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특별한 시선
“길승우 씨, 오랜만이에요.”
난 유명한 모델 겸 방송인인 선시연 씨를 만나 인사를 했다. 이 모델 에이전트는 예전에 에브리아가 좀 다녔던 곳이다. 여기 사람들과 광고를 한 편 찍기도 했고 여러모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난 선시연 씨와 회의실에서 잡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하고 일해요?”
“네, 그래서 길거리 패션이나 패션 제안하는 페이지에 모델들 좀 쓰고 싶어서요. 잡지 에디터 하시는 분에게 부탁해서 모델은 제가 선택하기로 했어요.”
“뭐, 길승우 씨가 직접 고르는 게 저에게도 좋죠. 아무래도 모델과 사진작가의 합이 맞으면 좋은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니까요. 실제로 모델들을 확인하는 거 선호하죠?”
“네, 아무래도 직접 봐야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지금 당장인가요, 아니면 날을 정할까요?”
“뭐 어디 메인에 실리는 작업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간단한 촬영이잖아요. 오늘 당장 모델을 정하고 작업 날짜도 내일이나 모레로 잡으면 해요.”
선시연 씨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방을 나섰다. 선생님 품에서 나오니까 사회가 더욱 정글처럼 느껴진다. 잠시나마 기자로 일하면서 느낀 것은 실력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고, 다른 강점도 있어야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할 때도 있었다.
나의 첫 번째 목표는 일단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무시당하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겠지.
선시연 씨가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오늘 나온 모델들만 대상으로 하실 거죠? 수업 멈추고 일일이 면접을 보시겠어요, 아니면 그냥 지켜보고 결정하시겠어요.”
“하하, 면접은 좀 오버 같아요. 그냥 지켜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래서 난 선시연 씨가 안내하는 방으로 갔다. 그 방에는 많은 신인 모델들이 연습 중이었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모델을 봤을 때 어떤 영감이 떠오르냐 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와 합이 맞는 모델을 보면 저절로 사진에 어떻게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 영감이 떠오르는 모델만큼 좋은 모델은 없다.
“물론 에브리아가 최고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찍고 싶은 사진이 열 가지는 넘는다. 그래서 볼 때마다 이런 사진 찍어보자, 저런 사진 찍어보자 귀찮게 했다. 그랬더니 에브리아는 이런 거 때문에 보는 거냐고 단단히 삐쳐있다. 다음 달이나 다다음 달에는 에브리아와 함께 작업한 화보를 꼭 담고 싶다.
“저 두 명이요.”
“보연이랑 진희네. 완전 극과 극을 뽑으셨어요. 의도하신 건가요?”
“딱히 의도는 아닌데, 그렇게 된 거 같네요.”
보연 씨란 분은 조금 작지만, 스타일이 좋아서 밝은 옷 계열을 잘 소화할 것 같고, 진희 씨란 분은 길쭉한 몸에 몽롱한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선시연 씨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둘 다 이번이 첫 데뷔가 되겠네요. 아직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어요. 보통 사진작가분이시면 말리고 싶지만 길승우 씨니까 어떻게든 잘 찍어주시리라 믿어요.”
“처음이군요.”
이번 촬영은 어려운 촬영은 아니다. 딱히 정해진 컨셉도 없다. 잡지 에디터가 제안한 옷을 입히고 내 방식대로 잘 찍으면 되니까 말이다.
다음 날, 나는 잡지사에서 배정해 준 외부 스튜디오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연출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진다. 최근 보도사진을 찍으면서 남들과 비슷한 사진을 찍고, 그나마도 제대로 못 찍는 날이 많았다. 이런 와중 주어진 새로운 방식의 작업은 날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타일리스트 님, 보연 씨 머리말인데요··.”
에디터, 스타일리스트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도 좋다. 이들의 개성이나 노하우가 내 사진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패션을 보는 눈은 그들이 나보다 몇 배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처음부터 초보 모델들은 의욕을 보여주며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저들에게 요구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입은 옷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촬영장 배경과의 조화를 생각해서 포즈를 취하라는 점이었다.
“몸으로 라인을 만들어 볼까요?”
보연 씨가 그렇게 얘기하며 포즈를 잡는데 좀 어색했다. 나름 필사적으로 생각해서 포즈를 잡은 거라고 생각하니 귀엽기도 했다.
“다리 너무 꺾지 말고요. 아? 입이 벌어졌어요.”
난 보연 씨의 과도한 포즈를 수정하며 몇 장을 찍었다. 잡지사에서는 그리 신경 써서 찍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카메라를 드는 순간 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보연 씨, 왜 모델이 하고 싶어요?”
“전 그냥 패션이 좋아요. 화보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 일을 안 하는 것이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저도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화보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꿈 얘기를 하자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난 웃으면서 셔터를 눌렀다.
“화보를 잘 찍기 위해서는 뭐가 중요할 것 같아요?”
“··글쎄요. 포즈?”
“전 패션모델은 옷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옷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입은 옷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포즈를 생각한 건 좋은데, 옷에 따라서 그 포즈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아.”
“어떻게 하고 싶어요? 계속해요? 아니면 좀 쉬었다가?”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실 수 있어요?”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요. 그리고 생각하는 김에 지금 어떤 배경의 장소에서 찍고 있는가도 생각해보세요.”
보연 씨는 촬영장에서 나와 옷을 거울에 비추고 한참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난 스타일리스트님께 조언을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옷이 너무 예쁘니까 이 자체를 살려요. 옆 라인을 살리는 편이 좋겠어요.”
뒤늦게 진희 씨도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난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봤다. 모델을 키우는 건 경험인데, 나와 함께하는 작업이 저들의 성장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수동적인 모델보다는 적당히 능동적인 모델에게 더 끌린다. 대부분의 사진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포즈 좋아요. 지금 괜찮으니까 잠깐만, 눈은 카메라를 봐요.”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제법 많은 것을 생각해낸 것 같아서 기뻤다. 솔직히 기존 모델보다 과히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난 계속 타이밍을 맞춰서 칭찬을 해줬다. 이 친구는 칭찬해주면 줄수록 더 표정이 생기 있어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A컷 건졌으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요.”
보연 씨는 끝에 가서는 내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끼를 발산했다. 내가 수고하셨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정말, 대단했어요! 내 모습을 다 보여준 것 같아!”
긴장된 첫 촬영을 잘 해냈다는 해방감에 조금 흥분했는지 상기된 얼굴로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난 그녀를 겨우 달랜 뒤, 진희 씨를 촬영장으로 불렀다.
진희 씨는 보연 씨보다 움직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선택한 것은 진희 씨라는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뭔가 차갑고 외롭고 고독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억지로 웃을 필요 없어요, 옷하고 어울리지도 않잖아요. 에고, 잠깐만요.”
난 그녀에게 다가갔다. 눈빛에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뭐가 좀 불안해요?”
“네? 아니, 이상하게 찍힐 것 같아서··.”
“여기 좀 와 봐요.”
난 그녀를 모니터로 이끌고 처음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진희 씨는 실물보다 사진으로 찍을 때 비율이 좋게 나와요. 그렇게 보이죠? 일단 이건 모델에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라고 봐요.”
“정말요?”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요?”
“다른 언니들이 전 항상 우울해 보여서 성공하기는 글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진희 씨는 우울해보이지 않아요.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해요.”
“네?”
“그래서 제가 뽑은 거예요. 보면 알지 모르겠는데 그냥 서 있는 사진에도 힘이 있어요. 그 이유가 전 눈빛하고 몸 라인의 조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진희 씨는 조금만 경험을 쌓으면 이쪽 세계에서 특별한 모델이 될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가 왜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진희 씨를 뽑았겠어요.”
그녀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진희 씨는 진희 씨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고, 오늘 내 목표는 그 분위기를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다.
“진희 씨는 그냥 서 있어도 그림이 되는 모델이에요. 자신감을 가지고, 좋아요.”
점차 촬영에 익숙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과감한 움직임 좋아요, 사진에 잘 담겼어요. 손을 좀 더 움직여 볼래요? 음, 좋다.”
진희 씨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내가 처음 감탄했던 눈빛이 더욱 빛났고, 난 눈빛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사진을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
***
구희양 편집장은 오늘 찍은 길승우의 사진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현장에 있었던 에디터를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재능 낭비 아닌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이대로 메인 화보 가도 독자들이 그러려니 할 것 같아요.”
“효진 씨가 보기에 촬영 현장 어땠어?”
박효진은 촬영장을 생각하니 몸이 움찔거렸다.
“뭐랄까, 길승우 씨는 마술사 같아요. 포토그래퍼분이 사진 찍는 스타일이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철저하게 계획해서 사진을 찍는 분과 모델을 자유로운 상태에서 움직이게 하고 순간적인 동작이나 감정 표현을 잡는 분. 이렇게요.”
“그렇지, 대부분 첫 번째 아니야? 모델을 놔두고 순간포착을 노리는 방식은 모델이 베테랑일 때나 쓰잖아.”
“이번에 찍은 얘들은 첫 촬영이었어요. 모델로 카메라 앞에 처음 선 애기들이었죠. 그런데 두 번째 방식 비슷하게 찍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전체적인 틀 안에서 마음껏 뛰놀게 한다고 할까? 모델하고 커뮤니케이션을 길게 가지고 가면서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축소하면서 모델의 베스트 컷을 뽑아내요.”
“아우씨, 얘 그렇게 설명하니까, 되게 궁금하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좀 그래요. 아마도 신인 모델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있을 거예요. 마음껏 포즈를 취했더니 멋진 사진이 나온 거죠.”
“그래서 나온 결과가 이거지··. 음, 이 사진들 어쩌지? 그냥 한 면 가득 채워서 넣고 싶다.”
“참으세요,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몰라요.”
***
한편 진희와 보연은 촬영을 마치고 한 카페에서 오늘 있었던 촬영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오늘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 진희 언니는 어땠어?”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분 하고 작업한 게 꿈같이 느껴져. 아, 오해하지는 마. 그분을 좋아해서 그랬다는 게 아니야. 작업 중에 내가 아닌 것 같고, 내 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는 뜻이야.”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그랬던 거 같아. 신이 나서 움직인 건 기억나는데, 정작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런데 결과물이 너무 좋았단 말이지.”
“뭔가 그분하고 말을 하고 있으면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서늘한 기분도 들었어. 언니들이 부러워하는 이유가 있었어. 일류 사진작가님들은 이렇구나.”
“나중에 나 성공하게 돼서 메인 화보를 찍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길승우 작가님한테 찍히고 싶어. 뭔가 오늘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충족감도 들고, 자신감도 막 생겨. 이러다가 나 진짜 탑모델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난 다른 예쁜 사람들 틈에서 나를 선택해준 게 너무 좋아. 항상 내가 지닌 우울한 인상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 작가님은 특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어. 혹시라도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은혜를 갚고 싶어.”
“어서 빨리 성공하고 싶다, 그지?”
“응, 오늘 같은 작업이라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
두 명의 모델 유망주들은 오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지치지도 않고 오늘 있었던 일과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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