습이 보였다. 미선 선배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윤 감독님~ 미선이 왔어요. 저 때문에 아직 촬영 안하셨네. 감사해요.”
“참나, 사진기사 기다린다고 영화 안 찍을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안 찍은 거야.”
“오늘은 야간 촬영 없죠? 저번처럼 밤새 찍으면 곤란해요. 다음날 저 출근도 못했어요.”
“뭐 오늘은 낮 장면만 있으니까. 중간 편집도 한 번 해야 하고. 그래서 자네가 온 거 아니야. 중요한 촬영이면 정만종씨가 오셨겠지. 어여 준비해, 배우들 준비 다 됐어.”
“오늘 우리 스튜디오 막내 데리고 왔어요. 사진 곧잘 찍는 우리 기대주니까 잘 부탁드려요.”
“아, 우리야 촬영 방해되지 않게 멋진 스틸 컷 뽑아주면 더 이상 바랄게 없지.”
미선 선배가 나를 향해 윙크를 한다. 난 고개를 끄덕거리며 카메라를 꺼냈다. 이리저리 다 챙겨주시니 나중에 밥이라도 사드려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본 촬영은 스케치 사진이 가장 적합하나 아직 익히지 못한 관계로 사진의 장르가 인물 사진으로 설정됩니다.] [인물 사진 6등급] [특성 : 남심올킬, 지킬 앤 하이드]아직 영화의 장면을 한 컷으로 뽑아내기에는 내 수준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 욕심 부리지 말고 조연들 인물 중심으로 잘 찍어봐야겠다.
“레디, 액션!”
오늘 영화 촬영은 조연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주기 위한 촬영으로 생각된다. 조연들이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한 얘기로 보였다. 첫 번째는 주인공의 친구로 예의바르고 착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악하고 잔인한 면을 지녔다, 두 번째는 주인공의 여자 친구로 억세고 사나워 보이지만 주인공을 정말 아끼고 있다는 설정이다.
“다시! 네가 오버하니까 연기가 어색한 거야. 여기가 연극판인 줄 알아! 영화에 맞게 연기를 하란 말이야! 동선! 시선! 다 엉망이야!”
첫 번째 남자 배우의 촬영은 큰 잡음 없이 끝났는데 두 번째 여자 분의 촬영이 길어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잘하는 거 같은데 감독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다시!’를 외치고 있다.
“너 내 말 못 알아듣지? 야! 아우 저거 누가 데리고 왔어.”
너무 화가 난 감독이 자리를 떠나자 조감독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자, 잠시 쉬었다가 촬영합니다. 담배 태우실 분은 태우시고 뭐 좀 드실 분은 드세요.”
이런 분위기에 밥이 잘도 넘어가겠다. 너무 긴장을 해서 작업했는지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야외에 설치해 놓은 화장실로 가니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지 줄이 서 있다. 아아, 이거 참기 힘든데·· 난 수치를 이겨내고 촬영장 뒤에 있는 숲으로 깊게 들어가 볼 일을 봐야했다. 그리고 촬영장으로 되돌아오는데 한 여자 분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요.”
“네? 네! 누구세요?”
돌담에 기대듯 쓰러져 있던 여자는 눈을 비비며 내 외침에 답했다. 방금 전 촬영을 했던 여자 분이었다. 이름은 노다경.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귀염상에 서늘한 눈매가 주는 매력이 보였다. 솔직히 난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졸고 있다니 좀 깬다. 난 웃으면서 눈을 비비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무대서나 주무시면 감기 걸려요.”
“아, 조금 졸았나봐요. 어제 오늘 찍을 장면 연습하느라 잠을 못자서·· 에이고, 이런 말 하면 감독님한테 준비한 게 그것밖에 안되냐고 혼날 텐데.”
“좀 혼나면 어때요. 뭐.”
“네?”
“감독 성질머리보니 자주 혼낼 것 같은데 맞죠? 우리 형이 한 말인데 누가 미친 듯이 화내도 그런 거에 휘둘리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했어요. 물론 고칠 건 스스로 신경 써서 고치고요.”
“형이 배우에요?”
“아니요, 운동선수요. 거기는 화내는 걸로 안 끝나고 엄청 때리기도 하더라고요. 배우님은 운 좋은 줄 알아요. 여긴 말로만 으르렁거리지 손을 대진 않잖아요. 아, 저기 사진 하나 찍어도 되요?”
“네?”
“저 여기 스틸 컷 사진 찍고 있거든요. 영화 촬영할 때 찍고 있는데 카메라 때문에 죄다 측면만 찍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님 정면 컷 좀 찍고 싶어서요.”
다행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가지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자 기분 좋은 문구가 눈앞에 떴다.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쯤 촬영은 끝이 났다. 미선 선배는 내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사진 다 찍었어?”
“네, 근데 몇 장면 빼놓고는 별로 건진 게 없어요. 아우 스틸 컷 찍는 거 되게 어렵 네요.”
“좀 볼 수 있어? B컷 빼놓고 모두 마케팅 팀에 넘겨야 돼서.”
난 노트북에 옮겨놓은 사진을 미선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사진을 보여줘야 하기에 내심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일단 제가 생각해서 좀 잘나왔다고 생각한 사진은 앞으로 빼놨어요.”
“··”
“미선 선배?”
청담동 다올하우스 마케팅 부.
마케팅 팀장은 오늘 들어온 스킬 컷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실 팀장이라고 해도 밑의 팀원은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다였다. 그는 사진을 보다가 옆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어? 오늘 정만종 선생님 왔다 가셨어?”
“네? 잠시 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스케줄 표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오늘은 밑의 실장급이 왔다 간걸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상하다. 밑의 실장이라면 영효하고 미선인데 걔네들 사진이 아닌데.”
“무슨 사진인데 그럽니까?”
“이거 봐라. 다경이 사진인데 좀 독특하잖아.”
“그러게요. 촌스럽고 세고 날카로운 이미지인데 이건 뭔가 좀··”
“여자 같지?”
“아, 그 말이 맞네요. 되게 매력적인 여자 같아요.”
“촬영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좀 알아봐야겠네. 다경이가 이런 느낌이었나? 뭐 남자친구라도 온 거 아니야?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둘은 색다른 모습으로 찍힌 여배우의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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